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 유권, 재효, 지코, 피오, 비범, 태일, 박경(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블락비가 그동안 무대에서 내뿜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가십 때문에 만나기도 전부터 지레짐작으로 판단했다. 그야말로 대책 없이 ‘폭주하는 일곱 악당’일 것만 같이 느껴졌던 이들과 과연 해피크리스마스를 잘 연출할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안녕하세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소년들을 본 순간, 블락비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생각이 초기화되었다.

“우와, 대박이에요!” “으하하하하” 감탄과 웃음이 뒤섞인 호쾌한 말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거칠고 강한 에너지만이 블락비의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이다.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면 천연덕스러운 장난꾸러기였지만 인터뷰가 끝난 뒤 말 한마디 슬쩍 건넬 때면 그 대답에 수줍음이 배어 나왔다. 스튜디오에서 랜덤으로 재생되던 외국 노래들의 가사를 쉬는 시간마다 정확히 따라 부르던 모습에선 영락없는 가수임을 확인했다. 제목도 알 수 없던 수많은 곡들을 다 외웠을 정도라면 음악에 대해 얼마나 열정적일지, 짐작할 만했다. ‘대체 너희의 진짜 정체는 뭐니?’라는 호기심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던 일곱 소년, 그들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화보 촬영 이야기를 꺼내본다

# 아이쿠, 손 더러워질 텐데!
지코가 반짝이를 던지는 장면(상단 사진 참고)을 찍을 때의 일이다. 수없이 반복된 촬영에 반짝이가 동이 났다.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떨어진 반짝이를 손바닥으로 쓸어담으려는데, 앞쪽에 앉아 있던 유권 지코 태일이 아무 말 없이 손바닥으로 슥슥 반짝이를 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조각들이라 바닥에 손을 대지 않으면 주울 수 없어 손이 새카맣게 변할 건 당연했다. “헉, 괜찮아요! 손 더러워져요!”라고 다급하게 말하며 하지 않아도 된다 했지만 돌아온 건 “이 정도면 되나요?”라는 의외의 답과 손안 가득 담긴 반짝이였다. 이후에도 서너 번 더 이 작업을 반복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멤버들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함께 훔쳤다. 무게 잡지 않고 소탈하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정말이지, 블락비가 이럴 줄은 몰랐어!

# 엉뚱한 4차원 섹시남이야
화보 촬영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멤버는 유권. 거실에서 진행된 단체 촬영 때 어딘가에 놓여있던 소품용 가방을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그러더니 바닥에 깔려있던 크리스마스 트리볼과 솔방울을 그 안에 하나씩 채워넣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 마냥 크리스마스 파티 전용 가방을 꼼꼼하게 완성하고는 호기로운 자태로 가방을 들고 섰다. 이외에도 책이며, 실이며, 주위에 놓여 있던 온갖 소품을 이용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 엉뚱하면서도 창의적인 기질을 마음껏 드러냈다. 테이블에서의 단체 촬영에선 잠시 흩어져 있던 멤버들을 기다리던 그가 갑자기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는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어느날 갑자기 땅으로 추락한 날개 잃은 천사처럼, 아픈 듯 아련한 표정을 지은 채. 단 한 컷만 카메라에 찍힌 그 사진은 화보 촬영 콘셉트와 맞지 않아 12월호 매거진에서는 제외되었지만 유권의 섹시한 매력이 철철 흘러넘친 사진 중 하나였다.

# 끼 많고 똑 부러지는 표막내
표지 촬영 때 일곱 멤버가 한 앵글 안에 다 잡히지 않아 다양한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갸우뚱거리며 잠시 헤매는 듯 보였는데 이때 막내 피오가 형들에게 한마디 했다. “우리 앨범 재킷 촬영한 거랑 비슷한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 잡아봐요” 그 말에 다들 순간적으로 감탄 섞인 “아!”를 내뱉었고 이후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개인 촬영에선 피오만의 거침없는 매력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조금은 건방진 듯 보이는 영국 신사의 모습부터 한 여인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듯한 로맨틱 가이까지,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어 촬영 현장에서 내내 “오, 잘한다!”를 말하게 되었다. 무대에서의 모습 때문에 마냥 장난만 칠 것처럼 보였던 피오는 쉬는 시간일 때면 스튜디오에 흐르는 음악에 집중했다. 그의 전매특허인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리듬을 타곤 했다.

# 이럴 수가, 아티스트 맞네 맞아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려 누군가 하고 옆을 쳐다봤더니 리더 지코. 영감이 떠올랐다며 작곡을 시작하려 했다. 그 몰입도가 너무 대단해 오히려 인터뷰를 끊고 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을 정도. 하지만 이내 인터뷰에 다시 집중했다. 또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도중 ‘가서 전해’를 그만의 방식으로 멜로디 라인을 바꿔 불러주기도 해 예술가적 기질이 가장 많이 엿보인 멤버이기도 했다. 화보 촬영 때에는 순간적으로 내뿜는 에너지가 굉장히 강렬했다. 단순히 표정만 바뀌는 것이 아닌 다양한 제스처에서 묻어 나오는 진짜 감정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코의 아우라가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촬영이었다.

# 귀염둥이 맏형 거부하지 마
블락비의 맏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동안이었던 태일. 단체 촬영 때 태일의 얼굴로 박경과 비범이 반짝이를 마구 뿌렸는데 이 행동에 짜증을 내기는커녕 특유의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연신 “악, 귀여워!”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 촬영 때에는 커튼 속에 쏙 숨어 얼굴만 빼꼼히 내미는 콘셉트를 연출했다. 촬영을 도와주기 위해 커튼 뒤로 가려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태일이 못 들어오게 막는 시늉을 해 촬영 현장에 일순간 웃음이 번졌다. 그 날 태일을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실물이 훨씬 낫다”라고 말했으니, 트레이드마크인 안경은 다음 활동 때에는 잠시 넣어주셔도 좋겠어요.

# 차분한데 할 건 다 잘해
비범의 개인 컷을 찍을 때였다. 소파 위에 앉아있던 비범이 “이렇게 누워볼까요”라며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고혹적인 자태를 뽐냈다. 한 번도 아이돌이 그런 모습으로 눕는 걸 본 적이 없던지라 “헉…그…그건 너무 섹시한 거 같아요…”라고 당황한 말투로 말하니 다시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해피크리스마스이니 트리볼로 저글링을 해보는 게 좋겠다 말하니 커다란 트리볼을 덥석 집어들고는 매일 저글링을 해왔던 사람처럼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재효는 센 인상과 달리 순한 성격임이 분명했다. 인터뷰 중에도 확인했듯 멤버들이 놀리면 놀리는 족족 다 받아주다 기껏해야 귀여운 말투로 대꾸하는 게 전부였다. 개인 컷을 찍을 때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니 다른 멤버들은 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온 것 같은데 왜 자신만 폼을 잡고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해 촬영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니, 잘생겼으니깐 가만히만 있어도 잘 나와요”라고 말해 주니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저기 위에 선배님 계세요!
촬영을 다 마치고 멤버들이 하나 둘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조금 전 계단으로 올라갔던 박경이 갑자기 ‘두두두’ 소리를 내며 계단을 바쁘게 걸어 내려오는 게 아닌가. “왜 그래요?”하고 물으니 약간은 흥분한 듯한 말투로 “저기…저… 위에 S 선배님 계세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처음 만난 소년처럼 수줍어하는 모습이 꽤 귀여워 보여 “아니, 선배님인데 인사하지 그랬어요!”라고 말하니 “저를…모르실 것 같아서…”라며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어보였다. 블락비가 다 떠난 후 스튜디오 밖을 나서면서 보니 정말로 유명 연예인 S가 뷰티샵에서 손톱 손질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 후다닥 내려왔을 박경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글. 이정화 le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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