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대단한 시집’에 출연하는 세 명의 노처녀 김현숙, 서인영, 예지원(왼쪽부터)
“잘해주시는데 왜 마음이 불편하죠?”Q. ‘대단한 시집’이라는 제목이 심상치 않다. 그만큼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나.
마음을 다해 잘해주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마음이 불편한 곳.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라”는 속담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그곳. 속칭 ‘시월드’라 불리는 시집살이는 시대가 변해도 여자들에게는 가슴 한편에 부담으로 자리하는 묘한 공간이다.
25일 오후 11시 첫 방송을 앞둔 종합편성채널 JTBC ‘대단한 시집’은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혹은 드라마를 통해서나 접해왔던 ‘시월드’의 실체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일찍이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로 노처녀 캐릭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예지원과 케이블채널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2’로 2013년 노처녀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김현숙, 그리고 이제 막 서른 줄에 발을 들여놓은 서인영은 각각 전라남도 염전, 경상북도 고추밭, 충남 어촌에 위치한 시댁에 들어가 시집살이와 결혼생활을 체험해보게 된다.
단순히 ‘시월드 정면돌파’만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시집’을 연출한 김형중 PD의 말처럼 새 며느리와 같은 낯선 사람이 어느 가정에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새로운 가정의 생성과 그 안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마찰의 극복 이야기를 다룬다.
‘대단한 시집’은 대한민국 시월드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하며, 세 명의 노처녀를 제목처럼 대단한 예비 며느리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유림회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시월드 정면돌파에 나선 세 명의 노처녀와 김형중 PD를 만나봤다.
김형중 PD: ‘대단하다’는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대한민국 곳곳을 돌아보니,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가정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또 프로그램을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지방에서 시집살이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움이 많다. 전국에 위치한 대단한 가정들과 그 가정에서 벌어지는 대단한 시집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대단한 시집’의 연출을 맡은 김형중 PD(왼쪽)과 김현숙
Q. 예지원, 김현숙, 서인영을 섭외한 배경도 궁금하다. 예지원과 김현숙은 노처녀의 이미지가 강해서 일면 수긍이 가지만, 서인영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김형중 PD: 세 명의 이미지가 모두 다르기에 섭외했다. 예지원은 특유의 해맑은 느낌이 있는데, 그런 맑은 영혼으로 가족들에게 다가간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했다(웃음). 김현숙은 본인이 “시집을 못 간 노처녀들에게 아이돌 급 인기가 있다”고 자신 있게 답하더라. (이에 김현숙은 “나는 노처녀의 대통령이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 이미지를 가진 김현숙이 실제로 시집살이를 잘해낼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서인영이 시골이라는 단어와 가장 안 어울리는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상충된 이미지를 가진 서인영이 시골 생활에 어떻게 적응해나가는지도 무척 궁금해서 섭외하게 됐다.
Q. ‘노처녀’라는 타이틀을 내건 프로그램이기에 출연을 결정하는데도 고심이 깊었겠다.
예지원: 예전에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함께 했던 김석윤 CP가 예능을 같이 해보자고 해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 때도 노처녀 역할이었지만, 그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맡았던 거다. 이제는 또 다시 노처녀 역할로 시청자를 만나기보다는 시집을 가서 겪게 되는 예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미리 간접 체험을 해보면 시집 갔을 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김현숙: 노처녀의 아이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대단한 시집’은 노처녀의 이미지를 벗고 싶어서 출연하게 됐다.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술 마시고, 인기 없고, 남자에게 매달리는 행동을 정말로 김현숙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싫었다. ‘대단한 시집’을 통해서 요리도 잘하고, 소녀처럼 순수한 감성도 있는 인간 김현숙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웃음).
서인영: 유독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많이 해왔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들어갈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편이다. 그래야만 프로그램을 하면서 자연스레 내 모습이 나오게 된다. 때로는 그 모습을 안 좋게 보시기도 하지만, 나도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과 마주하고 겪으면서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인영(왼쪽)과 예지원은 제작발표회 내내 무척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Q. 처음 하는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예지원: 처음에는 어디로 시집을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꽃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가는데 남편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전혀 모른 채 시집가는 조선 시대 아낙들의 마음을 알겠더라(웃음). 생활하면서는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라’는 말의 의미도 깨달았다(웃음). 특히 서천에서 꽃게잡이를 하면 새벽 두 시에 배를 타고 나가야 하기에 새벽형 인간으로 바뀌는 과정이 힘들었다. 고구마 삶는 중에 이불을 빨러 갔다가 불을 낼 뻔도 했다. 지구력과 체력 하나만으로 버틴 것 같다.
김현숙: 도착하자마자 염전에서 삽으로 소금을 펐다. 아버님이 “어디서 해보고 왔느냐”고 감탄하며 물으시더라(웃음). 9년 연하의 남편과 함께하며 느끼는 설렘도 있었고, 요리하며 즐거움도 느꼈다. 근데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곤욕이었다. 드라마 촬영을 할 때는 촬영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계속 삽질하고, 밥 먹고, 새참 만들고, 다 먹고 나면 쉴 틈도 없이 설거지해야 하는 게 어려웠다.
서인영: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며 눈치를 자주 봤다. 밥 먹다가도 매번 체했다. 일하는 것 외에도 여기저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힘들더라. 또 나는 나만의 색깔을 고수하는 편이라 어르신들과도 마찰이 잦았다. 잘 해주시는데도 왜 자꾸 마음이 불편한 건지 모르겠더라(웃음).
Q. 아무리 방송이라고는 해도 출연진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관찰과 체험이라는 포맷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
김형중 PD: 프로그램을 위해 출연자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출연자들이 했던 일들은 모두 그 가정에서는 일상적인 일들이다. 리얼리티가 프로그램의 베이스이긴 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시월드, 고부 갈등, 시집살이의 애환 등을 과장되게 보여주려는 생각은 없다. ‘대단한 시집’은 새로운 가정의 생성에 방점을 뒀다. 결혼을 통해 낯선 사람이 한 가정에 편입이 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가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출연자들에게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시댁에 들어가고 나면 제작진에게 뭐라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웃음). 그게 어려운 과정일지라도 그 속에서 본인들의 생각을 갖고 스스로 문제를 헤쳐나가도록 제작진의 개입 없이 상황을 온전히 겪어보게 하고 싶었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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