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에서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박재범 작가

처음 박재범 작가를 만난 것은 2년 전 광진구 작업실에서였다. 그가 집필했던 OCN 메디컬 수사극 ‘신의 퀴즈’와 관련된 인터뷰 차 그를 방문했었다.

당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희미해졌지만, 박재범 작가로부터 눈빛이 매서운 그러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 같은 다정한 느낌을 받았다고 다시 들춰본 그날의 기록이 기억하고 있었다. 희귀병을 다룬 차가운 질감의 ‘신의 퀴즈’였지만, 그 속에는 환자들을 위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신의 퀴즈’에서 KBS2 ‘굿닥터’로의 길은 어느 정도는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르겠다. 주원과 문채원, 그리고 주상욱의 재발견을 비롯해, 시청률 20%를 넘어 성공적으로 종영한 ‘굿닥터’는 제목처럼 따스한 이야기들이 시청자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또 이 드라마는 박재범 작가에게도 개인적 영광을 안겨주었는데, 첫 지상파 데뷔로 2013 코리아드라마어워즈의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성공적 지상파 안착. 기분 좋게, 2년 만에 박재범 작가와 다시 마주 앉았다.

Q. 일단 너무나 축하드린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것 먼저 물어보겠다. 극중 박시온(주원)의 서번트 신드롬은 정말 드라마에서처럼 그만큼 괜찮아질 수 있는 건가.
박재범 : 서번트 신드롬은 스펙트럼 장애라고 한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죠. 증상을 모아두면 엄청나게 많다. 주원 씨와 내가 사전에 만나본 참조했던 분은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계시다. 일반 사람들과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분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사람들이 (서번트 신드롬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온이 보다는 자폐성이 조금 더 강하긴 하다. 시온은 여러 인물들을 많이 섞어 놓은 캐릭터이긴 하다.

Q. 시온의 경우, 인터넷 용어도 찾아보고 농담도 곧잘 하는데, 정말로 그 정도로까지 소통이 가능한 것인지.
박재범 : 이분들은 농담을 암기를 하는 편이다. 기억에 ‘아, 이런 농담을 하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해’이런 식이다. 인터넷 용어나 개그 이런 것을 암기해서 써먹는다. 그런 것에 민감하다(웃음).

Q. 박재범 작가가 로맨스에 이만큼의 욕망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웃음).
박재범 : 피를 토하며 했다(웃음). 어떤 것인지 알려달라고 문채원 씨한테 말해서 당황시키기도 했다. 소스가 없어서 80%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피소드였다. 내 아내와 했던 것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을 총동원해 풀어낸 것이다.

Q. 판타지 장면은 신의 한수였다.
박재범 : 그 장면은 기획안부터 있었다. 시온이 사랑을 하게 될 텐데, 분명 멋있는 사랑을 꿈꾸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노래 부르는 장면부터 데이트하는 장면까지 미리부터 잡아뒀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박재범 작가

Q. 시온이 부른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도 미리 정해둔 것인가.
박재범 : 그렇지는 않았다. 어느 날 후배 중 한 명이 이 노래의 가사를 SNS로 시처럼 보내주면서 ‘시온이 이야기 같다’고 하더라. 내가 지금까지 쓴 시온이의 이야기와 퍼펙트 매치가 되더라. 그런데 이 장면이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아니다. 편집된 것인데 시온이 자기도 모르게 TV를 켜다 이 노래를 접하고는 웅얼웅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있기는 했다.

Q. 외과 의사들은 실제로도 술을 많이 마시나.
박재범 : 담배는 많이 안 피우시지만, 술은 거의 생활이더라(웃음).

Q. ‘신의 퀴즈’에서부터 ‘굿닥터’까지 이제 거의 웬만한 의사들은 다 알겠다.
박재범 : 정말 그렇다. 의학적인 부분에서 자문을 받는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 거의 현장에 상주해계셨다.

Q. 소와외과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재범 : 여러 이유가 있는데, 성장물이기에 가장 적합한 과는 소아과라고 생각했다. 성장물의 중심이 되는 박시온 역시도 10살 사회성을 가진, 그 역시도 심리적으로 소아과 환자인 것이다. 메타포적 의미를 가진다.

Q. 요즘 의료계의 최고 화두가 의료민영화인데, ‘굿닥터’도 결국 큰 맥락에서 이점을 다루고 있다. 지금 방송 중인 MBC ‘메디컬탑팀’도 이점을 이야기하려하고, 직접 만나본 의사들은 의료민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가.
박재범 : 의사들의 생각은 반반이다. 드라마 속 상황과 비슷하다. 흔히 알듯 의사들이 모두 찬성한다? 그것은 아니더라. 회의적이라기보다 생각을 더 해봐야하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 아쉽게도 시온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가다보니 이 점은 원래 하려던 이야기의 반도 못 풀어냈다. (의료민영화는) 좀 부당하지 않나라는 짧고 굵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도로 그려졌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시온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뱉어보았다.

Q. 배우들 이야기해보자. 문채원 씨는 차윤서라는 역할에 온전히 빠져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박재범 : 채원 씨는 매회 나를 감탄시켰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문채원이라는 배우를 발견한 느낌이다. 채원 씨는 캐릭터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 캐릭터로 살았다는 느낌이다.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채원 씨는 지금도 차윤서에 더 이상의 배우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할 말이 없었다. 공간을 자기가 다 알아서 꽉 차게 만들더라. 애드리브도 대사의 차원이 아니라 지문에 표시되지 않은 것들도 완벽하게 상대와 상황에 맞춰서 빈틈없이 해냈다. 경이로웠다.

Q. 주상욱의 김도한도 호평을 받았다.
박재범 : 주상욱은 오래된 배우고 농익은 배우다. 그를 실장님 전문 배우라고 하는 것은 속상하다. 이 사람만큼 디테일한 배우는 없다. 하다못해 목소리 톤부터 해서 모든 디테일이 다 살아있는 그런 배우다. ‘TEN’ 끝나고 나서 이미지적으로 혹 겹칠까 고민을 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인물이 나왔다. 기획안이나 대본에서 설정된 심리들을 정확하게 잘 해냈다. 자세히 보면 김도한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시온을 만났을 때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 조직 내에서 중간자로서의 스트레스, 사랑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감정을 가진 그런 인물이다.

Q. 무엇보다 주원의 서번트 증후군 연기가 큰 화제가 됐다.
박재범 :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코드를 동물적으로 알고 있는 배우더라. 기본적으로 연기를 너무 잘했다. 1~2부 들어가기 전 ‘최대한 여심을 끌어’라고 주문을 했는데, 먹는 것 하나하나 세세한 지점을 잘 표현해내더라.

Q. 작가 개인이 가장 감정 이입을 많이 했던 캐릭터는 누구였나.
박재범 : 시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남은 것이 10살의 사회성을 지닌 캐릭터이기에 내가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야 했다는 점 때문. 글을 쓸 때,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상상력이나 아니면 클리셰를 쓸 수 있는데 시온이 되기 위해 과거의 나를 끌어와야 했고 덕분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이입보다 더 나아간 것이다. 20부 끝나고 나서 혼이 나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래서 ‘신의 퀴즈’에 비해 즐길 수 없었던 면도 있었다. 진짜 10살이 돼있었어야 했으니까. 기본적으로는 캐릭터를 다 좋아한다. 마지막엔 고과장도 좋아했다.

Q. 고과장은 나중에는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그런 인물이었다.
박재범 : 그렇다. 엘리트적 공간에서 가장 마이너한 인물이었고, 현실적인 그런 인물이었다.

Q. 요즘 드라마나 영화의 트렌드가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처럼 악에 대한 근거들을 파헤치려는 움직임으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반면에 ‘굿닥터’는 모든 이들의 결말도 동화처럼 착했기에 보는 이의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그 점이 너무 좋았다.
박재범 :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다. 상업적으로는 사실 없는 것이 많다. 엄청난 갈등이 없다. 또 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최근까지만 해도 단막극에서조차도 거의 다루지 못했던 터부시 됐던 것이었다. 아직도 일부 시청자들은 불편해하기도 한다. 드라마 중반부 시온이 시련을 당할 때 실제로도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잘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었다. 조미료가 아주 조금은 들어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 나갔으면 걸렸을 것이다(웃음). 그렇지만 최소한으로 해보자라는 오기가 있었다. 최소한으로 해도 사람들이 좋아할까 걱정은 했지만. 그런 면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도리어 1~2회다. 메디컬 드라마 정체성 때문에 수술신도 많이 들어갔지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3부부터 8부까지였다. 하지만 동화 같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한 현실이었다고 본다. 사람들은 ‘저런 의사가 대체 어딨어?’라고 하지만, 실제 소아외과 의사들을 만나보면 다들 그 이상이다. 오히려 실제를 그리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말할 정도로.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박재범 작가

Q. 작가가 만든 캐릭터와 일차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들이고 그 다음이 시청자인데, 이 작품은 일단 배우들부터가 캐릭터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것은 그런 캐릭터에 대한 욕구가 사람들 내면에 있었다는 말로도 들리고.
박재범 : 지금은 적당한 증오, 열등감, 파괴성을 지닌 다소 비뚤어진 캐릭터에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고,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들이 많다보니 파격적이지는 않지만 치유가 되는 그런 캐릭터에 배우들이 애정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둘러보면 우리들이 소속된 조직 내에도 그렇게 나쁜 악인은 없다.

Q. 초중반에 등장한 늑대소녀 에피소드에 반응이 엇갈렸다. 다소 ‘신의 퀴즈’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고.
박재범 : 후회는 없다. 지상파에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반감이 있지만, 그 아이템은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였다. 교감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학드라마=수술’이 돼버렸는데, 실제 수술을 봐도 그렇게 스펙터클하지는 않다. 실제로 한 달 입원한다고 가정하면 수술시간은 불과 몇 시간, 나머지 29일 이상은 모두 의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실 치료의 본질도 그것이다. 의사와 의사, 환자와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Q. 수술신 외에 수술을 앞두고 회의를 하는 신들도 여러 번 등장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을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신이었던 듯 하다.
박재범 : 그렇다. 다시 말 하지만 ‘굿닥터’는 거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다. 환자와 환자, 의사와 환자, 의사와 의사 등 서로간의 이야기와 입장차를 이야기하는 게 많다. 그 자체가 의료행위니까. 그리고 결국 말하고 싶었던 사랑이라는 부분도 그렇다. 소아외과에 들어온 시온이라는 환자를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약은 결국 사랑이었고, 그것의 바탕은 커뮤니케이션이다.

Q. 시온과 윤서의 해피엔딩 역시도 동화같다는 평가가 있긴 했다. 꽤 납득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박재범 : 결말을 가지고 비현실적이라고 꼬집는 분이 계시지만, 실제로 장애인 남성과 비 장애인 여성의 결혼을 한 사례는 꽤 된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동정으로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변하더라.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나와 맞고 그러니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2세를 낳아 좋은 교육을 할 수 있겠다 싶은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하시더라.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2부부터 둘의 관계에 수많은 떡밥을 깔아야만 했다.

Q. 차기작도 메디컬 드라마인가. 로맨스나 로코에 대한 작가님의 욕구를 이번 작품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는데(웃음). 또한 의학드라마에 워낙에 일가견이 있으시니 의드의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보고 싶은 욕심은 당연히 있을 것 같고.
박재범 : 로맨틱 코미디는 남자 작가에겐 엄청난 도전의 영역이긴 하다. 마치 신인 작가에게 ‘광개토대왕’과 같은 장기 사극을 쓰라는 것과 같다. 어쨌든 차기작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다른 것을 해보고 싶긴 하다. 다만 다음 작품은 좀 센 것을 해보고 싶다. 의학 드라마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하겠지만, 국내에서 의학드라마는 어느 정도 한계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이미 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굿닥터’의 경우에는 캐릭터로 기존 의학드라마와 차별성을 꾀한 것이지만, 다음 메디컬 드라마를 하기 위해 나는 또 다른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 배선영, 김광국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