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네 이웃의 아내’의 출연진 김유석, 염정아, 신은경, 정준호(왼쪽부터)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옷속을 파고들던 지난 28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모 세트장에서는 종합편성채널 JTBC ‘네 이웃의 아내’ 촬영이 한창이었다. 급격히 떨어진 기온 탓에 날은 추웠지만, 최근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3%대를 넘어선 분위기가 이어진 듯 리허설을 앞둔 세트장 온도는 뜨거웠다.

‘네 이웃의 아내’는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에 지친 두 부부가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과 네 남녀의 비밀스러운 로맨스 다룬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획 단계부터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을 얻었지만, 드라마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자극’보다는 ‘현실감’을 중점을 뒀고 중장년층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막장 논란을 잠재웠다.

이날 공개된 촬영 장면은 결혼 17년 차지만, 일명 ‘마누라성 발기부전’ 사건으로 급격하게 사이가 나빠진 채송하(염정아)와 안선규(김유석)이 퇴근 후 어색한 분위기 속에 맥주를 한잔하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코를 훌쩍이며 나타난 김유석은 “이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현장에 자리했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이태곤 PD는 식탁 위에 세팅된 소품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리허설 전 분위기를 다잡았고, 두꺼운 패딩 코트를 입은 염정아가 도착하자 리허설이 시작됐다.

이태곤 PD(왼쪽)는 식탁 위의 소품을 매만지며 촬영 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리허설 때는 배우들 곁에서 대본을 함께 읽으며 의견을 나눴다.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리허설을 하는 내내 배우들의 옆에 서서 대사를 함께 읽는 이태곤 PD의 행동이었다. 이태곤 PD는 즉석에서 김유석의 연기에 동작의 미묘한 디테일을 더했고 김유석은 “아, 정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며 박장대소했다. 말투나 발끝의 움직임까지 현장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은 서로에 대한 신뢰의 정도를 짐작게 했다.

현장공개 후 촬영장 한편에서는 문을 마주한 두 이웃 민상식(정준호)-홍경주(신은경), 안선규(김유석)-채송하(염정아) 부부와 이태곤 PD가 자리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배우들 모두가 기혼자이다 보니 각자의 배역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실제로도 ‘워킹맘’인 염정아는 채송하 역할을 맡은 심경을 묻자 “심적으로는 송하도 집안일과 회사 일을 모두 잘하고 싶을 거다”며 “그런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둘 다 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답해 일하는 엄마의 애환을 드러냈다. 또 김유석과 정준호는 “실제로 ‘네 이웃의 아내’처럼 부부싸움을 하고 욱할 때면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그러나 결국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니까 소시민적인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안서는 남자’ 안선규 역의 김유석(왼쪽), ‘당찬 워킹맘’ 채송하 역의 염정아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피해간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유석은 “이번 작품을 하며 주변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어쩜 이리도 비슷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발기부전과 같이 수면 아래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되레 공감대 형성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기하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불륜’이 막장으로 비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녹록지 않은 일인 듯 수위조절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신은경은 “수위 조절이 가장 까다롭다”며 “명확한 그림을 갖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기에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는데 이태곤 PD가 그 선을 딱 잡아주어서 신명 나게 연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이태곤 PD는 “중장년층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보니 육체적인 것보다는 심리적인 것과 관계가 깊다”며 “우리 드라마는 흔히 이야기하는 불륜드라마가 아니라 마음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보고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회 단막극에서나 볼법한 화면 구성과 디테일한 연출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네 이웃의 아내’만의 특징이다. 이태곤 PD는 “항상 현장에서 대본을 읽으며 그 장면이 전달하려는 내용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며 “리허설을 하며 가장 효율적으로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연출에 녹여내려 노력한다”고 답했다.

‘미스터리한 아내’ 홍경주 역의 신은경(왼쪽), ‘고지식한 가장’ 민상식 역의 정준호

“섹스리스(sexless) 부부의 비율이 30%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네 이웃의 아내’를 통해 그런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으니 함께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유석의 말처럼 ‘네 이웃의 아내’는 발기부전, 중년의 사랑 등의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를 정면에 끌어놓으며 브라운관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네 이웃의 아내’는 시청률 3%대의 벽을 넘어 지상파 드라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공감드라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방송 4회 만에 작품 속 네 명의 주인공은 그들만의 삶 이야기가 불륜으로 점철된 막장이야기라는 편견을 벗어던지는 데는 성공했다. 시청률보다도 공감이 최우선이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보니, ‘네 이웃의 아내’의 진정한 도전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듯하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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