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007 가방을 들고 인터뷰 방으로 들어서는 감독을 보고) 007 가방이 굉장히 독특하다. 당신의 캐릭터를 설명해 주는 소품으로 보이는데, 평소에도 들고 다니는 가방인가?
역시 오다기리 죠다. 기상천외한 복장으로 패션의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어온 오다기리 죠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도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나타나 플래시세례를 받았다. 푸들을 연상케 하는 아프로 헤어스타일에 중절모를 삐딱하게 쓴 그의 패션은 알고 보니, 그가 출연한 영화 ‘당신을 위한 선물’ 속 캐릭터를 흉내 낸 것.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평가보다 ‘오다기리 죠만이 소화할 수 있는 패션’이라는 찬사가 우세한 것을 보니, 그에 대한 한국 팬들의 애정이 느껴진다.
잘 알려졌다시피 오다기리 죠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배우다. 김기덕 감독의 ‘비몽’ 출연을 시작으로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에 출연하더니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뉴커런츠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한국 팬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아, ‘풍산개’와 ‘미스터 고’의 깜짝 출연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런 그가 올해는 다이 요시히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당신을 위한 선물’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초청된 ‘당신을 위한 선물’은 실사와 인형극이 결합된 독특한 방식의 영화다. 도쿄의 한 건강식품회사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가지와라(오다기리 죠)가 어느 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스태프들이 회사 돈을 들고 도망간 후 사장으로 부터 Present For You라는 또 다른 건강식품회사의 사장으로 임명받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오다기리 죠의 독특한 안목으로 짐작해보건대, 개성강한 영화일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오다기리 죠와 다이 요시히코 감독을 만나 ‘당신을 위한 선물’에 대해 들어봤다.
다이 요시히코: (웃음) 설마. 이 007 가방은 부산국제영화제 방문을 목적으로 스태프가 손수 만들어준 거다. ‘당신을 위한 선물’은 실사와 인형극이 결합된 독특한 방식의 작품으로 난 이걸 궁극적인 더블 캐스팅 영화라고 부른다. 인형과 배우들이 동일 인물로 나오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인간과 인형이 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나는 관객들이 리얼 세계와 미니어처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체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3D기법을 사용했다. 오늘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4개의 캐릭터 인형을 가지고 왔다. (007 가방을 열어 캐릭터 인형들을 보여준다.)
Q . 이 영화를 어떤 관객에게 권해주고 싶나?
오다기리 죠: ‘당신을 위한 선물’은 클레이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작품이다. 섬세하고 예술적인 영화다. 인간과 사람의 융합이 아주 독창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예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스토리와 복장 등이 아이들에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부모와 함께라면 관람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본다.
Q. 어떻게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나. 감독과 친분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오다기리 죠: 다이 요시히코 감독님은 CF 감독 출신으로,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감독님이다. 크리에이터와의 작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섭외가 들어왔을 때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파일럿 영상이 있었는데 영상을 보니 이미 나를 모델로 한 캐릭터 인형이 완성돼 있었다. 흥미로운 작업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출연하게 됐다.
Q. 처음부터 오다기리 죠를 염두에 둔건가?
다이 요시히코: 오다기리 죠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캐스팅이 거절되면 이 기획 자체가 없어진다는 생각으로 제작했던 것 같다. 방송과 CF일을 많이 해 왔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택한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다. 하고 싶은 걸 구상하다보면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긴다. 그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오다기리 죠였다.
Q. 인형들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도 있던데 연기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오다기리 죠: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요청한 것이, 평소보다 오버스럽게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인형들의 움직임과 밸런스를 맞추려고 신경 썼다.
Q. 캐릭터의 변신이 굉장히 변화무쌍하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한심한 청춘에서 너구리 여인을 사랑하게 된 남자, 지속성 발기증에 시달리는 남자까지. 이젠 이런 생각마저 든다. 당신이 독특한 캐릭터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캐릭터들이 당신을 만나서 개성 있게 변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오다기리 죠: 처음 접했을 때 독특함이 느껴지는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걸 만드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걸 만든다는 건 상식과 많이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새로운 거라는 생각이 들면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새로움을 피부로 느낄 때의 느낌이 너무 좋다. 작품 속의 독특한 요소를 나만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창조하려고 하는 편이다.
Q. 독창적인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게 있는지.
오다기리 죠: 가구를 만들고 싶다. (상대의 침묵을 감지하고) 이 분위기는 뭐지?(웃음)
Q. 하하하. 구체적으로 어떤 가구?
오다기리 죠: 북유럽 가구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너무 비싼 게 흠이다. 쇼파 하나에 천만 원 이러니까, 어우. 차라리 내가 만들면 어떨가 싶다. 설마 내가 만드는데 천만 원이나 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웃음) 평소 생활하는 공간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내가 만든 가구로 가득 채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Q. 개막식 때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굉장히 화제였다. ‘미스터 고’ 때의 스타일도 그렇고. 개성이 굉장히 강하다.
오다기리 죠: 개인적으로 구두와 헤어스타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캐릭터를 만들 때 특히 그렇다. 헤어스타일 하나로 그 캐릭터를 설명할 수 있으니까. ‘미스터 고’ 때도 그랬다.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만약 이 캐릭터가 35년 동안 계속 같은 머리스타일로 살아왔으면 어떨까, 재밌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있다”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건 내 아이디어였다. 김용화 감독이 재미있다며 현장에서 바로 추가하셨다.
Q.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님들의 작품이 대거 초대됐다. 일본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진데,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오다기리 죠: 대지진이 일어난 후, 아니면 그전부터 그랬을 수도 있는데 일본 영화의 힘이 약해진 시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영화의 역사를 비춰볼 때 어려운 시기는 늘 있었다. 큰 영화사나 방송국들이 큰돈을 들여야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돈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걸 믿고 영화를 만들어온 분들이 계시다. 그런 힘든 시기를 견딘 분들이 이번 부산영화에 우연히 모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부산국제영화제이기에 그런 감독님들을 알아보고 초청해 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일본영화가 강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실력과 확신을 지닌 분들이 있기에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부산영화제가 이런 분들을 응원하고 많이 초청해 줬으면 좋겠다.
부산=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부산=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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