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94′
서울 도착 첫 날,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30분이면 도착할 하숙집을 돌고 돌아 12시간 가까이 찾아 헤매다 겨우 근처에 다다른 삼천포(김성균)는 지친 모습으로 공중전화 박스에서 고향집에 전화를 건다. 어머니에겐 “중간에 친구를 만나 늦었다”며 씩씩한 척 하지만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런 그의 모습 뒤로조용필의 ‘꿈’이 BGM으로 흐르며 시청자들이 애잔한 마음에 젖어갈 때쯤, 불심검문에 걸린 그의 주머니에선 낮에 시위대에게 받은 ‘UR 반대’ 문구가 적힌 전단지가 툭 떨어지고 순간 당황하는 삼천포와 경찰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하숙집에서 비로소 한 몸 누이게 된 삼천포는 안도감과 설렘이 섞인 하룻밤을 맞는다.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첫회에 등장한 이 장면은 작품의 흥행요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일상성과 위트, 대중문화를 통한 공감 등이 그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대 있게 그려내면서도 드라마 속에서 예능적인 재미를 놓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든 포인트라는 얘기다. 18일 첫방송한 이래 4회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 4%대를 넘어서며 돌풍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응답하라 1994′의 인기 요인을 몇가지 키워드를 통해 풀어봤다.
tvN ‘응답하라 1994′
#일상성으로의 회귀, 보통 사람들의 ‘따뜻함’으로 소통하다낯선 곳에 홀로 떨어졌을 때의 설렘과 두려움, 첫사랑의 순수한 가슴앓이, 그리고 함께 먹고 자는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응답하라 1994′ 속 에피소드는 결코 과장돼 있거나 극적이지 않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며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남매처럼 자라온 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 사이의 소소한 다툼이나 해태(손호준)와 삼천포의 첫 미팅 실수담, 간간히 욕설이 섞인 대화가 오가는 하숙집의 아침 식사 풍경 등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내재돼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이다’라는 명제를 온기 어린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지상파 드라마가 주로 극적인 사건이나 강렬함, 빠른 전개를 택하는 등 자극성에 치우친 것과는 분명히 차별화된 행보이기도 하다.
tvN ‘응답하라 1994′
#깨알같은 위트와 추리, 드라마 속 빛나는 예능 감각작품 곳곳에 숨은 코믹 요소나 시청자들의 추리력을 발동시키는 장면은 예능적인 재미를 주고 있다. 술취한 나정이 첫사랑 쓰레기에게 입맞춤할 듯 다가가다 입술을 깨물어 버리는 장면이나 동일이 운전 중 소변을 참다 결국 공중전화 박스에서 실례하고 마는 모습 등은 다분히 시트콤적인 분위기를 안고 있다. 여기에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주인공 성나정의 남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은 계속해서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시청자들이 다섯 명의 ‘남편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게임에 참여하도록 집중시킨다. 실제로 시청자 게시판에는 갖가지 단서로 나정의 남편감을 추리하는 내용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중문화를 통한 ‘공감’
무엇보다 당시의 대중문화를 공감대로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점은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다.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공존한 1990년대의 감성을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대중음악사적으로 가장 풍성했던 시기로 불리는 1990년대 히트곡이 당시의 추억을 깨운다. 이승환의 ‘너를 향한 마음’ O15B의 ‘신인류의 사랑’ 서지원의 ‘또다른 시작’을 비롯해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리메이크된 서태지의 ‘너에게’ 같은 노래들은 그 시기를 떠오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또 1990년대 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농구대잔치, 젊은이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록카페나 삐삐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추억을 건드리며 공감대를 풍성하게 이끌고 있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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