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듀오, 이승열, 아시안체어샷, 김태춘, 선우정아. 한희정(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2013년 대중음악계의 키워드는 ‘만개’다. 올해에는 음반 발매부터 공연, 페스티벌까지 대중음악계가 풍성했다. 수많은 가수들이 컴백하는 좋은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 몇 년 새 강세를 보였던 아이돌그룹부터 오랜만에 등장하는 중견가수까지 앞 다퉈 음반을 발매하는 통에 매주가 컴백 음반들의 전쟁일 정도였다. 록페스티벌, 내한공연을 비롯한 공연시장도 커져 거의 매주 대형 음악행사들이 즐비했다. 더불어 한국 음악인들의 해외 진출은 케이팝에서 록으로 확산되는 움직임도 보였다. 안과 밖에서 ‘만개’한 2013년 대중음악계 중요한 흐름들을 돌아본다.

이승열(왼쪽)과 선우정아는 2013년을 대표하는 뮤지션을 평가받을 만하다. 한 명은 낯선 어법으로, 다른 한 명은 친근한 어법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보였다

주목할 만한 음반들
2013년에도 여러 완성도 높은 음반들이 우리의 귀를 만족시켰다. 이승열은 정규 4집 ‘브이(V)’를 통해 다소 실험적인 음악세계를 선보이며 평단, 그리고 기존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이 실험은 음악적인 완성도로 이어져 기존의 영미 록을 답습하는 한국 록에서 나오기 힘든 결과물로 귀결됐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에는 선우정아의 활약이 대단했다. 자신이 프로듀서 및 작곡, 연주, 노래로 참여한 정규 2집 ‘이츠 오케이 디어(It’s Okay Dear)’를 통해 동료 뮤지션, 평단, 팬들의 지지를 골고루 얻어낸 선우정아는 다양한 경로의 라이브를 통해 팝부터 재즈, 더 나아가 아방가르드 성향의 음악까지 선보이는 팔색조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원년멤버로 27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들국화는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들국화로 필래’ 등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는 좋은 곡들을 발표해 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오랜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이적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3년 만에 발표한 5집 ‘고독의 의미’에서 완성도에서 타협이 없는 결과물을 내놓으며 믿음을 줬다. 남성 싱어송라이터 중에는 회기동 단편선, 드린지 오, 김목인 등이 새 앨범을 통해 자신들의 뚜렷한 색을 보여줬다. 특히 신인 남성 싱어송라이터 조커는 기존 가요계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작법으로 주목받았다.

하나음악을 계승한 레이블 푸른곰팡이에서는 오랜만에 장필순, 김창기의 앨범이 발표돼 반가움을 전했다. 장필순의 ‘수니 세븐(Soony Seven)’과 김창기의 ‘내 머리 속의 가시’는 거장들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이외에도 푸른곰팡이에서는 윤영배, 소히가 완성도 높은 앨범을 발표하고, 소속 아티스트들인 고찬용, 이규호가 김예림에게 곡을 주는 등 가요계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이와 함께 하나음악에 몸담았던 싱어송라이터 이무하, 한국 프로테스트 포크의 거장 양병집이 새 음반을 발표했다.

다이나믹 듀오는 데뷔 후 올 한해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앞으로 다이나믹 듀오는 음악 외적인 가십으로도 언론의 표적이 될 것이다. 이것이 경사인지는 본인들이 판단하면 될 듯.

장르별 약진
올 한 해에는 힙합 뮤지션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힙합 디스전’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활발한 음반 작업들이 있었다. 특히 다이나믹 듀오는 데뷔 14년 만에 음악 순위 프로그램 첫 1위, 힙합 디스 전의 시작, 에프엑스 설리와의 열애설까지 올 한해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정규 7집 ‘럭키넘버스(LUCKYNUMBERS)’를 통해서도 힙합계의 형님다운 면모를 보이며 평단의 찬사까지 얻어내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음원차트에서는 다이나믹 듀오를 비롯해 배치기, 리쌍, 산이 등이 강세를 보였다. 이외에도 자이언티, 피타입의 앨범이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빈지노는 페스티벌 등에서 최고의 인기 뮤지션으로 자리했다. 이제 힙합 뮤지션들은 주류와 인디를 따로 가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록계에서는 자우림, 크라잉넛, H2O, 시나위, YB, 바세린, 옐로우 몬스터즈 등이 새 앨범을 통해 출중한 음악을 발표하며 베테랑 밴드다운 면모를 보였다. 신예들 중에서는 아시안 체어샷, 써드스톤, 텔레플라이 등 사이키델릭 록 계열이 돋보였다. 특히 아시안 체어샷의 EP ‘소녀’, 써드스톤의 ‘싸이키문(Psychemoon)’은 공격적이면서도 내공이 돋보이는 뜨거운 록 사운드를 들려주며 주목받았다. 이외에도 글렌체크 로큰롤 라디오와 같이 관객을 춤추게 하는 댄서블한 사운드의 팀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아시안체어샷(위)과 써드스톤은 록이 활활 불타는 화염과 같은 음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재즈계에서는 신구 아티스트들이 나란히 앨범을 발표하는 조화로운 한해였다. 일흔을 앞둔 ‘한국 재즈의 대모’ 박성연이 ‘박성연 위드 스트링즈(Park Sung Yeon With Strings)’를 통해 와인과 같이 성숙한 재즈의 맛을 보여줬으며 역시 여성 보컬리스트들인 나윤선, 정란 등이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평론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와 함께 한국 재즈의 허리라 할 수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대거 모인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을 비롯해 윤석철, 정상이, 조영덕 등 신예들이 출중한 음반을 발표하며 찬사를 받았다. 이외에도 한국 재즈 1세대들인 강대관(트럼펫), 김수열(색소폰), 최세진(드럼), 손수길(피아노), 이수영(베이스) 다섯 명이 퀸텟(5인조)를 이뤄 연주를 한 1978년 앨범 ‘JAZZ - 째즈로 들어본 우리 민요, 가요, 팝송’이 재발매돼기도 했다. 이 앨범은 한국 연주자들의 손으로 빚어진 최초의 모던재즈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게뮤지션들의 단합도 돋보였다. 킹스턴 루디스카를 필두로 태히언, 루드페이퍼, 제주도에서 온 사우스 카니발 등이 함께 활동하며 대중에게 레게음악을 알렸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서울 리딤 슈퍼클럽이라는 13인조 대형 밴드를 만들어 페스티벌 등에서 활약했다. 그 외에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흑인음악 장르인 소울, 디스코를 연주함과 동시에 독특한 콘셉트로 올 한해 맹활약했다.

씨없는수박 김대중, 김태춘, 하헌진X김간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들이 올해 내놓은 블루스 음반들은 소소하게나마 국내에 고전적인 블루스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올해는 블루스 계열에서 유난히 좋은 앨범이 많이 나온 한해였다. ‘가축병원블루스’를 발표한 김태춘을 필두로 작년에 ‘300/30’으로 인기를 모았던 씨 없는 수박 김대중, 하헌진X김간지가 각기 다른 스타일의 블루스앨범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국내에 생소했던 블루스라는 음악이 인디 신을 중심으로 음악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홍대여신이여 안녕
올 한해 주목할 만한 움직임 중 하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진화다. 과거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홍대 여신’이란 별칭과 함께 주로 달콤한 음악을 선보였다면, 최근에는 보다 진지한 음악적 접근을 하는 사례가 늘었다. 대표적인 것이 홍대 여신 삼인방이었던 한희정, 요조, 타루의 변화다. 셋은 올해 나란히 새 앨범을 발표하며 과거와 다른 다소 성숙한 음악을 선보였다. 한희정은 ‘날마다 타인’으로 꽤 실험적인 시도를 펼쳐보였으며, 요조는 ‘나의 쓸모’로 나이에 걸맞게 성숙함이 느껴지는 앨범으로 호평 받았다. 타루는 올해에 정규 3집 ‘퍼즐(Puzzle)’과 EP ‘블라인드(Blind)’ 두 장의 음반을 내놓으며 전과 다르게 거칠고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 외에 오지은, 루시아, 야야, 소히, 프롬, 강아솔, 희영, 나희경, 박새별 등 기존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진일보한 음악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여풍이 전보다 강해진 한해였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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