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끝자락까지 뜨거웠던 JTBC 드라마 ‘밀회’가 오는 13일 16회로 종영한다. 완벽한 텍스트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진리, 그리고 되새겨 보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해준 드라마였다.두 사람의 화학 작용은 실로 대단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것을 다루는 것에 대한 날 선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던 건, 이들의 사랑이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결합 이상의 무언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 속 오혜원과 이선재처럼 실제로도 19세 나이 차를 자랑한 두 배우의 연기에는 자칫하면 손을 벨 듯이 날카롭게 다듬어진 디테일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 담겨있었다. 김희애라서 가능했던 것과 유아인이라서 가능했던 것, 두 사람의 연기가 만나 꽃피운 케미스트리는 바로 ‘밀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밀회’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그것도 무려 스무 살이나 나이 차가 나는 금지된 사랑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은 이들의 사랑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타락해버린 한 여자가 순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세상의 온갖 흙탕물이 드러났다. 그 흙탕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저도 모르게 자신을 잃어버린 인생들을 돌이키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쩌면 오혜원이 뒤늦게 발견하게 된 순수한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싸움은 단순한 불륜으로 읽을 수 없는, 지독하고 치사한 세상을 향한 우리 모두의 항변일지 모르겠다. 그 싸움의 결말은 안판석 PD의 시선과 정성주 작가의 손길에서 완성된다. 과연 우리는 이 완벽한 합에서 그려진 김희애와 유아인, 그러니까 오혜원과 이선재의 어떤 얼굴을 확인하게 될까.
# 김희애라서 가능했던 것
이들의 사랑이 ‘불륜에 대한 설득력’이 아닌 ‘감성적인 공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인물에 대한 손에 잡힐 듯한 표현이 필수적이었다. 김희애가 아니었다면, 감히 누가 오혜원을 연기할 수 있었을까.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마흔의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잘 가꿔진 몸매, 오혜원의 묵직한 존재감은 대체 불가한 김희애만의 느낌으로부터 시작됐다.
‘밀회’는 초반부부터 줄곧 혜원의 잘 가꿔진 몸매를 노골적으로 조명한다. 또 선재를 떠올리며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베어 무는 모습에서는 ‘육체적 사랑’에 대한 메타포까지 읽힌다. 이는 모든 게 갖춰진 듯 보이지만, 정작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결여된 혜원의 틈새를 보여준다.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늘 “넌 누구와 사는 거냐”고 따져 물으면서도 아내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해버리는 남편 강준형(박혁권)과 혜원은 침대를 따로 쓰는 ‘섹스리스(sexless)’ 부부이자 ‘쇼윈도(show window)’ 부부이다. 혜원이 스무 살이나 어린 선재에게 정신적인 사랑만큼이나 몸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을 느끼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밀회’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면서 육체적인 관계를 빼놓지 않았던 것과도 맥이 닿아있다.그런 정신적, 육체적 사랑의 부재에 김희애는 한 가지 감정을 덧붙인다. 바로 선재의 천재성에 대한 갈망과 질투심. “음악이 갑이야”라고 말하며 선재의 음악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한 몸짓을 그려낸 김희애는 ‘오혜원’이라는 인물을 카메라 앞에서 낱낱이 파헤친다. 완벽함 이면에 드러난 빈틈은 혜원이 선재와 사랑을 꿈꾸게 하는 이유가 된다.
# 유아인이라서 가능했던 것들
천재적 피아노 재능을 가진 이선재를 연기하기 위해 유아인이 기울였던 노력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사실 ‘밀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혜원과 선재의 사랑이자 스무 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더러운 어른들의 세계의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겪게 되는 성장통이다.
그래서 이선재는 한없이 순수해야 했다. 꿈을 이루려 시작한 일이었으나,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하얀 화선지 끝자락부터 먹물이 스며드는 모습을 지켜보듯이 더러운 세상에 물들어가는 청년의 모습이 담겨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이미 물든 어른’ 혜원이 선재를 지키려는 마음은 ‘밀회’를 이끄는 주요한 이야기의 동력이 된다.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유아인이 그려낸 이선재는 너무나도 섬세했다.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의 살짝 가쁜 듯한 호흡과 봇물 터진 듯 흘러나오는 뜨거운 마음을 꺼내놓을 때의 격앙된 목소리까지. 이선재를 보며 ‘유아인’이라는 이름이 단 한 순간도 앞서 떠오르지 않았던 건, 그만큼 유아인이 입은 ‘이선재’라는 옷이 그에게 꼭 맞는 옷이었기 때문일 거다.선재는 혜원을 ‘여신’이라고 말한다. 꿈은 있었지만, 퀵 배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집만큼이나 좁은 세계에서 보면 혜원이 머무는 그곳이 무척이나 커다랗게 보였을 것이다. 또 선재는 혜원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삶에 무게에 눌려 고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혜원의 존재는 선재에게 생애 첫 선생님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경과 사랑에 대한 순수한 갈망이 뒤범벅된 선재의 심리는 스무 살 청년의 성장통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선재가 혜원과 불륜이 아닌 사랑을 꿈꾸게 하는 동인이 된다.
# 김희애, 유아인이라서 가능했던 케미스트리
만남에 앞서 충분히 자신들의 세계를 다져온 이들의 감정은 음악을 매개로 커다란 변곡점을 거치게 된다. 첫 만남부터 ‘말’이 아닌 ‘음악’으로 교감을 나눈 두 사람은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는 혜원과 선재가 사제지간이 아닌 또 다른 관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시사했다. 클래식 선율을 타고 첫 만남의 낯섦과 묘한 동질감이 교차하던 순간,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내쉬며 마치 육체적인 사랑을 나눈 것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가능성은 확신을 낳았고, 확신을 가진 선재는 혜원의 견고했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 성공한다. 이 순간에도 유아인과 김희애의 호흡은 빛났다. 순수함을 노래하듯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돌직구 고백을 날리는 선재나, 이를 듣고 만감이 교차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낮은 탄식을 내뱉은 혜원의 연기는 앞서 각자의 삶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줬었기에 설득력을 더했다. 유독 롱테이크로 가는 신이 많았던 ‘밀회’였기에 그 감정의 연속성이 한층 더 살아났음은 물론이다.웃음소리만 가득했던 첫 관계부터 김희애와 유아인은 ‘서툰 사람들’이 나누는 풋풋한, 혹은 그 풋풋함을 찾아가려는 남녀의 애정 표현에 집중한다. 이들이 짧았던 만남이 위험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프게 느껴졌던 것도 두 사람의 연기에서 이들이 마지막까지 꼭 쥐고 있던 ‘순수함’과 ‘진정성’이 여실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불륜’ 자체로는 어떠한 감동도 줄 수 없으며, 아무리 드라마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그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어딘가 결핍된 남녀가 서로의 음악과 마음을 통해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불륜’의 잣대로 구분 지을 필요가 있을까.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들이 그려낸 ‘밀회’ 속 로맨스로 불륜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해볼 계기를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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