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 루시드폴, 김재중, 로큰롤라디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그 가슴 뛰던 시간들 그대는 기억할까, 처음 그댈 보던 순간과 그날의 공기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지금처럼 다가와

신승훈 ‘그대’ 中

신승훈 ‘Great Wave’
신승훈의 4년 만에 신보로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2008), ‘러브 어 클락(Love O’clock)’(2009)에 이은 미니앨범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앨범. 한국 가요계가 음반판매량 면에서 정점을 찍었던 90년대에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았던 신승훈이 보기에 현재 가요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번 앨범은 23년차 가수 신승훈이 최근의 트렌드를 짚어낸 결과물로써 신승훈스러움과 새로움이 공존하고 있다. 신승훈에게 조용필과 같은 파격을 기대한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승훈은 기존의 팬들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본인의 목소리를 지키면서 변주를 선보인다. 타이틀곡 ‘소리(Sorry)’는 브리티시 록과 발라드의 경계에 있는 곡. ‘내가 많이 변했어’에는 최자, ‘러브 위치 위드(Love Witch with)’에는 버벌진트가 랩으로 피처링했다. 신승훈이 앨범에서 래퍼와 함께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이와 함께 기존 발라드의 맥을 있는 ‘그대’, 팬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만든 ‘마이 멜로디(My Melody)’ 등이 청자를 따스하게 안는다. 라디(Ra.D)와 함께 부른 소울 풍의 곡 ‘그랬으면 좋겠어’는 어떤 장르의 곡이라고 해도 ‘신승훈스러운 노래’로 만들어버리는 목소리의 힘을 잘 보여준다. 라디 파트는 R&B의 느낌이 나지만 신승훈이 노래를 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이 된다. 마치 마법처럼 말이다.

루시드 폴 ‘꽃은 말이 없다’
루시드폴의 6집.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앨범 제대로 들으려면 고요한 장소를 찾으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미선이 이후 루시드폴의 음악은 대개 고요한 장소에서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 앨범은 정말 고요한 장소에서 집중해서 듣길 바란다. 기존 음악과 비교해봤을 때 더욱 섬세한 감수성이 잘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루시드폴은 올 여름 한 달 반 동안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이번 앨범의 곡을 손으로(컴퓨터 자판이 아닌) 썼다고 한다. ‘상류도 하류도 아니라, 아마 중류 어딘가 쯤, 굽이굽이 허위허위 흐르는 강물’(강)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풍모는 여전하다. 집중해야 할 것은 기타 사운드다. 전과 다른 소리를 담기 위해 류트 등 고악기까지 찾아 나섰던 루시드폴은 바리톤 기타, 8현 기타, 셀머 기타 등을 직접 연주해 새로운 질감의 기타 톤을 구현하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을 필두로 황호규(베이스), 신동진(드럼), 김진수(기타)가 이룬 밴드는 재즈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살짝 스윙감이 느껴지는 ‘연두’, 은근함이 매력적인 ‘늙은 금잔화에게’가 특히 귓가에 남는다.

로큰롤라디오 ‘Shut Up And Dance’
올해 최고의 기대주 중 한 팀으로 꼽히는 로큰롤라디오의 데뷔앨범. 로큰롤라디오는 최근 국내 굵직한 록페스티벌을 비롯해 Mnet ‘밴드의 시대’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때문에 이들이 앨범을 몇 장 낸 줄 알았다. 그런데 ‘셧 업 앤 댄스’가 첫 앨범이란다. 2011년에 결성된 로큰롤라디오는 작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다. 라이브 실력으로 워낙에 호평을 받았던 터라 앨범도 큰 기대를 모았다. ‘닥치고 춤이나 춰’라는 앨범 제목처럼 춤추기 좋은 댄서블한 로큰롤로 가득하다. 최근 트렌드인 포스트펑크, 개러지 록 스타일이 엿보이는데, 로큰롤라디오는 딱히 장르를 구분할 필요 없이 마냥 신나게 흔들 수 있는 록을 들려준다. 그렇다! 이제는 페스티벌에서 로큰롤라디오와 같은 댄스 록이 각광받는 시대가 아닌가? 앨범에서도 밴드 사운드 특유의 리듬을 잘 살리고 있으며 특히 기타리스트 김진규가 만들어내는 오밀조밀한 연주가 그루브를 배가시킨다.

김재중 ‘www’
JYJ의 멤버 김재중의 정규 1집. 김재중은 솔로 활동에서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실제로 공연을 본 바로 김재중은 자신이 존경한다는 라르크 엥 시엘의 하이도처럼 제이 록(J-Rock) 스타일의 록 보컬을 구사했다. 창법에서 일본 록을 많이 카피해본 감성이 묻어난다. 아이돌그룹 출신이 록에 도전해서 좋은 결과를 거둔 사례는 전무하다. 김재중의 장점이라면 록을 노래함에 있어서 자신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정립돼 있다는 것이다. 새 앨범에서는 기존의 일본 하드록 스타일 외에 여러 록 장르를 시도하고 있으며 윤도현, 하동균, 이상곤, 용준형 등이 힘을 보탰다. 이외에도 이태윤(베이스), 강수호(드럼), 피아의 드러머 혜승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해 음악의 완성도 면에서는 흠 잡을 곳이 별로 없다. 솔로가수가 록을 노래할 경우에는 멤버들이 함께 곡을 만들어나가는 록밴드 특유의 자연스러운 에너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보컬리스트의 존재감이 크다면 이러한 약점이 해소되지만, 아직 김재중에게 그 정도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솔로가수와 록 보컬리스트 사이의 갭을 줄여나가는 것이 김재중의 과제일 것이다.

나인 뮤지스 ‘Prima Donna’
9인조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정규 1집. 오프닝트랙 ‘프리마돈나’에서 타이틀곡 ‘건’으로 이어지는 무대를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블루스기타로 질펀하게 시작하는 걸그룹의 노래는 처음 들었고 약간 끈적대는 노래 풍이 잘 어울렸다. 생존하기 힘든 걸그룹 전쟁에서 자신들의 포지션을 제대로 찾은 듯 보였다. 나인뮤지스는 박진영이 만든 노 플레이보이(No PlayBoy)를 부를 당시에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스윗튠과 좋은 궁합을 보였고 ‘돌스’(Dolls)에서 꽤 멋진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번 앨범에서도 일렉트릭 기타 등 밴드 사운드를 적절히 살려낸 스윗튠의 방식이 나인뮤지스의 후끈한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 ‘어 퓨 굿 맨(A Few Good Man)’ 등에서 잘 나타나듯이 최근 나온 걸그룹의 음악 중에 특히 록 사운드가 잘 살아있는데, 기타리스트 홍준호가 수훈갑이라 할 수 있겠다. 악플러의 행태를 꼬집는 ‘세치혀’는 속을 후련하게 해주며 ‘라스트 신(Last Scene)’, ‘천생여자’ 등 수록곡들의 완성도가 골고루 높다.

김성수 ‘The Road to Home’
재즈 기타리스트 김성수의 정규 2집. 김성수는 현재 CCM을 재즈로 표현하는 찬송가 밴드와 자신이 리더로 있는 김성수 밴드로 활동하고 있다. 종교음악을 한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말길. CCM 계열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 실력파 연주자들이 상당히 많다. 한국 재즈계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악기는 바로 기타라고 할 수 있다. 재즈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도 실력 면에서 명성이 자자한 김성수는 기본기, 안정감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신보는 전작에 비해 훨씬 재즈 본연의 어법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편성은 김성수를 기타를 중심으로 최원석(색소폰), 윤석철(피아노), 윤종률(베이스), 한웅원(드럼)과 같이 실력파 연주자들이 퀸텟(5인조)를 이루고 있다. 국내에 기타와 색소폰이 한 팀에 있는 퀸텟은 흔치 않은 편인데 김성수는 최원석과 테마를 임프로비제이션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김성수의 톤은 따뜻하고, 연주는 논리정연하다. 연주자의 성격이 그렇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Sacrifice’에서는 가스펠의 영향이 느껴지는 멜로디가 들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좋은 곡으로 귀결되고 있다.

폴 매카트니 ‘New’
명불허전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써야 한다. 폴 매카트니 새 앨범이 ‘죽여주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감성이 이미 그의 어법에 맞춰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터. 폴 매카트니는 작년에 기존의 팝 스탠더드를 재해석한 앨범 ‘키스 온더 보텀(Kisses on the Bottom)’을 발표한 바 있다. 신곡을 발표하는 것은 2007년 앨범 ‘메모리 올모스트 풀(Memory Almost Full)’ 이후 6년 만. 이번 앨범에 대해 폴 매카트니는 “제가 이 앨범의 곡들을 연주하면 다들 놀라더라. 모든 트랙이 제각각 다채로워서 이게 정말 내가 알던 폴 매카트니가 맞나 싶을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그의 말처럼 비틀즈, 폴 매카트니 솔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멜로디부터 최근 트렌드를 흡수한 신선한 사운드도 엿보인다. 강렬한 록 사운드 사이로 감수성을 자극하는 ‘세이브 어스(Save Us)’, 듣자마자 비틀즈를 연상케 하는 ‘뉴(New)’, ‘퀴니 아이(Queenie Eye)’ 등 전곡이 경이롭다. 칠순이 넘은 뮤지션이 이 정도의 음악을 만드는 것을 보면, 젊은 시절 존 레논과 힘을 모은 비틀즈로 세상을 바꾼 것이 당연한가?

마일리 사이러스 ‘Bangerz’
2013년에 가장 화끈한 19금 섹스어필을 펼친 가수를 꼽자면 마일리 사이러스다. 디즈니 채널의 ‘한나 몬타나’를 통해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타덤에 올랐던 사이러스다. 전 세계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마일리 사이러스가 갑자기 ‘MTV 뮤직 어워드’에서 성행위 퍼포먼스를 하고 ‘Wrecking Ball’ 뮤직비디오에서는 올 누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왜 그랬을까? 여배우들의 경우 연기의 성장을 위해 베드신에 도전한다고들 하던데 비슷한 이유에서였을까? 올 한해 마일리 사이러스에 대한 이런저런 섹스어필 무용담을 전해 들었는데 정작 음악을 못 들어봤다. 기대감을 가지고 앨범재킷을 펼쳤다. 어럽쇼? 기대보다 야하지는 않다. 음악을 보면 기존에 들려줬던 아이들이 좋아하는 틴팝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트랩(trap)’ 등 힙합 성향이 강해졌으며 전반적으로 공격적으로 변한 음악 스타일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제 음악에서도 마일리 사이러스 2.0 출발.

에디트 피아프 ‘Hymne A La Mome’
지난 10월 11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50주기였다. 작년에 파트리샤 카스가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들을 재해석한 콘서트를 본 적이 있다. ‘나의 하나님(Mon Dieu)’,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빠담 빠담(Padam Padam)’ 등에서 온전히 곡의 주인공으로 분한 파트리샤 카스의 모습에서는 에디트 피아프에 대한 존경심마저 느껴지더라. 프랑스의 가난한 거리에서 태어나, 사창가 포주였던 할머니 손에 자랐고 곡예사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노래를 부르게 된 피아프. 천부적인 재능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사랑했던 연인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 교통사고에 따른 육체적 고통을 견디기 위해 맞은 약물 중독으로 47세에 삶을 마감한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타계 5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인 이 앨범에는 에디트 피아프의 주옥과 같은 히트곡들이 담겨 있다.

모비 ‘Innocents’
일렉트로닉 뮤직 계의 거물 모비의 정규 11집. 행여나 일렉트로니카라는 단어에 오해를 가질까봐 하는 말이지만, 모비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과 같은 클럽음악과 전혀 상관없이 일렉트로니카의 어법을 통해 진지한 음악을 들려줘왔다. 우울한 일렉트로 팝이라고 할까? 사운드 완성도 면에서는 언제나 최고의 음악을 들려줘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새 앨범의 곡들 역시 스산한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청자로 하여금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한다. 마크 레너건, 웨인 코인, 데미안 후라도 등 여러 보컬리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인다. 플레이밍 립스의 보컬 웨이 코인이 노래한 ‘Perfect Life’는 희망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스크리밍 트리스의 보컬 마크 레너건이 특유의 저음으로 내리깔아 노래한 ‘The Lonely Night’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도로시컴퍼니,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안테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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