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요 보여요 끝이 없어 주저앉고픈, 일만 하는 나와 얻지 못한 나의 고단한 지금들을이승환 ‘Fall to Fly 前’
이승환 ‘Fall to Fly’ 中
이승환의 음반은 다른 아티스트가 아닌 이승환 본인의 디스코그래피에 비추어 판단해 봐야 할 것이다. 이승환만큼 앨범의 완성도, 특히 사운드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거기에 엄청난 물량을 투자하는 아티스트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승환은 3집까지 가수로써 입지를 다지고, 4집부터 대작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10집까지 이어졌다.(물론 이것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승환 역시 중견가수의 음원차트 열세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11집 역시 풍성하다. 스타일적인 면으로는 기존 이승환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일단 전작들에 비해 피처링 아티스트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내게만 일어나는 일’ 정도를 빼놓고는 피처링 아티스트의 특징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처링은 거들뿐, 이승환은 본인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에게만 반응해’는 이승환 특유의 달달함이 잘 살아있는 곡이고,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에는 대곡 지향적 면모가 드러난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참여시킨 의욕은 당연히 양질의 사운드로 이어지고 있다. 가령 섹스 전야를 노래한 ‘어른이 아니네’ 또는 ‘스타 워즈(Star Wars)’에서의 사운드 이스케이프, 기타 톤 등만 봐도 여타 가요앨범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물론 이러한 음악적 노력이 음원차트 성적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잘 만들면 잘 팔리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이선희 ‘Serendipity’
이선희 데뷔 30주년에 나오는 15집. 우리가 알고 있는 이선희, 트렌디한 이선희가 공존하는 앨범이다. 처음에 이선희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의 이름들을 들었을 때 다소 의외였다. 한때 국민가수였던 이선희의 위용을 보면 충분히 유명한 이들로만 채울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선희 신보에는 이단옆차기, 박근태, 김이나 등 인기 작곡가, 작사가 외에도 고찬용과 같은 실력파 아티스트, 에피톤 프로젝트, 선우정아와 같은 후배들도 참여했다. 이러한 선택은 세련된 음악 그리고 젊은 감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근태가 만든 ‘그 중에 그대를 만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이선희라면, 고찬용이 편곡에 참여한 ‘거리구경’, 선우정아가 참여한 ‘이뻐 이뻐’에서는 신선한 이선희를 만나볼 수 있다. ‘솜사탕’ ‘나는 간다’에서의 청량감 있는 록 풍의 악곡도 이선희와 잘 어울린다. 이선희는 그녀의 이미지와 목소리가 워낙에 팬들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에 어떤 변신을 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의 미묘한 변화들이 색다른 매력을 끌어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선희가 여린 감성, 그리고 선동에 가까운 폭발적인 에너지 두 개였다면, ‘세렌디피티’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전제덕 ‘Dancing Bird’
2005년경 전제덕이 막 세상에 나왔을 때 그의 공연을 보고 느낀 것은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모니카 연주자와는 다른 차원의 아티스트라는 사실이었다. 올스타 재즈연주자로 이루어진 전제덕 밴드는 단순한 세션을 넘어 매우 응집력 있는 사운드를 들려줬다. 쟁쟁한 멤버들이 전제덕의 하모니카로 하나 되는 느낌이었다. 전제덕은 한국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스캣과 정면으로 붙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 폭발적인 임프로비제이션을 들려주곤 했다. 지난 1~2집에서 전제덕은 라틴, 소울 계열의 특성을 잘 살린 펑키한 음악부터 섬세한 발라드까지 자신의 스타일로 체화해 연주했다. 신보에는 봄의 이미지를 담으려 했다. 전제덕은 “내가 가진 힘의 60%만 내면서 소리를 예쁘게 내려 했다. “하모니카 소리에 대해 차갑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최소화하고 따스한 사운드를 내려 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대중을 배려한다는 것으로 들렸는데 음반을 자세히 들어보니 웬걸? 음악이 결코 녹록치 않았다. 대중적인 멜로디 4라면 연주자로써의 욕심이 6정도로 골고루 섞인 앨범이라고 할까? 전제덕과 같은 진짜 아티스트가 어찌 자신의 연주 본능을 숨길 수 있겠는가? 비브라폰, 오케스트라의 가미로 사운드가 한층 풍성해졌으며, ‘돌이킬 수 없는’은 전제덕은 한층 진화된 표현력을 들려준다.
킹스턴 루디스카, 닥터 링딩 ‘Ska’N Seoul’
한국 스카의 대표선수 킹스턴 루디스카와 유럽 스카의 대부 닥터 링딩이 만났다. 킹스턴 루디스카가 해외 연주자와 협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재작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킹스턴 루디스카는 태국의 거장 티본스카(태국은 레게 스카 강국이다)와 함께 출중한 앙상블을 선보이며 관객을 홀린 바 있다. 괜히 대표선수가 아니더라. 킹스턴 루디스카는 스카 외에 재즈까지 커버가 가능한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집단이다. 10년이 넘는 연차는 상당한 내공을 선물로 줬을 터. 2013년 ‘지산 월드 락 페스티벌’로 내한한 닥터 링딩은 킹스턴 루디스카에 반해 직접 협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9인조 킹스턴 루디스카와 닥터 링딩은 어떠한 경계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다. 닥터 링딩은 킹스턴 루디스카의 어떤 매력에 반한 것일까? 우리가 보기에 킹스턴 루디스카는 단순히 스카일 수 있겠지만, 닥터 링딩의 눈에는 스카와 함께 유니크한 뭔가가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킹스턴 루디스카가 내년 ‘SXSW’에 반드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볼 것이다.
몽니 ‘Follow My Voice’
몽니가 소속사에서 독립 후 자신들의 레이블 ‘모던보이레코드’를 설립하고 처음 내놓는 앨범이다. 데뷔 햇수로는 10년차에 내놓는 정규 4집이다. 이제 몽니의 음악에서 풋풋함은 찾아볼 수 없다. 10년차답게 록밴드가 시도해볼 수 있는 다양한 사운드 어법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완성도도 높다. 전 트랙이 여백이 없이 풍성한 사운드로 채워져 있으며 뮤지컬의 영향인지 김신의는 상당한 성량을 선보이고 있다. 이제는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음악을 들려주는 모습이다. ‘그대와 함께’ 시절의 몽니가 산뜻한 멜로디로 여심을 자극했다면, 이번 앨범은 음악적으로 상당한 의욕을 보인 듯하다. 최신 트렌드에 걸맞게 전자음악을 가미한 트랙부터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이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몽니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악곡들이 돋보인다. 물론 ‘돋네요’ ‘남아줘’ ‘한참을 웃겠지’ ‘스노우볼’ 등 노래 곳곳에 몽니의 장기인 귀를 쫑긋하게 하는 멜로디들이 숨어있다.
포미닛 ‘4 Minute World’
포미닛의 5번째 EP. 포미닛은 현아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섹시 걸그룹이란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상당히 다양한 콘셉트들을 소화해왔다. ‘포미닛 월드(4 Minute World)’는 포미닛의 다양한 가능성이 만개한 앨범이다. 타이틀곡 ‘오늘 뭐해’는 전작인 ‘이름이 뭐예요?’처럼 제목을 반복하며 일정한 멜로디를 각인시키는 곡으로 친숙하지만 새롭지는 않은 풍이다. 이번 앨범은 타이틀곡 외의 곡들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웨잇 어 미닛(Wait A Minute)’은 포미닛의 특유의 블링블링한 이미지를 잘 부각시키는 곡, ‘오빠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내가 좀 알려 줄게 들어봐’라고 시작하는 ‘알려 줄게’는 제목처럼 기존에 잘 몰랐던 포미닛의 팝적인 매력을 알려주는 곡이다. ‘들어와’는 현아의 랩과 허가윤의 노래가 어우러져 농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현아의 랩은 음색 면에서는 나름 자신의 스타일을 체득한 것 같다.
브릭 ‘Brick Repackage’
모던록 밴드 브릭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강현민이 보컬리스트 허규, 드러마 이윤만과 함께 2012년 결성한 밴드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강현민은 러브홀릭, 일기예보를 거쳤으며 이소라, 박혜경, 이문세, 성시경 등에게 곡을 주며 한 시기를 풍미한 작곡가로 가요계 브릿팝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재작년 발표한 데뷔 EP 수록곡에 신곡을 더한 리패키지 앨범이다. 강현민이 전부터 선보였던 특유의 서정적인 록 음악을 포함해 일렉트로니카로 리믹스한 곡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어법이 공존하고 있다. 강현민은 “20대에는 일기예보, 30대에는 러브홀릭, 40대에는 브릭이 내 음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브릭에서 그의 특유의 스타일은 어디 가지 않는다. 타이틀곡 ‘푸른 너’는 예전에 박혜경, 지선 등이 노래했던 강현민 특유의 멜로디 어법을 따르고 있다.
조지 마이클 ‘Symphonica’
지난 런던올림픽 무대에서 조지 마이클을 봤을 때 조금 놀랐다. 언제까지 날렵하고 섹시할 것만 같았던 그도 살이 조금 쪘더라.(하긴 그도 이제 쉰이 넘었다) 물론 노래만큼 아름다웠지만 말이다. 미국에 마이클 잭슨이 있었다면, 영국에는 조지 마이클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80~90년대를 상징하는 최고의 팝스타였다. 특히 조지 마이클은 외모, 노래, 작곡, 댄스, 패션, 섹시함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지금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한 세배 정도는 섹시했던 것 같다. ‘심포니카(Symphonica)’는 조지 마이클이 2011년 8월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Prague State Opera)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1년 넘게 진행한 ‘심포니카 투어(Symphonica Tour)’ 실황을 담은 앨범이다. 자신의 곡인 ‘프레잉 포 타임(Praying For Time)’, 커버 곡인 ‘더 퍼스트 타임 에버 아이 소우 유어 페이스(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등 14곡이 담겼다. 오케스트라가 더해지니 조지 마이클의 섹시함에 우아함이 얹어졌다.
스크릴렉스 ‘Recess’
대세는 스크릴렉스다! 따지고 보면 대세가 된지 오래다. ‘뱅가랑(Bangarang)’만 나오면 사람들은 미쳐 날뛴다. 스크릴렉스는 DJ 페스티벌인 ‘UMF’, 그리고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섰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무대에서 스크릴렉스는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대단하더라. 이미 6개의 그래미상을 받았지만, 정규앨범은 이번 앨범 ‘리세스(Recess)’가 처음이다. 디플로, 레가 트윈스, 찬스 더 래퍼, 킬 더 노이즈, 알빈 리스크 등 다채로운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각각의 곡들은 기존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학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몸을 움직이게 하기 이전에 귀를 만족시키는 음악이랄까? 이쯤 되면 심각한 록 좋아하는 꼰대들도 인정할만하지 않을까 한다. 국내에는 지드래곤과 씨엘 그리고 YG의 메인 프로듀서 테디와 초이스37 등 YG엔터테인먼트 사단이 참여한 6번 트랙 ‘더티 바이브(Dirty Vibe)’ 때문에 일찌감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앨범이 지드래곤, 씨엘의 참여 때문에 빌보드, 아이튠즈에서 인기를 거두는 것처럼 홍보돼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곡에 YG의 색이 담긴 것만은 사실이다.
Various Artists ‘JAZZ & THE PHILHARMONIC’
재즈 앤 더 필하모닉(JAZZ & THE PHILHARMONIC)은 지난 2013년 1월 11일 미국 아드리안 아르쉬트 센터에서 열린 공연을 담은 실황앨범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재즈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담고 있다. 데이브 그루신, 칙 코리아, 테렌스 블랜차드, 바비 맥퍼린 등 참여 뮤지션 면면이 매우 화려하다. 이들은 헨리 멘시니 인스티튜트 오케스트라와 함께 재즈와 클래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인 만큼 장르 간 원활한 크로스오버와 함께 자신들의 스타일을 꺼내보이고 있다. 데이브 그루신이나 칙 코리아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미 오케스트라 작업을 해온 바 있다. 이러한 거장들이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것 자체가 재즈 팬들에게는 커다란 즐거움 아니겠는가? 칙 코리아와 데이브 그루신, 바비 맥퍼린이 함께 한 ‘어텀 리브스(Autumn Leaves)’를 비롯해 재즈 스탠더드, 본인들의 오리지널을 골고루 들어볼 수 있다. CD와 함께 담긴 DVD 영상을 통해서는 바비 맥퍼린이 댄서 데스몬드 리처드슨과 단둘이 협연하는 장면도 감상할 수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드림팩토리, 후크엔터테인먼트, JNH뮤직, 루디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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