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루키 록밴드 로큰롤라디오의 질주는 거침이 없다. 2011년 결성된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한민국 라이브 뮤직 페스티벌에서 주최한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 선정에 이어 CJ의 신인뮤지션 지원 프로그램인 튠업 11기 선발되며 존재가치를 한껏 높였다. 2013년에도 EBS 스페이스 공감 ‘5월의 헬로루키’ 선정되었고 포털 다음에서도 ‘6월의 인디유망주’로 선정되었다. 특히 EBS 헬로루키에서는 6팀이 우승을 겨루는 최종 결선무대에 당당하게 진출한 상태다. 이 모든 행보가 특별한 이유는 데뷔앨범조차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궈낸 놀라운 성과들이기 때문이다.로큰롤라디오는 올 해 대형 뮤직 페스티발인 ‘그린플러그드 뮤직 페스티발’, ‘지산월드락페스티벌’, ‘젯페스트’, ‘그랜드민드페스티벌’ 무대를 섭렵했다. 이들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것은 금년 봄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발’에서다. 존재도 몰랐기에 다른 밴드의 공연을 보고 있던 내게 한 후배평론가가 “아직 음반도 없는 루키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미 스타 밴드”라며 이들을 칭찬해 호기심이 살짝 생겨났다. 로큰롤라디오의 노래를 처음 경험한 것은 케이블방송 Mnet ‘밴드의 시대’였다. 빅뱅의 TOP이 피쳐링한 엄정화의 히트곡 ‘D.I.S.C.O’에 창작곡 ‘Shut up and dance’를 믹스해 신나게 연주하자 객석이 후끈 달궈졌고 방송 후 온라인에서는 “폭풍연주에 전율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 6월, 방송을 통해 이들의 음악에 반한 중견가수 이승환도 ‘착하게 살자’ 공연을 함께 하자고 연락을 했다. 마침 클럽공연 스케줄과 겹쳐 성사되진 못했지만 로큰롤라디오가 지난 가을 이승환의 헌정공연 개념인 ‘그랜드민트페스티발’ 홀오브페임 무대 오프닝을 장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들의 실전 무대가 궁금해 지난여름 ‘지산월드록페스티발’에 갔다. 방송에서 경험한 신나는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기대했건만 어럽쇼. 실전 무대를 보니 댄스본능을 자극하는 음악은 분명한데 기타 김진규를 제외한 멤버들은 춤과는 100촌도 넘고 그다지 신나는 음악도 아닌지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공연 도중, 폭우가 쏟아져 객석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이들은 연주를 강행했지만 결국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로 인해 공연은 중단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폭우로 인한 공연 중단까지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 수 십 명의 관객이 있어 폭우 속에 연주하는 로큰롤라디오의 근사한 공연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몇 십 분 동안 중단된 공연은 재개되었지만 어수선한 가운데 끝났기에 이들을 칼럼에 소개할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정규앨범 발표 이후로 유보했었다. 그로부터 2달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난 10월 21일. 로큰롤라디오는 싱글 같은 맛보기 과정 없이 정규 1집 ‘Shut up and dance’를 발표하는 돌직구를 날렸다. 앨범발표 날, CJ 아지트에서 로큰롤라디오가 동영상 촬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멤버들과 만나 인터뷰와 피쳐 사진촬영을 진행했다.
로큰롤라디오는 리드보컬/기타 김내현, 기타/코러스 김진규, 베이스/코러스 이민우, 드럼 최민규로 구성된 4인조 라인업이다. 처음 밴드 이름을 정할 때 ‘쉘위댄스’를 비롯해 여러 가지 유치찬란한 이름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 김진규, 이민우, 최민규가 이전에 함께 활동했던 밴드 고고비트의 싱글 제목 ‘로큰롤라디오’로 결정되었다. 로큰롤라디오의 역사는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우신아파트에서 서로 옆 동에 살았던 최민규와 이민우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오랜 친구사이다.
로큰롤라디오 결성을 주도한 드럼 최민규는 1985년 1월 22일 전북 전주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살 때 서울로 올라온 그는 우장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민우와 같은 아파트 동네친구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밝고 외향적이고 활발했던 최민규는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고장 난 물건을 잘 고치고 공예품을 만드는 재능이 탁월한 아이였다. “민규는 처음 봤을 때 성격이 활발하고 조숙한 아이였고 하드보드지로 권총과 탄창, 활도 만들어 신기해 더 친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쓰는 드럼 세트나 탬버린 같은 것도 직접 개조해 만들 정도입니다.”(이민우) “민우는 착했어요.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어 먹을 것도 잘 사주었죠.”(최민규)
베이스 이민우는 1985년 2월 17일 서울 화곡동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3학년 때까지 ‘야채가게의 까부는 아이’로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제가 좀 까불고 엉뚱했습니다. 동네 아이들 다 불러놓고 어머니 금고에서 돈을 꺼내 나줘 주고, 가게에서 파는 생선을 들고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다 저녁 12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갔으니까요.(웃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에 맞춰 춤추는 게 재미있어 댄스가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학교 장기자랑대회에는 무조건 나갔고 신월중학교 3학년 때까지 춤을 췄었습니다.”(이민우) 최민규는 2살 터울의 친형이 좋아했던 일본밴드 X-JAPAN의 동영상을 보며 드러머 요시키의 모습에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신월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앞에 있던 선생 한 명 혼자서 모든 악기를 다 가르쳤던 월드음악학원에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최민규) 그때 최민규가 보여준 X-Japan의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민우는 음악학원에 따라갔다. “합주를 하려면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고 해 호기심이 생겨 따라갔습니다. 처음엔 쉬운 악기라 생각했는데 어렵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땐 베이스도 음악에도 밴드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이민우)
명덕고에 입학한 최민규, 이민우는 영일고에 다녔던 음악친구 안창현과 3인조 밴드 바이올렌스를 결성했다. 주로 엑스 저팬의 음악을 카피했던 당시, 합주를 하면서 프로 뮤지션이 되고 싶은 생각에 2학년 때 실용음악과가 있는 아현직업학교에 함께 들어갔다. “음악학원 강사분이 아현학교 출신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배울 수 있다고 해 입학을 결심했습니다.”(최민규) “음악학원의 한 친구가 학교를 자퇴를 했는데 사춘기 때라 멋있어 보였고 실용음악과가 있는 아현직업학교 이야기를 듣고 옮기려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에 학교를 자퇴하려했죠. 서태지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에게 자퇴 이야기를 꺼냈다가 엄청 맞았습니다.(웃음) 당시 명덕고에는 2학년은 직업반 제도가 없어 어머니가 학교에 부탁해 아현학교에 4기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이민우)
당시 아현직업학교 실용음악과는 1개 반이었다. 명덕고에서 온 최민규, 이민우와 영동고에서 온 김진규는 같은 반 친구로 운명적 만남을 가졌다. 기타 겸 코러스 김진규는 1984년 6월 12일 서울시 동작구 독산동에서 대중음악가 집안의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수동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형은 활동적이라 잃어버리면 찾아다녀야 했고 저는 5시간 후에 가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던 조용한 아이었습니다.”(김진규) 그의 아버지 김영광은 요즘 어린아이들이 다 아는 동요 ‘멋쟁이 토마토’를 작곡한 동요작곡가다. “그 곡은 90년대에 아버지가 작곡하셨는데 원래 레크레이션 강사를 오랫동안 하셨습니다.”(김진규) 5살 때 부모님의 별거로 어린 시절 김진규는 형, 아버지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수도권 일대의 행사장을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게 좋았다. 서울 잠실로 이사를 간 그는 아주초등학교에 입학해 친구들을 사귀면서 조용했던 성격이 활발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로큰롤라디오 멤버 중 무대에서 가장 댄서블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그의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백댄서였다. “친구들 사이에 춤을 잘 춘다는 소문이 나면서 댄서의 꿈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형이 일렉트릭 기타를 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아 일주일동안 잠도 못 잤습니다. 그래서 형 없을 때 몰래 일렉 기타를 치면서 장래희망을 수정했습니다.”(김진규) 그의 아버지는 평소 통기타를 연주했고 2살 터울의 친형(달콤한 소금의 전 멤버 김진우)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치기 시작해 집안은 늘 기타 치는 분위기였다. 아버지가 형에게 사준 나일론 기타를 어깨너머로 배운 김진규의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장래희망을 기타리스트로 명기되어 있다.
아주중학교 2학년 때 선배들 졸업공연 무대에 섰던 김진규는 3학년 학생부장 선생님을 찾아가 밴드부를 만들어 달라해 요구해 스쿨밴드 그로브(작은 숲)를 결성하며 곡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3인조였다가 나중에 키보드 연주하는 이승재를 추가해 4인조가 되었습니다. 승재는 음악을 계속하지 않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는데 몇 년 전 깁슨S9 일렉트릭 기타를 저에게 선물할 정도로 친한 친구입니다.”(김진규) 이들은 서울시내 각종 중학교 동아리 경연대회를 휩쓸었다. 서울랜드에서 열렸던 ‘동아리 한마당’ 경연대회에서는 중고등학교 전체 3등에 입상했을 정도. 영동고에 진학한 김진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잘못된 길로 빠져 반년 동안 학교에 가지 않는 극심한 사춘기의 방황을 겪었다. “형을 따라 아연학교에 가려했는데 출석일수가 모자라 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야구 방망이로 정신 차리라고 저를 때리신 후 출석일수를 조정해주셔서 아현직업학교에 겨우 입학했습니다.”(김진규)(part2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로큰롤라디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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