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수지와 ‘변호인’ 임시완(왼쪽부터)
‘건축학개론’ 수지와 ‘변호인’ 임시완(왼쪽부터)
‘건축학개론’ 수지와 ‘변호인’ 임시완(왼쪽부터)

‘연기돌’ 열풍에 신인 연기자 설 곳 갈수록 줄어 “괜찮은 배우가 없다고?”

최근 연예계는 ‘만능 엔터테이너’ 전성시대다. 연기자와 가수의 경계가 무너져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다 완벽히 소화해내는 팔방미인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아이돌 스타들의 맹활약이 눈부시다. ‘연기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이들은 드라마뿐 아니라 진입장벽이 높다는 영화까지 넘나들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영화 ‘건축학 개론’과 드라마 ‘구가의 서’ 등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수지나 ‘변호인’으로 10,00만 배우 대열에 들어선 임시완,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 등 주목받는 ‘연기돌’들은 아이돌 그룹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중장년층들 사이에서는 배우로 아는 사람도 많다. 본업이 가수라는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연기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영화 ‘카트’ 속 엑소 멤버 디오
영화 ‘카트’ 속 엑소 멤버 디오
영화 ‘카트’ 속 엑소 멤버 디오

그래서 최근 촬영 중이거나 기획 중인 영화와 드라마에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도 아이돌 스타 한 명은 포진해 있을 정도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화제를 모을 만한 아이돌 스타가 한 명이라도 출연한다면 투자나 해외 판매에 도움을 받는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 제작 명필름)는 여주인공 염정아의 아들로 출연 중인 그룹 엑소의 디오의 인기에 힘입어 클라우드 펀딩 목표액을 조기에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돌 스타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기사가 한 번 더 나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아이돌 스타가 투입된다면 팬덤에 의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드라마 출연은 가수 활동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 장년층에까지 그룹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곤 한다. 그래서 최근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인상적인 얼굴의 프로필을 찾아보면 아이돌 가수인 경우가 아주 많다.

10여년 넘게 연예기자를 해온 나도 요즘 영화 제작자나 드라마 제작자들을 만날 때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최근 가장 많은 인기를 모으는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연기를 잘할 만한 멤버를 묻는 질문부터 그중 한 명의 카메오 출연을 연결(?)해달라는 청탁까지 받을 정도로 아이돌 스타들에 대한 관심은 아주 뜨겁다.

제작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될 만한 신인을 직접 찾아 키우기보다 너무 손쉬운 해결책을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 때문. 그럴 때마다 나는 “연기만 바라봐온 신인들도 좀 바라봐달라”라고 말하곤 한다.

얼마 전 만난 한 기획사의 매니저는 “신인 배우 한 명 키우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비중이 작아도 신인배우들이 주목 받을 수 있는 역할들을 아이돌 스타들이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 외모나 연기력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인지도 면에서 앞서는 아이돌 스타들이 선택을 받곤 한다. 연기만 바라보고 한 길을 달려온 수많은 신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기돌’을 캐스팅한 제작사들은 촬영이 시작되면 나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만능 엔터테이너’라 하지만 이들의 본업은 가수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아이돌 스타가 출연하게 되면 그들의 공연 스케줄에 맞게 촬영이나 마케팅 행사 일정을 조정해줄 수밖에 없다. 연기자 신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난 한 신인 연기자의 “이럴 줄 알았으면 가수를 먼저 할 걸 그랬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철없는 불평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돌 출신 1세대 배우 윤계상과 정려원(왼쪽부터)은 이제 배우로 자리잡았다
아이돌 출신 1세대 배우 윤계상과 정려원(왼쪽부터)은 이제 배우로 자리잡았다
아이돌 출신 1세대 배우 윤계상과 정려원(왼쪽부터)은 이제 배우로 자리잡았다

과거 윤계상, 정려원, 유진, 윤은혜, 성유리 등 1세대 아이돌들이 가수를 그만두고 연기자로 전업하면서 선입견에 마음 고생하던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당시 선입견을 조장했던 ‘아이돌 가수 출신’이란 수식어가 현재는 큰 무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 1세대 아이돌 선배들은 이런 편견 탓에 더 많이 비판을 받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배우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선입견을 하나씩 깨가면서 ‘정상급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연기돌’들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연기돌’들을 보면 선배들에 비해 너무 쉽게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다. 손안에 쥔 것이 많기에 연기에 대한 절실함도 부족해 보인다. 이들에게 연기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아이돌 가수들이 들어놓는 보험 같은 장치로 비쳐진다. ‘연기자’란 직업이 본업이 아닌 부업이 돼버린 느낌이다.

모든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연기돌’ 열풍은 본말이 전도가 된 느낌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업계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 관계자들의 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신인 연기자들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자체적으로 신인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키우려 노력하지 않았으면서 배우가 없다는 변명은 이제 그만 하자.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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