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데뷔작 ‘은교’가 너무 셌다. 그래서 차기작 선정에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몬스터’, ‘협녀’ 등을 선택했던 것 같은데 ‘은교’ 이후 차기작 선정 기준이 있었나.
영화 ‘은교’는 김고은이라는 대형 신인 한 명을 탄생시켰다. 순수한 얼굴로 팜므파탈의 매력을 뽐냈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연기력이 뒷받침됐고, 파격적인 노출까지 더해졌다. 영화 개봉 후 모든 관심이 쏟아졌고, 그 해 각종 시상식의 신인상은 당연한 차지였다. 그녀의 차기작 선택에 초미의 관심이 쏠릴 무렵, 그녀는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복학)를 택했다. 자칫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초심’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녀를 붙들었다.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마음가짐을 확고히 다진 김고은은 다시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영화 ‘몬스터’를 들고. 식칼 하나 들고, 무작정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살인마 태수(이민기)를 쫓는 복순을 맡아 또 한 번 강렬함을 선사했다. 김고은은 역시 김고은이었다.
김고은 : 일단 시나리오가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웃음) 글쎄. 어떤 부담감이나 그렇게 고민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단순하게 ‘이제 두 번째, 세 번째 작품 하는 건데 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Q. ‘은교’ 이후 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졌을 것 같다. 그리고 제안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직접 다 읽어보는 걸로 알고 있다. ‘은교’ 이후 주로 어떤 시나리오가 들어오던가.
김고은 : 음. 무슨 시나리오가 들어왔지. 당시 몇몇 작품 정도 제안이 들어왔고, 그 중 ‘몬스터’를 봤고,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
Q. 사실 궁금한 건 취향이다. ‘협녀’에선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겠지만, ‘은교’나 ‘몬스터’를 봤을 땐 강렬하고 센 캐릭터에 유독 끌리는 게 아닌가 싶다.
김고은 : 그렇진 않다. 어떤 역할에 대해 뭔가 스스로 제한하는 건 없다.
Q. 무엇보다 ‘은교’를 들어내는 작업이 가장 필요했을 것 같다.
김고은 : 그 때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은교’를 하면서 행복하게 작업했고, 연기할 수 있다는 거에 대한 감사함이 컸다. 이 마음가짐 때문에 ‘은교’에 푹 빠져서 할 수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싶었고, 그래야 다음 작품 할 때도 온전히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 다른 욕심이 들어가면 (연기에)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교’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빨리 뭔가 하지 않으면 관심이 수그러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순간, ‘지금은 아니다’란 판단이 섰고 복학을 선택했다. 6개월간 열정적으로 연기하시는 분들과 함께 공연 올리고, 단편을 찍었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내가 즐길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Q.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멀리 하고, 다시 복학(한국예술종합학교)한다는 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더욱이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고, 아직은 어린 나이인데도 그 유혹을 떨쳤다는 게 조금 놀랍다.
김고은 :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 같다. 누구나 가고자 했던 지향점이 있지 않나. 사실 ‘은교’ 선택할 때 쉽지 않았는데 내 마음가짐과 지향점이 있기 때문에 (‘은교’를) 할 수 있었던 거다. 그 방향성과 가고자 하는 길이 나한테는 굉장히 간절한 거다. 그걸 지키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협녀’를 결정하고 나서는 2013년부터 올 2월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했던 것 같다.
Q. 학교에 갔을 때 반응은 어땠나.
김고은 : 반가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기특하게 봐주셨던 것 같다. 내 선택이 ‘맞나, 틀리나’를 고민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네 마음이 어떤 건지 알겠다’ 등의 말을 들으니까 ‘맞는 거구나’ 싶었다.
Q. ‘은교’는 단지 캐릭터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도 파격에 가까웠다. 그에 비해 ‘몬스터’는 캐릭터에 집중돼 있다. 대중들이 보기에는 두 작품 모두 파격이었으나, 본인 스스로 느끼기엔 두 작품이 상당히 달랐을 것 같다.
김고은 : 맞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달랐다. ‘은교’의 경우 내용적으로는 파격일 수 있으나 캐릭터 적으로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구다. 그래서 그 아이의 성격이나 행동 등은 디테일하게 들어가야 했다. 반면 ‘몬스터’의 복순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캐릭터 연기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Q. 방금 말처럼 ‘은교’는 감정과 디테일이 중요하고, ‘몬스터’는 액션과 캐릭터 연기가 필요한데 어떤 스타일의 연기가 더 어려운가.
김고은 : 음…. 둘 다 어렵다. (웃음) 뭔가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지금은 ‘몬스터’를 끝내서인지 디테일한 감정 표현을 하고 싶긴 하다.
Q. 작품 선택을 위해 여러 시나리오를 봤을 텐데 그 중 ‘미친년’ 복순에게 꽂힌 이유는 뭔가.
김고은 : 사실 이 작품은 복순 캐릭터가 특이해서 하게 된 건 아니다.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스릴러와 코미디가 조화로울까 걱정했는데 금방 읽게 됐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해볼게요’ 했다. 그런데 막상 복순을 연기하려고 다시 들여다보니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그냥 보는 거랑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보는 건 다르니까. 근데 뭐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어이쿠, 어떡하지’ 그랬다. (웃음)
Q. 어찌 됐든 김고은은 물론 이민기의 캐릭터도 참 인상적인 건 맞다. 그런데 두 캐릭터를 받쳐주는 이야기의 뼈대가 약하지 않나 싶은데.
김고은 : 처음 봤을 때, 두 번째 봤을 때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내 위주로 보게 되는 것도 있고, 당황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두 번째 다시 봤을 때는 자신만의 색깔이 잘 투영됐다는 느낌이었다.
Q. 정신연령이 낮은 복순은 동생에 대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동생을 죽인 연쇄 살인마에 대한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들이 확 드러나진 않는다. 그리고 동생을 대신하는 나리(안서현)의 존재가 더해지면서 복수의 감정이 더 모호해진다. 그래서 조금은 헷갈리지 않았을까 싶다.
김고은 : 헷갈리긴 했다. 그래도 어쨌든 동생을 대신하는 나리마저도 헤치려고 하는 태수였기 때문에 나리를 지키는 동시에 복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사실 따로따로 찍었고, 만난 게 거의 없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나오는 거면 더 쉬울 수 있다. 아니면 같이 가거나. 그런데 서로서로 추격하다 보니까 (표현이나 감정 등) 이게 맞는 건지 헛갈렸다. 그래서 감독님께 괜찮은지 계속 물어봤던 것 같다. 또 복순 캐릭터는 슬픔을 잊는 게 아니라 앞에 놓인 감정이 더 중요한 친구다. 바로 앞에 놓인 감정을 헤쳐 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물인 거다.
Q. 방금 말한 것처럼 이민기 김고은 투톱 영화지만, 각각 따로 움직인다. 마주하는 일도 거의 없고. 그런 점에서 조금 외로웠을 것 같다.
김고은 : 많이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뭔가 막연함이 있었다. 자칫하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기도 했다.
Q.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 완성본이 궁금했을 것 같다. 처음 완성본을 제대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김고은 : 처음에는 아쉬운 부분,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온다. ‘뜨악’했던 적도 많았고, 또 오랜만에 복순을 접해서 낯설기도 했다. 두 번째 볼 때는 관객의 입장에서 재밌게 봤던 것 같다.
Q. 영화 보면서 흥미롭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욕설 섞인 노래다. 여배우가 하기엔 참 민망했을 것 같은데.
김고은 : 거부반응은 없고, 가사 외우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처음엔 지금보다 더 심한 게 많았고, 훨씬 더 많았다. ‘남자들이 부르기에도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몇 개만 골라봐’ 그러시더라. 그래서 그 많은 구절 중 그래도 귀엽게 봐줄 만한 걸로 골랐던 것 같다. (웃음)
Q. 약간 실없이 웃을 때, 그건 그냥 본인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순의 디테일한 표정과 습관을 설정할 때 어떤 식으로 했나.
김고은 : 웃는 모양이 비슷해서 그런가. 어쨌든 자연스럽게 들어갔던 것 같다. 어떻게 행동할지 많이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연기하진 않았다.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복순과 비슷한 상태로 만든 다음에 임했다. 김고은이 ‘0’이고, 복순이 ‘10’이라면,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8~9까지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과 상태를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복순의 행동이 나오게 된다.
Q. 촬영 들어가기 전 많은 준비를 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힌트를 얻거나 모델로 삼은 게 있나.
김고은 : 복순은 힌트를 많이 얻어가면서 했던 것 같다. 누굴 모델로 삼기엔 어려운 캐릭터니까. 일단은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으면서 고민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Q. 흥행이 되면 될수록 ‘미친년’으로 불릴 텐데. 아무리 역할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여배우 입장에선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 않나. 아무렇지 않나.
김고은 : 뭐 어떡하겠나. 이미 나온걸. (웃음) 근데 나는 좋은 것 같다. 단어 선택을 잘한 것 같다.
Q. 부상도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김고은 : 타박상 정도. 그리고 당분간 액션은 피할 생각이다.
Q. 하긴 ‘몬스터’ ‘협녀’ 등 몸 쓰는 걸 연이어 했으니까 이제 좀 덜 쓰는 걸로 선택해야겠다.
김고은 : ‘협녀’를 보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실 거다. 그리고 ‘몬스터’에서도 많이 뛰다 보니 다리, 골반에 무리가 오더라. 그래서 내 옆에 오면 파스 냄새가 진동했던 것 같다. (웃음)
Q. 그런데 본인 자신도 말했듯 얼굴선이 얇다. 혹시 그래서 일부러 센 걸 찾는 건 아닌가.
김고은 : 그런 건 전혀 없다.
Q. 고민은 좀 있나.
김고은 : 그렇진 않다. 얼굴선이 옅다고 해도 어떻게 표정을 짓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거다.
Q. 그렇다면 또다시 ‘은교’와 같은 파격 노출이 있는 작품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고은 : 당분간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정말 ‘은교’처럼 ‘두 번 다시 이런 작품 만날 수 없을 것 같아’란 기분이 드는 작품이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직은.
Q. ‘은교’ ‘몬스터’, 이제 두 작품이다. ‘협녀’까지 해도 세 작품이다. ‘은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사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자신의 필모를 어떻게 채우고 싶나.
김고은 : 그냥 좋은 작품들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싶다. 시끄럽지 않게 묵묵히 해 나가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대중들이 ‘김고은 뭐 하고 있나’라고 생각할 때 즈음 작품으로 찾아가면서 말이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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