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간이 로봇에게 졌다.
현지시간으로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 센터에서 열린 제56회 그래미 어워드는 다프트 펑크의 독무대였다. 5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돼 모든 상을 가져가 최다관왕이 됐다. 특히 가장 중요한 상인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앨범’을 둘 다 거머쥐며 그야말로 그래미의 별이 됐다. 다프트 펑크는 헬맷을 쓴 관계로 다섯 번 상을 받는 동안 한마디의 수상소감도 말하지 않았다. 소감을 대신한 퍼렐 윌리엄스는 “이 로봇들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하공연으로 열린 ‘겟 럭키(Get Lucky)’ 무대도 단연 최고였다. 이 곡에 피처링한 퍼렐 윌리엄스, 나일 로저스 뿐 아니라 음반 녹음에 참여한 네이선 이스트(베이스), 폴 잭슨 주니어(기타), 오마 하킴(드럼) 등 최고의 연주자들이 함께 했다. 특히 살아있는 팝의 전설 스티비 원더와의 협연은 상당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로봇’ 다프트 펑크의 곡 중간에 깜짝 등장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들려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객석에서는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부터 비욘세, 제이지, 케이티 페리 등 수많은 스타들이 춤췄다.
다소 보수적인 그래미에서 미국이 아닌 프랑스 출신 뮤지션, 그리고 트렌디한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음악에 최고의 영광을 줬다는 것은 현재 다프트 펑크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전자음악이 중심이 된 EDM(Electronic Dance Music) 계열의 뮤지션이 그래미 본상을 휩쓴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사건’이다. 사실 수상을 한 다프트 펑크의 앨범 랜덤 ‘액세스 메모리즈(Random Access Memories)’는 70년대 디스코에 맞닿아 있다. 일렉트로니카와 복고 디스코의 결합이 매끄럽게 나타나고 있는 다프트 펑크 식의 아날로그 댄스뮤직이라 할 수 있겠다.
EDM이 뜨는 가운데 그 원조인 다프트 펑크가 역행한 이유는 뭘까? 다프트 펑크는 “요즘 음악에는 감성이 부족하고 기술을 과대평가한 느낌이 있다. 감정은 컴퓨터로는 잡기 힘들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즉, 트렌디한 사운드를 간직하면서 동시에 고전 댄스뮤직의 미감을 체득한 다프트 펑크의 시도가 그래미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재능 있는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는 퍼렐 윌리엄스, 그리고 디스코의 전설 나일 로저스를 소환한 것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 공연을 보면서 문득 한국 뮤지션들로 저런 팀을 구성하면 누가 어울릴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일단 다프트 펑크 2인조 기 마누엘 드 오맹 크리스토, 토마스 방갈테르를 대체할만한 뮤지션이 누가 있을까? 이디오테잎, 하우스룰즈, 글렌체크, 카세트슈왈제네거 등 전자음악을 하는 팀들이 몇 팀 스쳐간다. 다프트 펑크의 열혈 팬이라는 글렌체크가 좋겠다. 이들은 공연에서 ‘썸씽 어바웃 어스(Something About Us)’, ‘겟 럭키(Get Lucky)’를 커버한 적도 있다.
노래를 한 퍼렐 윌리엄스는 누가 좋을까? 유능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퍼렐 윌리엄스를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꽤 있다. 그 중에서도 박진영 JYP 프로듀서, 빅뱅의 지드래곤이 퍼렐 윌리엄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박진영은 미국에 갔을 때 퍼렐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지드래곤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가장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퍼렐 윌리엄스다. 그는 나의 유일한 아이돌”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둘 중에 누가 퍼렐 역할을 하면 좋을까? 젊은 지드래곤을 밀어주도록 하자.
70~80년대를 풍미했던 디스코 밴드 쉭(Chic) 출신의 ‘디스코 마스터’ 나일 로저스의 기타 연주는 누가 대처하면 좋을까? 한국 펑크(Funk)계의 거장인 사랑과 평화의 기타리스트 최이철이 적임자로 보인다. 국내에서 쉭과 같은 밴드를 고르자면 바로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쉭의 1집 ‘쉭’이 나온 것이 1977년, 사랑과 평화의 1집 ‘한동안 뜸했었지’가 나온 게 1978년으로 데뷔시기도 비슷하다. 나일 로저스는 마돈나를 비롯해 슈퍼스타들의 앨범에 프로듀서 및 기타 연주로 참여해왔다. 최이철 역시 세션연주자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과거 박진영 앨범 레코딩에도 참여했다.
자, 가상의 판이 짜였다. 글렌체크가 사운드를 코디네이트하고, 지드래곤이 프론트맨으로 나서고, 최이철이 기타를 연주한다면 한국판 ‘겟 럭키’가 나올 수 있을까? 무대에서 라이브를 한다면 베이스에 서영도, 드럼 이기태가 참여한다면 멋진 그루브가 나올 수 있겠다. 과연 한국에서 이런 협연이 가능할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이들이 한 무대에 서기에는 서로 간의 간극이 너무 크다. 70~80년대를 풍미했던 밴드의 거장 기타리스트(최이철)와 2014년 현재 가장 선두에 있는 아이돌그룹의 리더(지드래곤), 그리고 인디 신의 최고 스타(글렌체크)가 한 무대에 서기에는 이 땅의 음악계가 철벽으로 나눠져 있다. 그 벽의 두께는 30㎝ 이상은 될 거다. 이 벽을 망치로라도 깨지 않는다면, 그래미 어워드에서 목격한 것과 같은 의미 있는 협연은 나오기 힘들 거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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