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이토록 따뜻한 호응을 받았던 예가 있었을까? 24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극본 하명희, 연출 최영훈) 얘기다. 배우자의 불륜에 맞닥뜨린 30~40대 부부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사건에 치중하는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치밀하게 집중하면서 드라마의 품격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현실감있는 결혼의 모습과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하명희 작가 특유의 촌철살인 대사 속에서 살아나면서 묘미를 더했다. 20회의 여정 속에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명대사를 모아봤다.
# 나은진(한혜진) 편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걸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살면서 운명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환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결국 인간의 삶은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인생의 리셋버튼을 이미 눌렀다. 인생은 리셋버튼을 눌러도 리셋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 남편의 불륜을 겪으며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 은진의 내레이션. 삶은 하루에도 수십번 씩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로 인해 이뤄진다. 절대 행복을 얘기하는 동화처럼 ‘왕자님과의 결혼해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라는 식의 결말은 인간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한 순간 저절로 입 속에서 되뇌게 되는 내레이션.
“미래가 없는 관계는 현재도 즐거울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듯 재학(지진희)에게 빠졌던 은진이 이별은 선언하며 들려준 대사. 건설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관계는 결국 현재에도 불안할 수밖에 없음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일침이었다.
#송미경(김지수) 편
“오늘 얼굴 맘에 든다. 평소 얼굴이 너무 해맑아셔 쳐죽이고 싶었거든” : 미경은 남편 재학(지진희)과 은진의 관계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은진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후 미경이 모든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을 안 은진이 미경을 보고 사색이 되자 미경이 차갑게 쏘아붙인 말. 평소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살아 온 미경의 응집된 분노가 느껴지는 대사.
“난 사랑 있는 노예론 살 수 있어도 사랑 없는 왕비론 살 수 없는 사람이야” : 남편 재학과 그와 함께 이룬 가정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미경이 이혼을 결심하면서 내뱉은 한 마디. 재학이 은진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안 미경은 마음속의 온갖 갈등을 내려놓으며 ‘사랑 없는 왕비’가 되기를 거부했다. 동시에 그녀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일궈왔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는 없었던 ‘인형의 집’과 같았던 가정을 떠나겠다며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유재학(지진희) 편
“당신도 외로웠구나 나처럼” : 이혼을 앞두고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재학이 미경에게 건넨 말. 자신의 불륜에 독설을 퍼붓던 아내의 모습이 결국은 외로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재학은 비로소 아내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김성수(이상우) 편
“낭만성을 잃어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네 문제가 뭔지 알아? 결혼생활에서 사랑이니 낭만이니 그런 추상적인 걸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길 원해서야” : ‘낭만적이고 드라마같은’ 결혼생활의 로망을 무참히 깨고 있지만 결혼한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만한 극중 성수의 대사. 로맨틱한 연애시절의 감정을 넘어 함께 생활을 일구고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결혼임을 깨닫게 해 주는 대사되시겠다.
#김나라(고두심) 편
“불륜은 상대방의 영혼을 죽이는 거야” : 사위 김성수(이상우)가 과거 불륜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된 장모 김나라(고두심)의 대사. 불륜에 대해 가장 명쾌하게 정의내린 명대사로 꼽힌다. 동시에 사위 뿐 아니라 재학과 관계를 이어가던 은진도 뜨끔하게 했던 짧은 한 마디.
#송민수(박서준) 편
“너무 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안간힘 썼어. 이 집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실적이 있어야 사랑해주는 집같아”
: 누나 미경과 재학의 불화가 시작되면서 누나의 집을 떠나려는 민수(박서준)의 말. 그러나 이 말은 스스로가 아니라 누나인 미경에게 들려주는 얘기이기도 하다. 결혼 후 본인보다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살았던 누나를 측은해하며 전한 동생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SBS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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