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구라모토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유키 구라모토의 연주를 처음 들은 것은 2000년 모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레이크 루이즈(Lake Louise)’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캠퍼스에서 피아노가 있는 곳을 가면 이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이 곡이 ‘모두의 피아노곡’으로 사랑받으며 유키 구라모토는 한국에서 일본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모두의 피아니스트’가 됐다.

유키 구라모토의 음반은 1998년 제1차 일본문화개방 직후에 한국에 발매됐다. 이듬해인 1999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유키 구라모토의 첫 내한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 이후 유키 구라모토는 꾸준히 한국을 찾았다. 오는 3월 13일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내한 15주년 기념공연 ‘회상’을 여는 유키 구라모토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유키 구라모토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내한 15주년을 맡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유키 구라모토: 15년이란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해버리는 시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크게 성장하겠지요. 저 역시 연주회의 악기 편성이나 곡목 선정에 고심하면서, 15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한국 각지의 도시에서도 여러 차례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Q. 본인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인가요?
유키 구라모토: 한국 팬 여러분들께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특히 젊은 분들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참으로 다양한 경험과 마주하게 되실 텐데, 언제라도 마음 한 켠에서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이 버팀목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Q. 일본에서 데뷔앨범 ‘레이크 루이스’를 발매한 것이 1986년입니다. 이제 데뷔 3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이 실감이 나나?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유키 구라모토: 곡들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조금씩 곡을 만들어온 것이 지금까지 220곡 이상 앨범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나이도 들었습니다. 이 곡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레이크 루이스’가 완성됐을 때와 한국에서 첫 연주회(1999년 5월)가 기억에 남는 순간입니다.



Q. 한국에서는 유키 구라모토를 조지 윈스턴과 같은 피아니스트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본인은 어떤 연주자들을 좋아하나요? 영향 받은 뮤지션?
유키 구라모토: 훌륭한 연주가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클래식 작곡가(이분들은 연주가이시기도 하지만) 쇼팽, 라흐마니노프, 거쉰이 있고, 재즈의 경우는 연주가 중 빌 에반스 등 많은 분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Q. 응용물리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음악가와 학자 사이에서 장래를 고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응용물리학과 음악의 공통점은 뭘까요?
유키 구라모토: 응용물리학과 음악은 숙련하기 위해 각각 다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별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음악은 음들로 이루어진 것이고, 음이란 공기의 물리적 진동입니다. 또 작곡은(예부터 내려오는 방법에서는) 시간 축으로 음의 높이와 길이를 정하고 배열하는, 매우 수리적인 것입니다. 또 녹음 역시 전자공학적 요소가 있어, 요즘은 컴퓨터에 정통한 분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Q. 당신의 작품들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다. 여행을 좋아하나요? 인상적인 여행지를 꼽는다면요?
유키 구라모토: 여행을 매우 좋아해서 꽤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습니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레이크 호수와 1999년에 방문한 아이슬란드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Q. 혹시 서울이 아닌 한국의 시골을 여행한 적이 있나요?
유키 구라모토: 콘서트를 위해 많은 도시를 방문했지만, 실제로 관광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해보고 싶네요. 그러려면 한국어를 좀 더 공부해야겠습니다.



Q. 당신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편안합니다. 혹시 복잡한 악곡이나 아방가르드 성향의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유키 구라모토: 가령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의욕적인 태도여서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음악가의 경우, 특히 연주가에게는 전문 분야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셰프에게 ‘뭔가 다른 분야의 요리에도 도전해볼 생각은 없는가?’하고 질문한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그것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도 자택에서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스타일을 더욱 갈고 닦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가나 취미로서는 저 역시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로서의 저는 음악 장르의 수비범위가 넓어, 뮤지컬이나 영상물 혹은 무대를 위한 작곡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Q. 조수미 신승훈 등 한국 뮤지션들과도 교류했는데요. 혹시 이들 외에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은 한국(가수, 연주자 통틀어) 아티스트가 있나요?
유키 구라모토: 연주가 혹은 가수 분께서 요청하신다면, 또 제 자신의 기량이 그 요청을 충족시켜드릴 수만 있다면, 어떤 분이든 협연이 가능합니다. 다만, 저는 기본적으로 작곡가이기 때문에, 다른 피아니스트 분들이 제 곡을 연주해주시는 것이 바람직한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이번에 한국 데뷔 15주년 기념음반 ‘스코어스 오브 피아노(Scores of Piano)’가 나옵니다. 이 음반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유키 구라모토: 제 음악은 대중음악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같은 곡이라도 다양한 편곡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언제나 제가 연주하는 스타일인 결정판으로서의 피아노 솔로용 악보와 많은 분들이 친근하게 느끼실 수 있도록 제가 책임지고 편곡한 ‘쉬운 편곡’의 두 버전이 있습니다. 악보 제작에 있어서는 몇 번이고 검토를 거듭하고, 연주하실 분들의 편의를 생각해서, 페이지 넘김이 필요한 부분은 최소한으로 하고, 스프링 제본을 하는 등 매우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완성되었습니다.

Q. 한국의 많은 피아노 애호가들, 학생들이 당신의 곡을 한번 씩 연주해보곤 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당신의 곡을 듣는 걸 넘어 연주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기분이 어떤가요?
유키 구라모토: 기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사용하시기 쉬운 정확한 악보를 만들어 여러분께 전달해드리고 싶습니다.



Q. 당신에게 있어서 ‘서정성(리리시즘)’이란 무엇입니까?
유키 구라모토: 제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소입니다. 데뷔한 이래, 이 서정성을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자고 늘 마음에 새겨왔습니다.

Q. 유키 구라모토가 자신의 음악을 “클래식한 낭만파의 소곡집을 기반으로 한,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와 같은 분위기의 곡으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을 봤어요. 자신의 음악을 말로 정의한 것인가요?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키 구라모토: 작곡 과정에서, 특히 작품을 마무리할 때는 퇴고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완성된 곡을 세상에 발표할 때 역시 작품 선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여러분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3월에 열리는 내한공연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키 구라모토: 서울과 대전, 고양시에서 열리는 이번 콘서트에는 솔로, 앙상블과의 협연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요 앨범을 `회상`하면서 인기 있는 곡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해보았습니다. 올해가 저희 내한 15주년이기도 하고,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데뷔 10주년이기도 한 해입니다. 해서 리처드 용재 오닐의 스페셜 앨범을 함께 작업했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을 위해 제 음악 중 10곡을 특별히 선곡, 편곡, 레코딩에 제가 연주로 참여한 앨범이 3월 초에 나올 예정입니다. 가을에는 야외 콘서트, 또는 각 도시에서 콘서트를 갖고, 크리스마스에도 서울 등지에서 콘서트를 가질 예정입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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