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드리 햅번, 그레이스 켈리, 마를린 먼로 (왼쪽부터) ⓒ Philippe Halsman Magnum Photos

혹독한 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손발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조차 꽁꽁 얼어붙기 십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손난로처럼 따뜻한 선물을 지인에게 건넬 필요가 있다. 당신의 체온을 2도 정도 올려 줄 수 있는 따뜻한 전시와 공연을 추천해 드린다. 먼저, 전시장에서 나도 모르게 점프를 하게 만드는 ‘점핑 위드 러브 전’이다. ‘라이프’ 표지에 101번이나 작품을 실은 사진가 필립 할스만(1906-1979)의 점핑 사진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사진은 할스만이 직접 점핑을 한 사진이다. 그리고 이미 전설인 된 스타들이 각양각색으로 뛰어 오르는 것도 차례로 이어진다. 할스만은 카메라 앞에 선 인물들이 뭔가 어색하거나 수줍어할 때, 이들에게 점프를 시켜 보면 자연스럽게 개성이 표출된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이 이 점핑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특히 사회적 체면(가면)을 벗어 던지고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즐기는 셀럽들에게는 묘한 마법이 작동하고 있다. 점핑 사진은 한마디로 짜릿한 해방감을 전해 준다. 전시는 점핑(Jumping) 섹션 외에도 드리밍(Dreaming)과 러브(Love) 섹션도 눈여겨 볼만하다. 드라밍에서는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영화 ‘새’)과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아토미쿠스), 러브에서는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사후 기념 컷)의 사진이 준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 콕도를 포착한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는 “만약 집에 불이 나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불을 가져가고 싶다”라고 말한다. 장담하건대, 전시가 끝나고 나오면 아트샵에서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년 2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이 비상은 계속 된다.

바스티앙 비베스의 ‘내 눈 안의 너’(왼쪽),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 표지

전시장을 빠져 나와 가까운 카페에서 향기 그윽한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즐겁게 동반할 책을 추천해 드린다. 두뇌 싸움을 일으키는 내용보다는 아무래도 빠르게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 더 매력적이다. 커피의 맛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말이다. 단순하고 다이내믹한 선으로 청춘의 일상을 담아낸 그래픽노블이 안성맞춤일 것 같다. 바스티앙 비베스의 ‘내 눈 안의 너’와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를 추천해 드린다.

1984년 프랑스 태생인 바스티앙은 이미 ‘염소의 맛’, ‘폴리나’로 국내에도 꽤 많은 팬들을 지니고 있는 인기작가다. 물론 전작을 보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으니 주저하지 마시라! ‘내 눈 안의 너’는 디카로 한 여성을 찍은 느낌이다.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주관적인 시선, 즉 1인칭 시점 속에 담긴 여자의 모습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물론 시선의 주인공은 모습도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그녀를 훔쳐보면서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는 비베스가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만화를 모은 책이다. 블로그에서 연재된 ‘사랑’, ‘가족’, ‘비디오 게임’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비베스의 전작이 서정적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색감(그림체)으로 대표된다면 이 블로그의 만화는 크로키나 스케치에 가깝다. 이 책은 신랄하면서도 가벼운 유머와 상식을 깨버리는 성적 자유로움을 약간의 대화를 통해서 제시한다. 비베스가 휴식 시간에 재미로 올린 에피소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창조적 에너지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연극 ‘웃음의 대학’

좀 더 따뜻한 웃음이 필요하다면,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서 ‘웃음의 대학’에서 강의를 들어도 좋다. 20분 만에 웃음 바이러스에 중독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1996년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기가 초연한 연극으로, 국내에는 2008년 10월에 초연을 시작해 2011년 3월까지 지속적으로 공연이 이어졌다. 약 3년 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새로운 웃음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희극을 모두 없애버리려는 냉정한 검열관과 극단 ‘웃음의 대학’의 한 작가가 벌이는 7일간의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고군분투하며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이나 검열관이 작품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게 협력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초연 멤버 송영창이 검열관 역으로 다시 출연하며, ‘나와 함께라면’에서 명연기를 보여준 코미디의 달인 서현철이 새롭게 합류한 것도 체크 포인트다. 가슴이 펑 뚫릴 정도로 시원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연극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라 가슴 아픈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보너스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다. 연극을 보고 마음에 쏙 들었다면, 꼭 호시 마모루 감독의 영화 ‘웃음의 대학’(2004)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물론 미타니의 연극 원작을 영화로 옮겼으며, 야쿠쇼 코지와 이나가키 고로가 등장한다. 연극과 달리, 영화의 엔딩은 눈물이 벌컥 쏟아진다. 검열관은 작가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물론 그가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내년 2월 23일까지, 유니플렉스에서 웃음의 향연이 펼쳐진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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