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에 형들과 처음 무대에 오른 주찬권은 1974년 뉴스 보이스, 1978년 믿음소망사랑, 1983년 신중현과 세 나그네 등을 거쳤다. 1988년 솔로 1집에서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하고 기타를 직접 연주한 그는 꾸준히 솔로활동을 하며 솔로 6집 ‘지금 여기’(2012)까지 발표했다. 여섯 장의 정규앨범은 들국화 출신의 전인권과 같고, 최성원보다 많은 숫자. 주찬권은 비록 큰 조명은 받지 못했지만 매 앨범마다 완성도 높은 음악을 펼쳐냈다. 그의 행보는 마치 비틀즈 해산 이후 재능을 만개한 조지 해리슨을 떠올리게 했고, 록에 대한 뚝심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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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찬권이 여타 드러머들과 다른 점은 기타, 건반 등 여러 가지 악기를 고루 다루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점이다. 드럼을 배우기 전 5살 때 기타를 먼저 잡았다. 열살 많은 친형한테서 기타를 배웠고, 이후 자신은 믿음소망사랑, 들국화의 명 기타리스트로 성장한 최구희에게 기타를 가르치기도 했다. 주찬권은 미8군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다. 그 자신은 “밴드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악기를 배우게 됐다. ‘서당개 3년’같은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에 나온 솔로 1집 ‘SOLO’에서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하고 기타를 직접 연주했다. 이 앨범에는 주찬권을 대표하는 명곡 ‘왠일로’가 담겼다. 전인권 못지않은 매력적인 보컬과 투박하지만 터프한 맛이 있는 기타연주가 일품이 곡. 이후 그는 자신의 솔로앨범을 원맨밴드 형태로 만들어오며 60년대 영미 클래식 록의 성향을 내비쳤다. 주찬권 본인은 “어렸을 때는 레드 제플린, 킹 크림슨, 핑크 플로이드, 지미 헨드릭스 등 굉장히 끝에 가 있는 록을 듣고 자랐고, 나도 그들처럼 대중성보다는 내 음악을 하려고 했다. 그가 원맨밴드 형태의 작업을 처음 시도한 것은 1999년에 나온 4집 ‘원 맨 밴드(One Man Band)’부터다. 주찬권이 원맨밴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온전히 자신의 음악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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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의 백미는 마지막 곡 ‘이순간은 우리의 것’이다. 멜로디와 가사의 합치는 노련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에 대해 주찬권은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그 노래 가사가 좋지. 그 가사는 나에게도 힘이 된다. 살면서 내가 힘을 얻고 싶을 때 이 가사를 떠올리곤 하지. 다른 사람들도 이 가사를 이해하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음악이 그런 게 좋잖아(웃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들국화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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