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에서 이어짐) 마지막으로 밴드에 합류한 홍일점 이혜지는 1990년 1월 15일 인천에서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믿고 거절을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였다. 정반대의 활발한 성격이었던 2살 위의 언니는 어린 그녀가 문화를 접하게 된 통로역할을 했다. “당시 H.O.T. 광팬이었던 언니를 따라 좋아하다 나만의 개성을 찾아야지 하는 마음에 ‘신화’를 좋아했습니다.”(이혜지) 만화를 좋아한 언니를 통해 일본만화 접했다. 초등학교 때 일본밴드 라르크앙시엘, 페니실린, 솔로 가수 각트를 좋아한 언니를 통해 일본음악까지 접하게 되었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활발한 친구들과 어울린 이혜지는 장기자랑에 나가려 춤을 연습하는 활달한 아이로 변해갔다.

중학교 3학년 때 언니가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엄마는 “악기를 배우면 삶이 윤택해 진다.”며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녀를 언니가 다니던 학원에 보냈다. “저는 별로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학원 원장선생님이 베이스를 추천해 배웠는데 진짜 재미가 없어 학원을 수도 없이 빼 먹고 그랬습니다.”(이혜지) 그녀가 베이스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한 것은 중2때부터.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던 친구 박다비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해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이혜지)

이혜지 어린 시절

단짝으로 친했던 두 소녀는 밴드 ‘쑥과 마늘 그리고 곰’이란 밴드를 만들어 합주를 열심히 했다. 함께 석정여고에 진학한 이혜지와 박다비는 함께 6인조 스쿨 걸밴드 카라에 7기 멤버로 들어갔다. 이후 다른 학교의 축제나 부평의 풍물축제 무대에 올랐다. “멤버들이 실력차이가 커서 밴드활동이 재미가 없었어요. 공부를 잘한 다비는 취미로 음악을 했지만 저는 연주를 잘해보고 싶었습니다.”(이혜지) 이혜지는 네이버 지식인에 “취미 밴드를 하고 싶다”고 올려 다음에 있는 카페를 소개받아 5인 혼성메탈밴드 ‘라이즈 업’에 들어갔다. 그때 메탈밴드 주다스 프리스트, 헬로윈, 딥 퍼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카피 곡 위주로 연주했던 라이즈 업은 산울림 소극장 근처 리디안 클럽에서 대관해 첫 공연을 하고 해체했다.

밴드활동을 그만 둔 후, 중학교 서울로 이사 간 친구가 인디밴드공연 보러가자고 연락이 와 클럽 스컹크헬에서 열린 밴드 레이지본의 마지막 단독공연을 보러가 신시한 경험을 했다.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밀려가면서 본 게스트로 나온 신인밴드 로켓 다이어리(현 위 아 더 나잇)는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완전 신세계에 온 것 같았어요. 그 후 로켓다리어리 공연 을 참 많이도 보러 다니면서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간절하게 들더군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베이스를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이혜지) 처음엔 반대했던 부모님은 “음악으로 대학에 진학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했다.

이혜지 고등학교 밴드 ‘카라’ 시절

고2학년 여름부터 신촌에 있던 서울 실용음악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4인조 밴드 방울악단의 보컬 정주영, 기타 임태호는 당시 학원에서 함께 음악을 배웠던 친구들이다. 2008년 동아방송대 실용음악과 베이스 전공으로 입학한 이혜지는 한 살 어린 정주영과 4인조 밴드 레드 쇼파를 결성했지만 실제 활동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2009년 2월, 2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 이혜지는 블랙백의 오디션을 통과했다. “보컬전공 한 학년 선배언니가 혹시 밴드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군요. 애들이 착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한다고 소개를 했는데 당시 제가 데미안 나이스(Damien Rice)와 발라드 연주를 좋아해 창작곡도 마음도 들고 감성적인 민우 목소리가 저와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 합류했습니다.”(이혜지)


베이스 이혜지가 합류하면서 4인조 밴드 블랙백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자신들이 다니던 학원 지하 합주실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결성 초기의 블랙백은 지금처럼 강력한 사운드가 아닌 모던록 밴드에 가까웠다. 2009년 4월 클럽 ‘빵’의 오디션을 통과해 5월부터 무대에 올랐다. 공식적으로 이들의 첫 무대다. 첫 공연엔 엔지니어를 포함해 6명의 관객이 전부였다. 그나마 관객들은 다음 무대에 오를 밴드 멤버들이었다. “빵에서 볼 때 마다 인사를 한다고 찌질하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당시 클럽 빵이 5시 30분에 열면 10분 전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뭐 요즘은 공연시간에 맞춰서 가지만요.(웃음)”(장민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의욕과 열정이 넘쳐났던 이들은 클럽 빵에 이어 클럽 바디비에서도 공연을 하며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당시 클럽 바디비에서 블랙백이 첫 출연료로 받았던 액수는 단돈 5천원. “당시 수요일에 서드스톤과 함께 공연을 했는데 전체 수익 1만5천원에서 1/3을 준 것이기에 대단한 거라 생각했습니다. 액수는 적었지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적힌 바다비 봉투의 감동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합니다.”(장민우)

2009년 11월, 자연스러운 모던 록을 구사한 비공식 첫 EP를 200장 제작했다. “저희를 도와주는 형이 카페 알바 하는 디자이너 누나하 함께 재킷 작업을 해주셨어요. 녹음실 찾다가 친하게 지냈던 밴드 홀린의 보컬 정준혁 형이 운영하는 합주실겸 녹음실에서 감사하게도 싼 가격으로 도와주셨죠. 녹음 경비는 멤버들이 1/n로 토털 40만원 들었는데 알 프린팅 빼고 포장까지 저희가 다했는데 정식 유통만 하지 않았습니다.”(장민우) 4곡이 수록된 블랙백의 비공식 첫 EP는 발매당시 6천원이었는데 워낙 소량제작을 한지라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희귀앨범이 되었다. 녹음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설익은 습작 같은 느낌이 강하다. “직접 녹음하고 믹싱을 했는데 마스터링은 하지 않아 데모 느낌이 날 겁니다. 흑백 일러스트 디자인도 지금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장민우)


이들의 음악여정은 장밋빛은 아니었다. 헬로루키와 쌈지에 지원했지만 1차 음원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2011년 지상파 TV에서 밴드를 대상으로 한 ‘톱밴드’가 생겨 무조건 나갔다. 이번에는 창작곡 ‘화이트 원’으로 처음으로 예심 통과해 톡식, 게이트플라워즈와 더불어 2차 예선까지 진출했지만 제프가 기흉으로 입원해 도중하차했다. 이후 CJ아지트의 ?업, 상상마당 인큐베이터 4기, 지산밸리 록큰롤 슈퍼스타, 쌈사페 숨은 고수까지 모든 오디션에 다 출전해 헬로루키와 튠업을 빼고 모두 선발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탄력을 받은 멤버들은 모든 페스티발에 다 나가자는 목표를 세우며 2011년 하반기에 루비살롱레코드와 계약해 소속사를 찾았다. 2012년 1월 11일 발표한 공식 EP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2천장이 팔려나갔다. 상상마당에서 열린 첫 단독공연은 예상을 뒤엎고 성황리에 갈무리되면서 블랙백은 제법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2년 3월 올레뮤직 인디어워드 루키 부분을 수상한 이후 ‘톱밴드2’에 다시 도전했지만 3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2012년 겨울부터 정규 1집 ‘레인 해즈 폴른(Rain has Fallen)’ 녹음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로큰롤라디오, 이스턴사이드킥에 비해 가장 늦게 발매되었다. “가내수공업의 느낌을 살리자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새 장비를 미국에서 구입해 기다리느라 2-3달이 걸렸고 데모 작업하다 곡을 업다보니 늦어졌습니다. 녹음은 2-3달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보컬, 베이스, 드럼은 워낙 연습을 많이 한지라 2-3일 만에 끝냈죠.”(장민우)


1집은 이들 음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발전 가능성까지 제시한 앨범이다. 지난 첫 EP가 서정과 서사를 넘나드는 수려한 멜로디가 매력적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직설적으로 변화된 가사 작법과 다채로운 실험적 사운드와 어쿠스틱한 서정적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전 곡이 유기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통일성을 유지하기에 앨범의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킬러 곡의 부재는 살짝 아쉽다. “팬들도 킬러 곡의 아쉬움을 말하더군요. 리스크가 있겠지만 저희는 후자에다 걸었습니다. 앨범에 음악적으로 무게감을 둘 수 있는 루키밴드가 몇 팀이나 있을까 싶어 한 번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저희는 지금 당장 성공보단 오랫동안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장민우)

앨범엔 총 11곡이 실렸다. 1번 트랙 ‘하이웨이(Highway)’와 10번 트랙 ‘007’이 더블타이틀곡이다. ‘하이웨이’는 여행을 시작하는 흥분된 느낌이라면 ‘007’은 여행에서 겪은 이야기를 6분 17초에 걸쳐 서정적으로 갈무리한다. 두 곡은 정반대의 질감이기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든 좋은 곡이란 공통점이 있다. “또래의 루키 밴드가 많아졌는데 저희는 성장속도나 인지도 획득이 굉장히 더딘 것 같습니다. 초창기에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다 떨어져 인내력을 키운 것 같습니다.”(제프) “남자가 세 명인 밴드라 25살에 군대를 함께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멤버들이 군에 갔을 때 저는 3년제 학점은행제로 학사학위를 따려고 합니다.”(이혜지) “확실한 성과를 내고 군대에 가던지 성과를 내기 위해 최대한의 준비를 마치고 제대 한 후에 승부를 내자는 각오입니다.”(구태욱)


정규 1집에 수록된 거칠면서 서정적인 전 곡은 블랙백 멤버들에겐 아픔을 극복한 치유의 음악여행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29일 저녁6시 홍대 앞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리는 블랙백의 첫 정규앨범 [Rain has Fallen]발매기념 단독콘서트는 그들의 음악여정에 동승하는 경험하는 따뜻하고도 신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루비살롱레코드, 이혜지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