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을 기억하는가. 마치 6억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로 인해 새로운 생물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처럼 X세대, N세대, 압구정 오렌지족 등 대한민국 신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했던, 그리고 ‘한강의 기적’이 낳은 경기 호황의 바람을 타고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며 아날로그 시대의 종언을 고했던 그 시기. 한 편의 드라마가 불러온 ‘기억’의 힘은 대단했다.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94’가 던진 ‘추억’이라는 돌멩이 하나는 경쟁, 자본으로 점철된 ‘오늘’ 이라는 호수에 커다란 파문을 몰고 왔다. 각자 그 시절을 살아가는 방식과 관심을 두었던 대상도 달랐지만, 드라마를 매개로 추억을 쏟아낸 이들의 눈은 90년대의 어느 한 순간을 쫓고 있는 듯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텐아시아에서는 그 시절과의 좀 더 밀도 높은 교감을 이어가고자 1994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물어봤다. “당신에게 1994년이란 무엇이었나요?”



“나에게 1994년은 록밴드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죽은 해다.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채널V에서 너바나의 ‘어바웃 어 걸(About A Girl)’이 흘러나오는 거야. 그때 팝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지. 내가 살던 전주에는 음반 가게도 몇 군데 없어서 버스타고 시내까지 나가서 테이프를 찾아 헤맸지. 그리고 구입한 앨범이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인 뉴욕(Unplugged In New York)’이야. 1994년은 커트 코베인이 죽었고,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돈을 주고 음반을 산 해였지. ” - 권석정 텐아시아 기자

“나에게 있어서 1994년은 ‘감수성’이랄까(웃음). 그때는 왜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일부러 대학로를 찾아가 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었어. 지금은 다 사라진 감성이 그때는 살아있었지. 이상민 팬인 친구를 쫓아서 이상민의 서초동 아파트 앞까지 가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배구 선수를 보려고 매주 배구장을 찾기도 했지. 하고 싶은 것도, 느끼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그때. 1994년은 그런 순수함과 소녀 감수성이 아직은 살아있었던 시기였지(웃음).” - 장서윤 텐아시아 기자

“1994년 하면 고속도로지. 물론 땅에 난 도로가 아니라 머리에 난 도로(웃음). 두발자유화가 실시되기 전, 머리 좀 길러보려다가 자주 정수리 근처가 휑해지곤 했지. 미치코런던의 옷을 입고 월담해서 당구도 치러가고, 첫 사랑도 만나러 가고…. 아 그때 참 행복했었네(웃음). ” - 최봉근 텐아시아 웹그룹 차장

“1994년은 오늘의 나를 만든 문화적 토대였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으니까. 비디오 열심히 봤지. 내가 살던 여수는 극장이 많지 않았기에, 당시 영화의 중심이던 종로를 처음 왔을 때는, 아 정말(웃음). 영화로 시작해서 영화로 끝낸 하루가 많았어. 종로에는 극장도 많고, 몰려 있어서 다니기 좋았지. 피카디리부터, 단성사, 서울극장, 명보, 시네코아, 허리우드를 거쳐 대한극장까지 오는 여정. 지금의 나는 1994년의 경험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황성운 텐아시아 기자

“나에게 1994년은 아날로그 감성이야. 모토롤라 삐삐(비퍼)에 ‘1004’가 찍힐 때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던 시절(웃음). 안 터지는 시티폰을 들고 기지국을 찾아 헤매던 일도 기억에 남네. 그리고 아~주 가끔 찾았던 신촌 록카페 ‘광개토 대왕’ 물론 지금은 없어졌겠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했던 1994년에는 우리의 감성도 그 만큼 복잡하고 다양했지.” - 이재원 텐아시아 편집장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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