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장면에 이어서 등장하는 호젓한 주택가. 옥상에서 기타를 치는 지욱(박건형)이 우연히 이연(오소연)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공교롭게도 같은 대학 강의실에서 만나는 두 남녀. 지욱이 다가가려 하자, 왠지 거리감을 두는 이연. 알고 본즉 그녀는 운동권학생으로 수배중인 신분이었으니 …(중략)
사랑, 이별, 추억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노래로 대중들의 가슴을 녹아내린 고(故) 김광석의 곡들이 뮤지컬로 탄생했다. 게다가 그의 미 발표곡들까지 만날 수 있는 창작 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작품 속 시대배경은 민주화 열풍이 분 군사정권시절부터 20년이 지난 세월까지. 그에 따라 주인공 지욱은 청년과 중년 남성 연기를 소화해야 하며, 이연과 화이라는 1인 2역을 맡은 여주인공은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즉 어느 공연 못지않게 주인공의 연기력이 중요하다는 것.
이와 함께 김광석의 노래가 뮤지컬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스토리 전개가 필수. 그러한 점에서 이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가 장진 감독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영화와 연극 분야에서 개성만점의 감각미를 한껏 드러낸 그가 뮤지컬에서 어떤 생명력을 불어 넣을 지 사뭇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뮤지컬을 제작한 곳이 전문 공연사가 아닌, 영화사라는 점도 이채롭다. 말 그대로 영화와 뮤지컬이 서로 만난 것이다.
영화와는 색다른 매력
이 작품은 원작이 뮤지컬이다. 따라서 이 공연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극 전개에 있어 기존 영화 스토리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바로 20년의 세월을 두고 한 여성만을 사랑한 지욱에게 그녀와 너무나 닮은꼴의 여성, 화이가 나타나서 그로 하여금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는 내용. 이 부분은 이병헌과 고(故) 이은주가 주연을 맡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와 유사하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 이 뮤지컬은 영화와는 다르게 극이 전개된다. (그 이상은 스포일러라 밝힐 수 없고, 공연장에서 확인하시길)
그리고 이 공연은 영화감독 출신의 연출이라서 그런지 영화적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우선 작품의 규모가 엄청나다. 주인공 역의 박건형과 오소연을 비롯해서 임기홍, 송영창, 박호산 등 연기력과 흥행력을 지닌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주요 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 했다. 지욱역의 박건형은 예의 안정된 연기로 극을 매끄럽게 주도했고 이연과 화이라는 1인 2역의 오소연은 흥행보증수표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특히 8색조 연기의 달인 성태역의 임기홍은 이번 공연에서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부연하면 꼭 한번 임기홍이 메인타이틀 롤을 맡은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다음으로 공연장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는 점도 놀랍다. 몇 년전 국내 모공연사가 국제적인 규모의 뮤지컬을 제작한다면서 ‘미션’을 바로 이 곳 세종문화회관에 올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다. 당시 무대 곳곳이 텅 빈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웬만한 무대장치 규모로는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세종문화회관 무대가 넓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연하는 ‘디셈버’는 달랐다. 빈 구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대장치 규모가 컸을 뿐만 아니라, 음악과 음향, 조명 장치 등에서도 공연장 전체를 사로잡았다. 무대장치와 캐스팅을 놓고 보면, 뮤지컬계의 블록버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 ‘디셈버’ 장면
극 전개 방식에서도 영화적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극의 주요내용과는 별도로 등장하는 노부부와 병영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영화에는 흔히 등장하지만, 뮤지컬에선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김광석의 원곡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삽입한 장면인 것 같다. 한편으로 ‘변해가네’와 ‘서른 즈음에’를 원곡의 느낌과는 다르게 각색했는데, 장진 특유의 유머감각이 잘 드러났다. 아마도 김광석 노래 거의 전체가 빠른 비트와는 거리가 먼 발라드풍이라서, 곡의 변화를 준 것 같다.끝으로 이 공연에서 아쉬운 건 한 가지. 세종문화회관이 안고 있는 뮤지컬 공연의 불편함(?)이다. 워낙 무대가 넓다보니, 배우들의 동선이 길어지고 장면이 전환될 때 시간이 다소 걸렸던 것. 이를 보완코자 오케스트라 음악과 조명장치 조절로 간극을 메우려 했으나,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 넓은 무대를 빈틈없이 세트와 조명으로 채웠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이 공연 제작에 얼마나 많은 공(功)을 들였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기 때문이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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