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인이 한복을 차려입고 텐아시아를 찾았다

’20대 여배우 기근 현상’ 몇년 전부터 방송가와 충무로의 캐스팅 담당자들이 종종 하소연하듯 전하는 얘기다. 연기력 출중한 ‘쓸 만한’ 20대 여배우들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석같은 신예들은 제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스스로를 갈고 닦고 있다. 올해는 생동감을 뜻한다는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 숨은 땀방울을 흘리며 누구보다 힘차게 달릴 준비중인 네 명의 20대 여배우들에게서 한 해 계획과 소망을 들어보았다.

이다인을 보고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생각보다 훨씬 자그마한 몸집, 두 번은 그 자그마한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탓이었다.

지난 해 tvN 모바일 드라마 ‘스무살’로 깜찍하게 데뷔한 이다인은 2014년은 그 이전 삶과는 확실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앞두고 있는 그녀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고백하며 인터뷰 내내 수줍게 웃었지만, 몇몇 질문에 대한 아주 분명한 대답들은 강단 있는 성격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이다인의 뒤바뀐 인생 가운데, 배우 견미리를 엄마로 두고 이유비를 언니로 둔 그녀의 가족사는 늘 꼬리표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을 것이다. 모든 스타2세들이 그러하듯, 그 이름을 떨쳐내는 것이 숙제가 될 것이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은 이다인과의 새해맞이 인터뷰를 공개한다.

‘스무살’로 데뷔한 이다인은 배우의 향기를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Q. 깜찍한 모바일 드라마 ‘스무살’로 데뷔했다. ‘스무살’의 혜림과 실제 이다인은 얼마나 닮아있나.
이다인 : 비슷한 점도 있지만, 정반대인 점도 많았다. 그래서 공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혜림이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틱’ 누르면 바로 표출하는 성격인데 나는 감추는 편이거든. 혜림이는 이제 갓 스무살이다 보니 그렇게 순수한 것 같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기, 배고프면 울고 기분 좋으면 웃는 그런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Q. 본인과 성향이 다른 인물로 변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데뷔작이라 우왕좌왕하는 것도 많았을 테고.
이다인 : 학교(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는 연극무대에서만 연기를 했었고, 카메라 연기는 처음이라서 각도도 용어도 몰라 낯설었다. 하지만 스태프들이 모두 친절하게 가르쳐주셔 기술적인 부분은 금방 적응했다. 다만, 감정 표현이 힘들었다. 혜림이가 너무 이랬다 저랬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이상했다. 성격이(웃음). 아니, 왜 갑자기 맥주 캔을 바라보다가 우는 걸까?

Q. ‘스무살’은 제작발표회를 열어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 스크린에서 내 모습을 본 순간 어떤 기분이 들던가.
이다인 : 부족한 점만 보이더라. 아쉬웠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통.

Q. 이기광과의 키스신도 화제가 됐다. 모바일이라는 젊은 플랫폼에서 방영되는 거라 그런지, 수위가 꽤 높더라.
이다인 : 그런데 정작 촬영할 때는 풋풋한 느낌으로 갔다. 진하게 간 것이 아닌데 모니터를 보고는 기광오빠도 나도 깜짝 놀랐다. ‘아니, 어쩜 19금처럼 나왔나’ 그랬었다. 각도 때문인 걸까?

Q. 첫 연기 파트너 이기광과의 호흡은?
이다인 :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먼저 말도 많이 걸어주시고 편하게 대해주셨다. 빨리 친해져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이다인은 엄마 견미리, 언니 이유비와는 같은 듯 다른 길을 걷길 원한다

Q. 혜림이처럼 실제로 좋아했던 아이돌은?
이다인 : 비 선배님(웃음). 초등학교 때 좋아했다.

Q. 엄마에게 소개시켜달라고 했을 법도 하다.
이다인 : 어려서 그런 이야기까진 안했었고 엄마에게 ‘비와 결혼할거야’ 그랬었다. 엄마는 ‘서울대 가면 결혼할 수 있어’ 하시더라. 그런데 진짜 서울대 나오신 분과 연애하시다니, 휴.

Q. 엄마와 언니가 모두 배우의 길을 먼저 걷고 가있다. 그런데 셋 모두 소속사가 다르더라.
이다인 : 엄마는 개인적으로 하시고, 언니는 나보다 먼저 데뷔했다. 언니한테 잘 맞는 회사를 선택해서 간 것이다. 나는 나대로 나와 맞는 회사를 선택했고. 언니는 스타성이 강한 배우 이미지가 난다. 그래서 회사 역시도 스타성이 부각되는 회사로 간 것 같다. 가끔 예능 프로그램도 나가고 그런다. 반면, 나는 연기 쪽으로 외길만 갈 수 있는 기획사를 찾았다.

Q. 엄마와 언니, 그리고 본인의 배우로서의 매력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
이다인 : 엄마는… (한참을 민망한 듯 웃더니) 일단 너무 아름답다. 엄마가 이제 51세이신데, 우리와 같이 사진 찍어도 절대 지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가 더 예쁘다. 그리고 언니는 누구나 다 호감가질 수 있는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다. 생긴 것 자체가 동글동글하면서도 단단하게 생겼다. 요즘 사랑스러움이 대세인데 거기에 부합하기도 하고. 나는 언니와는 색깔이 다르다. 다양한 색깔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련다(웃음).

Q. 어렸을 때부터 ‘엄마처럼 배우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이다인 : 언니는 끼가 많아서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언니가 사람들 앞에 나서도 나는 조용히 뒤에서 웃고 있는 편이었다. 끼가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연기자로의 끼는 내가 더 많다고 말씀해주셨다(웃음).

Q. 그 말을 들은 언니의 반응이 궁금해지는데.
이다인 : 화를 낸다(웃음).

이다인의 한복 자태는 곱다

Q. 어렸을 때, 유명인의 딸로 살아간다는 것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이다인 : 많았다. 항상 고민이었던 것이 누군가 내게 다가올 때 ‘진심일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여자 친구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경계하지는 않았다. 믿었다. 나중에 배신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하지만 남자친구들은 엄청 경계를 했다. 자칫 소문이 이상하게 날 수도 있고 그러면 엄마에게도 피해가 가니까. 경계심 탓에 연애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엄격한 편이기도 했다. 늘 ‘누구 딸이라고 하면 다 알기 때문에 남들에 피해주면 안된다’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런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다 보니 힘들 때도 있더라. ‘내 인생이 아닌 엄마를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고.

Q.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들을 했다면, 심적으로는 조숙했을 것이다.
이다인 : 그래서였을까? 나는 말수도 없고 늘 혼자 속으로 생각을 많이 했었다.

Q. 그렇게 속으로 삭히는 것이 많은 성격이 감정을 분출하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연결된 것이라 생각하나. 배우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이다인 : 아니, 오히려 배우하기 굉장히 좋지 않은 성격이다. 나는 내 성격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쓸데없는 생각 좀 안하고 살고 싶다. 잠도 제대로 못잔다. 눈을 감으면 온갖 생각들이 다 떠다닌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냥 하는 법이 없고 너무 멀리까지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이 많으면 걱정이 늘어나고 그러면 소심해진다.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하는 것도 필요한데 말이다. 용기가 부족한 점이 내 단점이다. 반면, 언니는 겁도 없고 상처를 받더라도 툭 털어버린다. 배우하기 굉장히 좋은 성격같다.

Q. 배우를 꿈꾼 것은 언제부터인가.
이다인 :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는 공부만 했다.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13년 동안 한 공부가 어느 순간 너무 지겨웠다. 엄마에게 ‘나 공부하고 싶지 않아’라고 고백했다. 그게 고3때의 일이다. 엄마는 ‘그럼 뭐가 하고 싶은데?’ 하셨다.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늘 너무 포기하고 살다보니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더라.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엄마가 ‘연기해볼래? 배워볼래?’ 하셨다. 그렇게 연기레슨을 접하게 됐는데 재미있더라. 취미로 하던 것이 전공까지 이어졌다. 연극영화과를 목표로 두고부터는 다시 공부도 열심히 했다.

Q. 늘 포기하고 살았다니. 배우 2세들이 연기를 곧잘 하는 이유가 감정표출에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성장한 탓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오히려 늘 감정을 억누르고 살았다는 말로 들린다.
이다인 : 맞다. 어렸을 때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하면 부모님은 늘 ‘공부해서 대학 간 다음에 해’라고 하셨다. 그래서 포기하고 산 게 많다고 여긴 것이다. 늘 공부만 했었으니까. 감정을 억누르며 자라다보니 배우로서는 그닥 좋지 않다. 사실은 내가 감정을 억누르고 살았다는 것도 잘 몰랐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연기지도를 받는데 교수님이 ‘너는 여기(이다인은 목 언저리에 손을 갖다 대며)까지 와있는데 답답하게 누르고 있어. 왜 그러니? 평소에도 늘 억누르면서 사는 거니?’라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교수님이 아기처럼 행동하라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기쁘면 기뻐하고 자기감정을 유들유들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감정이 굉장히 예민해졌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다.

이다인이 2014년 청마해 보여줄 이야기들은 어떤 색깔일까

Q. 처음 접해본 연예계는 어떤 세상이던가.
이다인 : ‘정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힘들겠구나, 독하지 않으면 힘든 인생을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세상. 상처도 잘 받고 소심한 성격이다. 별명도 유리멘탈이니까. 하지만 요즘은 멘탈강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생각 자체를 바꿔먹으려 한다. 힘든 일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했고. 그리고 이번 드라마 찍으면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복이 많구나’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 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Q. 그렇다면 가까이서 지켜본 배우란, 어떤 존재들인 것 같나.
이다인 : 외로운 사람. 연기를 해보니까 드라마 끝나고 쉬는데 왠지 모르게 공허하더라. 이상했다. 그 순간 배우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Q. 갑작스러운 질문이긴 한데, 스스로를 동물에 비유하자면?
이다인 : 흠, 내가 원숭이 띠라 그런가. 자꾸 원숭이 생각만 난다. 원숭이는 활동적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나 역시 가만히 앉아있는 직업으로는 못 살 것이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고. 참, 원숭이는 재능도 많으니까, 원숭이로 할 테다!

Q. 설 명절 계획은?
이다인 : 집에서 마구 먹을 것 같다(웃음). 엄마가 바쁘셔도 늘 명절을 집에서 함께 보냈다.

Q. 2013년 데뷔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2014년은 어떤 해로 만들고 싶나.
이다인 : 사실 데뷔 전후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잘 돌아다니고 친구들도 잘 만난다. 지나가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를 걸. 그래서 2014년에는 좋은 작품을 만나 이다인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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