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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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일종의 실험 영화다!” 스크린X 기술로 완성된 ‘더 엑스’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를 마무리하자마자 스크린X라는 신기술과 싸웠다. CJ CGV에서 제작한 스크린X는 기존에 중앙 1면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던 환경에서 벗어나 상영관 좌우 벽면까지 3면을 스크린화한 상영 방식이다. 3D 하면 제임스 카메론이 떠오르듯, 훗날 스크린X 하면 김지운이 자동적으로 연상될지도 모르겠다. 김지운 감독을 만나 스크린X의 전망과 차기작 ‘카워드’에 대해 들어봤다. 참고로 단편영화 ‘더 엑스’는 특수요원 ‘엑스’(강동원)가 의문의 가방을 배달하는 과정에서 연인 미아(신민아)가 연루된 음모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Q. ‘더 엑스’는 할리우드 영화 촬영을 마치고 진행한 국내 복귀작이다. 조금 쉬고도 싶었을 텐데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맡았다.
김지운: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스크린X라는 기술 자체가 굉장히 새로운 프레임으로 다가왔다. 감독의 입장에서 한번 시도 해 볼만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스크린X를 가로로 된 아이맥스 정도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좌우 벽면에 두 개의 스크린이 더 생기는 스펙터클적인 층위로 접근했는데, 찍으면서 스펙터클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화면을 넓힌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출의 가능성을 여는 기법이더라.

Q. 구체적으로 어떤?
김지운:
스펙터클한 액션영화는 물론 공포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가령 엑스가 요원 R의 시체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크리피한 느낌에서 ‘아, 이게 호러 영화에도 맞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방에서 스트로브 불빛이 음악 비트에 맞춰 쏟아지는 미러볼 방에서는 클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서정적이고 예쁜 그림들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는 걸 느꼈다. 대하면 대할수록 양파껍질 까듯이 새로운 것들이 나오니까 흥미로웠다.

Q. 만약 3D영화 프로젝트였어도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김지운:
3D라면 안했을 거다. 이미 많이 나와 있는 3D를 내가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법이라는 점에서 스크린X에 끌렸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건드릴지 궁금했다.

Q. 시나리오를 빨리 쓰는 걸로 아는데, 이번엔 어땠나?
김지운:
새로운 기술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라 이야기 자체는 단선적인 게 있다. 스크린X 기법을 생각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이야기 자체는 빨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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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혹시 참고한 게 있나?
김지운:
‘007 스카이 폴’이 하이네켄과 콜라보해서 만든 광고영화가 있는데, 그렇게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Q. 프로젝트를 제안 받을 때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는 김지운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당신을 적임자라고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했나.
김지운:
내가 재미있는 작업을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왔다는 점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 영상이나 비주얼에 신경 쓰는 감독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했을 테고. 비주얼을 책임질 수 있는 감독으로서 나를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Q. ‘비주얼에 신경 쓰는 감독’이라는 주위의 시선에 대해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느끼나.
김지운:
이야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그림에 신경 쓰는 부분은 있지만, 비주얼을 가장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화홍련’이나 ‘달콤한 인생’처럼 이미지로 말을 건네는 작업도 해왔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결국 나에 대한 평판이나 둘러싼 이야기들은 반은 맞고 받은 틀리고, 반은 과소평가 되고 반은 과대평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Q. 특별 시사회 때 지인들이 많아 왔을텐데, 동료 감독들이 스크린X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김지운:
동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면서 이게 활용도가 넓은 프로젝트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어떤 감독 하나는 “스크린X 기법으로 공포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고, 어떤 감독은 “이건 외국 애들이 되게 좋아하겠다!”고 했다. 왜, 외국 애들의 드럭(drug) 문화 있잖아. 약 문화.(웃음) 나쁜 의미가 아니라 드럭 베이스가 있는 문화권에서 몽환적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떤 감독은 더 나아가서 “이걸 클럽에 기술지원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고.(웃음) 굉장히 재미있어 했다.

Q. 스크린X 기술은 현재 국내 특허출원을 완료한 상태다. 해외 여러 나라에도 특허출원 중인 걸로 아는데, 해외반응이 궁금하다.
김지운:
해외 리뷰어들의 반응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확인할 수 있었는데,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최근 내 영화 칭찬에 인색했던 한 영화제 프로그래머도 페이스 북에 올려서 열광하더라.

스크린X 기법으로 만들어진 ‘더 엑스’
스크린X 기법으로 만들어진 ‘더 엑스’
스크린X 기법으로 만들어진 ‘더 엑스’

Q. 관객 반응을 살펴보니 “재밌다, 흥미롭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새로운 형식의 기술이 나왔다는 것에 고무적인 것 같고. 반면 “좌우 화면이 벽이라 선명도가 떨어진다”, “좌석에 따라 시야확보가 어렵다”, “면과 면이 맞닿은 모서리 부분의 부자연스러움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반응, 촬영 들어가기 전에 예상했나?
김지운:
찍기 전에 생각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일단 스크린X가 아니어도 앞자리는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나. 좌우 벽면이 벽이라 선명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 현재의 영사 시스템으로는 좌우 벽을 다 밝힐 수가 없다. 빛을 과하게 넣으면 메인화면이 빛을 반사 받아서 어두워지거든. 옆면의 화질과 밝기를 지금보다는 개선시킬 수 있지만 앞의 메인 화면처럼 밝힐 수는 없다. 그래서 이건 옆면을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더 부합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장 시스템 표준이 없기 때문에 극장 컨디션에 따라서 조금씩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 화면 사이의 유격거리가 매끄럽지 못한 상영관, 스크린X 스피커가 있는 상영관, 그냥 일반 5.1 채널관인 상영관 등 조건이 조금씩 다르다. 좌우 스피커도 지금은 도출 돼 있는데, 매립형으로 하려면 결국 스크린X 전용관이 많이 나와야 한다.

Q. 스크린X 기법을 위해서는 카메라 세 개를 동시에 사용해서 270도로 촬영해야 한다. 연출자 못지않게 촬영, 조명, 미술감독들에게도 고민의 시간이었을 텐데, 가장 바빠지는 기술 파트는 어디인가?
김지운:
세 면을 동시에 찍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촬영……보다는(↗) 그래도 연출이지!(웃음). 옆면을 채우고, 이미지가 메인 화면에서 옆면으로 빠져나가는 걸 디자인해야 하는 등 연출적으로 신경 써야할 게 굉장히 많다. 다음으로는 어쨌든 촬영감독이 그걸 모두 다 잡아야 하니까 힘들 테고. 미술이나 조명도 전보다 늘어난 공간을 책임져야 하니까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270, 280도의 화면을 촬영해야하니 그 나머지 좁은 각에 스텝들과 장비가 숨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스태프들의 활동범위에 제약이 있는 거지. 조심하지 않으면 화면에 다 노출되니까.(웃음)

Q. 3D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만든 이안 감독은 ‘3D라는 시각상의 확대가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당신도 스크린X가 그런 역할을 하리라고 보나.
김지운:
비슷한 생각을 한다. 스크린X는 애니메이션이나 CG 영화에서는 거의 완벽한 기술력을 보인다. 이걸 어떻게 하면 실사영화에도 편하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이 이번 작업이었다. 이 기술이 비주얼리스트 뿐 아니라 스토리텔러들에게도 새로운 이야기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되길 바란다.

Q. 3D가 나왔을 때 느낀 것이지만, 어떤 감독에게 3D는 새로운 ‘예술 양식’이고, 어떤 이에겐 ‘시각적 놀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보다 큰 돈을 벌게 하는 ‘산업의 영역’이었다. 스크린X도 비슷한 양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다.
김지운:
모든 영화는 산업적인 속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영화자체가 산업의 영역 안에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은 그걸 자신들 쪽으로 잘 끌어와야 한다. 가령 최근 개봉한 ‘그래비티’의 경우를 보자. 그 영화도 분명 기획자들은 산업적인 어떤 동기와 욕구로 제작했을 텐데,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걸출한 감독이 예술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린 거다. 덕분에 “CG 영화가 예술로 남을 수 있다면 ‘그래비티’가 최초가 될 것이다”라는 평가도 받았을 테고.

Q. ‘그래비티’, 어떻게 봤나?
김지운:
영화가 시작한지 5분 만에 ‘내가 굉장한 걸 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최소의 구성으로 최대의 감정적/시각적 스펙터클을 이끌어낸 영화다. 너무 아름다웠다. ‘지구가 이토록 평화스럽고 안정된 곳이었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것 같다. 올해의 베스트영화다. 아,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비티’를 스크린X로 보면 좋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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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중에서 스크린X로 다시 찍어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김지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가장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자체가 광활한 대평원을 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장화홍련’, ‘달콤한 인생’처럼 분위기로 감정의 흐름을 끌어가는 영화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Q. 스크린X 상용화에 시간이 오래 걸릴까?김
지운:
상용화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고, 스크린X 관을 얼마나 빨리 신설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옆에 있는 CGV 홍보팀에게) 내년까지 몇 개관을 만든다고 했지? (홍보 마케터: 100개관! 올해까지 50개 관.) 100개관 정도면 충분히 상용화 할 수 있는 수준이다.

Q. 3D 영화의 경우 2D를 3D로 변환하는 방법을 지니고 있다. 스크린X도 그런 변환이 가능할까?
김지운:
전편을 다 하지는 못하겠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다크 나이트’도 아이맥스 부분이 영화의 15% 정도 밖에 안 되잖아. 그런 식으로 어떤 특정 장면만 스크린X로 변환하는 방법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령 수중 장면이나 화제 장면 같은 것들. 미리 찍어 놓은 소스를 카피해서 양 옆 화면에 사용할 수 있을 거다.

Q. 버려진 필름을 복원해서 사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지운:
맞다. 개봉 대기 중인 최민식 주연의 ‘명랑: 회오리 바람’도 찍어 놓은 물 장면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거다. 그러면 해전 장면이 더 박진감 있게 표현되지 않을까 싶다.

Q. 아까 잠시 언급했듯 스튜디오가 3D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싼 티켓 값 때문이다. 스크린X가 상용화되면 티켓 값 책정이 필요할 텐데,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나.
김지운:
3D의 장점은 관객들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데 있다. 스크린X는 전용안경 없이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크다. 그런 점에서 3D보다 더 강렬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고. 나보다 더 뛰어난 비주얼리스트와 스토리텔러들이 스크린X 기법을 이용해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앞으로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상영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Q. 티켓 값이 꽤 비싸겠군.
김지운:
3D가 요즘 얼마지? 13,000원~ 15,000원? 거기에 아이맥스가 붙으면 더 올라가는 거지? 음… 자세한 가격은 CGV에 문의를.(웃음)

(김지운 감독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2부에는 그의 두 번째 할리우드 연출작 ‘카워드’에 대한 힌트들이 있습니다.)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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