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1994′

‘응답하라 1997′의 후속작이라는 이유로 ‘응답하라 1994′는 줄곧 ‘응답하라 1997′과 비교를 받아왔다. 이는 두 드라마가 같은 시리즈로 묶여있을 뿐 아니라 동일한 제작진 및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 시리즈를 시대별로 비교해 보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와 90년대 후반 학창시절과 중반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이 지금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를 소비하는 주축이 된 만큼, 어느덧 어른이 되어 경제 활동의 주축이 된 이들의 깊은 향수를 자극 하는 것.

그것이 ‘응답하라 1994′가 노리는 시점이고 지금 모두가 앓고 있는 ‘응답앓이’의 실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는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성에 있어 분명 비슷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이들이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사뭇 다르다.

이들이 ‘응답하라 1997’을 먼저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제작진은 ‘응답하라 1997′ 제작 당시, 기획 초반 1994년을 배경으로 서태지 ‘빠순이’의 이야기를 담은 ‘응답하라 1994′를 그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의 시리즈이긴 하지만 속편 혹은 ‘시즌2′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프리퀄의 개념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응답하라 1994′가 아니라 ‘응답하라 1997′을 먼저 만들 수 밖에 없었을까. 1년 전, 당시 1994년에 스무살을 맞이한 대학 ’94학번’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다 긴급히 1997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야기를 다룰 수 밖에 없던 것은 아마 tvN이라는 채널이 소구하고자 하는 연령대 타겟이 맞지 않는 전략적 이유가 컸을 것이다. tvN의 경우 채널을 보는 주 시청 타깃을 2030, 특히 20대 전체와 3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로 보고 있다.

만약 ‘응답하라’가 1994년을 다룬다고 했다면, 해당 드라마가 방송됐던 1년 전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연령층은 30대 후반. 사실상 중년에 가까운 나이가 된다. 결국 제작진이 애초에 기획했던 ‘응답하라 1994′가 ‘응답하라 1997′로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채널이 갖고 있는 시청 연령 소구력에 대한 고려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전략적 기획을 통해 원래 이야기에서 살짝 변형돼 만들어진 ‘응답하라 1997′은 화제성이나 시청률 면에서 성공을 거뒀고, 결국 제작진은 애초에 이들이 풀어놓고 싶었던 ‘응답하라 1994′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응답하라 1997′의 성공 뒤 1년, 1994년의 이야기는 스스로 겪어왔던 세월인 만큼 1997년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유려한 이야기로 구성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라는 제한된 배경에서는 뽑아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대학 무대로 옮겨 오면서 훨씬 더 자유롭고 풍부하게 구성해내고 있다.

시트콤 ‘프렌즈’

다시 위로 올라가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과 비교해 형식적으로는 일치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정서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꽤 다르다. ‘응답하라 1994′의 경우 내면의 정서를 곱씹다 보면 ‘응답하라 1997′보다는 오히려 약 8년 전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친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 크게 기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매 회 에피소드 형식으로 작은 소동들이 종결되는 부분이나, 그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배경과 인물들 안에 엮어내며 인물들을 성장시켜 온 ‘프렌즈’와 역시 매 회 작은 에피소드들을 쌓아 올리며 주된 내러티브를 구성해 내는 ‘응답하라 1994′는 근본적으로 비슷한 구조와 인물 구성 및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응답하라 1994’가 소환해 낸 것은 1년 전 ‘응답하라 1997’의 기억이 아니라 20여년 전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젊은이들을 열광케 한 시트콤 ‘프렌즈’다.

‘응답하라 1994’가 소환해 낸 시트콤 ‘프렌즈’의 정서

미국 NBC에서 1994년 9월 첫 전파를 탄 시트콤 ‘프렌즈’는 전설적인 프로그램이다. 무려 10시즌을 이어오며 ‘친구 사이’로 등장한 메인 출연자들 6명을 탑 스타로 성장시켰고, 시청자들은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청춘 시트콤을 만듦에 있어 이들은 거의 ‘바이블’에 가까운 작품을 내 놨다. 미국이 경제 호황을 누려왔던 10여년을 따라가며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뉴요커들의 삶을 다뤘던 ‘프렌즈’. 흥미롭게도 똑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응답하라 1994′는 그 무대를 미국의 뉴욕이 아니라 서울. 그것도 젊음의 거리라 불리는 신촌으로 옮겨 놓는다.

‘프렌즈’에서 여섯 친구들이 수시로 모여 수다를 떨거나 이야기를 나눴던 뉴욕의 아파트(모니카의 집)와 카페 센트럴 파크는 같은 시대 서울의 신촌 하숙집으로 오버랩된다.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웃으로 살며 뉴욕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 나가는 ‘프렌즈’의 여섯 친구들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신촌 하숙’에 모여 아웅다웅하며 우정을 나누게 된 ‘응답하라 1997′의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tvN ‘응답하라19

뿐만 아니라 ‘프렌즈’에서 로스와 모니카가 남매로 에피소드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신촌 하숙’ 역시 성나정과 쓰레기가 유사 남매의 관계로 에피소드를 이끌고 있다. 심지어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여동생의 친구인)레이첼과 로스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며 결국 로맨스의 여지를 남겨둔 것처럼, 유사 남매로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지켜온 성나정과 쓰레기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까지 한 관계에 녹이며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 이처럼 기본적인 인물의 구성과 이들을 한 장소로 모아 지속적으로 이들끼리 관계를 변화 발전시킬 수 밖에 없는 구도는 ‘프렌즈’와 동일하다.

물론 ‘프렌즈’의 이러한 구성과 이야기의 리듬은 ‘응답하라 1994′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한국의 시트콤에서도 많이 차용되어 온 방식이다. 다만 과장된 캐릭터와 상황 안에서 웃음을 위주로 고려하는 한국의 시트콤과 달리 웃음을 추구하면서도 전체적인 구성에서 단단한 내러티브에 더 신경을 쓰는 ‘프렌즈’의 경우 오히려 ‘응답하라 1994′와 흡사한 지점을 보인다. ‘응답하라 1994′ 역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매 회 인물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며 어느 정도는 독립된 에피소드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근본적으로 ‘서로를 골탕먹이거나 속이며’ 에피소드를 만드는 한국 시트콤들과 달리 ‘응답하라 1994′의 경우 ‘프렌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물들 간에서 서로를 지켜주려는 정서가 깔려있고, 그 와중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갈등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대학생과 사회인이라는 연령대적 차이는 발생하지만, 청춘의 성장과 오래 함께 해 온 친구들과의 로맨스. 그리고 친구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만들어 가는 이야기들의 근본 정서에 ‘프렌즈’가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제작진 정도의 연령대가 미국 시트콤인 ‘프렌즈’에 대해 꽤 열광했었고, 보아왔다는 것 또한 주효할 것이다.

이처럼 ‘응답하라 1994′는 그들이 그리고 있는 동 시대에 만들어진 ‘프렌즈’의 정서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인물들의 구성이나 이야기의 흐름, 그리고 그들이 근본적으로 기대고 있는 있는 정서까지 흡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된 시점이 1994년이라는 점은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글. 민경진(TV리뷰어)

‘응답하라 1994′ & ‘프렌즈’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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