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에서 주인공 듀티울이 벽을 꿇고 있다

배우 이종혁, 신화 김동완 그리고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 색감이나 뿜어나오는 에너지가 너무도 다른 세 명의 배우가 동시에 같은 역할을 소화한다.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광경이다.

이들 세 배우는 지난 13일 막을 올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주인공, 듀티울 역에 나란히 캐스팅 됐다.

듀티울은 언뜻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하는 낭만적이면서 천진한 인물.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 알 수 있듯 아주 보통의 남자인 듀티울은 어느 날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된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이나 갖게 되는 능력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뻔했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 속의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변화하게 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1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듀티울을 연기하게 된 이종혁의 무대는 그를 TV 속에서만 봐왔던 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브라운관에서는 개성있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던 그는 듀티울이 그리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소심한 정서를 잘 포착해내 연기했다.

아이돌그룹 신화의 김동완은 뮤지컬 ‘헤드윅’에서 개성강한 뮤지컬 연기를 펼친 것에 이어 전혀 상반된 듀티울로서의 무대 변신을 꾀했다. 기대 이상의 청아한 음색은 TV 드라마 속 착한 이미지와 맞물리며 듀티울로 쉽사리 안착한 듯 보인다.

뮤지컬 팬이 아니고서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마이클 리의 무대는 편안하게 와닿는 이들 대중 스타들의 무대와는 또 다른 정석적인 뮤지컬 무대를 보여준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여러 굵직한 작품에 출연했고, 국내 무대는 2006년 ‘미스사이공’이 처음이다. 한글 가사가 개인적으로는 큰 도전이라고 밝히는 마이클 리의 한글 가사는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벽을 뚫는 남자’에서 듀티울 역에 캐스팅된 김동완과 마이클리(왼쪽)

유일한 아이돌 스타 김동완이 가장 공무원스러운 듀티울의 모습을 보여준 것, 정통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의 무대가 그가 가잔 무대 위 아우라 덕에 가장 화려해 보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와닿았다.

작품은 듀티울과 여주인공 이사벨의 사랑 이야기가 부각하며 낭만적인 색채 속에서 노래되지만, 단순한 러브스토리만은 아닌 것이 이 작품의 반전. 한 편의 서정적인 동화같은, 그러나 유럽의 독특한 정서를 담아낸 결말은 성인 관객의 가슴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벽을 넘나다는 신기한 설정이 어린 관객층에게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된다. 제작사 쇼노트 측은 가족 뮤지컬로도 손색이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벽을 뚫는 남자’를 보기 앞서 마르셀 에메의 단편 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대다수의 뮤지컬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문학적 서사 보다는 동화적 색채를 더욱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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