시작부터 끝자락까지 뜨거웠던 JTBC 드라마 ‘밀회’가 오는 13일 16회로 종영한다. 완벽한 텍스트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진리, 그리고 되새겨 보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해준 드라마였다. ‘밀회’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그것도 무려 스무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금지된 사랑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은 이들의 사랑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타락해버린 한 여자가 순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세상의 온갖 흙탕물이 드러났다. 그 흙탕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저도 모르게 자신을 잃어버린 인생들을 돌이키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쩌면 오혜원이 뒤늦게 발견하게 된 순수한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싸움은 단순한 불륜으로 읽을 수 없는, 지독하고 치사한 세상을 향한 우리 모두의 항변일지 모르겠다. 그 싸움의 결말은 안판석 PD의 시선과 정성주 작가의 손길에서 완성된다. 과연 우리는 이 완벽한 합에서 그려진 김희애와 유아인, 그러니까 오혜원과 이선재의 어떤 얼굴을 확인하게 될까.



박혁권

좋은 드라마는 재발견되는 배우들을 탄생시킨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합주곡처럼 어우러지는 캐스팅을 보여준 JTBC ‘밀회’ 역시 그랬다. 주인공 오혜원(김 희애)과 이선재(유아인)의 최측근 인물들을 비롯해 1~2회분에만 등장했던 단역 배우들까지 무엇보다 자연스러움으로 호흡한 ‘밀회’ 속 배우들의 재발견된 면모를 들여다봤다. 우선 ‘안판석 사단’으로 불릴 만한 강준형 교수 역의 박혁권은 안판석 PD의 전작 ‘아내의 자격’(2012)에서 겉으로는 완벽한 듯 하지만 실은 이중생활을 하는 남편 역에 이어 이번에는 ‘중2병 남편’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부조리한 남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극 전반부에는 자신을 보살펴주는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능력있는 동료 조인서(박종훈) 교수를 늘 시기하는 철없는 남편으로 안타 까움과 코믹함을 함께 자아냈던 그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안 후반부에는 좀더 내밀한 갈등 속으로 들어간다. 급기야 아내에게 “너 아주 나쁜 년이야”라고 소리치며 폭발하지만 결국 자신이 지닌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며 아내와의 관계도 ‘비즈니스’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인물이기도 하 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오가는 인물의 선을 그려낸 박혁권은 연극배우로 데뷔해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의 힘을 톡톡히 보여줬다. 특히 과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속에서도 복잡한 내면 갈등을 묘사하는 데서는 그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김혜은

오혜원의 친구이자 연적인 서영우 역의 김혜은도 복잡다단한 인물의 심리를 유려하게 표현해냈다. 모든 것을 갖췄지만 내면의 공허함으로 항상 외롭고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물의 내면은 겉으로 보이는 도드라진 화려함과 대비되면서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냈다. 친구인 오혜원을 질투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집안의 재산에 욕심을 내고 있는 새어머니 한성숙(심혜진)에게 적개심을 감추지 못하는 영우는 단 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약자다. 늘 어린 연인을 곁에 두고 떠날까 노심초사하며 온갖 정성을 들이는 것. 풍요로움 속에 성장했을 것 같아 보이는 그녀에게는 단 한가지, 사랑이 빠져 있 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에는 처연함이 묻어 있다. 실제로 성악과 출신이기도 한 김혜은은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에 어울리는 화려함과 약간의 광기, 결핍된 분위기를 오가며 2007년 데뷔 이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으로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다.

피아니스트 신지호(왼쪽)와 박종훈

배우가 아니지만 프로 연기자 못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호흡한 이들도 있다. 인격과 실력을 두루 갖춰 ‘밀회’ 속 부조리한 인물들과 명확한 대비 관계를 이룬 조인서 교수 역의 박종훈은 실제 음대 교수로서 몸에 꼭 맞는 듯 편안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극중 실제 피아노 연주 장면이나 자신이 직접 지도 한 김희애, 유아인의 피아노 합주곡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조인서의 제자 지민우 역을 맡은 팝피아니스트 신지호나 극중 이선재의 친구 박다미(경수진)와 대치하는 정유라 역의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도 본래 지닌 음악적 감성에 연기를 덧입혀 한층 현실감있는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김용건

김용건, 김창완 등 중견 연기자들은 조용하지만 묵직한 연기로 작품의 격을 한층 높였다. 서한그룹 서필원 회장 역으로 분한 김용건은 점잖은 모습 뒤로 기업을 둘러싼 암투를 파악해내는 예리함과 더불어 여색을 밝히는 천박함을 두루 지닌 인물로 ‘어딘가에 실제 있을 법한’ 회장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변인들을 아끼는 듯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익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냉혈한다운 면모는 비정한 기업 논리를 실감케하듯 서늘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안판석 PD의 ‘하얀거탑’(2007)에서 권력지향적인 외과과장 역으로 분했던 김창완은 이번에는 좀더 조용하지만 역시 비리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 내는 인물로 연기 내공을 실감케 했다. 선해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음대 입시 비리를 배후 조종하는 민용기 학장 역의 김창완은 인심 좋게 생긴 선한 눈빛 이면에 음흉하고 계산적인 속내를 지닌 인물을 그려냈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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