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직역하자면 ‘남남서 가요제’ 정도 될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이하 SXSW)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기하지 않은 곳이었다. 레이디 가가가 한국 뮤지션들의 공연장을 깜짝 방문하기도 하고, 엑스재팬의 드러머 요시키가 작은 교회에서 수십 명의 관객을 앉혀놓고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는 곳. 거장들부터 거리의 이름 모를 악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음악의 천국이었다.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약 일주일 간 ‘SXSW’가 열린 텍사스 오스틴을 발로 뛴 취재기를 담았다.

# 10일 축제의 서막
10일(미국 현지시간) 텍사스 오스틴은 낮 동안 화창하다 밤에 잠깐 비가 내렸다. 프레스 비표를 받기 위해 오스틴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음악관계자들이 오고 가는 컨벤션 센터 앞 가장 목 좋은 곳에 설치된 부스는 다름 아닌 삼성의 새로운 음악 플랫폼 ‘밀크’였다. 외국인들은 삼성에서 나눠주는 티셔츠를 받으러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새로운 음악 플랫폼을 홍보하는데 ‘SXSW’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SXSW’는 매년 약 2,000여 팀이 100여 개 장소에서 공연을 하고 약 30만 명의 관객이 몰리는 세계 최대 음악 쇼케이스로 1987년 음악행사로 시작해 지금은 영화와 인터렉티브 미디어, IT, 게임을 아우르는 국제박람회로 발전했다. 트위터가 처음 알려진 곳도 바로 ‘SXSW’를 통해서였다.

‘SXSW’의 본 행사인 ‘SXSW 뮤직’은 11일부터 16일까지 열릴 터였다. 올해에는 무려 2,400여 팀의 뮤지션들이 ‘SXSW’를 찾았다. 여기에는 YB, 현아, 박재범, 크라잉넛, 노브레인, 이디오테잎, 잠비나이, 할로우 잰, 넬, 빅포니, 글렌체크, 로큰롤라디오, 황보령 스맥소프트, 러브엑스테레오 14팀의 국내 뮤지션들도 포함됐다. 이는 역대 최다 숫자다. 한국 뮤지션이 ‘SXSW’에 선 것은 2007년 YB(윤도현 밴드)와 서울전자음악단이 처음이다. 약 7년이 흐른 지금 ‘SXSW’는 해외진출을 도모하는 국내 뮤지션들이 문을 두드리는 장이 된 것이다.

로큰롤라디오

‘SXSW 뮤직’을 하루 앞둔 10일 오스틴의 클럽 브라스 하우스에서는 ‘SXSW 인터랙티브’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과 오스틴 현지 기업과 네트워크를 위해 마련된 ‘스타트업 네트워킹 파티’가 열렸다. 부루다콘서트, JJS미디어 등 국내 10개 기업이 ‘SXSW 인터랙티브’에 참여했다. 로큰롤라디오, 레이디큐브, 글렌 체크의 김준원이 이날 파티를 위해 축하공연에 나섰다. 해외 관계자 약 400여 명이 다녀간 파티에는 YB, 노브레인 등 뮤지션들도 객석에서 공연을 즐겼다. 이 행사장에는 관계자 외에 길을 지나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로큰롤라디오는 바닥에 누워 기타를 연주하는 등 열정적인 공연으로 관객들을 춤추게 했다. 프레드 슈미드 씨는 “한국은 이제 ‘쿨’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의 다양한 음악, 제품들이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닐 영

# 11일 축제의 시작
11일이 되자 오스틴이 활기로 가득 찼다. 훈풍이 불어오는 대낮부터 거리 여기저기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SXSW’의 본 행사라 할 수 있는 ‘SXSW 뮤직’이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5시에는 오스틴 컨벤션 센터에서 닐 영이 연설을 했다.

11일은 7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 오스틴의 공연장 엘리시움에서 열린 ‘케이팝 나잇 아웃’이 진행됐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케이팝 나잇 아웃’은 ‘SXSW’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소개하고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무대다. 국악과 서양음악을 섞은 잠비나이부터 일렉트로니카와 록의 질감이 결합된 이디오테잎, 한국적인 펑크록, 이른바 ‘조선펑크’의 대표주자 크라잉넛, 처절하고 절절한 헤비 록 할로우 잰, 감성적인 모던록 넬, 그리고 아이돌 스타인 현아와 박재범까지 한국대중음악 다양한 반경의 뮤지션들이 한 무대에 올랐다.



약 6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엘리시움은 잠비나이의 첫 공연부터 수백 명의 인파로 가득했다. 해외 관객들은 해금, 거문고, 기타를 중심으로 한 잠비나이의 음악을 진지하게 감상했고, 곡이 끝나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SXSW’의 토드 퍽카버(Todd Puckhaber) 씨는 “워맥스(WOMEX)에서 잠비나이를 처음 보고 엄청난 사운드에 큰 감동을 받았다”라며 “잠비나이는 서양인들에게 익숙할 만한 어법을 가지고 있다. ‘SXSW’를 통해 잠비나이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잠비나이의 이일우는 “우리가 미국에 알려지지 않은 팀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반응을 얻어 너무 기쁘다”라고 말했다.

넬, 할로우 잰, 크라잉넛 등의 공연이 지나가고 밤 12시가 돼 이디오테잎이 무대에 오르자 플로어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이디오테잎이 강렬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깔자 객석은 거대한 댄스플로어로 변신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박재범, 현아의 무대로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박재범이 무대에 오르기 전인 12시 반쯤 레이디 가가가 엘리시움을 깜짝 방문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박재범과 현아는 레이디 가가가 객석에 섞여 있는 가운데 자신들의 곡을 불렀다. 한편 현아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수많은 백인 남성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함성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들기도 했다. 이날 엘리시움에는 약 1,200명의 관객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공연장 주변에는 낮부터 밤까지 긴 행렬이 늘어섰다. 관객 중 현지 교민과 교포, 외국인의 비율은 5대5 정도로 보였다.

밴드와 댄스가수가 함께 무대에 오른 이질감이 해외 관객들에게는 흥미롭게 비쳐지기도 했다. 한국음악 블로거로 활약 중인 크리스틴 커퍼(Kristin Koffer) 씨는 “좋은 음악은 언어와 상관없이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며 “한국음악은 참 재밌다. 한국의 케이팝과 인디음악이 정반대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12일 카니예 웨스트, 제이지부터 조니 윈터까지
이제 본격적으로 ‘SXSW’를 체험할 때가 왔다. ‘SXSW’의 진짜 매력은 익히 아는 뮤지션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미지의 음악을 만나는 것이다. 공식 무대 외에 오스틴 시내의 클럽, 카페, 술집, 심지어 거리에서도 산발적으로 공연이 열린다. 전 세계 언론, 음악 관계자들은 유명 스타를 보기보다는 가능성 있는 원석을 찾기 위해 ‘SXSW’에 모인다. 존 메이어, 노라 존스처럼 지금은 정상급 스타가 된 아티스트들이 무명일 당시 ‘SXSW’를 통해 이름을 알려나갔다.

길거리에는 색소폰 두 대, 드럼으로만 이루어진 꽤 실력 있는 재즈밴드부터, 쓰레기통을 두드리는 악사, 그리고 혼자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있었다. 가게들에는 모던포크, 헤비메탈부터 블루스, 심지어 힙합까지 들려왔다. 편성도 제각각, 음악도 제각각이었다.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포스트 록 밴드도 있었다. 관객들은 음악이 좋으면 보고 싫으면 공연장을 나가면 그만이었다. 어떤 곳은 발 디딜 틈이 없고, 어떤 곳은 서너 명 정도의 관객이 맥주만 홀짝이고 있는 곳도 있었다. 특히 이날 노브레인, 러브엑스테레오, 로큰롤라디오, 빅포니 등 한국 팀들은 텍사스 주립대학교에서 마련한 한국음악 쇼케이스 방송에 참가했으며 이는 텍사스 지역 케이블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밤이 되자 거리는 축제의 광장이 됐다. 적당히 술에 취한 이들에게 음악은 윤활유와 같았다. 이날 YB는 버팔로 빌리어드라는 클럽에서 해외 밴드들 사이에서 공연을 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음악만 좋다면 경계선은 없었다. 특히 이날 자정 웨스턴바 라우디스에서는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 조니 윈터의 공연도 볼 수 있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조니 윈터

올해 ‘SXSW’에는 공식 쇼케이스와 함께 아이튠즈, 피치포크, 삼성 등이 주최하는 특별 이벤트도 마련됐다. 공식 쇼케이스에는 데이먼 알반(블러), 50센트 스티브 아오키, 비오비, 줄리안 카사블랑카(스트록스), 포스터 더 피플, 웨인 크레이머(MC5), 쿡스, 켄드릭 라마, 윌리 넬슨 등 거장부터 스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뮤지션들도 섰다. 행사 개최를 막 앞두고 출연진이 공개되는 경우도 있다. 아이튠즈 페스티벌에는 콜드플레이, 사운드가든, 삼성 행사에는 카니예 웨스트, 제이지가 섭외돼 ‘SXSW’를 찾은 이들을 흥분시켰다. 이런 특별 이벤트의 경우 추첨을 통해 관객을 선정하기 때문에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아이튠즈 페스티벌과 삼성의 행사는 ‘애플 VS 삼성’이라는 라이벌 구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 카니예 웨스트, 제이지가 나오는 12일 삼성의 행사는 두 시간이 늦춰지고 관객 추첨을 잘못해 사람들이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 13일 서울소닉의 열기
13일부터는 악기 쇼인 ‘뮤직 기어 엑스포’도 열렸다. 부속행사이기 때문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로스 론니 보이스를 보기 위해 오후 오스틴 외곽에 있는 버틀러 파크로 향했다. 시내에서 도보로 약 30분 거리여서 택시처럼 운행하는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갔다. 버틀러 파크는 잔디밭 위에 무대가 마련되고 수천 명의 관객이 운집해 흡사 록페스티벌을 보는 것 같았다. 이 곳에서는 마침 지미 헨드릭스의 추모 무대가 마련됐다. ‘SXSW’에서는 매년 전설적인 뮤지션들에 대한 추모 무대를 마련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지미 헨드릭스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지미 헨드릭스의 유가족이 나와 헌사를 한 뒤 루신다 윌리엄스의 ‘엔젤(Angel)’을 시작으로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이 나와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노래했다. 로비 크리거(도어즈)와 슬래쉬의 협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4일에는 루 리드의 추모공연도 예정돼 있었다.

이날 아이슨하우어(Icenhauer)에서는 서울소닉 쇼케이스가 열렸다. 한국 뮤지션들이 본격적으로 ‘SXSW’ 나들이를 한 것은 2011년 밴드 북미투어 프로젝트 ‘서울소닉’을 통해서다. 민간기업 DSFB 콜렉티브가 진행하는 서울소닉을 통해 이디오테잎, 비둘기우유, 갤럭시 익스프레스, 크라잉넛, 3호선버터플라이, 옐로우 몬스터즈, 노브레인, 로다운 30, 구남과여라이딩스텔 등 국내를 대표하는 록밴드들이 ‘SXSW’ 무대를 처음 밟았다. 이날 서울소닉 쇼케이스에서는 황보령 스맥소프트를 시작으로 빅 포니, 글렌체크, 로큰롤라디오, 러브엑스테레오, 노브레인이 차례로 공연했다. 해외 관객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서울소닉 쇼케이스’를 기획한 조수광 DFSB콜렉티브 대표는 “현지인들의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도는 해가 갈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는 단지 한국에서 온 뮤지션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관심을 갖고 음악을 들어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 14일 요시키!
15일 아침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14일이 사실상 ‘SXSW’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때문에 더욱 부지런하게 공연장을 돌아다녔다. 아이튠즈 페스티벌 쪽에서 전날 사운드가든 공연 추첨에 떨어진 이들에게 두 번째 추첨 찬스가 있다는 메일이 왔다. 재빨리 응모를 하기 위해 컨벤션 센터로 달렸지만, 표는 이미 동이 나 있었다. ‘SXSW’에서는 이처럼 갑자기 이벤트가 발표되곤 하고, 이것이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진다. ‘SXSW’를 통해 트위터가 알려진 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요시키

‘서울(Seoul)’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밴드의 공연을 본 뒤 피치포크 스테이지가 마련된 한 교회로 향했다. 이처럼 ‘SXSW’에서는 ‘스핀’ ‘피치포크’ 등 음악매체에서 마련한 공연도 열린다. 피치포크 성향에 맞게 헌드러드 워터스라는 처음 보는 팀은 아방가르드 성향의 서정적이기도 하고 난해하기도 한 음악을 들려줬다. 교회에서 맛보는 신선한 체험이었다. 건너편 교회에서는 엑스재팬의 요시키의 공연이 열렸다. 교회 안에서도 부속 예배실에서 소규모로 열린 요시키의 공연은 현악 4중주와 함께 피아노로 진행됐으며 관객은 약 5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처럼 슈퍼스타의 공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SXSW’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시키는 전날 ‘SXSW’ 행사장 인근 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시민들을 들이받아 2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친 사건을 추모하며 즉흥 연주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잠비나이와 션 레논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한국 뮤지션들이 거둔 성과였다. 레이디 가가가 케이팝 공연을 보고 간 이슈도 있었고, 잠비나이의 경우는 해외 음악관계자들로부터 미팅 신청을 받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아들로도 유명한 뮤지션 션 레논은 우연히 잠비나이의 공연을 보고 멤버들에게 직접 다가와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등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크라잉넛의 ‘SXSW’ 공연은 그래미어워드의 메인페이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래미 측은 ‘SXSW’의 ‘케이팝 나잇 아웃’에서 공연한 크라잉넛의 멤버 김인수의 사진을 크게 실으며 크라잉넛의 무대를 소개했다. 처음 ‘SXSW’를 찾은 글렌체크, 로큰롤라디오 역시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며 해외진출의 가능성을 맛봤다. 크라잉넛을 비롯한 몇몇 밴드들은 ‘SXSW’가 끝난 후에도 몇주간 자체적으로 미국투어를 돈다. 경험치가 쌓인 것이다. ‘SXSW’를 체험하면서 느낀 것은 국내 뮤지션들의 음악이 결코 해외 뮤지션들에 비해 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큰 에너지를 발할 때도 있었다. 이제는 한국 뮤지션들이 해외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 전혀 어색해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더 잦아지고, 자연스러워질 거다.

텍사스 오스틴=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GMC레코드,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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