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임혁필이 공연 기획과 봉사활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KBS2 ‘개그콘서트’에서 ‘나가 있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세바스찬이라는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던 임혁필. 그는 지난 2010년부터 개그가 아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마술, 버블쇼, 샌드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펀타지쇼’ 기획, 공연하고 대학연합봉사동아리 ‘봉즐’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것. 그는 연예인 봉사단체에 속했을 시절에도 99% 출석률을 자랑할 정도로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서양화과를 전공하던 미대생, 그리고 개그맨, 이제는 봉사활동을 하는 공연기획자까지, 항상 두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 임혁필은 강연도 하며 자신의 삶을 전파하고 있다. 어쩌면 40대의 임혁필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던 ‘개그콘서트’ 속 임혁필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 아닐까.

Q. 현재 개그맨보다는 화가나 공연 연출가로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기가 있나?
임혁필 :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항상 보여주는 입장이었지 않나. 항상 만들어지는 도구였다면 이제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공연을 만들었다. 그래서 샌드 애니메이션을 배웠고, 그림이나 스토리에 관심을 두게 됐다. 연출을 하게 되니 책임이 막중하다. 만드는 입장이 되니까 열심히 해야 되고, 다른 사람 눈치도 봐야 되고, 더 바빠지게 됐다. 보는 사람들은 방송을 안 하면 노는 줄 안다. (웃음)

Q. 많은 공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마술과 샌드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접목한 ‘펀타지쇼’를 기획했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임혁필 : ‘개그맨 임혁필이 공연해봤자 ‘세바스찬 같은 또 그런 것을 하겠지’ 그런 시선도 있었다. 또 마술 공연이라든가 버블쇼 공연을 봤는데 그것 하나로 한 시간 반을 이끌고 가기에는 무리라고 보였다. 그래서 그것들이 퍼포먼스 자체로는 재미있으니까 한 번 모아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엑기스들만 모아놓는 것이다. 퍼포먼스 종합선물 세트. 만들어 놓고 보니 나는 내 유행어 ‘나가 있어!’ 이런 것만 하면 안 되니까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드릴지 고민했다. 그래서 전공인 서양화를 살려 그림을 그리는 것을 무대에서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그러다 샌드 애니메이션을 우연히 접했고, 그림을 그리면서 영상이 나가는 것을 공연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독학했다.

샌드 애니메이션 공연을 하고 있는 임혁필

Q. 독학으로 샌드 애니메이션을 했다니, 재능이 대단하다.
임혁필 : 어렸을 때부터 오래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리는 건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도구 문제였다. 모래를 구하는 것이었는데 모래가 백사장 모래도 아니고, 샌드 애니메이션용 모래도 나한테 맞지 않았다. 고운 걸 써야 됐는데 누가 동물 친칠라 햄스터가 목욕하는 모래가 곱다고 해서 구했더니 너무 고와서 손에 땀이 나면 반죽이 되더라. (웃음) 나중에는 모교인 청주대의 애니메이션학과에도 문의했지만, 적당한 모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건축하는 분들이 미니어처 같은 걸 만들 때 쓰는 모래를 발견했다. 그 모래가 곱고, 두께감도 있어서 좋았다.

Q. 그림을 전공했는데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임혁필 : 말이 개그맨이지 사실 내성적이고, 어렸을 때는 나가 놀라고 부모님이 등을 밀 정도로 만화책 보고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집에만 있는 사람이었다. 친척들이 개그맨 되고 방송 나온 걸 보고 많이 놀랐다. (웃음)

Q. 아니, 조용했던 사람이라니 상상이 안 된다.
임혁필 : 조용했지만, 예체능에 대한 끼는 있었다. 지방대생이고, 청주대 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지방대라는 핸디캡이 심했다. 그림은 특히 더. 형편도 안 되니 취업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개그 콘테스트 광고가 나오기에 추억 삼아 개그맨이 되자고 생각해 참가했다. 진짜 운이 좋아서 콘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웃음) 솔직히 개그맨 시험 치는 친구들 보면 한 번에 붙는 애들이 드물다. 그때도 그랬고… 난 한 번에 됐으니 개그 천재인줄 알았는데 천재는 아니더라고. (웃음)

Q. 개그 콘테스트에 참가했을 그때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겠다. 대학생 때 임혁필은 지금의 삶을 상상했었을까.
임혁필 : 그냥 물 흐르듯이 살아서 그림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취업해서 평범하게 살았겠지. 지금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때 콘테스트가 인생의 전환점인 것 같다. 이 질문을 받고 드는 생각인데 정말 개그맨이 되고나서 많이 변했다. 원래 술, 담배를 안했었다. 해병대에 있을 때도 술을 안 마셨다. 그런데 개그맨 되고나서 엑스트라라도 하려면 관계자들을 만나서 친분을 쌓아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술을 마셔야 했다.





Q. 대학생 연합 봉사동아리 ‘봉즐’의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어떤 인연인가.
임혁필 : 예전에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100인 이사회’(이하 100인 이사회)라는 단체가 있었다. 연예인 봉사단체인데 그곳에서 한 번인가 빠지고 다 나갔다. 내가 제일 한가했나? (웃음) 연예인이 하는 봉사활동 단체가 가식적이고, 카메라가 있으니 하는 거고, 이미지 좋게 만들려고 하는 편견이 싫어서 당시에 카메라가 따라와도 묵묵히 있었다. 그때 ‘봉즐’ 친구들과 함께 봉사를 했는데 솔직히 일은 ‘100인 이사회’가 아니라 ‘봉즐’이 다했다. 그때 그 친구들을 보고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저렇게 해야 되는 거구나’, ‘순수하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해야 봉사구나’라고 느꼈다. 이후 ‘100인 이사회’에서 독립한 ‘봉즐’에게 연예인으로서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으면 자문을 하자고 생각해 도와주고 있다. 사실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Q. ‘봉즐’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임혁필 : 내가 대학 다닐 때보다 느낌이 좋다. 먹고 마시는 동아리가 아닌 생각 있는 팀들이어서 정말 좋다. 내가 오히려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정말 동아리가 잘됐으면 좋겠다. 같이 벽화 봉사를 하면 내 블로그에도 봉즐과 함께 했다며 글을 올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기운을 받아서 더욱 봉사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Q. 봉사활동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임혁필 : 미국에 연기 수업을 가르칠 때 항상 마지막에 ‘좋은 일 해라’는 인성 교육을 한다. 그 말이 맞는 게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이미지가 쭉 가는 거다. 사실 가수 션은 가수 활동을 하지 않지만, 방송에서 ‘좋은 일 하는 사람’으로 소개된다. 좋은 일을 하며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니까 좋은 이미지가 계속 되는 것이다. 좋은 일도 일종의 비즈니스다. ‘비즈니스’라는 말이 조금 그렇지만, 봉사단체도 홍보대사를 이용해 연예인을 활용하는 것이다. 서로 고급스러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거다. 예전에 성룡이 “좋은 일 하는 것 알리지 마라”고 했는데 자신이 연탄배달했던 걸 누가 기사로 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성룡 팬들이 여기저기서 자발적으로 동참을 했다고 한다. 그때 처음 느꼈다. 좋은 일은 알려야 되는 것이다. ‘봉즐’과 나도 서로를 활용하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단체에 홍보대사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봉사하는 삶을 알리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돕는 것이다.

Q. 임혁필만의 봉사활동 원칙이 있나?
임혁필 : ‘편하게 해라. 남는 시간에 해라. 가족한테 해라’다. 아이들 한 번도 안 놀아주는 아빠면서 다른 데서 놀아주고, 내 가족과 아이한테 봉사하고 남는 시간에 해야 봉사를 오래할 수 있고, 그래야 진짜 즐거워진다.가식적인 걸 떠나서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 ‘아우 선배님이 동아리 회장이라서 무조건 가야되나? 일 있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일 있는데 당연히 일 해야지! 내 일도 다 때려 치면서 좋은 일이니까 해야지? 그건 아니라고 본다.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임혁필과 대학연합동아리 ‘봉즐’, ‘봉즐’은 서울대, 경희대, 숙명여대 등 7개 대학이 모여 만든 연합동아리로 벽화 그리기, 문화재 가꾸기, 배냇저고리 만들기 등 매달 봉사를 기획해 실천하고 있다.

Q. 개그 콘테스트를 하면서 인생의 기회를 얻고, 또 40대에 들어서 개그 장르가 아닌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봉사활동을 하고. ‘봉즐’을 비롯해 2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임혁필 : 인생에 기회가 세 번 온 다는 데 안 오는 것 같다. 그저 기회가 오는 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다양한 기회를 만들 수 있게끔 뭔가를 해야 하는 것 같다. 그때 개그 콘테스트는 기회가 아니고, 추억 삼아 해보자는 것에서 시작됐다. 집에만 박혀 있으면서 ‘언젠가 나에게도 볕들 날이 오겠지’라고 기다리면 뭐가 오겠나.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삶이 주어지는 순서인 줄 알았다. 엄마가 기저귀 채워주고, 엄마가 가라니까 학교를 가고… 어른이 돼서도 ‘그냥 뭐 취업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나머지 인생도 그런 건 줄 알고 살게 된다. 그게 아니었다. 되든 안 되든 ‘개그맨 돼야지!’라고 굳은 결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뭔가 자꾸 두드려봐야 된다.

Q, 뭔가 도전하는 삶을 계속 산 것 같다.
임혁필 : 도전했다기보다 그냥 두드려본 것 같다. 이홍렬 선배님이 최근에 도보로 전국 일주를 하셨고, 거기에서 얻은 응원 수익을 어린이재단에 모두 기부했다. 일주를 하려면 하고 있던 프로그램을 모두 접어야 했는데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 포기하고 가셨다. 그런데 전국을 돌고, 힘든 일을 겪었던 일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됐다. 가기 전에 스케줄해서 번 돈 만큼 강연을 하니 수익이 생기더라. 60대에 한 도전의 결과다. 내가 뭔가 도전해서 ‘꿈을 이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 그냥 자꾸 뭔가 만들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나는 뭐지’ 이럴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것들을 해보면 새로운 기회가 계속 온다. 젊었을 때 들으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다. 경험이란 것은 해보지 않으면 내것이 아니지만, 하고 나서는 내것이 된다. 무수히 많은 기회와 또 다른 경험이 생긴다. 젊은이들이 집에 안 있었으면 좋겠다.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 코코엔터테인먼트 제공, 임혁필 블로그, 대학연합동아리 ‘봉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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