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국내 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정욱 감독.

“시상식에서 왜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사람들 얼굴이 많이 떠오른다.” (웃음).

제11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국내 경쟁 부문 대상을 차지한 정욱 감독의 소감이다. 국내 최대 단편 영화의 축제인 아시아나단편영화제가 12일 폐막했다. 그리고 폐막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린 영광의 얼굴이 결정, 발표됐다. 정욱 감독은 가출 패밀리를 다룬 단편 ‘패밀리’로 올해 신설된 국내 경쟁 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새로운 역사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셈이다.

정욱 감독은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은 물론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많이 생각난다”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 등의 반응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용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욱 감독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탓인지, 아니면 뜻밖의 큰 상에 어리둥절해서인지 인터뷰 내내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패밀리’는 신애, 민정, 훈 등 가출 학생이 만나 새로운 패밀리를 형성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이 세 명은 같이 살 집을 구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지내며 갖은 방법으로 돈을 모으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고통을 겪게 된다. 아시아나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자신들이 탈출하고자 했던 가족의 구조를 축소된 형태로 반복하면서 이에 고통 받게 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잘 포착하고 있다는 평했다. 또 거리에 사는 아이들의 공간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더했다. 이미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관심을 받았던 단편 작품이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영화 제목인 ‘패밀리’는 일반적인 의미의 가족과는 다른 의미다. 정욱 감독은 “가족을 떠난 아이들이 밖에서 자기들끼리 가족을 만들었는데 돈 때문에 변질되고 만다”며 “극 중 대사도 있지만 결국 이들도 정상적인 가족을 원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진짜 가족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정욱 감독이 안성기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상패를 받은 뒤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출 패밀리를 소재로 다룬 것에 대해서는 정욱 감독은 “처음에는 가출한 친구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다”며 “그런데 지난해 가출 패밀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친구의 이야기보다 이 아이들을 다뤄야 할 것 같았다”고 전했다. 또 그는 “물론 디테일한 부분은 가출한 친구한테 조언을 구했다”고 웃음을 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화장실이란 공간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가출 학생 세 명은 화장실을 집 삼아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에 정욱 감독은 “이 아이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그래야 가족을 형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담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주제가 잘 전달될 수 있었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호연이 한 몫 한다. 대부분 단편영화가 그렇듯, 전문 배우가 아닌 평범한 학생이다. 그는 “연기를 잘해준 것 같다”며 “연출부 친구한테 아는 동생들 데리고 오라고 해서 선별했다. 너무 재밌어 하더라”고 웃음을 지었다.

정욱 감독이 이처럼 영화에 꿈을 키운 건 온전히 누나 때문이다.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한 뒤 스태프로 참여한 창작극을 보면서 막연히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정욱 감독의 누나는 현재 연극 연출을 꿈꾸며, 조연출 생활을 하고 있다. 훗날 누나는 연극 연출자로, 정욱 감독은 영화감독으로 대중 앞에 서길 바란다고 했더니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희망했다.

“누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누나가 참여한 창작극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수상도 정말 좋아하고, 축하해줄 것 같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정욱 감독은 장편 상업영화 감독을 목표로 매진 중이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이 그 목표로 향하는 길에 큰 힘을 실었다. 그는 “학교도 졸업했고, 고민이 많다”며 “사실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은데 계속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 힘이 생겼다”고 전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감독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에도 시나리오를 매만지는 정욱 감독, 한국 영화계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게 우리의 일인 듯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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