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주연은 ‘오로라공주’에서 박지영을 연기했다그렇다. 고백하자면,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을 만나기 전에는 그 배우보다 임성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다. 그렇지만 막상 마주앉은 배우에게 ‘신비주의’로 일관하는 묘한 작가의 존재를 캐묻는 것도 실례다. 특히나 그 배우가 신인일 때는 답하기가 조심스럽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과거에는 임성한 작가가 출연 배우들에게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일이 있었던 것인지, 매니지먼트들이 눈치를 보는 경우도 허다했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신기생뎐’에 출연한 한 여배우가 드라마 초반 인터뷰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배역의 비중이 작아졌다는 말도 들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MBC ‘오로라공주’의 정주연과 마주 앉아 있을 때도 작가에 대한 질문은 여러모로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이 워낙에 뜨거웠기에 물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여러차례 반복되는 드라마에 대한 여러 좋지 않은 소문들에 대해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한 정주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주연은 내부에서는 다들 끈끈하게 뭉쳐 드라마 잘 찍어보자는 분위기였고, 외부에서 시끌시끌한 소문들은 그런 견고한 내부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며 웃으면서 차분하게 답했다. 그러나 그런 여유로운 모습에서 아직 어린 신인배우가 논란에 대처하는 태도를 키워왔던 시간을 알게 됐다 말한다면 착각이 될까.
비상식적인 드라마의 세계를 떠난 현재, 상식의 선에서 생각해보았을 때 어떻게 마음 고생이 없을 수 있었을까. 정주연에게 ‘오로라공주’는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한 작품이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5월이었지만, 총 3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과한 것은 지난 해 말이었다. 그러니 1년을 넘는 기간 함께 한 작품이다. 미운 정도 고운 정도 흠뻑 든 내 작품인데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배우에게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은 못됐을 것이다. 특히나 정주연은 자신이 연기하는 박지영이 기자이기에 실제 기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공부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배역의 직업이 기자에서 배우로 돌변하는 일도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이 배우에게 ‘오로라공주’라는 작품이 흠이 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분명 배운 것이 더 많았을테고 얻은 것도 상당했을 것이다. 특히나 일일드라마의 긴 호흡을 몸에 익혔다는 점, 그리고 여러 선배들과 함께 한 작업은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논란은 결국 관심의 또 다른 말이기에, 정주연은 ‘오로라공주’를 통해 자신의 이름 석자와 얼굴만큼은 확실히 알릴 수 있었다.
정주연이 연기한 박지영은 기자에서 배우가 된 캐릭터다
Q. 이제 드디어 ‘오로라공주’와 함께한 긴 여정이 끝났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는 무엇을 했나.정주연 : 촬영 다음 날에는 집에서 쉬면서 본방사수를 했다. 사실 끝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라. 평상시 쉬는 날과 똑같이 보냈기 때문이었을까? 종방연을 하고나서도 그저 여느 평범한 회식날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마지막 방송(20일, 인터뷰는 마지막 방송 하루 전인 19일 이뤄졌다)을 보고나면 실감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런데 방송을 보는데 갑자기 다음 드라마 예고편이 나올 때는 기분이 참 이상했다. 괜히 아쉽기도 하고.
Q. 마지막 신을 찍고나서는 어떤 기분이 들었나.
정주연 : 드라마 준비기간까지 더하면 총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다들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는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툭 건들면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다들 웃으며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 했다.
Q. 혹, 임성한 작가가 수고했다거나 하는 연락을 하지는 않았나.
정주연 : 따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Q. 일일드라마 특성상 선배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긴 시간 촬영을 해야했다. 돌이켜생각했을 때 얻은 점은 무엇인가.
정주연 : 무엇보다 (연기가) 몸에 익어있다는 것. 그래서 잊혀지기 전에 어서 빨리 다른 작품에 들어가고 싶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내공을 쌓고 싶다. 또 선생님들을 보면서 배운 점이 꽤 많다. 특히 나는 임예진 선생님과 가까웠는데, 선생님들은 다들 순간적인 몰입을 잘 하시더라. 본받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또 선생님들은 연기에 대하 확고한 해석과 마인드를 가지고 계셨다. 그 부분도 닮고 싶었다.
Q. 부족하다고 말을 하지만, 장기간 촬영하면서 스스로도 뿌듯했고 자랑하고 싶었던 신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장면에서 ‘아, 내가 드디어 이만큼은 했구나’ 안도했었나.
정주연 : 나를 많이 보여줄 수 있었던 신은 역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다. 극의 비중도 컸고, 감정신이라 더 집중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선생님들처럼 순간적으로 몰입하려고 노력도 했고, 극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그 상황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다가가려고 노력을 기울였었다.
Q. 그렇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지영의 엄마 여옥(임예진)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임예진은 유체이탈로 죽어 극에서 하차했다. 비현실적인 죽음과 갑작스러운 배우의 연이은 하차가 인터넷 기사로 도배됐다). 그 상황은 정상과는 꽤 거리가 있는데, 어떤 식으로 이해하려고 했나.
정주연 : 맞다. 갑작스러웠고 또 주무시다가 돌아가신 상황이었으니까, 준비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갑작스러우니 말도 안 나올테고 정신을 반쯤 잃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슬픔에도 종류가 많은데, 어이없는 슬픔에 가장 근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주연에게 임성한 작가를 물어보았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감사한 분”
Q. 여튼 이 드라마는 임성한 작가로 인한 논란이 상당히 많았다. 현장에서는 그런 것이 영향을 끼치지는 않던가.정주연 :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우리끼리는 꽤 오랜 시간 같이 촬영을 해왔기에 사이는 돈독해져있었고,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정말로 내부에서는 크게 시끄럽게 와닿지 않았다. 밖이 훨씬 더 시끄러웠던 것 같다.
Q. 이 드라마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로만 읽히고 있는데, 사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이는 작가가 아니라 PD였다. 김정호 PD와는 어떻게 소통을 했나.
정주연 : 워낙에 인자하신 분이었다. 신인인터라 답답한 부분도 많았을텐데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주시고 제안해주셨다. NG가 나도 분위기를 더 밝게 만들어주시는 그런 분이셨다. 또 우리들이 미리 준비한 연기를 하는 것보다 감독님이 디렉션을 해주신대로 따라가면 연기가 더 좋아져서 감독님에 대한 신뢰도 두터울 수밖에 없었다. 감사드리는 분이다. 그리고 외부의 논란에 대해서도 감독님이 우리가 신경을 쓰지 않도록 중심을 딱 잡아주셨다. 용기를 많이 주셨다.
Q. 연기에 있어서 또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 같다 여겨지는 대목이 대사리딩인데, 임성한 작가 작품 특유의 말투가 있지 않나.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 연습했나.
정주연 : 사실 나는 말투가 그렇게 특이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렇게 느끼시는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흔히 하듯 끝을 툭툭 잘라서 뱉는 식의 말투라서 그런 것 같다. 완성된 문장으로 끝까지 않고 실제 우리가 말을 할 때 쓰는 그런 말투. 그래서 도리어 자연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맞다. 대본을 볼 때는 집중해서 연습해야만 했다. 내가 잘 못 하면 작가님이 전하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으니까 이런 실수를 막기 위해 대본을 정말 여러차례 읽고 또 읽어 숙지하려 했다.
Q. 임성한 작가 드라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작가가 좋아하는 듯한 요리법이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혹시 ‘임성한 레시피’에 직접 시도해본 적은 없나.
정주연 : 하하. 없다. 하지만 김치밥은 정말 먹어보고 싶더라. 김치볶음밥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만든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를 포함해 배우들 모두 요리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었던 것인지 서로 이야기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아참, 요즘 호박죽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먹고 싶어진 적은 있다. 아무래도 식사시간대 방영되는 일일 드라마라서 그런 것들이 자꾸만 등장하는 것 같다.
Q. 배우 정주연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보고 싶다. 학창 시절 인사도 못할 정도로 내성적인 소녀는 어떻게 배우가 됐을까.
정주연 : 나는 사소한 일에는 우유부단한 편인데, 무언가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꼭 해내는 고집도 있다. 어렸을 때도 꼭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졌다. 배우가 되고나서도 어떤 작품이 꼭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집착을 하게 되고 몇 번의 도전을 하게 된다.
Q. 평범한 중학교 소녀가 ‘배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예고로 갈 것이다’라고 했을 때,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의 반응은.
정주연 : 집에서는 굉장히 좋아하셨다. 나 밑으로 동생이 둘이 있는데 골프와 요리, 둘다 예체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연기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은 재미있어하셨다. 예고도 내가 알아보고 당시에 꽤 유명했던 안양예고에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응원을 해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도움도 주시려고 하셨다.
Q. 안양예고 입시 준비는 어떻게 했나.
정주연 : 그게 참 재미있다. 안양예고는 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연기학원을 갈 용기는 안나는 거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을 사서 준비를 했다. 사실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인데 말이지. 그리고 시험을 칠 때는 면접관이 안 보이고 조명만 나한테 뚝 떨어져있어서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후회없이 준비한 것을 다 보였던 탓인지 합격하게 됐다.
Q. 연기를 접하고나서는 성격도 많이 바뀌었을테고.
정주연 : 정말 많이 바뀌었다. 말수도 없고 내 의견이나 생각을 말할 때 누가 쳐다보는 것이 부끄러웠던 내가 언제부턴가 리드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하고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주연은 안양예고를 거쳐 건국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다
Q. 학창시절 동경으로 품었던 배우는 누구였나.정주연 : 손예진 선배님. 출연 영화를 다 봤고,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클래식’과 ‘내 머릿 속의 지우개’였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모습과 연기에 푹 빠졌었다. 여배우로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멜로다.
Q. 지금 마주앉은 정주연에 대한 이미지를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얌전한 고양이’라고 할 것 같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정주연의 또 다른 모습은 어떤가.
정주연 : 아, 정말로 친구들은 내 다양한 성격을 드라마에서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라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얼마 전에는 SBS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 선배님이 술 주정을 하는 연기를 본 적이 있는데, 나 역시 그런 발랄한 모습을 꺼낼 수 있다. 분명 내게 도전일테지만 잘 할 자신도 있다.
Q. 언젠가 꼭 발견하고 싶은 모습이다. ‘오로라공주’의 긴 시간을 견뎌낸 것(?)을 축하한다. ‘라디오스타’에 나가도 이제 버텨낼 깡이 생겼을 것 같기도 하다.
정주연 : 헉!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예능이다. 독설이라고 무섭다고들 하시지만 나는 재미있다. 상처는 커녕,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Q. 차기작 소식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
정주연 : 글쎄. 나도 어서 빨리 하고 싶다. 무엇보다 매일 일일드라마로 나를 보셨던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소식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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