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나를 스쳐가던 겨울은 가고 봄이, 늘 그렇게 눈 뜨면 보일 것 같던, 그대는 가고 봄이

유근호 ‘봄’ 中

유근호 ‘Walk Alone’
유근호는 80~9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던포크 뮤지션이다. 모던포크라는 음악이 통기타 한 대를 중심으로 한 단출한 음악이지만, 작법, 연주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낳는 마법과 같은 음악이기도 하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유근호는 서정적인 포크부터 포크록에 이르기까지 모던포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다. 전통을 취하고 있지만, 과거에 매몰된 음악은 절대로 아니다. 가령 향니가 함께 한 ‘런2(Run2)’에서는 오르간 소리와 함께 절묘한 편곡을 들려두고 있으며 ‘킵 키싱(Keep Kissing)’에서는 상큼한 멜로디에 걸쭉한 기타 연주로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사한다. ‘투 머치’(Too Much)에서는 컨트리를 현대적인 어법으로 재해석해내고 있으며 ‘13’에서는 의외의 연주곡을 펼쳐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타의 따스한 질감 위로 본인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 강점. 최근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들을 보면 기타를 그저 반주의 도구로만 여기는 행태가 보이는데 유근호는 기타와 노래가 일체감을 이룬다.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순도 100%의 모던포크. 앞으로 더욱 주목해야 할 싱어송라이터.

박주원 ‘캡틴’
박주원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연주음악이 사랑받기 힘든 작금의 상황에 집시스윙, 플라멩코 연주자로서 자신의 기타연주 스타일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몇 안 되는 연주자다. 최근에는 최백호, 아이유의 음반에 참여해 가수로 하여금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게끔 영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마치 브라이언 아담스가 파코 데 루치아와 함께 하면서 변신을 이룬 ‘해브 유 에버 러브드 우먼(Have You Ever Loved Woman)’처럼 말이다. 연주자의 힘인 것이다. 1집 ‘집시의 시간’이 나오기 전 베이시스트 서영도의 밴드에서 텔래캐스터를 살벌하게 연주하는 박주원을 본 적이 있다. 본래 다재다능한 연주자였던 박주원은 이후 집시스윙, 플라멩코 연주자로 활약하게 된다. 국내에 경쟁자가 없는 ‘원톱’이고, 장르음악이기에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힘든 어려움이 있지만 박주원은 매 앨범마다 발전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축구선수 박지성, 전자오락 카발 등을 소재로 하면서도 박주원의 연주는 스패니쉬 기타의 정통을 향하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며 특유의 호방함이 돋보인다. ‘승리의 티키타카’에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맛보기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차기작 변화의 단초일까?

윤하 ‘Subsonic’
윤하의 음악인생 분기점에서 나온 앨범. 음악인생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언제나 소녀일 것만 같은 윤하도 벌써 데뷔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서브소닉(Subsonic)’에 담긴 음악은 조금 어두운 편이다. 뿌옇게 안개가 낀 느낌이랄까? 윤하의 음악적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스코어가 프로듀서를 맡은 음악에서는 최근 영국에서 각광받는 브리티시 록의 질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타이틀곡 ‘없어’의 경우 익숙한 음악이지만, 그 외에 ‘서브소닉’의 경우 곡의 도입부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가미해 약간은 낯선 접근을 취하고 있다. 자작곡인 ‘시간을 믿었어’에서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홈’에서는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말하려 했다고 한다. 최근에 실연이라도 겪은 것일까? 경험담을 음악으로 발현시킨 것은 성숙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윤하는 억지로 씩씩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차기작에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신을 해보면 어떨까? 무서운 윤하, 또는 여우같은 윤하?

용준형 ‘Flower’
용준형의 첫 번째 솔로앨범. 아이돌그룹 안에서 송 메이커, 혹은 랩 메이커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이들이 있다. 지드래곤을 필두로 비원에이포의 진영, 비에이피의 방용국,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 블락비의 지코 등이 그들이다. 용준형은 작곡 파트너이자 8년 지기 친구인 김태주와 함께 비스트 2집의 전곡을 만든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음악적 색이 팀의 개성으로 발현되느냐의 문제일 것. 일단 솔로앨범에서의 용준형의 음악은 비스트에 비해서는 담백한 편이다. 비스트에 비해서는 사운드가 미니멀한 편. 타이틀곡 ‘플라워(Flower)’를 비롯해 지나가 피쳐링한 ‘애니씽(Anything)’ ‘슬로우(Slow)’, ‘나씽 이즈 포에버(Nothing Is Forever)’ 등 수록곡들은 멜로디가 매우 강하다. 4곡의 신곡이 담겼는데, 보다 욕심을 부려서 더 많은 곡을 들려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로켓트리 ‘기분이 좋아’
정말 마법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음반이다. 첫 곡 ‘기분이 좋아’를 플레이시키면 5초 만에 귀가 쫑긋해지고 입가에 웃음이 나온다. 이상유 이혜준 남정훈 남세훈으로 구성된 4인조 어쿠스틱 밴드 로켓트리는 2011년 1집 ‘아름다운 계절’ 발표 후 소극장공연 ‘우주여행 기금마련 콘서트’를 비롯해 크고 작은 페스티벌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로켓트리는 출한 연주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면서도 친근한 멜로디와 가사를 놓치지 않는다. ‘옛사랑이 결혼하는 날’과 같은 곡은 제목이 궁금해서 들어보고 가사에 공감을 하다가 멜로디에 취하게 되는 곡. 기교를 덜어내서 더 설득력이 있는 음악들.

롭 반 바벨 트리오 (The Ghost, The King & I) ‘Live in Seoul’
‘더 고스트, 더 킹 앤 아이’(이하 GKI)라는 이름의 피아노 트리오는 네덜란드의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 롭 반 바벨과 베이시스트 프란 반 기스트, 기타리스트 빈센트 코닝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에는 피아노-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트리오가 일반적이지만, 과거 1930년대 아트 테이텀을 시작으로 1940~50년대의 냇 킹 콜, 오스카 피터슨 등과 같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기타-베이스 형태의 트리오로 연주했다. 이러한 트리오는 피아노와 기타가 절묘하게 어우러짐으로 인해서 스릴 넘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 GKI는 이러한 고전적인 피아노 트리오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모던한 연주를 들려준다. GKI는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투어를 가졌다. 이 앨범은 올해 5월 내한 당시 서울 야기 스튜디오에서 가진 실황을 그대로 녹음한 것이다. 공연을 실제로 못 본 것이 가슴 아플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연주가 들려오고 있다.

36.5ºc (최민수 밴드) ‘Tribe Rocksan’
어렸을 때 최민수가 방송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꽤 봤다.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 위로 질주해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와 같은 록을 불렀던 기억이다. 그의 직업은 배우였지만, 그런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최민수’였으니까. 80년대에는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기도 했다는 그는 과거 리메이크 앨범을 낸 적도 있다고 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전곡을 작사 작곡해 싱어송라이터로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배우들이 낸 앨범의 경우 완성도가 수준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민수 앨범의 첫 인상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는 것. 두 번째 인상은 음악 자체에서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음악은 전반적으로 미국 포크 록에 가깝다. 가사에 있어서는 최민수다운 진한 남성의 냄새가 풍긴다. 홍대 구석진 바에서 노래하는 최민수를 우연히 발견한 김장훈이 매니저를 자청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최민수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했을까?

뮤즈 ‘Live At Rome Olympic Stadium’
현존하는 최고의 록 스타 뮤즈가 올해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진 라이브 실황을 담은 앨범. 워낙에 내한공연을 많이 온 탓에 뮤즈가 라이브 잘하는 것을 목격한 팬들도 많다. 오죽하면 허지웅이 뮤즈 너무 자주 온다며 문래동 사는 것 같다고 했을까? 김태훈은 뮤즈를 보고 현재 가장 연주를 잘하는 밴드, 너무 앨범과 똑같아서 재미없을 정도라고 말하더라. 지난여름 록페스티벌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에서 본 뮤즈의 공연은 대단했다. 첫 곡 ‘슈프리머시(Supremacy)’부터 헤비하면서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주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삼인조 밴드(백업 연주자 1명)임에도 스타디움 밴드의 위용을 보는 듯했다. 특히 앨범의 사운드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는 연주력은 실로 대단하더라.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 ‘타임 이즈 러닝 아웃(Time Is Running Out)’ 등을 비롯해 ‘매드니스(Madness)’에서 덥스텝 효과를 내는 크리스 볼첸홈의 연주도 돋보였다. 뮤즈의 라이브앨범은 ‘훌라발루(Hullabaloo)’, ‘하프(HAARP)’ 이후 세 번째다. 최근 앨범 ‘더 세컨드 로(The 2nd Law)’의 곡이 주로 담긴 이번 라이브 앨범은 CD+DVD 형태와 블루레이 버전으로 발매됐으며 뮤즈 라이브 영상 최초로 4K(ultra HD) 초고화질로 촬영됐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Britney Jean’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8집.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팝계를 좌지우지 하던 때가 있었다. 최고의 스타답게 산전수전 다 겪었고, 이제 앨범 판매량 면에서 역대 여성 아티스트 중 열손가락 안에 드는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콘’에서 한 발 물러선 듯 보인다. 동년배이기도 한 저스틴 팀버레이크처럼 아티스트의 길을 걸으면 좋으련만, 새 앨범은 어떨까? 스피어스는 새 앨범에서 최근 트렌드인 EDM을 중심에 두고 오토 튠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클럽음악에 가까운 사운드를 선사한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아이엠이 매만진 사운드는 딱 기대한 만큼이다. 완성도 면에서 딱히 부족함은 없지만, 트렌드를 너무 따른 것이 브리트니가 가진 매력을 바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데이빗 게타가 참여한 ‘잇 슈드 비 이지(It Should Be Easy)’는 꽤 오래 전 마돈나를 연상케 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지금 EDM을 시도한 것은 선수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러한 불평들을 아직도 그녀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에이브릴 라빈 ‘Avril Lavigne’
에이브릴 라빈의 5집. 언제나 스케이트를 타고 다닐 것만 같던 라빈도 이제 서른이다. 2000년에 17세의 나이로 데뷔한 에이브릴 라빈은 말괄량이 로커의 이미지를 통해 대표적인 틴팝 스타로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1,600만 장이 팔린 2002년 데뷔앨범 ‘렛 고(Let Go)’는 국내에서도 무려 27만장이 팔리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한국에서의 인기는 특별해 지난 다섯 번의 내한공연이 거의 다 매진될 정도였다. 지난 2011년 공연은 어린이날에 열렸는데 티켓 오픈 시간이 십대 팬들의 요청으로 늦어졌다고 한다. 학생 팬들이 학교에 있을 때 예매를 진행해 티켓을 못 사면 안 된다고 요청해왔다고. 바로 이런 십대 팬덤의 힘이 라빈 롱런의 비결이 아닐까? 전반적으로 발랄한 록이 중심을 잡고 있지만, 나이 탓인지 ‘렛 미 고(Let Me Go)’(남편 채드 크로거와 듀엣)에서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트랙은 마릴린 맨슨과 함께 한 ‘배드 걸(Bad Girl)’로 왠지 과거의 영광을 돌아보는 듯한 감흥을 준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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