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김목인, 방탄소년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운명으로 친다면,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아이유 ‘분홍신’ 中

아이유 ‘Modern Times’
여동생에서 여성으로 변신을 보여주는 앨범. ‘아이유 2.0’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10대 시절 아이유는 동년배 중 거의 유일하게 혼자서 2시간 이상의 단독콘서트를 소화해낼 수 있는 가수였다. 갈 길이 먼 가수이기에 이미지 변신이 급선무였을 터, 스물한 살에 내놓은 이 앨범은 여동생 이미지를 떨쳐내기에 충분한 내용물을 담고 있다. 일단 음악적으로 보면 타이틀곡 ‘분홍신’의 스윙 리듬을 비롯해 ‘을의 연애’의 집시 스윙, ‘오블리비에이트(Obliviate)’, ‘하바나(Havana)’에서는 브라질리언 뮤직 등 장르음악의 색이 강하다. 아이유의 목소리를 빼고 악곡만 본다면 성인들이 향유하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뮤직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입술사이’에서는 살짝 농염함도 엿보이는데 노래하면서 교태를 부리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아직 섹시함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유는 이러한 음악들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내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풍부한 노래를 들려준다. 이 정도 소화력이라면, 차후 어떤 음악을 시도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최백호와의 듀엣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리고, 샤이니 종현이 만든 곡은 은근하게 귓가에 남는다.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New Beginning’
일반인들을 위해 일부러 소개하자면, 서영도는 국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베이시스트 중 한 명이다. 레코딩, 방송, 콘서트를 종횡무진하며 세션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으니, 한국 사람이라면 알게 모르게 그의 연주를 한 번씩은 들어봤으리라.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의 공연에서 실제로 그를 처음 봤으며, 서영도 트리오의 ‘서클(Circle)’의 멋진 연주를 듣고 팬이 됐다. ‘브리지(Bridge)’에서 집단 즉흥에 가까운 실험(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록· 퓨전)을 했던 서영도는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을 통해 즉흥 연주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파헤쳐 왔다. 이번 앨범은 제목 ‘뉴 비기닝’처럼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의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첫 곡 ‘445-2’부터 재즈 록· 퓨전이 아닌, 테마가 선명한 모던재즈를 선사하고 있으며 이후의 곡들에서도 즉흥적이기보다는 악곡의 구조가 명확한 음악이 실렸다. 굳이 심각한 재즈 마니아가 아니라고 해도 멜로디라인이 귀에 잡힐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단조롭거나 다이내믹이 떨어지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작곡의 의도와 연주자의 해석력이 멋지게 만났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피아니스트 민경인이 작곡한 ‘새벽의 Serenade’는 실제로 새벽에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곡.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작’에서는 마치 자코 패스토리우스의 빅밴드 ‘워드 오브 마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연주가 흐른다.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의 또 다른 시작을 보여주는 듯한 멋진 장면.

김목인 ‘한 다발의 시선’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목소리는 참 선하다. 동네 착한 형 같다.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착한 형 말이다. 처음에 세 곡 정도를 듣다보면 “뭐야? 지난 앨범하고 똑같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곡이 거듭될수록 보다 깊어지고 단단해진 노래가 들려온다. 김목인은 자신의 색을 확실하게 가진 아티스트다. ‘김목인 표’ 메시지,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작 ‘음악가 자신의 노래’에서 음악가와 음악가 주변의 상황,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음악 신(scene)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면, ‘한 다발의 시선’에서는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별다를 것은 없다. 보도자료에 실린 김태춘의 “대부분의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지루한 자신의 얘기를 특별한 것처럼 꾸미려고 발버둥 칠 때 그는 그 자신만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평범하게 이야기한다”라는 말이 과장됨 없는 표현인 것 같다. ‘이야기꾼’으로서도 곱씹을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멜로트론을 효과적으로 가미한 ‘새로운 언어’, ‘결심’은 상당히 매혹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마지막 곡 ‘흑백사진’까지 듣고 나면 서서히 김목인의 어법에 중독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 ‘O!RUL8,2?’
‘방시혁의 아이들’로 먼저 알려졌던 방탄소년단은 올해 데뷔한 아이돌그룹 중 단연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포지션이 특별했다. 랩몬스터(방시혁은 랩몬스터가 열여섯 살 때 만든 믹스테이프를 듣고 계약을 결정했다고 한다), 슈가 등과 같이 본래 힙합을 추구해온, 랩 메이킹 실력을 가진 아이들과 기존의 아이돌그룹을 지향하는 아이들이 만났다. 이러한 형태의 ‘힙합 아이돌’은 이전에도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다른 점은 힙합에 대해 보다 진지한 접근을 꾀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뷔 싱글에 이은 첫 번째 미니앨범 ‘O!RUL8,2?’는 특히 현재 미국에 유행하고 있는 힙합의 트렌디한 요소들을 상당부분 차용해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이러한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대하는 아이돌 팬들과 힙합 리스너들의 반응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 둘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좁힐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우미진 ‘Tell Me Your Story’
피아니스트 우미진의 정규 2집. 우미진은 전작이자 데뷔앨범인 ‘애저 워크(Azure Walk)’를 통해 뉴욕의 재즈 트렌드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많은 유학파 피아니스트들이 있지만 우미진처럼 현지의 스타일을 제대로 재현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미진의 장점은 기교보다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것. 전작을 해외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것과 달리 이번 앨범에서는 이원술(베이스), 김윤태(드럼) 등 한국 연주자들과 트리오를 이뤘다. 편성은 퀄텟에서 트리오로 축소됐지만 우미진이 작곡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선명해졌다. 변박 등 아카데믹한 요소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이것은 기교를 위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스토리의 진행을 위한 것이다. ‘페인털리 아이(Painterly Eye)’와 같은 현대적인 진행의 곡부터 ‘미미(Mimi)’와 같이 재미난 그루브를 지닌 곡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로킹한 느낌으로 시작해 급반전을 이루는 ‘위스퍼링(Whispering)’은 주목할 만한 트랙. 재즈 보컬리스트 임경은이 노래로 참여한 ‘이츠 레이닝(It’s Raining)’은 안도의 순간을 제공한다.

이루마 ‘Blind Film’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8집. 사실 조지 윈스턴, 유키 구라모토, 스티브 바라캇과 같은 솔로 피아노 연주자들은 음악 애호가들이라 해도 매 앨범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이루마는 이번 앨범에 대해 “보이지 않는 영상음악이라고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특별히 변한 것은 없습니다. 뭐 저는 변한 게 없다 느껴질지라도, 제 심경의 변화가 저도 모르게 있었다면 음악에서 무의식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드네요”라고 설명하고 있다. 매 곡은 이루마가 상상하는 영상을 머금고 있다고 한다. 가사가 없는 연주곡의 미덕이라면 바로 청자가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리라. 앨범 부클릿에는 “세상의 모든 이별을 위해 이 음악을 바친다”고 쓰여 있는데, 이별의 슬픔에 젖어 있지 않은 이들도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틀어놓고 저녁까지 듣기에 무리가 없는 귀를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연주가 담겼다. 솔로 피아노 외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가 첨가된 편성을 들어볼 수 있다.

트롬본 쇼티 ‘Say That To Say This’
트롬본 쇼티는 마세오 파커의 뒤를 이어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펑크(funk)계의 스타 관악기 플레이어다. 본명이 트로이 앤드류인 이 젊은이는 트롬본과 트럼펫을 연주함과 동시에 보컬까지 소화한다. 등장부터 평단의 지지를 얻어낼 만큼 출중한 연주력을 지녔으며 탁월한 무대매너까지 보여줬다.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 출신답게 펑키한 리듬 위로 재즈풍의 유연한 연주, 악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으며 특히 블랙 필이 매우 강하다. 뿐만 아니라 젊은 연주자답게 록 적인 어법도 즐겨 사용한다. 이쯤 되면 마세오 파커와 레니 크라비츠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블랙뮤직의 전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반가운 존재다. 이번 앨범에는 블랙뮤직의 명인 라파엘 사딕이 공동 프로듀서 및 연주자로 참여했다. 시종일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순도 높은 정통 그루브 위로 디스토션 걸린 록 기타 사운드가 들려오곤 하는데, 확실히 라파엘 사딕이 베이스, 클라비넷 등으로 참여한 곡들은 보다 예스러운 사운드를 선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둘은 만남은 절묘했다. 뭐가 절묘하냐고? ‘쇼티 빌(Shortyville)’을 들어보라.

아이코나 팝 ‘This Is…’
스웨덴 여성 일렉트로 팝 듀오 아이코나 팝의 데뷔앨범. 헐벗은 두 여성의 미묘한 자태가 눈에 띄는 앨범재킷을 보면 외모를 앞세운 팀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데 음악이 의외로 강단이 있다. 스웨덴 출신답게 단 몇 초 만에 청자를 익숙하게 만드는 특유의 ‘유로 댄스’(박명수의 표현을 빌린 것) 멜로디와 리듬을 들려준다. 영국의 EDM처럼 이리저리 꼬지 않은, 스웨덴 특유의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가 귀를 벌떡이게 한다. 2009년 남자에게 차인 아이노가 마음이 잘 통하는 캐롤라인과 몇 시간 만에 뚝딱 뚝딱 음악을 만들면서 팀이 결성됐다고 한다. 음악을 들어보면 그저 놀다가 만난 기 센 언니 둘이라고 하기엔 완성도가 꽤 높은 편이다. 두 여성 다 보컬과 DJ를 겸하고 있으며 외모만큼이나 음악도 시원시원하다. 히트곡 ‘아이 러브 잇(I Love It)’은 미국 드라마 ‘글리’와 ‘걸스’를 비롯해 삼성 갤럭시 S4 글로벌 광고에 사용되는 등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름에 나왔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가을에 들어도 매력적인 음악.

트래비스 ‘Where You Stand’
트래비스는 한국 록 팬들 사이에서 특별한 인기를 누려왔다. 1인자였던 적은 없지만 꽤 오랜 세월 동안 가장 사랑받는 브릿팝 밴드 중 한 팀으로 남아있지 않나? 트래비스도 이제 결성 20주년을 훌쩍 넘긴 중견 밴드가 됐다. 올 여름 ‘레인보우 페스티벌’에 온 트래비스와 함께 사진을 찍은 지인의 모습을 봤을 때는 무척 부럽고 아쉽기도 했다. ‘웨어 유 스탠드(Where You Stand)’는 5년 만의 새 앨범으로 역시나 기존의 감성적인 브릿팝 사운드가 잘 살아있다. 재밌는 것은 이 앨범에 참여한 스웨덴 출신의 프로듀서 마이클 알버트가 동향인 맥스 마틴(엔싱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을 작업한 팝 프로듀서)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사실. 걱정은 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트래비스가 가진 기존의 스타일이 크게 변하거나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어나더 가이(Another Guy)’와 같은 멋진 곡을 들려주고 있다. 프란 힐리를 비롯해 멤버들 나이가 마흔이 넘었어도 트래비스는 여전히 트래비스.

메탈리카 ‘Metallica Through The Never’
지난여름 메탈리카 내한공연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온 라이브앨범. 이 앨범은 메탈리카 30주년을 맞아 캐나다 밴쿠버와 에드먼튼의 콘서트 영상을 엄선한 동명의 음악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두장의 CD에 16곡이 담겼다. 여느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엔니오 모리꼬네의 ‘석양의 무법자’ 영화음악으로 시작해 ‘크리핑 데쓰(Creeping Death)’, ‘포 훔 더 벨 톨(For Whom The Bell Tolls)’, ‘원(One)’, ‘마스터 오브 푸펫(Master Of Puppets)’ 등 메탈리카를 대표하는 주옥과 같은 히트곡이 이어진다. 사운드는 매우 만족스러운 편으로 라이브의 생동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내달 아이맥스 영화관을 통해 개봉한다고 하니 이번 내한공연을 못 본 팬들은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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