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균, 삼천포와 같은 듯 다른 웃음이 터지다
김성균이 보여준 놀라운 변신은 이제 말하는 것이 지겨울 정도다. 그렇지만 그는 필시 최근 몇 년을 돌이켜봤을 때, 배우가 보여준 가장 놀라운 변장을 보여준 배우임에 틀림없다. 누군가는 김성균이 tvN ‘응답하라 1994′의 현장에서 장국영 가발만 쓰면 삼천포가 되고 가발을 벗는 순간 다시 김성균으로 돌아왔었다고 귀띔했다.
실제 스튜디오에 들어선 김성균은 특유의 묵직한 포스를 뿜어내며 걸어와 놓고는 카메라 앞에서 온갖 찬란한 표정들을 지어 보인다. 이토록 유연한 피사체라니. 그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은 또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탐사해도 좋을 배우 김성균과 걸었던 1990년대를 뒤로하고 2014년 새해의 어느 날 마주앉았다.
셔터소리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가진 김성균
Q. 기억나시나요? 2년 전 부산에서 처음 만났었는데, 그 해 ‘범죄와의 전쟁’으로 온갖 영화제 신인상을 독식하고 있었죠.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의 김성균과 삼천포는 도무지 매칭이 안돼요. 우리가 흔히 쓰는 ‘연기변신’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체감한 적이 없었습니다.김성균 : 하하. 감사합니다.
Q. 장국영 가발을 계속 쓰고 연기하느라 고생하셨겠어요.
김성균 : 그렇죠. 여름부터 찍었었으니까요. 1화 ‘서울사람’의 상경신 촬영 때 엄청나게 더웠어요. 가발에 적응이 안됐을 무렵이라 갑갑하기도 했고요. 밤샘 촬영하느라 24시간 이상 가발을 쓰면 엄청 아프기도 하더라고요.
Q. 처음 가발을 쓰고 ‘내 안의 삼천포’와 대면한 느낌은 어땠나요?
김성균 : 웃겼어요. 낯설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니 내 모습 같았어요.
Q. 가발이 삼천포로의 ‘뾰로롱’ 변신할 수 있는 매개가 되다보니 몰입에는 도움이 됐을 것도 같아요.
김성균 : 맞아요. 가발을 쓰면 자연스럽게 삼천포처럼 행동하게 됐어요.
Q. 처음에 신원호 PD로부터 캐스팅 제안을 받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성균 : 혹시나 거부감을 느낄까 봐요. 1화 때부터 삼천포가 등장하는데 그때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21부까지의 긴 여정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어요.
Q. 하지만 배우로서는 매우 기쁜 제안이 됐을 법도 한데요.
김성균 : 그렇죠. 연기하면서도 재미가 있었고 신도 났어요. 하지만 그래도 방송 날짜 다가오면서는 다시 걱정이 많아져서 감독님한테 연락도 하고 그랬었죠.
김성균, 반듯하나 자유롭고 조화로운 배우
Q. 엄청난 인기에는 적응 좀 하셨나요? 프리허그 행사 때 몰려든 인파에 놀란 표정이 기억나네요.김성균 : 한달 정도 지나면 다 사그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 감사드리고 행복하지만 사실 부끄러워요. 얼굴이 빨개지고 몸 둘 바를 모를, 불편한 옷 같아요. 길에서 누군가 알아보면 창피하고 어색하기도 하고요. 일상을 사는데 마치 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지금도 물론 스스럼없이 식당가서 밥도 먹고 다 하긴 하지만요. 그리고 실제로 식어가고 있어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Q. 가족분들 반응은 어떤가요? 재미있어 한다거나 불편해하시진 않나요?
김성균 : 무덤덤해요(웃음).
Q. 그래도 CF는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웃음).
김성균 :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죠(웃음). 처음에 한 편 두 편 찍을 때는 ‘어어어어’ 하다가 다섯 편, 여섯 편 되다보니 ‘무슨 일이야 이게’ 그랬었어요.
Q. 아내께서도 배우시잖아요. 다시 연기를 하실 계획은 없나요?
김성균 :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연기를 할 생각이에요.
Q. ‘이웃사람’으로 만났을 당시 둘째 아들 이야기하면서 ‘복덩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요.
김성균 : 둘 다 복덩이에요. 큰 아들 태어나고 ‘범죄와의 전쟁’에 캐스팅 됐었고, 둘째가 태어난 뒤 영화가 잘 됐거든요.
Q. 매번 만날 때마다 아이들 이야기하는 것 보면, 정말 다정한 아빠인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 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요?
김성균 : 새벽에 늦게 들어가 싱크대를 열어보았는데 아이들 먹을 음식으로 가득차 있거나 냉장고에도 아이들을 위한 음식들이 꽉 차 있을 때 기분이 좋아요. 특별한 날 케이크사서 함께 촛불 켜고 박수치며 노래 부를 때도 너무 좋고요.
김성균의 표정, 모든 얼굴의 요소요소가 춤을 추는 듯 유연하다
Q. 아내께는 어떤 남편인가요?김성균 : 프러포즈도 못한 남편(웃음). 간지러운 것을 잘 못해요. 평소에 잘 하자는 주의예요.
Q. 참, 신촌하숙집은 그립지는 않나요?
김성균 : 그립죠. 그리워요. 음식도 정말 맛있었는데, 특히 저는 생선구이도 좋았고 제가 워낙에 좋아하던 시락국(시래기국)도 최고였죠. 정말 그 하숙집 밥으로 매번 식사를 했을 정도였어요. 소품이다 보니 자꾸 먹으면 연결이 어색해지는데도.
Q. ‘이웃사람’ 때 살인마 연기를 하기 위해 동네에 어슬렁거리며 낮술마시는 아저씨들을 관찰하고 참고하셨다고 했어요. 삼천포의 경우에도 ‘모델’이 있었나요?
김성균 : 네. 그럼요. 반에 한 명 쯤은 있을 법한 생뚱맞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연기했어요. 도시락을 같이 먹으면서도 ‘내는 밥을 천천히 먹어서 나중에 반찬 없다’라면서 뚜껑을 살짝 열어먹고 다시 덮는다거나 집은 부유해 옷은 브랜드로 입고 다니지만 센스 없이 단추를 끝까지 채운다거나 혁대를 올려 맨다거나 하는 그런 친구들 있잖아요. 그렇지만 삼천포의 행동들은 대본에 다 있는 거였어요. 리딩 단계에서부터 캐릭터가 명확했어요. 대본을 봤을 때 지금의 삼천포 말투, 목소리, 표정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런 목소리로 그런 말투로 이야기할 것만 같았어요
Q.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웃기는 것의 즐거움을 알았다고 하셨어요. 그게 배우가 된 계기이기도 하고요. 그 시절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요?
김성균 :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대꾸를 해주는 거잖아요. 그 이전에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거고요. 내 한 마디로 인해 수업시간에 반 전체가 빵 터진다거나 할 때, 기분이 짜릿했어요.
Q.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였어요?
김성균 :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워낙에 그쪽에 관심이 많아 다른 곳은 생각도 않고 연극반으로 갔었죠. 활동하면서도 관심이 늘 연기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과 함께 모이게 되고 그러면서 대구에 있는 극단으로 들어가 극단생활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배우가 되겠어!’라는 엄청난 결심으로 한 행동이라기보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보니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Q. 서울은 언제 처음 오셨어요?
김성균 : 2005년에요. 그 전에는 삼천포에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시골이 갑갑하기도 하고 친구도 없고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싶었어요. 또 대학로라는 연극판에서 나와 같은 또래의 배우들과 부딪혀 내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기도 했고요.
Q. 그렇게 연극판에 줄곧 계시다가 ‘범죄와의 전쟁’을 만나신거죠. 거의 7년 정도의 무명시절을 거쳤다고요.
김성균 : 그렇지만 전 그 시절을 무명시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연극을 했던 시절이었을 뿐이에요. 연극배우들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활발하게 무대에서 활동을 해요. 저는 다만 연극에서 영화로 무대를 옮겼을 뿐이고, 감사하게도 ‘범죄와의 전쟁’의 박창우를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았던 거죠.
김성균을 만나면 예상보다 훨씬 훌륭한 몸의 라인에도 감탄하게 될 것이다
Q. 박창우가 뿜어내는 포스도 굉장했어요. 그러고 보니 박창우도 헤어스타일이 독특했고, 삼천포도 특유의 헤어스타일이 있고요. 헤어를 바꾸면 작품이 터지는 것 같아요. 김성균 : 정말 그렇군요. 두 번 그랬으니 한 번 더 그렇게 되는지 지켜봐야겠어요. (Q. 삭발이라도 하면 천만 가겠는데요.) 삭발도 자신 있어요. 두상이 예쁘거든요(웃음).
Q. ‘범죄와의 전쟁’ 이후로 많은 영화에 출연하셨는데요, 사실 대부분이 악역이었어요. 삼천포를 만나기 전, 1년여의 기간 동안 반복되는 캐릭터에 대해 고민도 하셨을 것 같아요.
김성균 : 비슷한 캐릭터의 반복이 되면서 캐릭터를 확장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길게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어요.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죠. 악역이라도 다양하게 해보고자 했었어요. 그러다 삼천포를 만나게 됐네요.
Q. 지금은 들어오는 캐릭터의 폭이 넓어졌을 테고요.
김성균 : 기존에 들어오던 악역도 있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캐릭터도 들어와요. (Q. 뜨거운 멜로는?) 아, 정말 해보고 싶은데 아직 멜로는…(웃음).
Q. 올 여름에는 ‘군도’ 개봉을 앞두고 계세요.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감독, 하정우와 재회한 작품이라 기대감이 높은데요. ‘범죄와의 전쟁’ 처럼 이 작품에서도 발굴을 기다리는 새로운 얼굴들이 있을까요?
김성균 : 워낙 익숙한 분들이 많이 나오세요.
Q. 김성균의 캐릭터, 삼천포 같은 어마어마한 매력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김성균 : 백성 장씨를 연기하는데, 핍박받던 민초들 중 한 명이에요. 민초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죠.
Q. 끝으로, 김성균에게 삼천포란? 첫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94′를 통해 OST도 직접 부르시기도 했고, 다양한 일들이 많았었잖아요.
김성균 : 이런 거 잘 못하는데(웃음). 음…재미있었어요. 연기하면서 살던 사람의 일상에 일어난 달콤한 디저트 같은 선물. 즐거웠어요.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 싶었고(웃음).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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