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는 자신이 사랑 앞에서 굉장히 꼼꼼한 스타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첫 눈에 반하고 마는 강력한 사랑을 하고 싶노라고 했다. 그것은 사랑 앞에서 가장 순수한 선택을 했던 SBS 드라마 ‘상속자들’의 탄이로 살았던 영향 탓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성향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맹목적 순수함을 원한다고 말하는 이민호라는 사람의 눈빛은 이미 순수함을 담고 있었다.

눈빛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답은 애써 머리를 굴린 흔적이나 가식이 담겨있지 않았다. 매우 깔끔하면서도 직선적인 답이 그의 솔직한 성품을 증명했다. 게다가 뒤늦게 술 맛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이민호라는 남자, 점점 더 괜찮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게 2013년을 보내고 있는 인간 이민호를 엿볼 수 있는 대화를 공개한다.

‘상속자들’ 직전 그를 만났을 때는 우리는 모두 긴장해 있었다. 이민호는 고등학생을 연기한다는 점이 걱정됐는지 여러 차례 “정말 괜찮을까요?”라고 물었고, “괜찮을 거예요!”라고 큰 소리(?) 친 기자는 처음 만난 이민호에게 어떤 질문을 어떤 식으로 던져야 할까를 놓고 인터뷰 내내 고민해야 했었다. 그러나 ‘상속자들’ 이후의 만남은 양쪽 모두 홀가분한 기분이 앞섰다. 이민호는 주변 혹은 자신의 걱정을 씻고 성공적으로 작품을 끝낸 뒤였으며, 기자는 한 차례 긴 시간 대화를 나눠본 배우 이민호라는 인터뷰이에게 충분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래서 이 인터뷰는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 속 사담처럼 흘러가버렸다.

Q. 드라마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
이민호 :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잤다. 드라마 끝나고 불면증이 생겼다.

Q. 아니 왜? 그러고 보니 드라마 전과 비교해 살도 많이 빠진 것 같다.
이민호 : (불면증의)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살은 5kg 정도 빠졌다. 원래 드라마 하면서 살이 빠지는 편이긴 하다.

Q. 워낙에 반응이 뜨거웠던 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말이다. ‘상속자들’의 오글거리는 대사에 남자들은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직접 해야 했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이민호 : 남자들이 처음에 받아들이기는 좀 그럴 수 있다(웃음). 그런데 드라마를 다 끝낸 지금 탄이의 대사를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순수한 대사다. 그 사람 본연의 심리를 읽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 이런 대사 실제로는 절대 못하지. ‘지금부터 나 좋아해. 가능하면 진심으로’ 이런 말도 엄청난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못한다. 상대에게 ‘미친놈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웃음).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인물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로 아무 것도 더하지 않은 상태에서, 굉장히 순수한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Q. 좋아하는 여자 은상에게 그러는 장면은 괜찮았다. 그런데 ‘형바보’ 탄이의 모습은 여자 입장에서도 오글거렸었다(웃음).
이민호 : 아! 나 역시 형들한테 그렇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웃음). 하지만 형을 떠나 사람을 좋아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그래도 형을 껴안는 경험은 큰 충격이었다(웃음). 그 신 찍으면서 형(최진혁)을 여배우 껴안듯 당겨서 껴안다가 NG가 났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해버린 것이다.

Q. 지금에야 워낙 드라마가 잘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사실 처음에는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다. ‘이민호가 ‘상속자들’을 한다고? ‘꽃남’ 했잖아. 왜 굳이 지금 와서?’ 뭐 이런 시선 말이다.
이민호 : 김은숙 작가님을 만난 게 ‘상속자들’ 시놉시스가 나오기 전이었다. 고등학생에 재벌물을 한다고는 하셨는데, 의외였다. 난 이미 ‘꽃남’을 했었고, 이미 구준표를 연기한 나와 그걸 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김은숙 작가에 대한 신뢰가 먼저였고, 그래서 ‘좋습니다’하고 시작했다. 지난 해에 든 생각인데 굳이 대중이 원하지 않는 연기 욕심으로 변신을 한다고 더 세고 자극적인 것을 한다기 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대의 3년 동안 대중적인 작품, 사랑 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작품을 했다. 나는 30대 이후로도 계속 배우를 할 것이니 그 후에도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많다. 그러니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지금 이 작품을 하는 것은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재벌물이긴 하지만 특이하지 않았나. 재벌이라는데 돈 쓰는 장면이 기억 안 난다(웃음).

Q. 그러고 보니 탄이(이민호 배역 이름)는 오히려 은상(박신혜 배역 이름)에게 5만원을 빌리기도 했었고(웃음).
이민호 : 맞다(웃음).

Q. 김은숙 작가가 실제 배우의 성격을 자기 캐릭터에 입히기로도 유명한데, 탄이한테 느껴지는 인간 이민호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나.
이민호 : (조금 머뭇거리더니) 생각이 깊다는 것?(좌중 폭소). 혹은 상대에 대한 배려?

Q. 그런데 ‘로맨스가 필요해’의 정현정 작가가 트위터를 통해 이민호의 연기에 대해 극찬을 했었다. 밝은 모습을 연기하는 와중에도 인물이 가진 슬픔을 고스란히 표현해내는 점에서 성장이 보인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실제 연기를 하면서 내내 탄의 기본적 정서는 슬픔이라 여기고 신경을 쓰며 연기했었나.
이민호 : 탄이가 어리긴 하지만 미국에 유배를 간 적도 있고 워낙 아픔을 가진 인물이라 메인 감정은 그걸 따라가며 연기하려고 했다. 탄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런 아픔이 조금씩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실 이 점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내가 좀 더 풀어져서 연기를 하는 것이 재미적으로만 보면 유리할 것이라 여겼다. 완전히 고등학생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국은 메인 감정선을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Q. 이번 드라마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이민호 : 드라마 시작 전 서핑 연습할 때. 워낙 물을 좋아하지 않아 수영도 못하는데, 서핑은 재미있었다. 하루 종일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했다. 27년 동안 물에 있었던 것을 통틀어 이번에 서핑 준비하면서 가장 오래있었던 것 같다.

Q. 지금은 제법 타겠다?
이민호 : 서서 하는 정도로는 한다. 이것 때문에 미국도 다른 이들보다 며칠 일찍 갔다. 국내에서는 양양에서 연습을 하다 헌팅턴 비치로 갔는데, 오와. 미국 파도와 마주하는 순간 멘붕이 왔다. 세탁기처럼 물 안에서 돈 적도 있었다.

Q. 마침 다음 영화도 액션영화(유하 감독의 ‘강남블루스’)이지 않나. 곧 준비에 들어가야겠다.
이민호 : 1월부터 들어간다. 3월에 크랭크인이지만 두 세달 앞서 액션스쿨에서 준비를 해야 한다. 유하 감독의 액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단단히 준비하고 싶다. (Q. 부상은 걱정 없는 듯 말한다) 얼굴만 안 다치면 된다.

Q. ‘상속자들’ 전후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이민호 : 아무래도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그 동안 김탄 같은 사랑을 추구하긴 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번 작품 하면서 ‘저런 게 진짜 사랑이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김은숙 작가님의 가장 큰 힘도 바로 그것이다. 순수하고 올곧은 사랑. 모두가 가슴 속에 꿈꾸는 사랑 말이다. 그 동안 나는 상황에 쫓겨 그런 것에 더 신경을 많이 썼는데, 계속 이러다 보면 (사랑을) 놓칠 수 있겠다 싶었다. 왜,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갈 수록 상황을 고려하게 되지 않나.

Q. 그래서 지금 사랑을 하고 있나.
이민호 : 안하고 있다. 없다. 확실하다. 결혼은 늦게 서른 다섯 이후에 하고 싶은데 눈에 확 들어오는 김탄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많이 다녀야 하는데 나는 참 가는 곳이 한정적이다.

Q. 그렇다면 시작하고 싶은 사랑은?
이민호 : 첫 눈에 확 꽂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시작하고 싶다. ‘나 너 좋아하냐’ 같은 대사는 못하겠지만(웃음), 이제는 어느 정도 표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쑥스러워서 표현을 못했다. 팬들한테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을 정도다. ‘사랑해요’라고 써달라고 해도 못 써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 표현이라는 것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참, 과거에는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게 분위기가 흘러가기 시작하면 회피하고 장난치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내 감정과 상대방 감정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시간이 좋다.

Q. 그럴 시기가 오면 술이 당긴다는 말인데(웃음).
이민호 : 맞다! 원래 술을 못 마시는데 이번에 해외 나가서는 내내 마셨다. 샴페인이나 와인, 아니면 맥주. 하루에 두 세 잔은 꼭 마셨다. 알딸딸해질 정도로.

Q. 술 이야기도 나오고 했으니, 오글거리는 질문을 하나 던지겠다. 이민호에게 스타라는 왕관의 무게는?
이민호 : 팬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인상 깊은 말 중 하나가 ‘이 작품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이다. 예전에 ‘시티헌터’를 할 때는 어떤 분이 아드님을 잃고 힘들어하던 와중에 그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찾았다고 하셨다. 특히 ‘신의’의 경우, 정말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많이 봤더라. 사별하신 분들도 있었고, 조금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이 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하셨다. 내가 하는 일이 내 생각 이상으로 타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직업이구나 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어떤 것을 해도 20대 초반에 비해 덜 재미있고 덜 행복해진다. 과거에는 미친 듯 달려들어서 했는데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도 있고. 하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면 책임감을 갖고 하게 된다. 흠, 스타라는 무게? 물론 나 역시 기본적으로 소박한 사람이라 어떤 일상에서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데 지나가다 밥집을 들어가려 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가끔 슬프긴 하다.

Q. 얼마 전이 크리스마스였다. 그 때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
이민호 : 친 누나와 할 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누나와 보냈다. 또 중학교 때 친구 불러서 같이 보냈다. 요즘 내 정신 상태가 왁자지껄 으악 파이팅있게 보내는 것보다 6~7개월 일을 하고 나서 인지 조용히 쉬고 싶다.

Q. 어, 원래 좀 조용한 편 아닌가.
이민호 : 그렇긴 하지만 1년에 몇 번 파이팅하고 싶은 날이 온다.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차분하게 지내려고 하는 편이다.

Q. 중학교 때 친구라면 모두 남자친구들?
이민호 : 그렇다. 나는 절대 여자와 친구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호감이 없는 상태에서는 연락도 안부도 점점 뜸해지고. 그래서 결국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손)예진이 누나와도 1년에 두 세 번 연락하는 정도다.

Q. 그런데 이번 ‘상속자들’ 현장은 워낙 분위기가 좋고 사이가 좋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반면, 열애설은 나올 법도 한데 없었고.
이민호 : 키스신 이후에 있긴 했다. ‘뭐 있는 것 아냐’라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다고 하던데 ‘뭐’는 없었다(웃음).

Q. 그런 소문이 돌았다는 건 현장에서 박신혜와의 케미스트리가 좋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탄이는 유독 케미가 산 관계가 많았다. 형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그중 누구와의 케미가 가장 마음에 들던가.
이민호 : 성령엄마!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러웠다. (김)희선이 누나와 비슷한 면도 있었다. 뭐랄까, 아기 같은 부분? 여자가 나이를 먹어갈 수록 매력적인 점이 바로 그런 아기같은 부분이 보일 때다. 지켜주고 싶게(웃음).

Q. ‘꽃남’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어린 배우들 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였다.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겠다.
이민호 : 맏형이니까 이렇게 해야지 이런 스타일이 못 되는데 다들 피곤하면 챙겨주면서 잘 지냈다. ‘꽃남’할 때는 딱 네 명이었고, 그 네 명이 다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워낙 사람들도 많았고, 그 중 몇몇은 몇 신 안 겹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좋았던 것에 대해 애들한테 고맙고 또 좋았다. 어린 친구들끼리 간만에 모여 열심히 으?으? 하는 작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애틋함도 있었다.

Q. 이제 더 이상 학원물은 안하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민호 : 진짜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뭐, 회상신 정도로 교복을 입는 것을 빼면 말이다.

Q. 이번에 만나게 된 김우빈은 어떤 배우였나.
이민호 : 우빈이와 첫 대면하는 신이 바로 학교에서 마주치는 신이었다. 서서 마주보는 순간, 눈을 마주치는 순간 ‘우리 작품 속 삼각관계가 굉장히 잘 그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의 에너지가 느껴졌고, 얼굴도 매력 있었다.

Q. 참, 중국에서 인기가 엄청나다. 해외 작품 계획은 없나.
이민호 : 일단, 아무래도 국내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사랑을 받아야 배우 생활을 하면서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다. 어쨌든 나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 해외 시장을 놓고 갈 수 없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고. 아마도 영화를 마친 뒤에는 해외 작품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Q. 끝으로, 이민호에게 연기 이제는 좀 쉬워졌나.
이민호 : 여전히 내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한다. 이십 대 내내 그럴 것 같다. 연기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무언가를 깨보려고 치열하게 연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비단 나뿐인가. 20대의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산다. 자신과 싸우면서.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스타우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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