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힙합은 어느 때보다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는 다이나믹 듀오가 데뷔 14년 만에 처음으로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1위에 등극한 해이며, 이센스, 개코, 스윙스, 쌈디 등이 참여한 디스전에 온 국민의 관심이 힙합으로 쏠린 해이기도 하다. 음원차트 10위권 안에는 항상 힙합 뮤지션의 노래가 한두 곡 이상 올라와 있고, MBC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은 ‘홍홍홍’으로 시작되는 랩으로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비록 대중에게 인식된 힙합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하는 코어한 힙합(하드 코어한 힙합. 흔히 미국 힙합의 강렬하고 센 장르를 이야기한다.)이 아닐지라도 분명히 힙합은 널리 퍼졌다.# 랩에 대한 기본적인 궁금증!
하지만 그에 따라 힙합에 가지는 편견도 많아졌다. 그저 말을 빨리 한다고 랩이 되는 것일까? 코어한 힙합은 왜 욕이 많을까? 도대체 ‘스웩’은 뭔가? 허세? 힙합에 대한 기본적인 궁금증을 지난해 다이나믹듀오, 프라이머리가 소속사 아메바컬쳐를 통해 오버그라운드로 데뷔한 힙합 신예 리듬파워에게 물었다. 그리고 인터뷰 전에 나름대로 준비한 가사를 바탕으로 직접 랩을 배우는 시간도 가졌다. 사실 불러보고 싶었다. “홍홍홍”
Q. 랩은 그냥 빠르게 말하면 된다?
지구인 : 랩은 박자를 만들어 내는 타악기 같은 느낌이다. 랩도 쿵짝쿵짝이라고 박자를 만드는 것처럼 하나의 악기 연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라임(Rhyme, 일종의 운율)이 강약을 박는 박자, 플로우(Flow)는 말 그대로 흐르는 리듬. 무조건 빠르게 말한다면 비트 자체에서 오는 박자감을 느낄 뿐이지 랩에서 박자감을 느끼지 않는다.
Q. 그럼 랩에도 음정이 있는 것인가? MBC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녹음하는데 “음이 안 맞아요”라며 프리이머리와 개코가 지적하더라.
지구인 : 사실 노래처럼 ‘이런 코드에는 이런 음정으로 해야지‘라고 딱 정해놓고 쓰진 않는다. 음정을 생각하고 랩을 쓰진 않는다. 래퍼들은 기본 비트에 맞게 가사를 설계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비트 위에 깔려 있는 음들이 있다. 계속 연습을 하다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톤이나 음정이 잡히는데 그것인 것 같다.
보이 비 : 노래를 하게 되면 멜로디나 음이 정확하게 있다. 그 음에 맞게 디렉팅을 볼 수 있다. 랩을 할 때 음이 분명히 있긴 있는데 애매한 음이 많다.
Q. 힙합에서 ‘스웩(SWAG)’이란?
보이 비 : 그냥 멋! 힙합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스웩도 있지만, 우리는 전형적인 힙합 그룹이 아닌데도 스웩이 있다. 기자님도 기자님의 스웩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스웩이 있고, 변호사도 변호사만의 스웩이 있고. 그런 것이다.
지구인 : 아우라라고 할 수도 있다. 가끔 말장난으로 “남자는 스웩이야”라고 하는데, 그 스웩이 목걸이를 하고 옷을 잘 입어서 스웩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스웩인 것이다.
Q. 힙합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한다?
지구인 : 랩이 영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영어 자체가 랩하기 쉬운 언어인 것 같다. 한국어도 물론 랩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언어다. 개인적으로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난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 (웃음)
행주 : 영어를 잘했다면 영어 가사를 많이 썼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발음도 부족하고… 한국어로 좀 더 멋있는 말, 멋있는 표현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Q. 힙합에서는 왜 욕을 많이 하나?
지구인 : 힙합의 태생 자체가 흑인 저항 문화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흑인이 빈민이었고, 인종 차별을 받았던 그런 마음을 100% 이해한다기보다 그냥 힙합 그 자체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따라한 경향도 있다. 체제에 대해서 욕하고, ‘너희들이 뭐라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살거야’ 같은 그런 태도도 멋있었다. 그래서 그런 문화 속에서 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우리에 상황에 맞지 않게 일부러 흉내 내기 위해 욕 가사를 쓰고 싶지는 않다. 일부 따라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간다.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으니까.
보이 비 : 힙합의 멋 중의 하나가 솔직한 음악이란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성 가요나 팝에서 보는 예쁘장한 가사들보다 실제로 일상생활에 쓰는 가사가 많다. 우리가 친한 친구들끼리 욕을 섞어 말을 하고, 흉을 보고 그런 부분들을 담아내기 때문에 욕설이 등장한다고 본다. 그런 걸 오히려 순화시킨다면 힙합의 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 함께 랩을 해봅시다. “홍홍홍”
‘리듬파워의 힙합교실’ 흔적
기본적인 질문을 마치고 리듬파워와 본격적인 힙합을 느끼기 위해 즉석 힙합 교실을 요청했다. 사전에 기자가 미리 휘갈긴 가사를 바탕으로 이들의 타이틀곡 ‘본드 걸’ 반주에 맞춰 랩을 해보는 것. 기자가 수줍게 내민 가사지를 받아든 리듬파워는 “가사가 귀엽다”며 고맙게도 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사전에 준비했던 가사다.홍홍홍 나는 텐아시아/ 에서 일하는 기자/가사에는 ‘텐아시아’, ‘기자’, ‘가사’, ‘기사’ 등 ‘-ㅏ’로 끝나는 단어들과 ‘리듬파워’, ‘왔어’, ‘가사 써’, ‘재미있어’ 등 ‘-ㅓ’로 끝나는 단어들로 라임을 갖추려는 흔적이 있다. 마지막에는 너도 나도 고생한다는 내용으로 공감을 얻으려 했고, 동시에 ‘개’라는 공격적인 접두사를 붙여 힙합의 저항문화를 반영하고자 하는 나름의 치열한 노력을 담았다.
되도 안 되게 쓰는 가사/
어찌 될지 모르는 기사/
인터뷰는 안드로메다/
너네는 리듬파워/
여기에 왜 왔어/
홍보하랬더니 가사 써/
인터뷰는 재미있어?/
너도 고생, 나도 고생, 우린 개고생.
‘본드 걸’ 반주를 틀자 리듬파워 멤버들은 비트를 타면서 자기 스타일대로 각자 가사를 읊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비트를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써내려간 가사 때문인지 그들은 계속 멈칫거렸다. 기자의 가사는 “기본 비트 위에서 가사를 설계한다”는 지구인의 말을 어긴 셈. 리듬파워는 볼펜을 들고 대대적인 수술 작업에 돌입했다. 그들은 ‘텐아시아’에서 ‘-ㅏ’라임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며 단어를 수정하려고 했지만, 기자는 ‘텐아시아’는 확고한 정체성이기 때문에 제발 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들은 그 뒤에 ‘홍홍홍’을 추가하면서 앞과 뒤의 통일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자가 원하는 부분까지 강조했다. ‘인터뷰는 안드로메다’ 또한 다른 구절에 비해 짧기 때문에 반박자를 쉬고 부르는 것으로 결정됐다.
마지막 ‘너도 고생, 나도 고생, 우린 개고생’은 나머지 가사와 전혀 다른 라임과 플로우를 요구하기에 특히 까다로웠다. 그러나 보이비가 ‘너도↗! 고생, 나도↗! 고생, 우린↗ 모두 개고생’이라고 고치며, “이게 요즘 유행하는 최신 플로우”라고 재치를 더했다. 조금씩 랩의 형태가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너네는 리듬파워’부터 시작되는 회심의 ‘-ㅓ’ 라임은 리듬파워에 의해 다시 재구성됐다. ‘너네는 리듬파워’는 첫 번째 파트를 끝내는 깔끔한 마무리로 사용됐으며, ‘여기에 왜 왔어?’와 ‘인터뷰는 재미있어?’를 받쳐주는 답변을 새로 추가했다. 행주는 “공격적으로 주고받는 부분이 현재 분위기를 잘 살리는 것 같다”며 기자를 칭찬했다. 비록 어색함과 웃음기가 난무하는 첫 랩 도전이었지만, 유쾌하게 끝났으므로 일단은 성공! 비록 그들은 모든 것을 고치고 싶었겠지만, 초안을 최대한 해치지 않은 선에서 힙합 교실을 마무리 지었다. (고마워요.) 자, 이제 리듬파워와 함께 만든 랩을 공개한다.
홍홍홍 나는 텐아시아/ 홍홍홍 에서 일하는 기자/
되도 안 되게 쓰는 가사/어찌 될지 모르는 기사/
인터뷰는 안드로메다/ 너네는 리듬파워//
여기에 왜 왔어?/ 인터뷰 하러 왔어/
홍보를 하랬더니 요런 힙합 가사 써/
인터뷰는 재미있어?/ 완전히 재밌어/
너도 고생, 나도 고생, 우리 모두 개고생!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랩. 리듬파워,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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