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20대 첫 작품이다. 그리고 원톱 주연이다. 20대의 사랑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을 것 같고, 그런 욕심도 당연히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수상한 그녀’라.
심은경. 1994년생, 이제 겨우 스무살인 이 아리따운 여배우가 70대 할머니를 연기했다. 쉽게 상상이 안 되는 그림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스무살인 배우가 70대의 감성을 표현한다는 사실에 궁금증과 걱정이 공존했다. 영화 개봉 후 궁금증은 말끔히 해소됐고, 걱정은 환호로 바뀌었다. 설 연휴 극장가, 그의 차지였다. 그가 보여준 노련한 연기에 대한 칭찬은 단어가 부족할 정도다. “내 힘으로만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만 칭찬받는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분명 심은경은 칭찬 받을만했다. 70대 오말순이 우연한 계기로 20대의 몸을 갖게 된다는 영화 속 황당한 설정은 심은경을 만나 현실에 발을 디뎠다. 걸쭉한 욕과 사투리 그리고 행동거지는 그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리고 영화 한 편을 이끌어 가는 힘은 여느 베테랑 배우 못지않다. ‘수상한 그녀’는 심은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심은경 : 그런 생각이나 욕심은 항상 있다. 그런데 ‘수상한 그녀’는 기존 충무로에서 보지 못한, 흔하지 않은 콘셉트의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흥미가 갔다. 내 나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라 판단됐다. 또 급하게 이미지를 변화시키면 혼돈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순수하고, 아이다운 이미지가 어렴풋이 남아 있는데 스무살 됐다고 갑자기 여성스럽고, 섹시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건 아니지 않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 같으면서도 더는 아역이 아니라는 인식을 남겨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Q. 하긴, 심은경이 ‘섹시한 연기’를 한다는 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편으론 그래서 또 궁금하기도 하다. (웃음) 만약 섹시한 역할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
심은경 : 섹시한 연기는 생각을 해보질 않아서. 약간 과장해서 섹시라고 이야기한 거다. 나하곤 거리가 멀다. 여자로서 매력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또 섹시한 이미지는 추구하는 쪽이 아니어서.
Q. 어찌 됐든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해야 할 때다. 그러면 좀 더 여성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심은경 : 좀 더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다양하게 많이 보려고 한다.
Q. 분명한 건 심은경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역을 많이 했다. ‘불신지옥’에서도 접신했고, ‘써니’에서 빙의 장면도 인상 깊었다. 기존 아역 출신 배우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 같다.
심은경 : 평범한 역할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캐릭터 위주의 영화를 한 것도 아니다. ‘써니’의 나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나미는 평범한 학생인데 빙의 장면이 너무 강렬하고 인상 깊었을 뿐이다. 그리고 평범한 20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또 특별한 캐릭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보니 캐릭터가 분명한 역할을 많이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평범한 역할을 했고, 평범한 20대 역할도 하고 싶다.
Q. 균형을 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심은경 : 그렇다. 그래서 가리진 않는다. 아직 정해진 게 없지만, 그런 위주의 영화나 캐릭터를 고심하고 있다. 20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Q. 다시 ‘수상한 그녀’를 이야기하자. 20대 여배우가 70대를 연기한다는 것. 도대체 뭐에 끌린 건가.
심은경 : 생각했을 땐 재밌을 것 같지만, 연기가 가능하냔 의문이 많이 들었다. 내가 할머니가 아니고, 그만한 경험도 없고, 연륜이나 세월을 견뎌온 무게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에 있어 나 자신에 의심을 많이 했다. 그래서 출연 고사도 생각했는데 기회를 놓치는 게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만 더 읽어보고 판단하자 생각했는데 뒷부분에 가족을 얘기하는 장면에서 감동을 했다. 그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Q. 솔직히 말해 자신의 연기력을 ‘과시’할 수 있는, 또는 잘해낸다면 좋은 평가를 독차지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영화의 흥행을 떠나 심은경이란 배우만큼은 그 가치가 올라갈 테니까.
심은경 : 전혀 하지 못했다. 나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욕심은 전혀 없었다. 시나리오가 첫 번째고, 두 번째로는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거지 ‘영화가 괜찮다는 게 곧 심은경이 연기를 잘하는 것’이라는 것을 결부시키지 않았다.
Q. 어쨌든 지금 평가는 심은경에 대한 호평으로 쏠리고 있지 않나.
심은경 :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사하다는 말밖엔. 즐기면서 한 것밖에 없고, 이런 분위기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나온 것 같다. 내 힘으로만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 혼자만 칭찬을 듣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다.
Q. 70대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게 뭐가 있나. 나문희를 관찰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목소리 톤부터 행동까지.
심은경 : 나문희 선생님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건 연륜이다. 자식 하나 보고 모든 걸 희생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일까? 그 마음을 깨닫는 게 가장 중요했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 엄마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 엄마 역사 나를 아역 시절부터 보살펴줬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을 테고. 또 좋은 연기자로 크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이 영화와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는 게 느껴졌다. 어머니를 많이 떠올리면서 촬영한 영화다. 완벽하진 않았더라도 어렴풋이나마 감성적인 부분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Q. 근데 나문희와 심은경, 두 사람이 은근히 닮았더라. 그런 소리 꽤 들을 것 같은데.
심은경 : 웃는 모습이나 ‘뽀글파마’를 한 모습이 상당 부문 닮은 것 같긴 하다. (웃음) 나문희 선생님이 가장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외적인 모습이 닮았다고 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사실 극 중 나문희 선생님에서 나로 바뀌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을 텐데 외적으로 닮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 안도감이 들었다.
Q. 나문희 역시 심은경의 연기를 주목했을 것 같다. 자신의 20대를 연기하는 거니까. 조언은 해주지 않던가.
심은경 : 처음 대본 리딩 할 때 졸업하고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고, 처음 뵙는 거라 긴장했다. 그래서 버벅대며 대사를 읽었는데 선생님께서 용기를 많이 주셨다. 오두리란 캐릭터를 좀 더 밝고, 적극적인 캐릭터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심은경이 없었다면, 나도 없을 거다. 너만 따라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용기가 됐다.
Q. 나문희의 20대를 연기한 것도 그렇지만, 박인환과의 호흡도 굉장히 재밌었다. 심은경은 1994년생이고, 박인환은 1945년생이다. 실제 50년 차이다. 그래서 어색함도 많았을 텐데 적어도 스크린에선 보이지 않았다.
심은경 : 현실을 생각해 연기하면 절대 못 나왔을 거다. 나 자신을 내려놓고 했다. 극 중 묶여 있는 선생님을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찰싹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현실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다. ‘컷’ 소리가 나자마자 너무 죄송해서 힘드시지 않느냐고 했더니 오히려 웃으면서 더 세게 해도 된다고 호탕하게 받아줬다. 위로도 많이 해주셨다. 아무리 영화지만 그 상황이…
Q. ‘써니’ 인터뷰 당시 ‘예쁜 척이나 짓을 못하고, 함께 출연하는 선생님들께도 사근사근하게 하지 못해서 죄송할 정도’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성격이 조금은 바뀐 건가. 아무래도 이번 역할은 그게 필수였을 것 같은데.
심은경 : 사근사근하게는 아직 못한다. 다만 먼저 인사하는 습관은 많이 길러진 것 같다. (웃음). 그리고 역할에 몰입하면서 성격이 조금 변한 게 느껴졌다. 말도 많아진 것 같고, 여러모로 밝아진 것 같아 좋다.
Q. 원래 노래 실력이 좋았나? 직접 다 부른 게 맞나? 목소리가 상당히 좋았다. 심은경이 아닌 전문 가수가 부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은경 : 어려서 성악을 배우긴 했지만, 출중하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촬영 후 보컬 트레이닝을 한두 달 받았다. 처음 한 달 트레이닝을 받고 녹음했는데 부족한 부분도 있고, 목소리 톤이 살짝 안 맞는 것도 있고 해서 대역 가수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반대를 심하게 했다. 음악감독님께 전화해서 ‘대역은 아닌 것 같다.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저라고 생각한다. 목소리 톤을 바꿔서 녹음을 한 번 더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부른 노래들이 나오게 됐다.
Q. 직접 전화까지 하면서 고집을 피웠던 건 뭔가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심은경 : 설사 내 노래를 쓰지 않더라도, 일단은 내 주장을 말하고 싶었다. 영화를 위해서 주저 없이 얘기했던 부분도 있었고, 잘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 녹음할 땐 다들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래서 ‘잘했다고 해 놓고선, 뭐가 문제 될 게 있나’ 이런 생각이었다. (웃음). 처음부터 아니라고 했으면 아마 어느 정도 수그러들 수 있었을 텐데 분명 잘했다고 했으니까 아쉬운 거다.
Q, ‘나성에 가면’ 등 영화 속에서 부르는 노래는 익숙했나. 분명 익숙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감성을 뽑아낸다는 게 대단하다.
심은경 : 사실 잘 모르는 노래다. 그래서 연기 못지않게 신경 쓴 부분이 바로 노래다. ‘한’이 많이 있으면서 담담하게 얘기하는 느낌의 노래다. 그래서 가창력보다는 감성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캐릭터의 감성을 잃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또 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캐릭터에 빠져서 못 나왔던 것 같다.
Q. 극 중 이진욱과 로맨스도 있다. 그런데 정상적인 20대 여성의 로맨스가 아니라 70대 감성으로 하는 로맨스 아닌가.
심은경 :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다시 젊었을 때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할머니에게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 대부분이 사랑이었다. 어쩌면 오두리도 20대 젊은 마음으로 돌아가서 이진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긴 가발을 뜬금없이 쓰고 나오기도 하고, 서울말을 쓰려고도 하고. 서툰 모습들이 비치는데 그것들이 20대 설레는 감정을 가진 여자들과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Q. 이야기하다 보니 이 영화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게 정말 많았을 것 같다.
심은경 : ‘수상한 그녀’를 ‘써니’ 연장 선상으로 보는데 전혀 다르다. 신경 쓴 부분도 더 많고, 코미디 적으로 밀어붙인 것들도 더 많았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했고, 연구했다.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낸 것도 많았다.
Q. 이제 심은경 개인 이야기를 들어보자. 학업은 다 마친 건가.
심은경 : 고등학교 졸업했다. 잘 마쳤고, 3년 정도 유학 생활했는데 그 사이에 ‘광해’ 촬영을 했다. 대중들에게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활동한 것도 있고. (웃음) 여하튼 지난 6월 졸업해서 ‘수상한 그녀’ 찍게 된 거다. (심은경은 미국 뉴욕에 있는 프로페셔널 칠드런 스쿨을 졸업했다)
Q.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건데 그렇다면 대학 진학 등 학업을 더 해 나갈 생각인가.
심은경 : 애초 고등학교 졸업을 목표로 유학을 갔다. 지금은 대학을 갈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 대학이 나한테 필요한 부분인가 싶기도 하고, 만약 가게 되더라도 촬영을 핑계로 다니지 않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왕 다닐 거라면 제대로 학교 공부도 하고, 즐겨야 하는데 그럴 시간과 여유가 되는지 확신이 없다.
Q. 그렇다 하더라도 공부를 하다 보면 없던 욕심도 생기기 마련이다.
심은경 : 유학생활 할 때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대학 진학 준비하는 친구들 영향도 받고, 또 좋은 대학교에 대한 정보도 얻고 듣는 게 있으니까. 한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대학에 대한 꿈도 키웠다. 나름대로 준비를 했지만, 잘 성사되진 않았다.
Q. 그런데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건데, 일반적인 고교 과정이었던 건가.
심은경 : 일반 고교 과정이긴 하지만, 다른 학교와 차이가 있다면 예술 활동을 하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였다. 그런 점에서 차별화가 돼 있다. 연기 활동이나 발레, 모델 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동양인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 옆에 줄리어드 음대가 있어 클래식 전공이 많았다.
Q.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 교류도 심은경의 큰 자산이겠다.
심은경 : 중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 덕분에 클래식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고, 그에 자극받아 피아노도 잠시 배웠다. 예술적으로 영감대를 얻었던 시간이었다.
Q. 혹여라도 미국 진출한다면, 도움이 되겠다. (웃음)
심은경 : 글쎄. 미국 진출이란 게 가능할지 확답할 순 없겠지만.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다 .
Q. 예전 인터뷰를 보니 단편 시나리오도 쓰고 했던데. 연기 외적인 거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감독의 꿈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건가.
심은경 : 지금은 멈춰 있는 상태다. (웃음) 꿈은 가지고 있다. 한가해지고, 시간적 여유가 될 때 시나리오부터 써보고 싶다. 기본적인 것부터 잘 닦아놔야지.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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