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하다. 이은미(48)의 새 앨범 ‘스페로 스페레(Spero Spere)’에 대한 첫인상이다. 이은미의 목소리를 들으면 인생을 걸고 노래한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이은미는 데뷔 20주년인 2009년 약 2년 2개월에 걸쳐 63개 도시에서 136회 공연을 하던 중 ‘노래하다 죽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국내 가수 중 단독투어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한 서너 번 죽을 뻔 했어요. 제가 성격이 못돼서 소리가 마음에 안 들면 5~6시간 리허설을 했어요. 그렇게 2회 공연을 하면 10시간 넘게 노래하는 거죠. 정말 힘들었어요. 진정 딴따라가 된 기분이 들었죠.”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뜻의 라틴어 제목인 ‘스페로 스페레’에서는 희망을 노래하려 했다. “30대 때는 쫓기듯이 살았죠. 날 위해 시간을 써본 적이 없었어요. 이제 세월을 온 몸으로 받아 내다보니 나이 먹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요. 가슴 한 구석 답답한 걸 누군가에게 하소연했을 때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고맙고 살아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음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찌그러진 사랑도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타이틀곡 ‘가슴이 뛴다’는 사랑의 설렘을 표현한 곡으로 ‘애인 있어요’를 히트시킨 윤일상이 만들었다. “윤일상이나 저나 욕심이 대단해요. 처음에 윤일상이 4곡을 보냈는데 제가 다 거절했어요. 우리는 냉정하거든.(웃음) 윤일상에게 항상 배우고 놀라는데, 거절한 곡은 즉시 파기해요. 프로의식이 대단하죠. 이 노래 할 때는 가슴 속에서 막 끓어오르는 감정이 있어서 그걸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이은미는 공연 리허설에 병적으로 신경 쓰는 것처럼 앨범 사운드에 대해서도 심혈을 기울였다. “음정 하나 때문에 8시간 동안 소리를 바꾼 적도 있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앨범을 만들고 막상 마스터를 넘기고 나면 꼴도 보기 싫을 때가 많아요.”

새 앨범에서는 아날로그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각 악기의 소리를 디지털 콘솔로 받아서 아날로그 릴테이프으로 녹음했다가 다시 디지털로 리마스터링하는 작업을 했다. “디지털 방식으로만 하면 소리가 너무 말끔해서 피곤해요. 뇌가 푸석해지는 느낌을 받아야. 소리를 듣고 무언가 연상되고 그려지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거예요.”

하지만 대중은 대부분 CD를 구입해도 MP3로 리핑해서 듣는 게 일반화됐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은미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도 들려요. ‘어차피 MP3로 듣는데 들리겠어?’라고 자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아요. 당연히 사운드에 공을 들여야죠.”



이은미는 음반에서 파격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들려준다. 하지만 그 안에 장인의 손길이 들어가 있다. “저는 음악이 점점 재미있어져요. 예전과 다른 소리, 다른 표현이 나오거든요. 조금씩 변해가는 음악을 즐겁게 들여다보게 되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은미는 한영애, 정서용, 정경화 등 수많은 여가수들이 등용문이 됐던 신촌블루스 출신이다. 블루스와 록은 여전히 이은미의 음악에 중요한 지점이다. “이번 음반도 제가 예전부터 해왔던 블루스, 록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 그런 큰 틀(블루스, 록)을 밑에 깔고 그 안에서 이은미의 표현법을 들려드리고자 하죠.”

‘마비’ ‘괜찮아요’는 이은미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표지석과 같은 곡들이다. “지금은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또 어떤 음악을 할지는 저도 모르죠. 전 항상 열려 있으니까요. 어떤 감정이 닥쳐와도 다 끌어안고 싶어요. 내 안에 스며들었을 때 또 뭐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철없는 아이처럼 다 두드려보고, 다 느껴보고 살다가고 싶어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네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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