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써드스톤, 효린, 희영(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네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노래여 잠에서 깨라, 노래여 잠에서 깨라들국화 ‘들국화’
들국화 ‘노래여 잠에서 깨라’ 中
작년 5월 마리아칼라스홀에서 들국화 공식 재결성 기자회견을 가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 세 명은 신곡 발표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당시 최성원은 “신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동이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신곡을 하던, 옛날 곡을 하던, 외국 곡을 커버하던지 간에 감동을 주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신곡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은 다른 기획사에서 신경 쓰니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다만 1집을 뛰어넘는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매일 그대와’, ‘제발’과 같은 곡들을 뛰어넘는 들국화의 새로운 노래가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위에 나열한 곡들은 30년 가까운 오랜 기간의 검증을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평가받는 곡들이다. 그런데 이 곡들을 뛰어넘는 곡들이 나올 수 있다고? 아무리 전인권의 노래가 부활을 했고, 주찬권이 뜨겁게 드럼을 치며, 최성원이 음악적 성정을 유지한다고 해도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터. 그런데 불가능은, 가능이 됐다. 새 앨범 ‘들국화’에 실린 다섯 곡의 신곡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 ‘들국화로 필래’가 그 증거. 들국화의 영광을 이어가는 노래가 다시금 세상에 나오다니,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는 또 하나의 길이길이 사랑받을 ‘들국화 클래식’을 얻은 것이다.
써드스톤 ‘Psychemoon’
결론부터 말하면 놀라운 질감의 사운드가 담긴 순도 높은 사이키델릭 록 앨범이다. 광폭함과 몽환, 그리고 절절함이 이토록 조화를 이룰 수 있다니! 첫 곡 ‘Door’를 마주치면 마치 21세형 지미 헨드릭스의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써드스톤의 3집 ‘싸이키문(Psychemoon)’. 3인조 밴드 써드스톤은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 곡 ‘써드 스톤 프롬 더 선(Third Stone From The Sun)’에서 팀 이름을 따왔다. 정규 1집 ‘써드 스톤(Third Stone)’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장르를 시도하고, 2집 ‘아임 낫 어 블루스 맨(I’m Not A Blues Man)’에서는 블루스 록으로 팀의 초점을 맞췄다. 홍대 신에서 이미 연주력을 인정받은 상태였지만, 음반에서는 인상적인 음악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리더 박상도는 ‘신내림’이라도 받았는지, ‘싸이키문’에서 지난 앨범들을 먼 행성으로 던져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보도자료에 보면 박상도는 미국 생활 중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어떤 흑인 기타리스트의 연주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경지를 봤고, 그것을 계기로 실력이 한 단계 상승하게 됐다고 한다. 음악을 들어보면 이 소설 같은 일화가 정말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미쳐서 녹음한 듯한 사운드가 내공을 타고 흐른다.
효린 ‘Love & Hate’
올 한해 씨스타의 활약은 대단했다. 2013년을 기점을 인기 면에서는 거의 소녀시대 다음 주자로 떠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스타의 강점은 섹시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멜로디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것. 그 멜로디를 표현해내는 표현력, 가창력에 있어서 효린의 노래는 여타 걸그룹 멤버들 중 우위에 있다. 아이돌그룹에서 솔로로 앨범을 내는 경우는 흔하지만 EP가 아닌 10곡이 꽉 찬 정규앨범을 내는 경우는 드물고, 또 그 안에서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녹여내는 경우는 더 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Love & Hate’에 담긴 10곡은 효린이 가진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효린은 R&B와 트로트의 감성을 둘 다 표현 가능한 보컬리스트라 할 수 있는데 이 앨범은 R&B 성향이 매우 강하다. ‘마사지’와 같은 트렌디한 곡부터, ‘Closer’와 같은 고전적인 소울에 이르기까지 너끈히 소화해내고 있다. ‘O.M.G’는 효린의 은근히 앙증맞은 음색을 잘 캐치해내고 있다. 앨범을 들어보면 더블타이틀 곡 ‘Lonely’와 ‘너밖에 몰라’가 오히려 여타 수록곡에 비해 가장 힘을 뺀 친숙한 느낌인데, 이것이 바로 씨스타의 방식.
희영 ‘Sleepless Night’
17살에 홀로 미국으로 떠난 희영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공연을 하다가 현지에서 앨범 제작까지 했다. 2010년 쯤 뉴욕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로부터 건네받은 희영의 EP ‘소 서든(So Sudden)’을 들었을 때는 뉴욕의 인디팝을 접하는 기분이었다. 재작년 희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녀는 한국의 대중음악은 잘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빌보드차트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뉴욕 브루클린의 인디 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더라. 작년에 정규 1집 프로모션을 하러 다시 한국을 찾은 희영을 만나 한국음악을 들어봤냐고 묻자 “홍대를 지나다니니 버스커버스커가 지겹게 나오더라.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희영은 뉴욕 인디 신에 뿌리를 둔 음악을 구사한다. 새 앨범 ‘슬립리스 나잇(Sleepless Night)’에서는 얼터 컨트리 풍의 스타일이 가미됐다. 뉴욕 외지 오래된 헛간과 교회에서 녹음했다는 1집은 달콤한 곡도 몇 개 보였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어두운 곡이 대부분이다. ‘안개가 낀 얼터 컨트리’라니, 한국 팬들에겐 지난 앨범보다 더 낯선 음악이 아닐까? 허나 낯설어질수록 희영의 음악은 더욱 깊어졌다.
강아솔 ‘정직한 마음’
여성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정규 2집.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강아솔은 작년에 나온 1집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이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강아솔을 찾아보면 특이하게도 바닷가에서 파도소리, 바람소리, 옹알대는 아가 소리를 배경으로 놓고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강아솔은 음악이 일상으로 얼마나 밀접하게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아솔의 목소리는 담백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마치 엄마 같다. 거부할 수 없는 누이처럼 노래한다. ‘정직한 마음’에는 앨범 제목처럼 정직한 음악이 담긴 것 같다. 음악이 정직하다니? 사실 음악만 들어선 이것이 정직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단지 예상할 뿐. 솔직한 음악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까발리면 되니까. 정직한 음악은 어렵다. 바로고 곧아야 하니까. 그러려면 음악도 삶도 그래야 한다. 강아솔은 그런 것 같다.
조영덕 트리오 ‘Attelage’
재즈 기타리스트 조영덕의 데뷔앨범. 조영덕은 ‘자라섬 국제 재즈 콩쿨’에서 대상과 베스트 솔로이스트를 수상하며 최근 한국 재즈 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영라이언(신인)으로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그의 데뷔앨범을 궁금해 했을 터. 앨범에서 조영덕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재즈 기타의 기본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준다. 재즈기타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비밥 재즈 기타의 기본(찰리 크리스찬으로부터 내려져온)을 짚어내고 있으며 장고 라인하르트를 커버한 ‘Django’s Tiger’으로 집시스윙까지 절묘하게 선보인다. 그 외 ‘운파월래’ ‘Subsequence’ 등의 자작곡을 통해 자기 나름의 코드 진행 및 해석력도 보여준다. ‘Downfall’, ‘The Sun Rise’ 그리고 칼라 블레이의 ‘Lawns’를 재해석한 연주에서는 리리컬한 표현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Attelage’에서도 나타나듯이 조영덕은 이번 앨범에서 최근 재즈 기타 트렌드을 쫓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보다는 재즈 기타의 기본, 그리고 과거 모던재즈의 이디엄들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고 있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펙터를 쓰지 않고 어쿠스틱의 맛을 잘 살려내며 안정된 기타 톤을 들려주고 있다.
레이디 가가 ‘Artpop’
레이디 가가의 정규 3집. 가가보다 더 파격적이기는 거의 불가능할 거다. 매 앨범마다 온 몸을 던지는 그녀. 별의별 퍼포먼스를 다 했으니 이제 더 보여줄게 있을까 싶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을 보면 용하다. 이 때문에 음악보다 기괴한 퍼포먼스와 패션이 더 주목을 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뭐 어떤가?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레이디 가가이니 말이다. 새 앨범 타이틀곡 ‘Applause’도 뮤직비디오가 압권이다. ‘Poker Face’는 이제 낡게 보일 정도. 최근 마일리 사이러스가 한창 섹스어필 중이지만, 아직 가가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이제 가가는 섹스어필을 단지 섹스어필로만 끝내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단계까지 온 것 같다. 앨범 제목이 ‘아트팝’인만큼 수록곡들은 기존의 일렉트로 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소 풍성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알 켈리가 피쳐링한 ‘Do What You Want’는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선사한다.
에미넴 ‘The Marshall Mathers LP 2’
왕자가 돌아왔다. 올해도 역시 힙합이 강세였고, 제이지, 카니에 웨스트는 연달아 묵직한 앨범을 발매했다. 에미넴 역시 두 ‘왕’에게 절대 꿀리지 않는 앨범으로 돌아왔다. 정규 7집인 이번 앨범은 2000년에 나온 2집 ‘The Marshall Mathers LP’에서 이어지는 연작이다. 2집은 에미넴을 정상의 자리로 올려준 앨범이었다. 이번 앨범은 에미넴이 여전히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Rap God’에서 나타나듯이 단어를 콸콸 쏟아내는 무시무시한 래핑은 여전하다. 닥터 드레를 비롯해 알렉스 다 키드 리아나, 펀의 보컬 네이트 루스, 스카일라 그레이, 그리고 이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힙합의 신성 켄드릭 라마 등이 참여했다. 유명 프로듀서 릭 루빈이 참여한 ‘Berzerk’는 비스티보이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운드는 보다 트렌디해졌지만, 역시 귀를 강타하는 것은 에메넴의 ‘분노한 혀’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The 20/20 Experience - 2 of 2’
올해 3월에 정규 3집 ‘The 20/20 Experience’의 후속작. ‘The 20/20 Experience’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대단한 음악적 욕심이 드러난 결과물이자, 백인 아티스트로는 정말로 드물게 R&B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준 앨범이다. 보이밴드 출신의 백인 뮤지션으로서 음악적으로 소울·펑크 등 R&B에 대한 진지하고 진취적인 접근을 취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겉으로 보기에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연미복을 차려입고 있지만 그 속은 마이클 잭슨 또는 스티비 원더가 숨어있다고 할까? 상업성보다도 음악적 욕심을 부린 앨범이 발매 첫 주에 무려 96만장이 팔리 며 역대 팀버레이크 앨범 중 첫 주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니 위세가 대단하다. 팀버레이크는 ‘The 20/20 Experience’를 녹음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노래가 너무 많아서 2부작으로 앨범을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기에 음악적 노선은 전작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차이를 말하자면 전작이 스티비 원더 앨범 같았다면, 이번 앨범은 마이클 잭슨에 가깝다고 할까? 저스틴 팀버레이크, 올해의 남자다.
빌리 조 암스트롱, 노라 존스 ‘Foreverly’
싱어송라이터 노라 존스와 펑크록 밴드 그린데이의 리더 빌리 조 암스트롱이 만나 에벌리 브라더스의 1958년 앨범 ‘Songs Our Daddy Taught’를 리메이크한 앨범. 다른 반경에서 활동해온 둘의 만남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에벌리 브라더스는 미국의 전설적인 모던포크 듀오. ‘Songs Our Daddy Taught Us’는 에벌리 브라더스가 컨트리 가수였던 본인들의 아버지에게 배운 컨트리 명곡으로 꾸민 커버 앨범이라고 한다. 앨범에 수록된 ‘Silver Haired Daddy of Mine’는 국내에도 번안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라 존스는 본래 데뷔 때부터 컨트리 성향의 음악을 해왔기 이런 콘셉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펑크록의 화신 빌리 조 암스트롱이 이런 옛 컨트리를 노래한다는 것이 조금 놀랍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은 빌리 조 암스트롱이었다. 근 몇 년 사이 에벌리 브라더스의 레코드에 빠져들면서 매일 아침마다 듣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들을 알리기 위해 리메이크 레코드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노라 존스를 떠올렸다고. 이제 빌리도 늙었구나.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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