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 편이 불러온 ‘추억’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94’는 전작 ‘응답하라 1997’에 이어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의 몸과 마음을 1990년대로 돌려놓는 기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4’는 복고에 그치지 않는다. ‘응답하라 1997’이 부산이라는 한정된 지역을 배경으로 90년대의 문화 복기에 집중했다면, ‘응답하라 1994’는 서울 신촌 하숙집에 모인 팔도 청춘들의 눈물겨운 상경기를 그린다. 추억이 불러온 기억에 90년대를 살아온 시청자의 경험이 오버랩 되는 순간, 드라마는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가 된다. 지역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극 속에 특정 지역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점도 공감대의 밀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1994년. 한때 호황을 누렸고, 대중문화가 태동했던 그 시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1994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응답하라 1994’의 신촌 하숙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텐아시아 기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1994년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역감정 조장 방지 차원에서 프리토크에 응한 기자들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대체했다)



S#01 멀고도 가까운 그곳, 서울


액면가 서른네 살, 머리 모양만 장국영. ‘응답하라 1994’ 1회에서 신촌행 열차를 기다리던 삼천포(김성균)을 바라보던 기자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이 떠오른 듯 말을 잇지 못한다.

혼자옵서예(제주 여 30대): 아, 서울에 올라온 지 벌써 이렇게 오래됐나…. 아직도 고향 친구들은 나한테 “제주도 촌X이 서울 와서 배우 인터뷰도 하고 성공했네?”라고 말하지(웃음).
서울사람(서울 여 30대): 친한 친구 중에 마산출신이 있는데 정말 ‘응답하라 1994’ 속 고아라처럼 “마산 촌X이 서울 와서 성공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라니까.
여수낮바다(여수 남 30대): 삼천포 보면서 생각난 건데 나도 처음에 서울에 와서 버스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여수는 지하철이 없어서 항상 버스를 이용하는데 지역이 크지 않아서 타는 곳 반대편에서 타면 되는 거야. 근데 서울은 그게 아니잖아. 돌아갈 때 내린 곳 반대편에서 오지도 않는 버스를 한참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
‘핫’한전주(전주 남 30대): 나도 한 시간이면 갈 곳을 세 시간씩 걸려서 가곤 했지(웃음). 아, 더 신기했던 건 지하철이 많이 흔들려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서울 사람들은 손잡이를 잡기는커녕 책까지 읽더라고. 속으로 ‘어지럽지도 않나?’ 했었지. 서울 사람들은 대단해.
울산바위(울산 여 30대): 난 정말 부끄러운 기억이 있어. 서울 와서 처음 친구들이랑 지하철을 타는데 나는 지하철 표를 넣고 나서 다시 뽑아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거야. 목적지에 도착해서 친구들은 개찰구에 표를 넣고 나오는데 그걸 몰랐다는 게 부끄러워서 막 표를 잃어버린 척했었어(웃음).



#02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과 사투리의 간극



“이 컴퓨↗터 중↘독자 새끼야” “아~따, 내가 니 미↗친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잉” 컴퓨터를 놓고 오밤중에 경상도-전라도 욕배틀을 펼친 삼천포와 해태(손호준). 차진 사투리 연기를 보는 기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여수낮바다: 해태 진짜 차지다(웃음). 성동일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 진짜 순천 사람이라서 그런가? 대사에 생활 사투리가 살아있다. 사실 사투리의 클래스는 외지 사람들은 구별하기 어렵지.
부산8학군(부산 여 20대): 저는 삼천포에 가서 지하철 표 살 때 정말 공감했어요. 서울 와서 처음 옷 사러 갔을 때 지방출신 티 안 내려고 “얼마에↗요?” 했는데, 점원이 ‘피식’ 웃으면서 “어디서 오셨어요?” 한 적이 있거든요(웃음). 어린 마음에 점원이 바가지를 씌울까 봐 노심초사했었죠.
여수바다: 다행히 부산 여자들은 사투리 쓰면 귀여운 느낌이라도 있지, 전라도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거든(웃음).
부천판타스틱(부천 남 20대): 아, 정말. 대학 다니면서 느꼈어요. 그래서 부산에서 온 여자 후배들한테 “오~빠야” 한 번만 해달라고 자주 부탁했었죠. 제주도 사투리는 어때요?
혼자옵서예: 사실 사투리는 서울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안 나와(웃음). 물론 서울 올라온 지가 언 10년이 넘었으니 기억도 잘 안 나고. 제주도는 보통 말을 굉장히 축약해서 사용해, 타지 사람들이 들으면 ‘말을 다 한 거야 안 한 거야?’ 할 정도로. 예를 들어 “밥 먹었니?”는 “밥~먹↗언?”, “그래”는 “기”하는 식이지.
여수낮바다: 지역마다 쓰는 단어가 달라서 실수도 잦았지. 예를 들면 쓰레기가 자주 찾는 ‘딸딸이’ 같은 거? 마산에서는 슬리퍼를 그 단어로 쓰는 거야. 여수에는 ‘땡땡이’를 가리키는 말이 그랬어. 서울에서 그 말이 성적인 뉘앙스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썼다가 호되게 당했지(웃음). 그때부터 말할 때마다 단어를 고르느라 고심했었지.



#03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고향을 그리워한다



여수 가스관 폭발 사고 이후 순천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가 되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해태. 걱정한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화과 잼을 다 먹었느냐고 묻는 어머니와의 통화 이후 해태는 책장에 고이 모셔둔 잼을 꺼내 손으로 퍼먹으며 그리움을 삭힌다.

해운대신도시(부산 여 30대): 아, 정말 서울에서의 삶은 TV 속 시트콤과는 너무나 달랐어. 옆집 소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에 있다 보니 ‘이게 내가 꿈꾸던 서울이 맞나’ 싶더라고.
혼자옵서예: 그 시절에는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지. 서울에 올라오면 새로운 게 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뭔가를 하지 않는 한 변하는 건 없더라.
여수낮바다: 자취를 할 때는 서글픈 일이 더 많았지. 특히 돈 없고 아플 때는 정말….
해운대신도시: 난 처음에 집에서 택배만 와도 눈물이 나더라고. 집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나를 챙겨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에서는 아무리 아파도 룸메이트는 나에게 관심도 없으니까. 그럴 때 집에서 전화 와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하면 이 한마디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라.



#04 농구대잔치, 야구, 컴퓨터, 서태지와 아이들, 모래시계…그리고?



“오빠~나정이 왔어요!” 대한민국 농구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응답하라 1994’ 속 성나정(고아라)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연대 농구팀을 밀착 마크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 스타들의 이름과 기억 속 추억을 꺼내놓는 프리토크는 점차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여수낮바다: 아, ‘마지막 승부’ 정말 최고였지. 용돈 모아서 가장 먼저 사는 게 농구화일 정도로 전국적으로 농구가 붐이었지. 그땐 리복이 아니라 나이키 조단이 최고였어(웃음).
서울사람: 사실 나도 친구가 이상민 광팬이라서 서초동 아파트까지 따라갔던 기억이 있어.
‘핫’한전주: 모두다 만화 ‘슬램덩크’의 공이라고 봐야지. 농구대잔치, 기아자동차 대회, 연고전, 그 모든 농구붐의 근원에는 ‘슬램덩크’가 있었지. 그땐 ‘소년챔프’에 실린 ‘슬램덩크’가 최고의 인기였어. 북산과 능남 중에 누가 이길 것인지, 지금으로 치면 스포츠토토 만큼의 관심을 끌었지(웃음). 다들 강백호를 살아있는 인물처럼 생각했던 거 같아. 그때부터 코트에 나가면 슛 쏘는 친구들보다 유독 리바운드를 하는 친구들이 늘기도 했고(웃음).
서울사람: 배구도 인기가 많았어. 나도 신진식 선수(현 삼성화재 코치) 보느라 배구장 자주 갔었지(웃음).
부천판타스틱: ‘모래시계’는 어땠어요? 저도 그땐 온가족이 둘러앉아서 드라마를 보던 기억이 있어요.
혼자옵서예: ‘모래시계’는 나중에 봤어. 제주도에는 SBS가 안 나왔거든….
여수바다: 지금은 케이블, IPTV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땐 유선 하나였어. 그것도 갖춘 집이 많지 않았지. 유선 나오는 집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가서 보거나 비디오 녹화에서 돌려보고 그랬지(웃음).
혼자옵서예: 제주도에선 듀스가 별로 인기 없었는데, 서울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며?
여수바다: 한창 듀스가 인기 있을 때 여수에서 제일 큰 레코드 상점에 갔는데 사장이 “서울에서 인기가 많다고 해서 테이프 잔뜩 들여다 놨는데 안 팔려서 큰일이다”고 하더라(웃음).
해운대신도시: 그때쯤 컴퓨터도 보급되지 않았나?
여수낮바다: 286부터가 시작이었지. 페르시아의 왕자, 알라딘, 베네치아 등 게임을 하고 간단한 프로그램도 만들었었어.
‘핫’한전주: 그리고 인터넷이 깔렸지. 나우누리, 하이텔, 천리안 등 그렇게 인터넷 강국의 역사가 시작된 거지.
여수낮바다: 하, 그땐 성나정처럼 삐삐치고 기다리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 있었는데….
해운대신도시: 요즘은 카카오톡 숫자 사라지는 것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라니까(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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