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1세대 인디밴드들이 인디음악의 존재를 대중에게 어필했다면 2000년대에 등장한 2세대 밴드들은 다양하고 세련된 웰메이드 음악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풍성한 인프라를 제공하며 인디음악의 자생력에 밀알이 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2002년 결성된 3인조 어쿠스틱 밴드 악퉁(Achtung)은 11년 동안 롱런하며 3장의 정규앨범과 2장의 싱글까지 총 5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만큼이나 멤버교체와 침체기를 거치며 악퉁의 음악여정도 다사다난했다.

지난 해 KBS 탑 밴드2의 8강 진출은 극적인 드라마였고 밴드 부활의 불씨였다. 이후 소속사를 찾은 악퉁은 최근 정규 3집 ‘기록’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3년 만에 발표한 신보에 대한 기대감은 강렬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악퉁의 음악은 근사한 웰메이드 송이지만 가슴에서 뜨겁게 반응한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처음 골든 인디 컬렉션 칼럼을 시작하면서 작성했던 뮤지션과 밴드 리스트에 그들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이유다. 반전의 계기는 지난 여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발에서 악퉁의 공연을 처음 접하면서 부터. 그저 세련되고 깔끔한 가요 질감의 노래를 들려줄 것으로 생각했던 이들은 의외로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독창적 무대를 선보여 살짝 놀랬다.



자연스럽게 정규 3집에 관심이 갔고 앨범 발매 콘서트를 통해 악퉁의 매력을 재확인했다. 인디밴드로 11년의 나이테를 그려온 악퉁의 음악이야기가 궁금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상암동에서 급하게 만났다. 유난히 하늘이 높고 파랬던 그날, 하늘공원에 올라가 멤버들의 피쳐사진 촬영을 했다. 그곳엔 갈대들이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었다. 근사한 가을 풍경 속에서 개구쟁이 삼총사처럼 장난을 치는 멤버들의 순수한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사실 3집은 전작들과 비슷하다고 느낄 청자들이 많을 수 있다. 타이틀 ‘기록’에서 보듯 일상의 소소한 기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음악적 화두의 한계 때문이다. 전작들과 확연하게 차별되는 파격성은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진심을 담아 노래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추승엽의 하이 톤 일변도의 보컬에 뭉클한 감흥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트레이드인 스피디한 곡 진행은 친숙한 것이지만 경쾌함 속에 애절함을 담아낸 보컬은 무엇보다 귀에 콕콕 박혀오는 가사전달력이 명징해 졌다. 편곡과 가사의 표현에도 고민의 흔적이 선명하다. 타이틀 곡 ‘구름비’와 ‘Gonna Take U Ride’, ‘서투른 고백’에서의 현악기와 브라스 편곡과 ‘Fool’에서 들려준 재즈 질감은 신선했다.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유려한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보컬이 인상적인 ‘서투른 고백’은 이 앨범의 백미다. 심플한 연주편곡에 머물렀던 전작들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음악적 표현의 확장이다.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기에 악퉁은 포크 질감의 말랑말랑한 밴드로 종종 오해를 받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드럼의 단순한 편성은 제한적 장르의 음악을 구사할 것 같지만 이들은 록, 팝, 재즈, 발라드, 라틴, 레게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왔다. 인디음악의 태동부터 함께 해온 보켤겸 기타 추승엽을 중심으로 안병철(베이스), 임용훈(드럼) 세 명의 멤버는 밴드 합을 통해 탄탄한 앙상블을 들려준다. 악퉁은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규 3집이 소소한 삶의 ‘기록’이듯 악퉁의 음악여정을 차근차근 기록해 보겠다. 멤버 모두가 집안의 막내인 것도 흥미롭다.

마치 작고한 존 레논이 환생한 것 같은 ‘추 레논’ 같은 외모가 인상적인 리더 추승엽은 1976년 1월 31일 서울 필동에서 중앙대 생물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전국체전에서 원반던지기 선수로 활약했던 이화여대 출신 어머니 사이에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자란 것은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누나 추은희 덕분이다. 메탈 음악을 좋아했던 7살 연배의 형은 비틀즈, 시나위, 백두산 같은 밴드음악과 스모키와 사이먼&카펑클의 말랑한 팝 음악을 수혈했다. “막내라 알아서 제 밥 그릇 챙기는데 익숙했죠.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추승엽)



초등학교 6학년 때 걸스카우트 연맹의 통기타교실에 누나를 따라갔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통기타 듀오로 학교 축제와 일일찻집에서 ‘해바라기’와 ‘어떤날’의 노래를 노래하자 학교 1진들이 보호차원으로 챙겨줬을 정도로 나름 유명세를 떨쳤다. 중3때까지 공부를 뒷전이고 기타에만 매달리자 아버지가 기타를 부셔버리기도 했단다. 록 밴드 퀸의 신나고 드라마틱한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양재동에 있는 언남고에 진학하면서 일렉트릭 기타를 치며 점차 강력한 록음악 접하기 시작했다.

식구들 몰래 강남 신사동 화이트 합주실을 중심으로 어울렸던 서울, 영동, 상문고 친구들과 생애 첫 밴드 카프라(그리스 메두사 신화)를 결성했다. 당시는 바로크 스타일의 속주가 유행했던 시기. 친구들이 속주하기 시작하자 기타를 포기하고 보컬로 전환했다. 당시 대담하게 대학로 청파 소극장과 강남 LG아트홀 소극장을 빌려 단독공연을 몇 차례 했다. 고교생 추승엽이 노래하는 무대를 직접 봤던 소속사 트리퍼 사운드의 김은석 대표에게 당시의 노래 실력을 묻자 “그때는 노래를 잘 못했죠”라고 숨도 쉬고 않고 대답한다.



고1때부터 창작을 시작한 추승엽은 고3이 되면서 수능 준비로 밴드활동을 중단했다. 그때 곡을 빼앗기는 아픈 경험을 했다. 합주를 통해 곡을 만들던 아마추어 시절이라 작사, 작곡의 저작권이 애매하긴 했지만 밴드를 나간다니 그의 창작곡 ‘NEVER BE ALONE’을 타인의 이름으로 앨범 타이틀곡으로 사용했던 것. “밴드를 탈퇴했으니 활동에 지장을 준 것이라 생각해 사용하라 했지만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때 4~5곡정도 만들었는데 너무 어린 시절에 만든 노래들이라 스타일과 맞지 않아 악퉁의 음반에는 넣지 않았습니다.”(추승엽)

호서대 철학과 입학한 추승엽은 학교생활이 적성이 맞지 않아 음악만 듣고 다녔다. 그는 1995년 말, 4인조 밴드 마리엔트메리의 창단 보컬리스트로 활동한 1세대 인디밴드 출신이다. “음반에는 참여하지 않았어요. 초창기 마리엔트메리는 록큰롤 뮤지션 리틀 리차드를 커버한 록커빌리 밴드였습니다. 음악 정체성보다는 그냥 클럽에서 놀아보자는 마음이었죠. 당시 클럽 드럭에서 활동했을 때, 이석문사장님이 노브레인 결성 전에 이성우는 불대가리, 저는 양아치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웃음)”(추승엽)

1997년 3인조 록밴드 비토(VETO)시절 추승엽(가운데)

1997년, 딴지일보에 ‘파토(pato)’라는 닉네임으로 칼럼을 쓴 원종우의 원맨밴드 배드 테이스트(Bad Taste)의 객원보컬로 참여해 컴필레이션 앨범 ONE DAY TOURS에 추승엽이 노래한 ‘넌 아냐’가 최초로 수록되었다. 1996년 12월부터 기획된 이 앨범은 당시 홍대 앞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던 새로운 문화기류인 클럽공연문화의 초창기를 증명한다. 상업적 성패를 떠나 인디레이블 설립을 알리는 최초의 앨범이 되었고 제작사인 강아지 문화예술은 1997년 한겨레신문 선정 국내 문화계 10대 뉴스로 선정되었다. 거의 동시에 Nirvana 트리뷰트 앨범 ‘Smells Like Nirvana’에도 그가 노래한 ‘Smell Like Teen Spirits’가 수록되었다. 이후 트윈 보컬 시스템이었던 3인조 헤비메탈 밴드 비토(VETO) 2집 Ladies & Gentleman에서 5곡을 불렀다.

추승엽은 대학 3학년을 마친 1998년, 해군 홍보단에 입대해 가수병으로 복무하며 뽕짝에서부터 차차차까지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뽕필까지 익혔다. 2000년 11월 제대 후 팝 발라드가수 데뷔를 꿈꾸며 라인음향에 연습생 개념으로 들어갔다. 악퉁 1집 타이틀곡 ‘비더맨’은 그때 만든 노래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면서 음반시장이 경색되자 솔로 가수 데뷔가 난항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4인조 밴드 노바소닉의 리더 김영석과 연결되어 공석이던 보컬 참여를 타진했지만 무산되었다. “그래서 영석형의 포지셔닝으로 직접 밴드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곡을 다 만들어 기획사 뮤직팜과 계약직전까지 갔는데 저희가 계약금과 인세 조건을 너무 과하게 요구해 성사되지는 못했습니다.”(추승엽)

2004년 악퉁 2기 추승엽 용진 안병철 사진

2002년 해군 홍보단에서 만난 전우인 베이스 최우재와 잼 연주를 하며 의기투합한 유학을 갔다 막 돌아온 드럼 용진과 3인조 어쿠스틱 밴드 악퉁을 결성했다. 밴드 이름 악퉁(Achtung)은 추승엽이 독일 아우토반에서 본 도로 표지판에 적힌 ‘위험, 조심!’이라는 뜻의 독일어다. “평소 멋있다고 생각한 피아노를 연주하는 미국의 3인조 밴드 벤 폴즈 파이브 (Ben Folds Five)와 어쿠스틱 기타가 3대만 3대인 3인조 밴드 데이즈 오브 더 뉴(Days Of The New)를 롤 모델로 삼았죠. 처음엔 일렉트릭 기타를 영입하려 했지만 제 노래들이 어쿠스틱한 편곡이고 국내에서 어쿠스틱 3인조 밴드는 유니크한 존재라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습니다.”(추승엽)(part2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추승엽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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