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다 자극 없다 안 섹시하다 / 우리가 걸어온 길 서로가 이해하길 / 널 먹이는 버릇은 내 뱃속을 채우는 일 / 어제의 난 소멸되고 또 다른 나 / 숨 쉬는 게 지겨워질 쯤 그때 / 나도 몰랐던 세상이 말한다 / 어쩜 그리 추잡한 인생은 잘도 간다 /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을 먹어버리고 싶어 / 여기에 없는 너를 여기에서 본다 / 변함없는 나의 노래 그칠 줄을 모르네 / 주식 몰라 정치 몰라 혁명 몰라 나밖에 몰라 / 아홉시 아홉시 아홉시체가 걸어가요 / 남자만 만나면 확 달라지는 불여우 / 외로워지지 않으려면 계속 걸어야 했어 / 나는 너라는 열쇠다 / 찡그린다 발버둥 친다 보고 싶던 너를 잡지 못한다 / 세상을 흔들어 가짜는 탄로나 진짜는 달라 / 사실 어젯밤도 그대 아닌 사람과 사실 내일 밤도 그대 아닌 사람과 / 운명으로 친다면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 잔인한 너의 혀는 시뻘건 피를 마시며 오늘을 노래하는가 / 그 가슴 뛰던 시간들 그대는 기억할까 / 영문도 모르고 만주로 갈 때도 온전히 나는 살아있었네 /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 노래여 잠에서 깨라

‘텐아시아’에서는 매주 10장의 앨범을 선정해 ‘요주의 10음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고 있다. 매 기사의 제목으로 쓰인 노래 가사를 이어붙이니 위와 같다. 지난 4월 13일부터 12월 6일까지 총 24회의 기사를 통해 240장의 앨범을 소개했다. 그 중 2013년 결산과 함께 30장의 국내 음반을 골라봤다.

이승열 ‘브이(V)’
이승열은 정말로 변신이 절실했나보다. 이승열의 팬이라면 유앤미블루 시절 앨범부터 전작인 ‘와이 위 페일(Why We Fail)’까지의 음악과 이번 ‘브이(V)’의 음악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이승열의 라이브를 봤을 때부터 도대체 어떤 차기작을 내놓으려고 저리도 심각하고,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을 들려줄까 생각했다. 치열한 음악적 탐구와 고민의 산물로 여겨지는 새 앨범에서 이승열은 기존의 자신을 뒤엎는 음악을 들려준다. 이제까지 이승열의 음악이 영미 록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면 ‘브이’에서는 이를 벗어나고 있는 것. 그는 단보우의 이국적인 사운드와 아랍풍의 보컬, 그리고 분절된 밴드 사운드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꺼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승열 역대 앨범 중 가장 난해한 경우로 분류될지 모르겠지만 혼돈 속에서 그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위 아 다잉(We Are Dying)’ ‘후?(Who)’ ‘피어(Fear)’ ‘사이닉(Cynic)’ 등의 곡들은 반복해 청취할수록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2013년 최고의 앨범’ 후보로 거론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선우정아 ‘It’s Okay, Dear’
선우정아는 독특한 이력의 뮤지션이다. 2NE1의 ‘아파’, GD&TOP의 ‘오 예(Oh Yeah)’를 만든 작곡가임과 동시에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 러쉬 라이프의 보컬을 맡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극과 극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음악적 오지랖은 출중한 음악으로 귀결된다. 선우정아는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 부를 줄 아는 아티스트다. 어린 소녀가 나를 봐 달라고 조르는 듯한데, 그 음악적 완성도는 대단하다. 가령 ‘퍼플 대디(Purple Daddy)’와 같은 노래는 선우정아가 아니고서는 국내에서 만들어내기 힘든 음악일 것이다. 올해 등장한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뮤지션.

김오키 ‘Cherubim’s Wrath’
갑자기 튀어나온, 순도 높은 아방가르드 프리 재즈 앨범. 작년부터 한국 재즈연주자들의 앨범 발매가 급격히 늘었다. 양적 성장은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법이라지만, 김오키의 ‘케루빔즈 레스(Cherubim’s Wrath)’는 그런 논리에 따라 나온 앨범이 절대 아니다. 이것은 시류와 상관없이 개인의 의지와 노력(또는 투지)으로 인해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힙합 비보이 출신이라는 김오키는 관악기에 관심을 가지다가 프리재즈에 경도됐다고 한다. 오키나와 여행에서 깨달음을 얻고 김오키(오키나와 김)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일단 앨범에 대해 말하자면 ‘너와 나의 음모론’, ‘꼽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영희마음 옥희마음’은 찰스 밍거스 식의 장엄함과 오넷 콜맨과 같은 이유 있는 자유분방함, 분노를 떠올리게 된다. ‘오리온 스타 하우스’에서는 왜색(倭色)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니, 왜색이라기보다 동양적인 재즈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김오키와 그의 밴드 ‘동양청년’은 한국 땅에서 어떻게 이런 음악을 하게 됐을까?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한 앨범.

샤이니 ‘Why So Serious? - The Misconceptions of Me’
아이돌그룹이 두 장짜리 정규앨범을 내놓다니! 이건 분명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 현존하는 보이밴드 중 최고의 대세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물량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지난 2월에 나온 3집의 1부 ‘드림 걸- 더 미스콘셉션 오브 유(Dream Girl - The Misconceptions of You)는 ‘컨템퍼러리 밴드’라는 지향점에 걸맞게 팝적인 노선을 취했다. 새 앨범은 전작과 달리 매 곡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1부가 가벼웠다는 것이 아니다. 1부가 ‘브라이트사이드’였다면 2부는 ‘다크사이드’라 할 만큼 분위기의 차이가 있다. 1, 2부의 공통점은 기존 보이밴드의 음악과 비교를 불허할 만큼 놀라운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 ‘샤인(SHINE, MedusaⅠ)’과 ‘데인저러스*Dangerous, MedusaⅡ)’, ‘오르골(Orgol)’과 같은 곡은 분명히 기존 아이돌 댄스에서 진보된(progressive) 면모를 보이고 있다. 올해 나온 아이돌그룹의 앨범 중 완성도 면에서 단연 우의를 점하는 앨범.

써드스톤 ‘Psychemoon’
결론부터 말하면 놀라운 질감의 사운드가 담긴 순도 높은 사이키델릭 록 앨범이다. 광폭함과 몽환, 그리고 절절함이 이토록 조화를 이룰 수 있다니! 첫 곡 ‘Door’를 마주치면 마치 21세형 지미 헨드릭스의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써드스톤의 3집 ‘싸이키문(Psychemoon)’. 3인조 밴드 써드스톤은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 곡 ‘써드 스톤 프롬 더 선(Third Stone From The Sun)’에서 팀 이름을 따왔다. 정규 1집 ‘써드 스톤(Third Stone)’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장르를 시도하고, 2집 ‘아임 낫 어 블루스 맨(I’m Not A Blues Man)’에서는 블루스 록으로 팀의 초점을 맞췄다. 홍대 신에서 이미 연주력을 인정받은 상태였지만, 음반에서는 인상적인 음악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리더 박상도는 ‘신내림’이라도 받았는지, ‘싸이키문’에서 지난 앨범들을 먼 행성으로 던져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보도자료에 보면 박상도는 미국 생활 중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어떤 흑인 기타리스트의 연주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경지를 봤고, 그것을 계기로 실력이 한 단계 상승하게 됐다고 한다. 음악을 들어보면 이 소설 같은 일화가 정말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미쳐서 녹음한 듯한 사운드가 내공을 타고 흐른다.

회기동 단편선 ‘처녀’
전작인 정규 1집 ‘백년’에 담긴 무시무시한 음악을 체험한 터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회기동 단편선은 ‘백년’ 이후 밴드 활동 등 야심찬 후속 작을 기획했다. 그런데 뭔가 잘 되지 않았나 보다. ‘처녀’가 ‘백년’ 이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소박한 계기에 비해 앨범에 담긴 다섯 곡은 상당히 스케일이 큰 구성을 보여준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일까? 과잉된 면도 느껴진다. 회기동 단편선은 통기타 한 대만 치면서 노래해도 나름의 색이 나올 만큼 자의식이 강한 뮤지션이다. ‘처녀’는 그 자의식 위로 표류하는 아이디어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 아이디어들이 워낙에 폭주하다보니 처녀작은 아니지만, 마치 처녀작 같은 느낌도 든다. 현재로서 창작의 아이디어가 샘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아티스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처녀’가 그에게는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시기적절한 시행착오가 아닐지?

에프엑스 ‘Pink Tape’
에프엑스(f(x))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장난스럽게 말하면 ‘아스트랄, 병맛’의 걸그룹, 거창하게 말하면 대안의 걸그룹.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10대들의 언어를 가사로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꽤 음악적으로 풀어냈다. 가사가 ‘아스트랄’했다면 사운드는 훌륭했고, 어떤 면에서 소녀시대보다 진취적이었다. 에프엑스가 ‘아브라카다브라’를 노래한 브라운아이드걸스, ‘지(Gee)’ 시절의 소녀시대 이후 평론가들이 무척 아끼는 몇 안 되는 걸그룹이 된 것은 바로 음악적인 완성도 때문이다. 정규 2집 ‘핑크 테이프(Pink Tape)’는 핑크색 VHS비디오 모양의 음반 디자인부터 에프엑스답다. 음반 디자인처럼 음악에서도 복고적인 색이 강하다. ‘첫 사랑니’, ‘킥(Kick)’이 기존의 전자음악 노선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그널’, ‘에어플레인(Airplane)’과 같은 곡들에서는 전형적인 디스코, 신스팝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함을 풍성함으로 보든 애매함으로 보든 팬들의 자유다. SM엔터테인먼트로서는 여타 걸그룹들이 차고 올라오는 가운데 이번 에프엑스의 새 앨범을 통해 선두를 공고히 하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파격보다는 듣기 편안한 곡들이 늘면서 소녀시대와 구분이 애매모호해진 것은 조금 아쉬운 일. 가령 ‘프리티 걸(Pretty Girl)’ ‘미행’과 같은 곡은 매우 잘 만들어진 노래.

정란 ‘Nomadism’
정란의 데뷔앨범. 대선 전날인 작년 12월 18일에 운 좋게도 이 앨범을 발매되기 전에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정란과 몇몇 음악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 음악을 들었으니 정란에게 뭔가 말해줘야 할 텐데, 딱히 떠오르는 비교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007 제임스 본드 OST의 느낌”이라고 말해줬더란다. 실제로 이 앨범은 마치 007 제임스 본드의 역대 음악처럼 어떠한 일관된 색은 지니고 있으며 상당한 스케일, 그리고 놀라운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일관된 색’은 정란의 것이며, ‘놀라운 완성도’는 프로듀서 루베 사마마의 것일 것이다. 정란의 색은 “머리를 만져주고 쓰다듬으면 간지럽게 느낄 거야”라고 노래하는 가사처럼 매혹적이고, 듣는 이의 얼굴에 홍조를 띠게 한다.

아이유 ‘Modern Times’
여동생에서 여성으로 변신을 보여주는 앨범. ‘아이유 2.0’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10대 시절 아이유는 동년배 중 거의 유일하게 혼자서 2시간 이상의 단독콘서트를 소화해낼 수 있는 가수였다. 갈 길이 먼 가수이기에 이미지 변신이 급선무였을 터, 스물한 살에 내놓은 이 앨범은 여동생 이미지를 떨쳐내기에 충분한 내용물을 담고 있다. 일단 음악적으로 보면 타이틀곡 ‘분홍신’의 스윙 리듬을 비롯해 ‘을의 연애’의 집시 스윙, ‘오블리비에이트(Obliviate)’, ‘하바나(Havana)’에서는 브라질리언 뮤직 등 장르음악의 색이 강하다. 아이유의 목소리를 빼고 악곡만 본다면 성인들이 향유하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뮤직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입술사이’에서는 살짝 농염함도 엿보이는데 노래하면서 교태를 부리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아직 섹시함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유는 이러한 음악들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내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풍부한 노래를 들려준다. 이 정도 소화력이라면, 차후 어떤 음악을 시도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드린지 오 ‘Drooled and Slobbered’
드린지 오는 통기타 한 대와 노래가 주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뮤지션이다. ‘홍대에 널리고 널린 통기타 싱어송라이터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면 간단하게 ‘목소리와 기타연주가 다르다’고 대답할 수 있다. 드린지 오의 노래와 연주는 1940~60년대 영국의 ‘포크 리바이벌’ 피어난 브리티시 포크에 가깝다. 더 구체적으로는 당시 활동했던 포크음악의 거장들인 버트 잰쉬(Bert Jansch), 존 랜번(John Renbourn)의 음악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연주 스타일은 홍대는 물론이고 국내 프로 연주자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성격의 것이다. 그 위로 드린지 오의 목소리가 얹어지면 요술과 같은 음악이 완성된다. 결과적으로 드린지 오의 음악은 독특하고, 고즈넉하며, 편안하다. ‘드룰드 앤드 슬러버드(Drooled and Slobbered)’에서 드린지 오는 일상에서 느낀 이런저런 심상들을 노래에 녹여냈다. 드린지 오가 음악에 담은 감상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그 음악에는 일상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깊이가 있으며 짐짓 우아함도 느껴진다. 가령, 드린지 오가 “군 입대 할 때 끝까지 연병장에 서있던 그 상황이 뜬금없이 꿈에 나타나서 만들게 됐다”고 말하는 ‘파이나이트(Finite)’를 듣고 ‘군대’라는 단어를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곡에서는 ‘크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연상된다. 이처럼 드린지 오의 음악은 청자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음악의 장점이 십분 살아있기도 하다.

이적 ‘고독의 의미’
마흔 살을 맞은 이적은 고독감을 느꼈나보다. 새 앨범에는 제목처럼 고독감이 느껴지는 곡들이 다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즐거워 보였는데, 가슴 한 쪽에는 고독감이 있었을까? 그 고독감이 최근 가요계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이적은 패닉, 솔로, 카니발, 긱스 등을 통해 늘 완성도에서 타협이 없는 결과물을 들려줘왔다. 발라드부터 펑크(funk), 록에 이르기까지 음악적인 소화력에서는 솔로 아티스트 중에는 독보적이란 표현을 써도 되겠다. 정규 5집 ‘고독의 의미’에서 이적은 최근 EP 형태의 미니앨범, 싱글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는 가요계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내부의 음악을 촘촘히 쌓은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돌아왔다. 타이틀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요 근래 찾아보기 힘든 뜨거운 발라드. 감정이 격하게 터져 나오는 노래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적의 곡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타이거JK가 랩으로 참여한 ‘사랑이 뭐길래’ 역시 최근 가요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랩 피쳐링의 공식에서 비껴난다. 실험적인 곡들도 눈에 띄는데 정재일이 피아노로 참여한 ‘병’은 패닉 2집 시절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활동 초기에 과감한 음악을 선보였던 이적을 좋아하는 팬들이 반가워할만한 노래.

엑소 ‘XOXO (Kiss &Hug)’
SM엔터테인먼트는 엑소(Exo)를 통해 여러 가지를 실험 중이다. 엑소케이, 엑소엠 두 가지 버전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공략한다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그런데 정작 음악적인 면에서는 어떤 새로움을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가령 엑소케이, 엑소엠의 ‘Mama’와 같은 곡이 이전 SM 선배들의 곡에 비해 신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감지했는지 정규 1집에서는 보다 진취적인 모습이 엿보인다. 첫 싱글 ‘늑대와 미녀’의 뮤직비디오, 무대 구성부터 상당히 의욕적이다. 특히 12명이 동시에 합을 맞추는 엑소의 군무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위압감을 전한다. 최근 소녀시대, 샤이니의 새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 변화를 취하고 있는 SM은 엑소를 통해서도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 하는 모양이었고, 그것은 2013년을 지나면서 현실이 됐다. SMP는 엑소를 통해 다시 한 번 진화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틴에이저’들은 엑소의, 엑소에 의한, 엑소를 위한 군중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조용필 ‘Hello’
조용필의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은 음원차트 1위를 넘어 이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분석되고 있다. 음악만 놓고 보면 밝고 경쾌하다. 아마도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힘을 뺀 앨범이 아닐까 한다. 조용필의 전작인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만 들어봐도 상당히 스케일이 크고 심각했다. 그런데 조용필의 공연장을 찾거나 앨범을 구입하는 열성 팬이 아닌, 그냥 조용필의 왕년의 히트곡을 좋아하는 정도인 일반적인 한국사람 중에 18집 수록곡 하나라도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사람들이 조용필의 신곡을 즐기고 있다. 조용필이 내심 바랐던 것은 ‘군림하는 가왕’이 아니라 ‘사랑받는 가수’가 아니었을까? 거장이 컴백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헬로(Hello)’는 거장이 자신을 낮추고 대중의 기호에 맞게 돌아왔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컴백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윤선 ‘Lento’
최근 나윤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여태껏 이 땅에서 재즈 뮤지션에게 이 정도로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이게 단지 ‘한류’ 내지 ‘국위선양’이 조명 받는 사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윤선의 표현력은 재즈를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의 가슴도 뜨겁게 만들 정도로 대단하다. 처음 그녀의 공연을 봤을 때에는 무당과 같은 귀기에 놀랐다. 이후 뮤지컬을 보는듯한 퍼포먼스에 요동쳤으며, 나중에 얼핏 가요적인 느낌의 친숙함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더라. ‘느리게’라는 뜻의 앨범 명처럼 8집 ‘렌토(Lento)’에서 나윤선은 내부로 수렴하는 노래를 들려준다. 물론 ‘모멘토 매지코(Momento Magico)’와 같은 곡에서는 이제 자신의 소리라 할 수 있는 현란한 스캣을 들려주기도 한다. 나인 인치 네일스를 커버한 ‘허트(Hurt)’는 3집 ‘다운 바이 러브(Down By Love)’에 담긴 ‘매닉 디프레션(Manic Depression)’(지미 헨드릭스 곡) 만큼이나 멋지다. ‘아리랑’이 가슴을 움직였다면 나윤선의 전작들도 들어봤으면 한다. 재즈를 몰라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박성연 ‘Park Sung Yeon With Strings’
‘한국 재즈의 대모’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24인조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앨범. 일흔을 앞에 둔 박성연은 앨범재킷에서 활짝 웃고 있고, 앨범 속지에는 1969년 첫 공연의 사진, 해먼드오르간의 거장 잭 맥더프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도 있다. 사진 속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앨범에는 사진보다 아름다운 노래들이 담겼다. 박성연의 노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숙성되는 재즈 보컬의 표상과도 같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듯이 야누스를 꿋꿋이 지켜온 그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을 통해 녹음된 박성연의 노래는 가슴 저리다 못해 뜨겁게 적시는 감동을 전한다. 최희정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은 오케스트라와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인 송영주(피아노), 최은창(베이스), 오종대(드럼)의 앙상블은 박성연의 노래를 훌륭하게 보좌하고 있다. 무반주로 노래하는 ‘Danny Boy’에서 목소리의 떨림, 숨소리 하나하나는 박성연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재즈는 마법이 아니지만, 박성연의 노래는 마법과 같다.

아시안 체어샷 ‘탈’
결론적으로 말해서, 놀라운 데뷔앨범이 나왔다. 3인조 밴드 아시안 체어샷은 시조새 출신의 황영원, 네스티요나 출신 손희남, 배다른 형제 출신 박계완이 뭉친 ‘중고신인’ 밴드. 아마 ‘초짜’ 밴드의 데뷔앨범이라고 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EP에 실린 네 곡 안에는 록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팀 이름처럼 동양적인 록을 들려주는데, 기존에 시도된 ‘한국적인 록’과는 궤를 달리 한다.(팬들 사이에서는 ‘사찰 메탈’이라 불린다고) 아마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 명의 연주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헤비하고 폭발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며 처연한 멜로디가 반전을 전한다. 특히 기타리스트 손희남의 톤 메이킹은 주목할 만하다. ‘소녀’는 마치 ‘헤비한 비틀즈’같다. 내년 초 스매싱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뢰더가 프로듀서로 나선 정규 1집이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

지드래곤 ‘쿠데타(COUP D’ETAT)’
지드래곤은 자기 자신을 깨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목표라서 앨범 이름을 ‘쿠테타’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올해를 대표할만한 히트곡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지드래곤의 이런 말들을 자신만만하게 던질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한 것일까? 음악적으로 보면 전작 ‘원 오브 어 카인드(One Of A Kind)’에 이어 새 앨범 역시 ‘지드래곤이 해석하는 힙합 월드’의 연장선에 있다. 전작이 지드래곤의 랩 스타일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였다면, 이번 앨범은 지드래곤의 음악이 다른 아티스트들과 합쳐졌을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이 잘 나타난다. 미시 엘리엇, 디플로, ‘할렘 쉐이크’ 열풍의 주인공 바우어 등의 참여로 인해 지드래곤은 동시대 팝 트렌드까지 소화를 하고 있다.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우 1995년에 나온 4집에서 동시대 미국에서 유행하는 힙합, 록 스타일을 골고루 선보였는데(그것을 대중적으로 히트시키는 데까지 성공했고 올타임 리퀘스트로 남겼다), 지드래곤 역시 그러한 시도를 행하고 있다. ‘쿠데타’, ‘R.O.D.’, ‘세상을 흔들어’ 등의 곡들이 동시대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오마주 정도로까지 들리는 ‘너무 좋아(I LOVE IT)’는 근래 보기 드문 섹시한 곡으로 멜로디와 함께 가사의 센스도 상당하다. 지드래곤은 전 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 YG 프로덕션 팀에서 지드래곤의 참여 비중이 어느 정도일지 많은 이들이 궁금할 것이다.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New Beginning’
서영도는 국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베이시스트 중 한 명이다. 레코딩, 방송, 콘서트를 종횡무진하며 세션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으니, 한국 사람이라면 알게 모르게 그의 연주를 한 번씩은 들어봤으리라.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의 공연에서 실제로 그를 처음 봤으며, 서영도 트리오의 ‘서클(Circle)’의 멋진 연주를 듣고 팬이 됐다. ‘브리지(Bridge)’에서 집단 즉흥에 가까운 실험(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록· 퓨전)을 했던 서영도는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을 통해 즉흥 연주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파헤쳐 왔다. 이번 앨범은 제목 ‘뉴 비기닝’처럼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의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첫 곡 ‘445-2’부터 재즈 록· 퓨전이 아닌, 테마가 선명한 모던재즈를 선사하고 있으며 이후의 곡들에서도 즉흥적이기보다는 악곡의 구조가 명확한 음악이 실렸다. 굳이 심각한 재즈 마니아가 아니라고 해도 멜로디라인이 귀에 잡힐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단조롭거나 다이내믹이 떨어지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작곡의 의도와 연주자의 해석력이 멋지게 만났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피아니스트 민경인이 작곡한 ‘새벽의 세레나데’는 실제로 새벽에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곡.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작’에서는 마치 자코 패스토리우스의 빅밴드 ‘워드 오브 마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연주가 흐른다.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의 또 다른 시작을 보여주는 듯한 멋진 장면.

조커 ‘Kaleidoscope’
결론부터 말하면 이 앨범은 새로운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가요에 컨템퍼러리 재즈의 어프로치를 결합하는 정도의 기준 말이다. 조커(이효석)는 이소라, 김범수, 바비킴, 임재범 등 유명 가수들의 앨범 및 라이브 건반 세션으로 활동해왔다고 한다. 대개 이 정도의 정상급 세션연주자들의 경우 실용음악과 등을 거치며 대중음악에 대한 아카데믹한 이해도를 깊이 있게 습득한다. 이는 분명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필드로 오면 정형화된 음악을 하는 것이 다반사이고, 공부를 많이 한 뮤지션에 대한 반감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조커는 기본적으로 멜로디, 화성, 리듬을 쓰는 데 있어서 기존 가요의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고 있다. 조커를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탈피’를 다분히 음악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되짚어보자면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김현철, 고찬용 등 선배들이 해온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행보라 수 있겠다. 이 정도로 과감한 어법을 지닌 가요 앨범을 내기까지는 음악적 테크닉 외에 상당한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한국 최고의 세션 기타리스트인 홍준호는 이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을 것 같다.

장필순 ‘Soony Seven’
무려 11년만의 새 앨범이다. 장필순이라는 이름은 지금 이 시대에서 어떤 의미일까? ‘자연 리버브’를 머금은 신비로운 목소리에서 어느 순간(정확히 말하면 5집)부터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표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음악인들과 팬들에겐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고마운 존재다. 그녀가 새 앨범을 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들이 참 많을 것이다. 음악적으로 봤을 때 5집과 6집(장필순, 조동익, 윤영배가 힘을 합쳐 만든 앨범으로 장필순은 ‘정말 온전히 마음을 쏟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회상한다)이 이룬 성과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하게 기록될 만큼 대단했다. 차기작인 7집은 이전에 비해 보다 다양한 모습의 장필순을 만날 수 있다. 첫 곡 ‘눈부신 세상’에서는 기존과 다른 장필순의 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휘어진 길’에서는 중간에 조민구의 랩도 들어간다. 오랜만에 현역으로 돌아온 장필순의 음악적 동반자 조동익은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심혈을 기울인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했다고 한다. 색다른 시도도 있지만, 장필순의 목소리는 거기 그대로 있다. 이규호가 만든 ‘맴맴’은 마치 장필순이 만든 노래처럼 친숙하게 들린다. 고찬용이 만든 가스펠 풍의 곡 ‘난 항상 혼자 있어요’가 장필순의 새로운 발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윤영배 ‘위험한 세계’
윤영배의 행보가 꽤 빠르다. 2010년에 마흔셋의 나이로 데뷔앨범 ‘이발사’를 발표해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작년에 나온 ‘좀 웃긴’ 이후 약 1년 반 만에 세 번째 앨범을 들고 나왔다. 그간 윤영배는 앨범을 통해 비교적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왔다. 새 앨범은 ‘위험한 세계’라는 제목에 걸맞게 사회에 대한 말을 거침없이 던진다. ‘자본주의’, ‘선언’, ‘점거’라는 제목만 보면 민중가요 노래패의 앨범 같은데 실제로 민중가요로 분류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사실 윤영배는 해방촌, 팔당 두물머리 등 집회현장을 돌면서 노래를 만들고 부른 전형적인 프로테스트 포크 뮤지션의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에둘러 표현하는 가사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메시지보다 서정성이 더 먼저 들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앨범은 메시지가 보다 과감해졌다. 성격 좋아 보이는 그지만 제주도에서 편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윤영배를 필두로 이상순, 김정렬, 이덕산, 박용준이 함께 한 밴드의 사운드 질감은 과거 조동익의 음악과 닮은 듯 달라 보인다. 윤영배는 소리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뮤지션이다. 가령 ‘빈 마을’의 경우 보다 입체적인 사운드 공간감을 들려준다. 귀가 행복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음반.

김창기 ‘내 머리 속의 가시’
김창기의 새 앨범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참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동물원보다 김창기 개인의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내 머리 속의 가시’라는 제목, 그리고 앨범재킷 속 고통스러운 표정은 의아했다. 무엇이 그를 괴롭혔을까? 김창기는 “또 실패할까봐, 즉,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들이 될까봐 두려웠다”고 설명하는데, 그가 상업적인 미진함을 두려워하는 지는 미처 몰랐다. 작년에 어렵게 구한 김창기·이범용의 공동작품 ‘창고’를 들었을 때는 그가 그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새 앨범의 가사는 자기고백으로 들리는데 내용은 어둡지만 목소리 톤은 그리 어둡지 않게 들린다. 황망해야 황망한 노래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김창기에게는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자신이 평소 가까이 하고 즐기는 음악 이야기가 더 궁금한 시점이다.

바세린 ‘Black Silence’
6년 만에 발표되는 바세린의 새 앨범이 대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신뢰하는 평론가 중 한 명(매우 까다롭기로 소문난)에게 전해 들었다. 기대감을 최대한 억누르고 평정심을 가지고 앨범을 들어본다. 첫인상을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의 대서사시다. 악곡에 있어서 전작들에 비해 한층 스케일이 커졌다. 기타 리프, 보컬의 그로울링에서 나오는 사운드의 질감은 과거의 트랜디한 뉴 메탈을 넘어서 매우 헤비하고, 중후하기까지 하다. 1996년에 결성된 바세린은 인디 신에서 피어난 뉴 메탈(당시엔 하드코어란 잘못된 명칭으로 불렀다) 사운드를 굳건히 지켜온 밴드다. 작년부터 당시 활동하던 몇몇 뉴 메탈 밴드들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첨가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며 컴백을 했다. 바세린 역시 국악, 덥스텝과 메탈을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헤비니스라는 본질을 잃지 않고 있다. 아니, 잃기는커녕 과거에 비해 더욱 강렬하고 단단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그동안 와신상담의 세월이라도 가진 것일까? 작금의 한국 록 신에서 이런 탄탄한 완성도를 지닌 메탈 앨범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할 뿐이다.

글렌체크 ‘Youth’
일렉트로 팝이 대세를 이룬 최근 대중음악계에서 이 계열 최고의 스타는 바로 글렌체크다. ‘글렌체크’라는 이름만 들어도 좋아서 비명을 지르는 여성 팬들이 정말 많더라. 재작년 여름에 한 경연대회에서 3인조로 공연하는 글렌체크의 라이브를 처음 봤다. 당시 이들은 신인 급이었지만 탄탄한 사운드,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글렌체크는 록페스티벌, 댄스 페스티벌 등을 누비며 수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빼앗아버렸다. 이유가 뭐냐고? 공연을 보라. 최근에는 음악박람회 ‘뮤콘’을 통해 세계적인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부름을 받기도 해 해외활동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 정규 2집 ‘Youth’는 2장의 CD로 발매됐다. 밴드 셋으로 이루어진 CD1에는 청량감으로 가득한 복고적인 신스팝이 중심을 이루며, 일렉트로니카로 작업된 CD2는 트렌디한 클럽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글렌체크는 80년대 신스팝에서 최근의 일렉트로팝으로 이어지는 노선에서 매력적인 부분을 명민하게 캐치해낼 줄 안다. 그것을 가지고 제대로 놀기 때문에 열광을 이끌어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

김목인 ‘한 다발의 시선’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목소리는 참 선하다. 동네 착한 형 같다.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착한 형 말이다. 처음에 세 곡 정도를 듣다보면 “뭐야? 지난 앨범하고 똑같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곡이 거듭될수록 보다 깊어지고 단단해진 노래가 들려온다. 김목인은 자신의 색을 확실하게 가진 아티스트다. ‘김목인 표’ 메시지,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작 ‘음악가 자신의 노래’에서 음악가와 음악가 주변의 상황,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음악 신(scene)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면, ‘한 다발의 시선’에서는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별다를 것은 없다. 보도자료에 실린 김태춘의 “대부분의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지루한 자신의 얘기를 특별한 것처럼 꾸미려고 발버둥 칠 때 그는 그 자신만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평범하게 이야기한다”라는 말이 과장됨 없는 표현인 것 같다. ‘이야기꾼’으로서도 곱씹을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멜로트론을 효과적으로 가미한 ‘새로운 언어’, ‘결심’은 상당히 매혹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마지막 곡 ‘흑백사진’까지 듣고 나면 서서히 김목인의 어법에 중독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 ‘The Human Psyche’
송창열, 문채영의 일렉트로 팝 듀오 카프카(K.AFKA)의 6년만의 새 앨범. 지금이야 일렉트로니카를 응용한 음악들이 흔하디흔하지만 약 10년 전 카프카가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음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구나 카프카는 단순히 전자음악으로 설명할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처럼 초현실적이고, 또 외로운 존재였다고 할까? 새 앨범에도 역시 카프카 특유의 로킹(rocking)하고 촘촘한 질감의 사운드가 잘 살아있다. 카프카의 매력이라면 일반적인 트립 합이나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전형적인 진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카프카를 들으면서는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카프카처럼 소리의 질감과 구성의 드라마틱함 양쪽으로 청자를 만족시키는 팀도 드물다) 헤비하고, 때론 댄서블한 음악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이번에도 귀를 쫑긋 하고 들을 수밖에. 카프카가 낯선 이들에게는 음악이 다소 괴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열고 큰 볼륨으로 들어볼 것으로 권한다.

위댄스 ‘Produce Unfixed Vol. 1’
위보(보컬), 위기(기타)의 2인조 밴드 위댄스는 몇 년 전부터 인디 신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규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자신들이 CD를 직접 구워 판매해왔다. 작년 홍대 공중캠프에서 처음 본 위댄스의 CD는 ‘난장판’, ‘선명해지는 순간’ 등 곡 제목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흰 종이와 함께 비닐에 담겨 있었다. 조악해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음악만은 독특하고 생기가 넘치더라. 레귤러 앨범의 형태로 나온 ‘Produce Unfixed Vol. 1’에는 총 9곡이 담겼다. 위댄스는 2인조이기에 평소 공연에서 맥 컴퓨터로 일렉트로닉 비트를 깔고 공연을 했는데 이 앨범에서는 드러머 김간지가 참여해 리듬을 담당하고 있다. 위댄스를 아는 이들에게는 다른 질감의 사운드가 신선할 테고, 위댄스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역시나 독특한 감흥을 전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음악.

야야 ‘잔혹영화’
야야(夜夜)의 2집. 야야의 음악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성격의 것이다. 수용되기 힘들다는 말이 더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었다. 2010년에 EBS ‘스페이스 공감’이 진행하는 ‘올해의 헬로루키’에서 대상을 받으며 최고의 신인으로 떠오른 야야가 작년 KBS 밴드 서바이벌 ‘탑밴드’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이란 혹평으로 낙방했던 것. 소위 음악 전문가 집단에서 이런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뮤지션이 또 있을까? 이게 훈장이라면 훈장이겠다. 다양한 장르를 뒤섞은 하이브리드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야야의 음악은 사실 이웃나라 일본만 가도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다.(가령, 동경사변을 좋아하는 일본 음악 팬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음악이었다) 야야와 시야 2인조였던 야야는 이제 야야 1인 체제로 돌아왔다. 홀로서기 후 첫 앨범이지만 음악의 깊이와 독창성은 더욱 짙어졌다. 음악적으로나, 구성 면에서나 전보다 완결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기승전결이 있는 구조로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한 듯한 포만감이 느껴진다. 속지에 담긴 야야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면서 음악을 들어보길 권한다.

박진영 ‘Halftime’
가수 박진영의 10집. 첫 싱글 ‘사랑이 제일 낫더라’를 들었을 때에는 역시 박진영은 R&B를 할 때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하프타임(Halftime)’에서 자신의 업적을 써내려간 가사를 봤을 때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식의 가사는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반복해서 들어보니 그것은 일종의 ‘간증’이더라. 순수한 자기 고백이라고 생각하니 앨범 전체가 단숨에 지나갈 정도로 듣기 편했다. 장르 앨범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블랙뮤직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녀는 몰라요’에서는 꽤 고전적인 소울에 접근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예뻤다’ 이후로 블랙뮤직에 방점을 찍고 자신의 음악, JYP의 음악을 해온 박진영은 드디어 소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가스펠에까지 도달한 것일까? 음악인생의 분기점에서 내놓는 새 앨범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시도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참고로 CCM 코너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은 앨범.

들국화 ‘들국화’
작년 5월 마리아칼라스홀에서 들국화 공식 재결성 기자회견을 가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 세 명은 신곡 발표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당시 최성원은 “신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동이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신곡을 하던, 옛날 곡을 하던, 외국 곡을 커버하던지 간에 감동을 주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신곡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은 다른 기획사에서 신경 쓰니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다만 1집을 뛰어넘는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매일 그대와’, ‘제발’과 같은 곡들을 뛰어넘는 들국화의 새로운 노래가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위에 나열한 곡들은 30년 가까운 오랜 기간의 검증을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평가받는 곡들이다. 그런데 이 곡들을 뛰어넘는 곡들이 나올 수 있다고? 아무리 전인권의 노래가 부활을 했고, 주찬권이 뜨겁게 드럼을 치며, 최성원이 음악적 성정을 유지한다고 해도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터. 그런데 불가능은, 가능이 됐다. 새 앨범 ‘들국화’에 실린 다섯 곡의 신곡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 ‘들국화로 필래’가 그 증거. 들국화의 영광을 이어가는 노래가 다시금 세상에 나오다니,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는 또 하나의 길이길이 사랑받을 ‘들국화 클래식’을 얻은 것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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