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본명 조윤석)에게는 다양한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다. 일단 싱어송라이터와 생명공학박사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명함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목소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인데 두뇌는 과학자’라며 호감으로 받아들이는 여성 팬들이 많더라. 이런 불공평한 세상이라니! 시적인 가사를 부드럽게 노래하다가도 인형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루시드폴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모든 것이 루시드폴이더라. 무척 섬세하고, 예민하고, 또 사려 깊은 모습이었다. 1998년에 미선이로 데뷔앨범 ‘드리프팅(Drifting)’을 발표해 어느덧 15년차 뮤지션이 된 루시드폴. 그는 이러한 긴 세월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한결같은 음악을 들려줘왔다. 6집 ‘꽃은 말이 없다’로 돌아온 루시드폴을 17일 안테나뮤직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노랫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눌 줄 알았는데 웬걸? 기타에 대한 수다를 더 많이 나눴다.Q. 최근에 루시드폴 공연을 본 것이 작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였다. 조윤성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틴 음악을 들려줬었다.
루시드폴: 지산에서의 공연은 작년 4월에 LG아트센터에서 조윤성 씨와 함께 했던 공연의 선곡표를 간추려서 한 것이었다. 그때 보사노바, 삼바, 룸바, 차차차 등 남미음악들을 다양하게 해봤다. 루시드폴의 번외 편과 같은 공연이었다.
Q. 근황은 어떤가? 책 ‘무국적요리’도 내고 앨범도 내고 무척 바빴을 것 같다.
루시드폴: 작년에는 단독공연을 쉬어서 안식년과 같은 느낌이었다. 작년 가을에 기회가 닿아서 글을 쓴 것이 올해 초에 책으로 나왔고, 올 봄에는 장기공연도 했다. 그 외에 친한 친구의 시집을 대신 내준 일이 있다. 친구가 2006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남긴 시들을 모아서 책으로 냈다. 모아보니 40편 가까이 됐다. 등단도 하지 않았고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 책 내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출판사를 찾아서 친구 생일인 6월 15일에 맞춰 시집을 냈다. 마음속으로 굉장히 오래된 짐을 하나 해결한 기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봄이 다 갔다. 그렇게 여름이 오고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이제 11월 공연까지 또 쉬지 않고 갈 것 같다.
Q. 새 앨범은 올 여름 한 달 반 동안 루시드폴이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수록곡들의 구상 및 작사, 작곡을 모두 완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한 달 반 동안의 일상은 어땠나?
루시드폴: 한 달 반이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돌이켜보면 매우 길게 느껴질 정도로 느리게 살았다. 예전보다 일찍 일어났고, 뭘 하나 하더라도 천천히 집중해서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려 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다. 가령 똥을 눌 때는 똥만 누고 신문을 본다든지 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에도 TV를 틀어 놓거나 책을 들여다보지 않고 밥만 천천히 먹었다. 작년부터 의식적으로 그런 방식의 생활을 하고 있다.
Q. 왜 그런 방식의 생활을 하게 됐나?
루시드폴: 친구가 권하더라. “네가 지금 사는 것보다 밥을 두 배로 천천히 먹고, 걸음을 두 배로 느리게 걸어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리는 것이 있을 거라고. 무슨 도사님 같은 말인데 난 아직 그 경지까진 아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는 알겠더라. 평범한 일상 속에 그런 노력들을 해봤다. 음악,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갖길 원한다. 그게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홍상수 감독과 같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똑같은 시간을 살더라도 한 템포 더 늦춰서 매 순간을 깊게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차피 서울에 사는 사람인데 아무리 다이내믹한 삶을 살려고 해본들 한계가 있다. 아무리 음악, 책, 영화를 많이 접하고, 여행을 많이 다니려 해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의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Q.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가사가 술술 나오던가?
루시드폴: 항상 첫 곡을 쓰는 것이 어렵다. 물론 윤종신 형처럼 매달 신곡을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좀 다른 경우이고. 새로 앨범을 내기까지 워밍업을 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 나 스스로와 많이 싸우는 것 같다.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앨범은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래서 첫 곡을 만들기까지 애를 먹었고, 그 이후부터는 일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했다. 가족들과도 유선 상으로만 연락을 하고, 사람 만나는 일도 잠시 미뤘다. 일부러 가두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혼자 한 번 있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했더니 3~4일에 한 곡 정도가 나오더라. 길지 않은 시간이 촘촘하게 느껴졌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기타를 계속 팠다.
Q. 작년부터 시작(詩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루시드폴: 작년에 음악을 쉬면서 글을 많이 쓰고 싶었다. 예전부터 시, 시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부지런히 시를 쓰니 60편 정도가 나왔다. 그 중에 ‘검은 개’, ‘가족’의 가사의 원형도 나왔다.
Q. 그래서일까? 새 앨범 가사는 유독 시적이더라.
루시드폴: 최근에 가네코 미스즈라는 여류 시인의 시집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너무 좋아서 선물도 많이 했다. 희열 형도 한 권 주고. 1930년대에 활동한 시인인데 20대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편에게 글 쓰는 한 여인으로서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아이마저 뺏긴 채 불행한 삶을 살다 갔다. 하지만 가네코의 시는 정말 감동적이다. 시를 읽다보면 작가와 작품이 닮아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정말 착한 사람인 것 같더라. 나도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종기 선생이 책에서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도 그렇더라. 착하지 않은 사람이 이 험난한 경쟁사회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공격받는 이곳에서 누구든지 위악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착하게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 가네코의 시를 읽고 착하게 사는 것, 약하고 여린 것들에 대한 관조의 시선을 갖고 사는 것이 멋진 일이라 여겼다면 가네코의 시는 몇 백 년이 지나도 유의미할 것이다. 나도 그런 가사를 써보고 싶었다.
Q. 루시폴은 본인의 연애담부터 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가사를 써왔다. 이번 앨범의 가사들은 ‘루시드폴의 평온한 일상’과 같은 인상을 준다.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나?
루시드폴: 그때그때 순간의 기록이긴 한데 전과 다른 점이라면 가사를 손으로 썼다는 것이다. 저번 앨범은 컴퓨터 자판으로 가사를 썼다. 글을 손으로 쓰는 것과 자판으로 쓰는 것은 매우 다르다. 컴퓨터는 지우고 새로 쓰는 것이 자유롭다보니 다듬다보면 내 글을 객관화시키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결국 내가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된다. 하지만 손으로 쓰면 보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 그렇게 손으로 가사를 정리하다가 완성됐다고 느껴질 때 옆에다가 날짜를 적었다.
Q. 손글씨와 자판의 차이는 정말 큰 것 같다. 쓰는 것도, 보는 것도.
루시드폴: 그림도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것과 도록을 볼 때의 느낌이 다르고, 음악도 음반과 공연이 다른데, 문학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혹시 육필 원고와 책의 차이가 아닐까? 올 초에 화천에 내려가 이외수 선생님을 뵌 일이 있다. 그때 문학관에 가서 선생님의 원고지가 전시된 것을 봤는데 활자에서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힘이 있더라.
Q.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새 앨범에서는 바리톤 기타, 세미 바리톤 기타, 8현 나일론 기타 등 여러 대의 기타를 사용했다. 기타 소리를 탐구하는 자세로 이번 앨범을 준비했다던데?
루시드폴: 여태껏 내 기타와 다른 사운드를 내보고 싶다는 화두가 있었다. 처음에는 고악기에 관심을 가졌다. 바로크음악, 르네상스 시대에 쓰던 류트를 사용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약 2년 전에 국내에서 류트, 비올라 다 감바의 연주자를 찾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일본만 해도 고악기를 하는 연주자들이 많은데 국내에는 그런 저변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이번에 다시 수소문하다가 류트를 직접 만들고 연주하시는 김영익 선생을 찾았다. 그분의 공방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류트를 찾으니 신기하게 바라보시더라. 류트 음악들을 많이 들려주셨는데 놀랍게도 4~5분 길이에 류트로 반주를 하고 노래하는 송 폼(song form)이 몇 백 년 전부터 존재했더라. 그런 식의 음악을 시도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것이 내 노래와 어떻게 어울리게 될지 불투명했다. 욕심을 좀 부리다가 결국 여섯 줄보다 많은 다현 기타를 제작해서 쓰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8현 기타를 제작해 연주를 해보니 이게 또 다른 세계더라.
Q. 바리톤 기타도 사용했다.
루시드폴: 바리톤 기타는 일반 기타보다 4~5음이 낮은 기타다. 일반 기타와 베이스의 중간에 있다고 보시면 된다. 후배에게 바리톤 기타를 빌려서 연주해보니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냥 튜닝은 소리가 좀 어두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가 했던 세미 내쉬빌 튜닝을 사용해보니 고음역이 보강이 돼서 독특한 화성을 만들 수 있더라. 그래서 세미 내쉬빌 튜닝을 많이 사용했다. 장고 라인하르트가 사용한 마카페리 기타를 사용해보고 싶기도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셀머 기타를 구했는데 원하는 소리가 나오더라. 그런 식으로 소리를 만들어갔다. 문제는 레코딩에서 그 질감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Q. 앨범의 기타 소리가 따뜻한 느낌이다. 팻 메시니의 앨범 ‘원 콰이어트 나잇(One Quiet Night)’의 분위기도 나던데 루시드폴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더라.
루시드폴: 실제로 팻 메시니의 ‘원 콰이어트 나잇’ 앨범은 어떻게 녹음했는지 라이너 노트를 자세히 살펴봤다. 팻 메시니의 기타를 만들어준 장인 린다 만쩌가 사용한 픽업 등을 찾아봤는데 똑같은 장비로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기타 사운드를 잘 받아줄 수 있는 마이크를 열 대를 넘게 테스트를 했고 최종적으로 MK4라는 마이크를 사용했다.
Q. 이번 앨범 들으면서 루시드폴이 기타리스트라는 생각을 새삼 해봤다.
루시드폴: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은 좋지만 부끄럽기도 하다.
Q. ‘목소리와 기타’라는 타이틀로 소극장 공연도 하고 있다. 본인의 음악을 표현하는데 노래와 통기타가 가장 편한가?
루시드폴: 그렇다.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재작년에는 학전에서 공연을 했다. 올해에는 마이크가 없어도 대화가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훨씬 작은 공간에서 했다. 관객들이 나를 둘러싸는 형태의 무대였다. 예전에는 혼자 공연하면 중간에 기타 튜닝을 하는 시간에 어색해질까봐 뭔가 말을 하려 했는데, 이번에는 멘트 없이 쭉 노래만 하고 마지막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집중해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좋더라. ‘목소리와 기타’ 공연은 내년에도 꼭 할 거다.
Q. 1998년에 인디 신에서 미선이로 데뷔앨범 ‘드리프팅(Drifting)’을 발표한 15년차 뮤지션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음악을 해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가?
루시드폴: 실감이 안 난다. 음악계가 너무 격변의 시기였다. 음악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CD시장이 무너지고, 인디 신이 형성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메이저 시장과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밀리언셀러도 사라졌는데, 내 음반 판매량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전업으로 음악을 한 것은 그리 길지 않아서 음악을 오래 했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는 않는다. 미선이로 활동할 때에도 인디 신에서 연대가 된다기보다는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었다. 따로 노는 느낌이어서 그런 것들이 조금 싫더라.
Q.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루시드폴이 유독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뭘까?
루시드폴: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정말 모르겠다.
Q. 어떤 이는 ‘양말’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하더라.
루시드폴: 하하하!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고정 출연할 때 아는 디자이너 분이 코디를 해주셨다. 이 분이 자기 회사 쇼에서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이상한 옷을 나에게 입히면서 대리만족을 느끼셨는데 특히 양말을 신경 써서 챙겨주시더라. 그 이후로는 양말 선물을 많이 받는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안테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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