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대치동 마라이칼라스홀에서 열린 유재하 고음질 LP 재발매 기념 청음회 현장. LP 턴테이블을 통해 유재하가 통기타를 연주하며 부른 팝의 명곡 ‘빈센트(Vincent)’가 들려온다. 마치 유재하가 바로 옆에 앉아 다정하게 기타를 치며 노래해주는 기분이다. 여린, 너무나 여린 감성으로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유재하가 살아 돌아온 것 같다. 노래가 끝나자 잠시 침묵을 지킨 취재진은 “원곡보다 낫다”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고(故) 유재하의 유일한 음반 ‘사랑하기 때문에’(1987)가 27년 만에 고음질 LP로 재탄생했다. 이번 LP는 유재하의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오리지널 투 트랙 마스터 테이프에서 음원을 추출했으며 보너스트랙으로 유재하가 부른 돈 맥클린의 명곡 ‘빈센트(Vincent)’가 최초로 수록됐다.
이번 복원작업을 진행한 씨앤엘뮤직의 최우석 부장은 “유재하의 음반이 LP로 처음 세상에 나온 후 CD로 두 번 정도 재발매 되는 과정에서 원본의 소리가 훼손돼 담겼다”며 “이번에 재발매된 고음질 LP는 최초의 아날로그 마스터테이프가 갖고 있는 소리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시중에 나온 유재하 CD와 고음질 LP의 음악을 비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텅 빈 오늘밤’ ‘우리들의 사랑’ ‘지난 날’ 세 곡을 차례대로 틀었다. 고음질 LP의 경우 CD에 비해 각 악기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CD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베이스, 기타가 선명하게 들려 음악이 더욱 생동감 넘쳤다. 특히 유재하의 목소리 떨림을 보다 밀접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거기에 명확한 화음이 더해지면서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 들었다.
현재 음원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유재하의 앨범의 음원은 소리가 왜곡된 버전이다. 씨앤엘뮤직 측의 설명에 따르면 1987년에 나온 초판본의 경우 제대로 된 음원이 담겼다. 하지만 이것이 CD로 전환되면서 테이프가 늘어진 소리가 담기게 됐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곡이 최대 20초 이상 길어지고, 백그라운드 반주의 디테일이 제대로 살지 않았다.
최 부장은 “원래 아날로그 마스터테이프는 유재하가 100번 이상의 마스터링했다고 할 정도로 공들인 레코딩이었다. 그런데 이게 CD로 나오면서 시중에 올바르지 않은 음원이 풀린 것”이라며 “고인의 음악이 실제 소리보다 우울한 느낌으로 남게 됐다”라고 말했다. 훼손된 음원이 시중에 풀리게 된 것에 대해 최 부장은 “녹음을 할 때 마스터테이프가 일정하게 감기지 않을 경우 어떤 부분에서 음악이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사고가 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고음질 LP는 유재하의 음악적 의도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공정을 거쳤다. 최 부장은 “유재하 가족이 보관하고 있던 마스터테이프는 다행히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플레이를 하지 않아서 섣불리 틀었다가는 테이프 내 소리가 기록된 자성물질이 지워질 우려가 있었다. 테이프를 일정시간 가열하고, 습도와 온도를 맞추는 작업을 하고 음원을 추출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라고 설명했다.
마스터테이프에서 추출된 음원은 독일로 옮겨져 LP로 제작됐다. 원판형 디스크를 발명한 에밀 베를리너가 설립해 100년의 역사를 가진 에밀 베를리너 스튜디오에서 LP 커팅의 최고로 손꼽히는 장인 마르텐 데 뵈르가 빈티지 노이만 커팅 머신을 사용해서 유재하의 고음질 LP를 완성해냈다. LP 프레싱은 독일의 팔라스(Palas GmbH)에서 180그램 오디오 파일용 버진 비닐로 제작됐다. 최 부장은 “유재하가 남긴 음악에 대해 우울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실제로 유재하의 음악은 생동감이 넘치고 스물 여섯의 감성을 잘 지니고 있다. 이번 고음질 LP에는 그런 면이 잘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고음질 LP는 1987년에 제작된 초판 LP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마스터테이프의 소리를 담은 것이기 때문에 초판과 차이가 있다. 최 부장은 “우리의 기준은 초판 LP가 아닌 오리지널 마스터에 맞춰졌다”라고 설명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이번 복원작업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을 원형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의 CD를 통해서는 완벽한 유재하를 듣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LP에 담긴 ‘빈센트’는 유재하가 가족들을 위해 부른 것을 집에서 녹음기로 녹음한 음원이다. 최 부장은 “유재하 가족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던 음원인데 이번에 가족의 동의 하에 팬들을 위해 기꺼이 공개하게 됐다”며 “홈레코딩으로 녹음됐기 때문에 음질 상태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유재하가 가진 천진한 목소리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약간의 소음을 제거하는 정도의 작업만 거쳤다”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빈센트’와 같이 유재하가 남긴 음원은 더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센트’가 실린 ‘사랑하기 때문에’ LP는 천 장 한정으로 제작됐으며 22일 씨앤엘뮤직을 통해 발매된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씨앤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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