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 가서 처음 불렀던 노래가 이현석의 ‘학창시절’이었다. 아마도 1994년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노래방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 형, 누나와 함께 간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건네받으니 부끄러웠다. 왜 ‘학창시절’을 선곡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순진한 소년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래방에서 부를 만큼 이 노래가 당시 상당한 히트곡이었다는 것은 뚜렷하게 기억난다.

이현석은 지난 21일 홍대 라이브클럽 롤링홀에서 열린 데뷔 20주년 기념앨범 콘서트에서 마지막 곡으로 ‘학창시절’을 부르다 중간에 울컥해 노래를 잠시 멈췄다. 여전히 소년 같은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주마등처럼 지나가서였을까?

1992년 이현석의 1집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속주 기타리스트로 각광받았다. 특히 연주곡 ‘스카이 하이(Sky High)’와 같은 곡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국내 록계에서는 속주 연주자들에 대한 로망이 있을 때였다. 그러한 기대치에 부응한 것이 바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현석이었다. 인기 웹툰 ‘생활의 참견’의 작가 김양수 씨는 “고 2때 ‘스카이 하이’가 나왔었는데 한국에서 잉베이 맘스틴 나왔다고 잔치하고 싶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처럼 이현석은 잉베이 맘스틴 스타일의 네오 클래시컬 메탈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속주 기타리스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그를 스타덤에 올린 노래가 바로 1994년에 나온 2집에 실린 ‘학창시절’이었다. 이 노래는 당시 인기가요의 척도인 ‘가요톱텐’의 상위권에 올랐고, 얼마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삽입되기도 했다. 지금 들어보면 이 곡은 밝고 명랑한 멜로디에 강렬하고 화려한 기타속주가 결합한 당시로써 만나기 힘든 노래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학창시절’은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이현석에게 직접 물었다.

“‘학창시절’이 밝은 곡이잖아요. 당시 어머니가 투병 중이셨는데 직접 간호를 하면서 밝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곡을 쓰게 됐죠. 그래서 2집에는 밝은 곡들이 많이 실렸어요. 제가 원래 밝은 사람이거든요.(웃음)”(이현석)

1969년생인 이현석은 고3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미국 유학 중에 데모음반을 만든 이현석은 한국으로 돌아와 데모에 실린 음악들을 토대로 1집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이현석의 8년 만의 단독공연인 무대에 함께 오른 베이시스트 한철재는 이현석과 20년 지기 친구다. 이제는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자들로 자리잡았다. 한철재는 “우리는 20년 전에도 이렇게 함께 무대 위에 올랐다. 현석이가 마침 20주년 공연을 한다고 하니 기분이 새롭다”라고 말했다.



이현석은 단순히 속주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는 아니다. 이날 공연에서도 대표곡인 ‘스카이 하이’ ‘지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에서 면도날 같은 속주기타를 연주하는 중간에 ‘여의도 블루스’와 같은 슬로우 템포의 블루스 곡을 연주하며 감성적인 기타를 들려주기도 했다. ‘학창시절’을 통해 맘스틴도, 스티브 바이도 못한 가창력을 뽐낸 것은 물론이다. 공연장에는 일본에서 온 열성 팬들도 보였다.

이날 공연에는 이현석의 절친한 음악선배인 가수 이승환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승환은 새 앨범 준비로 한창 바쁜데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후배 이현석을 위해 기꺼이 무대에 올랐다. 둘은 인연이 오래됐다. 이승환은 미국에서 막 돌아온 이현석의 데모음반을 듣고 첫눈에 반해서 아직 신인이었던 이현석을 자신의 공연 오프닝 무대에 세웠다. 이날 이승환과 이현석은 만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둘의 무대를 번갈아 보면서 또 문득 궁금해졌다. 1965년생인 이승환과 1969년생인 이현석 둘 중에 누가 더 동안일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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