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 조성희 감독, 이현희 프로그래머(왼쪽부터)

“‘무한도전’이 방영될 시간인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성희 감독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지난 1월 9일)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아시프 랑데부’에 참가하기로 예정된 이는 조성희 감독을 비롯해 ‘돼지의 왕’의 연상호, ‘파수꾼’의 윤성현, ‘연애의 온도’의 노덕, ‘숨바꼭질’의 허정 등 총 다섯 명. 하지만 서정 감독과 연상호 감독이 각각 런던영화제와 AFI(American Film Institute) 영화제와의 일정 중복으로 불참을 알려온 가운데, 노덕 감독이 갑작스러운 개인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 오고 윤성현 감독마저 2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조성희 감독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갔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홀로 상대해야 했던 조성희 감독의 이마에 모르긴 몰라도 식은땀이 흘렀을 게다.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치는 조성희 감독의 말투에 진심이 잔뜩 묻어난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조성희 감독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단편영화 ‘남매의 집’과 독립영화 ‘짐승의 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윤성현 감독이 헐레벌떡 극장 안으로 들어온다. “집회 때문에 차가 막혔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 윤성현 감독 역시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최선을 다해, 질문에 대답하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남매의 집’ ‘짐승의 끝’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인감독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관객들도 예비 영화인이 많은 듯 보였다. 보통의 ‘관객과의 대화’ 자리와는 달리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질문들이 줄을 잇는다. 하긴, “투자는 어떻게 받았는지, 초고는 몇 번이나 고치고, 투자사가 얼마나 개입하는지”를 물어 볼 기회가 어디 많은가. 두 감독은 관객들의 민감한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속한대로 친절하게 대답을 풀어냈다.

독립영화에서 상업영화로 가는 과정에서 겪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무엇이었냐는 관객의 질문에 조성희 감독은 “단편에서는 일당백으로 모든 걸 해야 하지만, 상업영화에서는 연출만 하면 된다는 게 편하다. 대신 역할이 분산되니까 함께 하는 분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다”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신인감독의 경우 항상 불신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신인이 과연 잘 해 날까?’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스태프, 투자사, 제작사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아이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영화를 대하는 자기만의 철학을 묻는 질문에 윤성현 감독은 “주변 일들에 일희일비하게 되면 무너지기 쉽다”며 “자기중심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에 발을 디디려고 노력한다”는 윤성현 감독의 철학은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 “작은 영화가 됐든 상업영화가 됐든, 내가 돈 내고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두 감독은 예비 영화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데뷔 전에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는 조성희 감독은 “나도 월급을 받아봐서 아는데, 월급이 마약이다. 한번 받으면 끊을 수가 없다”는 말로 웃음을 안겼다. 영화를 하고 싶지만 현실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며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격려했다.


윤성현 감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후배들에게 던진 조언의 핵심은 “두려워하지 말고 많이 만들라”였다. “결국 영화는 무식하게 많이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다”고 말한 윤성현 감독은 “누가 뭐라고 하든 많이 만들고 많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현장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독려했다.

충무로가 기대하는 감독들인 만큼 차기작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남매의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멜로영화 ‘늑대소년’으로 상업영화에 노크한 조성희 감독은 다시 초기 작품의 느낌으로 돌아갈 듯 보인다.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늑대소년’처럼 말랑말랑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힌트를 줬다. 반면 윤성현 감독은 대체역사물을 준비 중이다. “조선 왕조가 있었다면, 혹은 일제 시대가 그대로 유지됐더라면 하는 식의 대체역사물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그가 만들어 낼 가상의 세계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제공.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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