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처남 팽헌(조정석)과 아들 진형(이종석)과 산 속에 칩거하고 있던 그는 관상 보는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백윤식)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수양대군(이정재)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11일 개봉.

황성운 : 각각의 캐릭터를 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하다. ∥ 관람지수 7 / 관상지수 7 / 콤비지수 8
이은아 : 좋은 메시지 뒤에 느껴지는 싱거운 맛 ∥ 관람지수 5 / 관상지수 6 / 콤비지수 8

영화 ‘관상’ 스틸 이미지.

황성운 : 사람의 얼굴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것, 실제 ‘관상’을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을 끈다. 영화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초반에 재밌고, 흥미로운 관상을 풀어 놓는다. 얼굴만 보고,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내경의 대사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또 송강호 특유의 말투가 더해지면서 재미까지 더했다. 보통 사람들의 미래를 말하고, 과거를 통해 범죄사건을 해결하고, 임용되는 관리의 앞날을 살피고, 역적 가능성이 있는 ‘불온’ 세력까지 다양한 관상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관상, 그 자체에서 오는 매력은 줄어든다. 관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더라도 중반까지는 탁월한 재미와 흥미를 지니고 있다.

‘관상’의 더 큰 매력은 송강호, 조정석, 이정재, 이종석, 김혜수, 백윤식 등 화려한 캐스팅이 빚어내는 것들이다. 내경(송강호)과 팽헌(조정석)의 앙상블은 환상적이다. 송강호는 어느 누구든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판을 만들었고, 조정석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신나게 뛰어 놀았다. ‘건축학개론’의 납득이가 ‘원맨쇼’였다면, 이번에는 듀오가 만들어내는 상황적 코미디다. 무엇보다 조정석은 주말극 주인공까지 맡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건축학개론’ 만큼 임팩트를 주진 못했다. ‘관상’이 다시 한 번 조정석 임팩트를 줄 것으로 보인다. 영화 관람료는 두 사람의 호흡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깝지 않다. 아무리 많은 기대를 해도,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큼 두 사람의 호흡이 찰지다.

중반 즈음 등장하는 수양대군, 이정재도 눈 여겨 봐도 좋다. 무슨 주인공이 1시간 후에 나오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정재는 ‘관상’의 비밀병기다. 데뷔 20년차 배우지만 요즘들어 부쩍 연기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정재는 원톱 주연보다는 ‘멀티’에 더욱 어울리는 것 같다. 조화를 이루고, 합을 맞추는 재미를 뒤늦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정재는 새로운 수양대군의 모습을 보여주며 강인함을 새겼다. 김혜수의 짧은 출연은 가장 아쉽다.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매력적인 연홍의 모습을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물론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시종일관 재밌는 건 아니다. 지루하기도 하고, 허술한 부분도 꽤나 눈에 띈다. 그럼에도 ‘관상’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헛점을 덮고도 넘친다.


‘관상’ 스틸 이미지.

이은아 :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누구나 영화 ‘관상’의 포스터를 봤을 거다.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까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는 송강호, 조정석이 둘이서 환상의 콤비를 보이며 힘차게 시작한다. 관객들은 말 그대로 빵! 빵! 터진다. 요란한 몸짓, 당돌한 애드리브, 우스꽝스러운 표정 연기 등을 보이며 두 사람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웃기다.

반면 김혜수는 송강호가 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주지만 여기서 끝이다. 영화는 ‘문’ 역할 빼고는 김혜수에게 다른 중요한 임무를 주지 않는다. 이종석의 경우도 그렇다. 자신의 몰락한 양반 가문의 운명에 체념하지 않고 힘겹게 궁에 입성하지만, 영화에 어떠한 힘을 보태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백윤식은 호랑이의 관상을 가졌지만, 손톱 한번 꺼내지 않고 사라진다. 결국 다른 인물들과 조화를 못 이루고 이정재와 송강호만 조선을 뒤흔들었다는 점이 영화를 싱겁게 만든다. 김혜수를 더 많이 보고 싶었고, 이종석의 얌전한 모습보다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다이내믹한 연기도 기대했다. 이종석의 연기는 그의 다음 영화 ‘노브레싱’에서 기대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배우들의 활약이 끝에 가서 약해진 탓일까. 명쾌한 시작과 달리 영화가 끝에서는 갑자기 무거워지고 힘도 잃는다. 피를 많이 흘리는 비극을 맞이하면서 피곤한 감정소비를 하게 된다. 알맹이는 좋지만, 캐릭터, 스토리 전개 등의 주변요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스토리 전개의 연결 고리들만 봐도 약한 영화였다. 얼굴에 갑자기 점이 3개 생겼다고 평생을 믿었던 것을 한순간에 뒤엎을 수 있을까. 설득력이 부족한 마당에 전반부와 극명하게 대립하는 무거운 끝은 관객을 지치게 한다. ‘관상’이란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인 계유정난을 풀면서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배분하지도, 균형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보다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이 다소 단편적으로 그려졌다. 전반과 후반, 뚜렷히 나뉘다 보니 139분이란 러닝타임이 조금은 길게 느껴진다. 시간 순서에 맞는, 나열 방식의 단순한 편집도 길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이은아 domino@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