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욕쟁이 할매’ 오말순(나문희). 고생스레 자식을 길렀지만, 나이 든 지금은 짐스러운 존재다. 어느 날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방황하던 말순은 오묘한 불빛에 이끌려 ‘청춘 사진관’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올 땐 칠십의 할머니가 아닌 이십대 꽃처녀의 몸으로 변해 있다. 칠순의 말순은 스무 살 오두리(심은경)로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황성운 : 심은경의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깝지 않다. ∥ 관람지수 7
정시우 : 심은경 덕분에 124분을 버티긴 했지만… ∥ 관람지수 5

황성운: 영화 ‘수상한 그녀’의 포장지는 솔직히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할머니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자식 주변을 맴돌다 결국엔 본연의 위치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그림이 빤히 그려진다. 최근 유행인 타임 슬립이 더해졌지만, 이것만으로 ‘신선함’을 확보하긴 쉽지 않다. 가족 드라마라는 장르적 설명은 마지막 즈음에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는 또 다른 의미쯤으로 해석된다. 또 심은경, 나문희, 박인환 등 ‘핫’한 배우들과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다. 그리고 심은경이란 배우가 약 2시간 동안 웃고, 울리고, 야이기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났더니 미안한 마음이다. 보기 전에 ‘그저 그런’ 영화라고 미리 판단했던 거에 대한 미안함이다. 식상하고, 빤한 흐름처럼 보였던 것들을 어떻게 엮고, 풀어 가느냐에 따라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마지막 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할 거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막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심은경, 그녀가 만들어내는 약 2시간 동안의 쇼는 영화 관람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심은경의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상한 그녀’은 성공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70대의 할머니가 20대로 바뀌는)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믿게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주인공의 활약 여부에 따라 자칫 이 판타지는 ‘황당’에서 머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심은경이란 당찬 배우는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을 현실로 끌어 왔고, 보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빨아 들였다. 1994년생, 실제로 이제 갓 스무살인 심은경의 입에서 터져 나온 구수한 사투리와 차진 욕은 맛깔나다. 70대 오말순의 행동과 습성이 스무살 오두리의 몸을 통해 자유자재로 변주된다. 어색함, 찾아보기 힘들다. 할머니 파마와 패션도 꽤 잘 어울린다. 특히 압권인 것은 오말순을 오랜 시간 짝사랑해온 박씨 역의 박인환과의 호흡이다. 박인환은 1945년생이다. 심은경과 반세기의 나이 차이다. 심은경과 박인환, 즉 오두리와 박씨는 티격태격 하며 뛰어난 앙상블을 선보인다. 심은경과 박인환, 잘 어울린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직접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듯싶다.

심은경의 활약은 이야기의 허술함도 잘 메꾸고 있다. 70대 오말순의 20대 꿈은 가수. 그리고 오말순의 손자 반지하(진영)는 ‘반지하 밴드’의 리더다. 인물이 어떻게 뭉칠지 굳이 설명해야 될까 싶다. 우연한 기회에 오말순, 아니 오두리는 반지하 밴드의 보컬로 들어가고, 음악방송국 PD 한승우(이진욱)의 도움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오두리와 한승우의 풋풋한 로맨스까지. 이 같은 전개 과정은 다소 허술해 보인다. 각 인물 간의 관계도 치밀하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럼에도 눈살 찌푸려지지 않는 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심은경 덕분이다. ‘나성에 가면’, ‘하얀 나비’, ‘빗물’ 등 심은경이 부르는 옛 노래들은 자연스레 귀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인기를 얻어가는 밴드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20대 몸, 70대 정신세계의 오두리와 한승우의 로맨스는 유쾌하다. 또 마지막에 이르는 과정도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진한 감동을 얻어가기엔 충분하다. 오두리의 실체를 알게 된 오말순 아들 반현철(성동일)이 흘리는 회한의 눈물에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수상한 그녀’는 설 연휴를 노리는 작품. 시기적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마지막, ‘청춘 사진관’을 찾은 박씨의 20대 모습으로 등장하는 깜짝 인물은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에게 큰 웃음을 안긴다.



정시우: 황동혁 감독은 타임 슬립이란 소재를 이용해 주인공 칠순 할매 오말순의 잃어버린 ‘청춘의 시간’을 그린다. 많은 타임 슬립 작품들이 그러했듯,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망을 영화는 대리 충족시키고 있다. “홀어머니 슬하에 자라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는 감독의 말에서 자식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 세대에 대한 송가라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자식들로 인해 상심한 오말순은 우연히 낡은 사진관을 찾았다가,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쳐’와 에릭 브레스의 ‘나비효과’의 세계로 빠져 든다. 그러나 시간은 멈춰 있고 주인공의 나이만 변한다는 점에서 ‘수상한 그녀’는 박해일 주연의 ‘소년, 천국에 가다’나 톰 행크스의 ‘빅’에 더 가까운 영화다. 몸은 ‘돌도 씹어 먹을’ 건강한 스무 살인데, 행동은 영락없는 할머니. ‘수상한 그녀’의 극적 재미의 대부분은 바로 이 부분,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괴리에서 빚어진다. 그 중심에 심은경이 있다. 남의 시선에 아랑곳 않는 용감한 칠순의 할머니가 됐다가, 짝사랑 하는 남자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스무 살 처녀가 되기도 하는 심은경은 능청스러움과 귀여움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수상한 그녀’를 보면서 이 여배우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시간을 뛰어 넘어 심은경의 미래를 보고 싶은 궁금함도 밀려온다.

하지만 ‘수상한 그녀’는 매끈한 웰 메이드 코미디는 아닌 것 같다. 심은경의 발견이라는 쾌감은 분명히 있지만, 심은경의 매력만으로 2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버티기란 살짝 지루하다. 드라마의 굴곡을 위한 장치가 인위적일 때도 많고, 어떤 장면은 ‘웃음을 위한 웃음’에 그친다. ‘선 웃음 후 감동’이라는 구닥다리 문법에도 매여 있는 인상이다. 뜨끈한 울림을 매만졌던 감독의 전작 ‘도가니’를 떠올리면 이 영화의 느슨한 전개나 안일한 엔딩은 특히나 아쉬움을 남긴다.

‘수상한 그녀’는 TV 단막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수상한 영화이기도 하다. TV 단막극의 완성도를 저평가하려는 게 아니다. 짐작하건데 그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출연진과 콘텐츠와 PPL들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이 영화가 ‘CJ산 영화’임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인’의 이진욱,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동일,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의 김현숙 등 주조연 캐스팅부터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카메오들과 프로그램 등, 영화는 지난 몇 년간 CJ채널에서 활약한 배우와 프로그램들을 모아 놓은 ‘우정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흥행에 약이 될까. 친근함을 준다는 면에서는 이득일 수 있겠으나 결과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관객이 극장에 가는 것은 TV에서 봐 왔던 것과는 다른 무엇을 보기 위해서일 테니까.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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