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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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기(고딕체). 저는 사인이 이것밖에 없어요. 2003년 때부터 하던 사인이에요. 멋진 걸로 연습도 해봤는데 손에 익지 않아서 어색하더라고요. 이게 편해요.”

텐아시아 사무실에 들어와 ‘너를 원해’ CD에 본명 고정기를 고딕체로 꾹꾹 눌러 쓰는 정기고. ‘썸’으로 2014년 상반기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아티스트답지 않게 수더분한 모습이다. 이제 정기고는 더 이상 얼떨떨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썸’의 폭풍은 이미 지나갔고, 신곡 ‘너를 원해’가 다시금 음원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제 정기고의 노래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터닝 포인트는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 가요계에서 정기고는 흥미로운 존재다. 이제 막 얼굴을 알렸기에 신인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2002년에 힙합 계에서 데뷔한 엄연한 12년차 뮤지션이다. 힙합 계 보컬리스트들 중에는 정기고의 뒤를 이어 나온 자이언티, 크러쉬, 계범주, 범키 등 쟁쟁한 후배들도 많다. 물론 정기고는 신인이라고 해도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다. 워낙에 내공이 다져진 탓에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썸’ ‘너를 원해’가 그의 전부는 아니니까.

Q. ‘썸’ ‘너를 원해’ 두 곡이 연달아 터졌다. 기분이 어떤가?
정기고: 너무 감사하다. 아마도 내 평생에 ‘썸’과 같은 히트는 다시는 없을 것 같다. 그럴 정도로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썸’을 기준으로 신곡의 반응을 살피지는 않는다. ‘썸’이 히트했을 때 내가 그냥 얼떨떨해할 때 주변에서 형들이 ‘네가 시간이 지나면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 것이다’라는 말을 하더라. 당시에는 실감을 못했는데 지금은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분명 ‘썸’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고, 이후 약간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너를 원해’가 나왔는데 역시 많이 사랑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Q. ‘썸’은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이다. 어딜 가도 들릴 정도였으니까.
정기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좋아해주는 것은 첫 경험이었다. 어떻게 보면 ‘썸’이 내 첫 노래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정기고를 세상에 알린 노래.

Q. 직접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이면서 본인 앨범의 프로듀서도 맡았다. ‘썸’은 작곡가 김도훈 사단의 곡이다. 본인의 음악적 욕구를 더 나타내고 싶지는 않았나?
정기고: 항상 내가 부를 곡은 내가 만들어왔다. 헌데 ‘썸’은 이미 다 만들어진 곡을 부른 것이지. 그런데 ‘썸’은 온전한 내 작업이 아닌 소유와 함께 한 프로젝트다. 내가 해온 작업들이 있따고 해서 이 곡에 내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스타쉽이라는 팀을 만난 후 첫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을 배우는 입장이었다. 중요한 것은 좋은 곡이 나왔다는 것이다.

Q. ‘썸’은 듀엣 곡이었다. ‘너를 원해’는 정기고의 솔로 곡이다. 그런 면에서 보다 자기 것을 더 보여줘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을 것 같다.
정기고: 아직은 가요계의 작업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너를 원해’의 경우 가사는 내가 썼지만 작곡은 이단옆차기가 함께 맡았다. 이단옆차기는 가요계에서 엄연히 내 선배다. 사실 홍대와 이쪽 가요계는 신(scene)이 많이 다르다. 뭐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방식이 다른 것이다. 두 신 모두 음악을 만들 때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은 같다. 가요계의 작업방식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기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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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전에는 언더 힙합 계에서 각나그네, 도끼 등이 트랙을 만들면 그 위로 정기고가 곡을 써 노래하기도 했다. 그들과의 작업과 현재 최고의 상업작곡가인 이단옆차기와의 작업은 많이 다를 것이다.
정기고: 난 상업적이란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는 거니까. 예전에는 상업적이라는 말이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뉘앙스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상업적이면서도 작품적으로 좋은 곡들이 많아졌다. 홍대와 이쪽은 작업 방식이 너무나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낸다. ‘썸’은 무려 작사가가 5명, 작곡가가 4명이 참여했다. 곡에 참여한 이들의 크레디트가 미국 팝 앨범 수준이다.(웃음)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서 정말 많은 이들이 의견을 나누고, 그 안에서 매우 디테일한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Q. ‘너를 원해’에는 빈지노가 랩으로 참여했다. 빈지노는 정기고의 2012년 첫 EP ‘패스파인더(Pathfinder)’에 수록된 ‘유어바디(yourbody)’에서 처음 피처링했다. 그때와는 둘 다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정기고: 격세지감 같은 게 있긴 하다. 그런데 빈지노는 그때도 힙합 계의 스타였다. 지금은 슈퍼스타가 됐고.(웃음) 워낙에 잘 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이번 작업도 순조로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작업 방식이 달라진 건 없다. 달라진 거라면, 이번 곡은 많은 이들이 들어줄 상황이 됐다는 것 정도?

Q. ‘유어바디’가 더 자유롭게 작업한 곡이 아닐까?
정기고: ‘유어바디’는 딱 그때 할 수 있었던 사운드다. 팬들은 예전의 정기고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기고는 예전 스타일은 다시 만들지 않는가?’라고 묻기도 하는데, 예전 스타일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퇴보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곡을 들려드리는 것이 내가 보여드려야 할 모습이다. 시간이 흐르면 음악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좋게 달라져야겠지. 더 많이 노력할 것이다. ‘썸’은 분명히 내게 터닝 포인트라 할 만한 곡이다. 때문에 내가 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대로다. 아무리 주변 상황이 달라져도 내 자신이 가진 음악이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으니.

Q. 수많은 래퍼들과 함께 해왔다. 빈지노의 특징이라면?
정기고: 빈지노는 훈남, 서울대, 엄친아 등의 수식어 때문에 실력이 가려지는 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말 실력이 뛰어난 친구다. 가사를 풀어내는 해석력이 정말 탁월하다. 음악 외에 패션, 스타일적인 면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을 줄 안다. 잘 될 수밖에 없는 친구다. 뮤직비디오를 찍지 않아도 멜론차트 1위에 오르지 않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그 위치까지 간 것은 정말 대단하다.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정기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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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기고는 언더에서 오래 내공을 쌓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소울 싱어송라이터가 주류에서 터진 경우다. 클럽 에반스에서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고.
정기고: 그래서 힙합 쪽에서 더 응원해주는 것 같다. 사실 ‘썸’이 터졌을 때 여성 팬들은 자기들만 알던 정기고가 세상에 알려졌다며 서운해 하기도 했다. 남성들은 “정기 형 할 만큼 했다. 이제 잘 될 때도 됐다”라는 말도 하더라. 그런 기존 팬들에게 내가 자랑스러운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Q. 이제는 정기고를 비롯해 후배 싱어송라이터들인 자이언티, 크러쉬, 계범주 등이 음원차트에 등장하기도 한다.
정기고: 다 내가 좋아하는 동생들이다. 셋 다 나와 같은 오피스텔에 산다. 자이언티는 같은 층에 살고 크러쉬는 아래층에 산다. 내가 제일 먼서 이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뒤에 이 친구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이제 이 친구들이 모두 음악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인정받는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다. 난 분명히 이들이 모두 인정받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다들 자기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Q. 2002년 인피닛 플로우의 ‘리스펙트 유(Respect You)’에 피처링한 것이 첫 레코딩으로 알려져 있다. 힙합 신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게 됐나?
정기고: 처음에 음악 시작할 때 주위에 다 랩을 하는 친구들밖에 없었다. 어릴 때 친척동생의 친구로 각나그네를 만나고, 이후 넋업샨 등 힙합하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 난 랩보다 노래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트렌디한 소울, R&B 스타일을 했는데, 주변에 힙합하는 친구들이 비트 위에 가사를 쓰듯이, 난 내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당시 그런 스타일의 보컬리스트가 나밖에 없다보니 피처링을 엄청나게 했다. 3~4년간 30~40곡 정도를 피처링 했으니 말이다. 정말 앞뒤 재지 않고 날 것으로 노래하던 때다. 그 이후 2005년을 넘어가면서 소울맨, 샛별과 같은 후배들이 나왔고, 최근 자이언티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Q. 어떤 아티스트를 많이 들었나?
정기고: 내게는 맥스웰, 디안젤로가 컸다. 초창기의 에릭 베네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난 보컬 앨범보다 랩 앨범을 더 많이 들었고, 지금도 그렇다. 요새는 퍼렐 윌리엄스를 제일 좋아한다. 퍼렐의 ‘해피(Happy)’는 근래 들었던 곡 중 단연 최고다. 정말 잘 만든 곡이다.

Q. 이제 마이클 잭슨 새 앨범도 나온다.
정기고: 이전에 나온 앨범 ‘마이클(Michael)’도 정말 좋았다. 그 앨범에 실린 ‘베스트 오브 조이(Best of Joy)’라는 곡을 들으면서 음악으로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마이클 잭슨이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진심이 느껴지는 노래.

Q. 당시 일본의 세계적인 DJ 미쯔 더 비츠(Mitsu The Beats)와도 함께 작업했다.
정기고: 난 무조건 일본으로 가고 싶었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월드와이드로 활동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Q. 이제 스타쉽에서 시도해보면 되지 않겠나?
정기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정기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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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
정기고: 작년 말에 이야기가 나왔다. 원래 당시에는 내 레이블을 직접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서 제안을 준 ‘스타쉽 엑스’의 비전이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었다. 난 방송을 통하지 않고는 매니지먼트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다. 20대 동안 줄곧 ?서 음악을 해봤기 때문이지. 개인의 힘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시기에 스타쉽에서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좋은 음악은 정말 많다. 하지만 그것들이 대중에게 들려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난 내 음악을 알릴 수 있는 팀이 필요했다.

Q.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정기고: 처음엔 안 믿었다. 내가 아이돌가수도 아니고 어린 나이도 안니니까. 날 데려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타쉽 엑스를 뮤지션 중심의 음악으로 채운다는 비전을 알게 된 후 날 영입하는 것을 납득하게 됐다.

Q. TV에도 나가지만, 여름에는 페스티벌 무대에도 선다.
정기고: 페스티벌에서는 밴드와 함께 신곡과 예전 곡들을 골고루 들려드릴 예정이다.

Q. TV에서는 ‘썸’만 봐야 하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정기고는 힙합 공연 외에 재즈 클럽 에반스에서 한승민 등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자유로운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TV에서 봐도 좋을 텐데. 대중이 충분히 멋지게 받아들일 것 같다.
정기고: 나 역시 예전에 하던 그런 공연들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보다 더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음악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Q. 아직 가요 쪽에서 신인인 셈이니까. 가요순위 프로그램 나가는 것도 어색했을 것 같다.
정기고: 어색하기보다는 어려웠다. 우선 웃는 게 힘들더라. 아이돌 가수들이 대부분인데 먼저 인사도 해주고 해서 고마웠다. 의외로 내 예전 곡들을 아는 친구들이 있었다. 비원에이포(B1A4)의 바로, 방탄소년단, 갓세븐 등의 동생들이 내 예전 음악을 알고 있고,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놀랐다.

Q. 예전에 하던 ‘딥’한 음악과 대중적인 음악, 그 둘 사이에서 접점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정기고의 숙제가 아닐까한다.
정기고: 난 긍정적이다. 걱정은 없다. 내가 음악을 한두 해 해온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해온 내 음악, 내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가요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온 분들과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시기다. 이 모든 것이 내 색을 내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사실 예전에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듣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니더라도 일단 알아야 한다. 우선은 알아야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Q. 정규앨범은 언제쯤 나올까?
정기고: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올해 안에 꼭 정규앨범을 내고 싶다. 데뷔 후 아직 정규앨범이 없다. 이제는 정말 아끼고 아껴온 첫 정규앨범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오고 있는 것 같다.

Q. 기존에 인디 신에서 활동할 때에는 앨범을 작업할 때 프로듀싱, 작사 작곡 외에 영상, 앨범재킷 등 전반에 관여를 했다. 정규앨범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정기고: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그런데 가요계는 팀 작업이 중요하고, 또 이 모든 일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내가 모든 것에 관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각자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이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썸’에서 ‘너를 원해’를 내는 것도 타이밍이 매우 중요했다. 내가 예전에 작업하던 속도로는 절대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앨범의 퀄리티 못지않게 속도싸움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고집만을 부리기는 힘들다.

Q. 하긴, 인디 신에서 메이저로 자리를 옮긴 후 가장 다른 점은 어쩌면 속도감일 수 있겠다.
정기고: 맞다. 진짜 말도 안 될 정도로 다르다. 나 혼자 만들 때에는 곡이 나오는 대로 작업을 하면 된다. 하지만 가요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하기 때문에 속도를 맞춰나가야 한다. 힘들긴 하지만 이런 방식이 제대로 하는 것 같다. 그게 팀인 것 같고, 그게 가요계인 것 같고, 그게 시스템인 것 같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스타쉽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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