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 부활은 팀 이름처럼 여러 번 부활했다. 김태원과 함께1980년대 부활의 영광을 가능케 한 이승철이 팀을 나간 후 오랜 공백기를 가진 때에는 김재기의 ‘사랑할수록’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부활했고, 김재기가 비운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박완규의 보컬로 다시 돌아왔다. 아이돌그룹의 득세로 록밴드들이 주춤하던 시기에는 이승철이 돌아온 ‘네버 엔딩 스토리’가 희대의 히트곡으로 떠올랐다. 지금은 ‘스타 보컬리스트’ 정동하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부활’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가슴을 울리는 노래의 힘 때문.

부활의 인기에는 최근 김태원의 예능 나들이, 정동하의 뮤지컬 출연 등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부활이 1986년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13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면서 매 앨범마다 타협 없는 음악의 완성도를 선보여 왔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 중국, 일본에서도 활발한 콘서트를 열며 음악적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개천절인 10월 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콘서트를 갖는 부활을 만났다.

Q. 작년 여름 13집 ‘Purple Wave’ 발표 후 전국투어를 돌았다. 이제 오는 10월 3일 개천절에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밴드로서 지난 1년여 동안 근황이 어땠나?
김태원: 투어를 계속했다. 전국을 돌며 쉬지 않고 공연했다. 지난 7월에 일본공연을 다녀왔고 올해 미국, 중국 공연을 앞두고 있다.

Q. 밴드 외에 김태원은 방송, 정동하는 뮤지컬 등을 병행하고 있다. 많이 바쁘겠다.
김태원: 나는 늘 하던 거라 괜찮은데, 동하가 많이 바쁘다. ‘불후의 명곡’에서 활약이 대단했지 않나? ‘나는 가수다’에 임재범, 박완규가 있었다면 ‘불후의 명곡’에는 단연 정동하가 있었다.

Q. 정동하는 이제 엄연한 스타 보컬리스트다. 그로 인해 부활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거라고 봐도 될까?
김태원: 그렇게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동하: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태원 형님 덕분이다. 과감하게 TV 예능 프로그램에 도전을 하셨고, 그로 인해 부활의 이름이 다시 알려지면서 그 후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 지금 많이 바쁘지만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부활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Q. 올해는 미국, 일본, 중국에서도 공연을 한다. 9월 20일부터 30일까지는 애틀랜타, 뉴저지, 시카고, 댈러스를 도는 미국 투어를 갖는다. 예전에도 이렇게 해외 지역을 돌며 공연을 했었나?
김태원: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몇 개의 주를 가는 것은 처음이다.



Q. 부활이 결성된 것이 올해로 28주년이다. 이제 30주년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 긴 세월 속에서 부활의 위치는 어느 정도로 가늠해볼 수 있을까?
김태원: 지금 가장 높이 비상하고 있다. 더 높이 난 적이 있었나?

Q. 1~2집 때는 정말로 록 스타였지 않나?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같은 희대의 히트곡을 냈고 록밴드로서는 드물게 앨범도 수십만 장 씩 팔았다.
김태원: 그건 의미가 다른 것이다. 80년대에는 우리가 지금 아이돌 가수들처럼 나이가 어렸으니까. 지금 우리 평균연령이 예능으로 치면 ‘남자의 자격’ 정도인데 아직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은 80~90년대 내가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위치다. 1986년에 ‘희야’, 1993년 ‘사랑할수록’, 2002년 ‘네버 엔딩 스토리’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올해처럼 해외에서 이렇게 많은 공연을 하지는 못했다. 부활은 지금 가장 높이 날고 있다. 아티스트는 종이비행기처럼 혼자서는 날 수 없다. 팬들이 우리를 높이 날려준 것이지.

Q. 작년 여름에 13집 ‘Purple Wave’ 발매 기념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 작년 기자회견에서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1980년대에 연애를 했을 때처럼 진취적인 몸 상태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김태원: 우리가 사랑을 받으면서 새 앨범을 만든 지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작가로서 새 앨범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에게 큰 기대를 받은 적은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Q. 요새는 김태원에 이어 정동하가 브라운관에 얼굴을 자주 비친다. 많이 나온다. 다른 멤버들은 정동하의 모습을 많이 보는가?
서재혁: 동하 방송을 자주 본다. ‘불후의 명곡’에는 멤버들이 응원하러 나가기도 했다. 태원 형님이 나갔을 때는 동하가 역대 최고 점수로 우승을 했는데, 나와 제민 형이 응원하러 갔을 때 중도하차했다.(웃음) 물론 3승까지 했으니 그것도 대단한 것이다. 동하가 방송, 뮤지컬의 등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데 도무지 지치질 않는다.
정동하: 어렸을 때 엄마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쉬지 않고 놀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재밌게 놀 듯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너무나 즐겁다.

Q. 뮤지컬을 하다보면 부활 공연이 그립지 않나?
정동하: 각각 나름의 매력이 있다. 라이브는 정해진 약속이 없이 생동감 있게 흐르는 것이 매력이다. 뮤지컬은 스토리의 진행, 앙상블 등 미리 정해진 약속들을 무대에서 구현하는 스릴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나만의 것을 보여줄 수 있다.

Q. ‘불후의 명곡’은 부활 콘서트와 어떻게 다르던가?
정동하: ‘불후의 명곡’은 무대 연출, 편곡 등을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고등학교 때 학교 축제 무대를 준비하면서 옷은 뭘 입을지,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던 설렘이 떠올랐다.



Q. 부활의 보컬리스트들 중 오랜만에 대중에게 그 존재가 각인된 경우다.
정동하: 사실 부활로 활동할 때는 “안녕하세요. 우리는 부활입니다”라고 자연스럽게 인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전까지는 “저는 부활에 새로 들어온 보컬 정동하”라는 소개를 꼭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부활이라는 팀이 너무나 컸기에 “우리는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신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Q. 원래 부활은 영국의 딥 퍼플처럼 기타리스트가 전면에 나서는 밴드 아닌가?
김태원: 글쎄, 내가 리치 블랙모어 같은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대중들에게 그렇게 비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록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김태원이 주축이 된 밴드로 알고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Q. 김태원은 연습할 때 굉장히 엄하다고 들었다. 분위기가 살벌하다고 하던데?
정동하: 옛날에 그러셨을 것이다. 요새는 전혀 그렇지 않다.
김태원: 그것은 1980년대 이야기다. 1985년 ‘디 엔드’ 시절부터 부활의 태동기까지는 멤버들의 기 싸움이 대단했다. 팀 내에서 음악적인 방향성을 누가 결정짓는가를 정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디 엔드 때는 김종서가 노래를 했고 지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 이태윤, 당시 천재 드러머로 불렸던 황태순, 나의 기타 사부였던 이지웅이 퍼스트 기타를 맡고 있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다 나이도 비슷했으니 경쟁이 심했다. 그때는 어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연주자들이 지금 다 한 획씩을 그었다.
채제민: 태원 형님이 그런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서 큰 소리를 친 거 아니신가?
김태원: 그런데 난 90년대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부활 2집을 끝으로 오랜 방랑기를 거친 다음부터 말이다.

Q. 2집 이후 이승철이 팀을 나가고 김재기와 함께 3집을 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김태원: 방랑을 하는 시기가 있었다. ‘사랑할수록’이 담긴 3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부드러워지고 유머러스해졌다. 조금 엉뚱하기도 했고. 오래 방랑을 해보니 그런 김태원이 더 낫다고 생각을 했다.



Q. 부활은 록발라드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앨범을 들어보면 장대한 스케일을 가진 아트 록 계열의 곡들도 많다. 1집에서는 ‘인형의 부활’이 그랬고, 2집에는 ‘회상’ 연작 시리즈가 있었다. 이후 앨범에도 그런 곡들이 꾸준히 수록됐다. 어떻게 그런 곡들을 만들게 됐나?
김태원: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에 관심이 많았다. 클래식에 관심이 많아진 이유는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감동을 주는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늘 음악이 흐르더라. 장면에 음악이 겹쳐지지 않으면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그걸 깨닫고 현악 위주의 오케스트레이션 음악에 심취했다. 클래식은 가사가 없어서 듣는 이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런 음악들과 지미 헨드릭스와 같은 록을 함께 좋아했다.

Q. 부활 앨범들을 보면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엔니오 모리꼬네 등의 음악을 연주에 삽입하기도 한다.
김태원: 1집에서는 차이코프스키, 2집에서는 레퀴엠의 테마를 우리 음악에 삽입하는 방식의 작업을 했었다. 원래는 클래식을 좋아하다가 레드 제플린 존 보냄의 드럼 소리를 들으면서 록의 리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내 음악에서 섞이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50명이 만드는 음악을 넷이서 해내는 것이 록밴드다.
서재혁: 곡마다 다 엔딩 곡 같아서 콘서트 할 때 순서를 짜기가 힘들 정도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같은 곡이 끝나면 공연을 마쳐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웃음)

Q. 김태원은 영향을 받을까봐서 다른 뮤지션 음악은 듣지 않는다고 하던데 지금도 그런가?
김태원: 음악은 아예 듣지 않는다.

Q. 어떤 시기의 음악까지 열심히 들었나?
김태원: 1980년대 LA메탈, 하드록까지는 들었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음악을 안 듣게 됐다. 그렇다고 클래식을 듣는 것은 아니다. 음악 자체를 아예 안 듣는다. 이동 중에도 차에서 음악을 트는 법이 없다.

Q. 부활의 자동차 안을 보니까 김태원이 작곡용으로 쓰는 작은 통기타가 있더라. 이동 중에도 곡을 만든다고 하던데.
김태원: 뭐, 내 직업이 작곡가니까. 평소에는 혼자서 가만히 앉아 곡을 쓸 여유가 많지 않다. 방송도 하고, 공연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니까. 그러다가 차 앞자리에 앉으면 비로소 혼자가 된다. 매니저가 운전을 하면 눈앞에는 풍경만 지나가는데 작곡을 하기 좋은 시간이다.
채제민: 우리는 태원 형이 곡 만드는 것을 방해 안 하려고 모두 잠을 잔다.(웃음)

Q. 채제민은 부활에 들어오기 전에 시대를 풍미한 밴드 티삼스로 활동했다. 그때 부활과 마주치기도 했겠다.
채제민: 우리는 나름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웃음) 80년대 후반에 ‘매일 매일 기다려’가 히트를 했던 때다. 그런데 사실 부활, 시나위 같은 팀들은 다른 밴드들 사이에서 ‘넘사벽’이었다.

Q. 채제민이 1998년 6집 때 참여했고, 서재혁은 1999년 7집 때 합류했다. 정동하가 들어온 것이 2005년 10집이다. 그 이후로 멤버 변동이 없이 오래 가고 있다. 멤버교체가 많았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역대 부활 중 가장 안정된 라인업이 아닌가?
김태원: 지금은 부활의 네 멤버 전원이 전부 적절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일은 역대 부활 중 거의 처음이다. 이처럼 멤버 모두가 부각되는 것이 모든 밴드의 바람이다. 지금의 부활은 거기에 다가가는 중이다.
정동하: 단독공연을 할 때에는 제민이 형, 재혁이 형 플래카드가 많다. 저에게는 눈길도 안 주시는 팬 분들도 많다. 그런 것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Q. 정동하는 쟁쟁한 선배들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특히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노래는 무엇인가?
정동하: 어려운 곡과 부담스러운 곡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부담스러운 곡은 아무래도 박완규 형님의 노래다. 전체적으로 키가 높다. 고음을 소화하기가 까다롭다. 어려운 곡은 고(故) 김재기 선배님의 ‘사랑할수록’이다. 이 노래는 부를 때마다 멜로디와 가사의 느낌이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 다른 곡들이 완성된 그림이라면 ‘사랑할수록’은 도화지와 같다. 내가 채워넣어야 할 것이 많다. 이 곡은 이상하게도 테크닉적으로 기교를 부리며 부르면 이상해지는 곡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완성되는 느낌이다.

Q. ‘사랑할수록’이 나왔을 때에는 정동하가 중학생 아니었나?
정동하: 맞다. 그때는 부활을 알고 있었지만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할수록’은 뇌리에 깊게 남아서 나도 모르게 계속 따라 부르곤 했던 노래다.

Q. 30년 가까운 세월을 오다보니 이제 히트곡도 시기별로 나뉜다.
서재혁: ‘희야’를 좋아하는 세대, ‘사랑할수록’을 좋아하는 세대, ‘네버 엔딩 스토리’를 좋아하는 세대가 확실히 나뉜다. 콘서트에서 곡에 대한 반응을 보면 관객들 연령대를 알 수 있다.

Q. 역시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같은 곡들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록발라드가 됐다. 앞으로도 그런 곡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
김태원: 그것은 추억에 비례하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에 음악의 진화를 단순히 기술력의 발달로 결정한다면 과거의 음악은 다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옛날 곡들이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멜로디, 아름다움의 극이 나와도 옛 노래에 이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추억일 것이다.



Q. 김태원은 아마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일 것이다. 그래도 물어보고 싶다. 역대 보컬리스트들의 특징을 말한다면?
김태원: 이승철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창법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그 자체로써 말이다. 김재기는 보컬로서 재능을 이루말할 수 없이 뛰어나다. 내 성격상 분석을 다 마쳐야 평가를 하는데, 김재기는 내가 아직 그 진가를 전부 확인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다. 삼국지로 치면 관운장과 같이 전설이 된 존재다. 그의 동생 김재희 역시 아직 자신의 목소리만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김재희가 함께 했던 4집은 내 개인적으로 부활의 앨범 중 가장 자신이 있는 명반이다.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앨범이다.

Q. 4집 ‘잡념에 관하여’는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로 부활의 앨범 중 가장 난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태원: 내가 좀 난해한 사람이다. 대중의 눈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부 쏟아 부은 앨범이다. 3집으로 번 돈을 다 썼으니까.

Q. 다른 보컬리스트들에 대한 특징도 말씀해 달라.
김태원: 누구나 목소리에 소울(영혼)이 있다. 박완규는 자신의 소울을 자기가 직접 건드리면서 노래를 하는 보컬이다. 흔히 그것을 진정성이라고들 말한다. 때문에 박완규의 목소리는 처절하기도 하고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다. 김기연은 부활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함께 한 보컬이다. 날 놀라게 하는 음색을 지닌 보컬리스트였다. 원래 난 부활의 지난 노래들도 다시 듣지 않는다. 얼마 전 6집의 ‘가능성’을 다시 들었는데 드럼, 기타, 베이스와 김기현의 보컬의 밸런스가 완벽하더라. 안타깝게도 녹음을 마무리하던 시기에 성대 결절이 됐다. 이성욱 역시 부활이 힘든 시기를 함꼐 했다. 그는 동화 같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현실이 아닌 꿈속의 느낌과 같은 노래를 들려준다. 정단은 노음 당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나 노래를 잘 할 수 있지?”라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 보컬리스트다. 가히 노래 교과서, 노래의 신이라고 할만하다.

Q. 정동하는 어떤가?
김태원: 정동하는 부활의 역대 가장 최장수 보컬리스트로서 긴 시간의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의 예를 가장 정확히 보여줬다. 대개 보컬들을 보면 굴곡이 심하거나 초반에 잘 되지 못하면 중간에 활동을 접는 경우가 많다. 정동하는 음악에 대한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드디어 진가를 알리게 됐다. 4~5년 전쯤에는 정동하의 탁한 음색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동하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고유의 목소리로 노력해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버렸다. 보컬리스트들이 하루아침에 뜨고 사라지는 요즘 같은 때에 정동하는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본보기다.

Q. 정동하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정동하: 2005년에 내가 부활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사람들이 부활 보컬이 바뀐 사실도 잘 알지 못했다. 대중의 부활에 대한 기억은 이승철 선배님이 부른 ‘네버 엔딩 스토리’에 멈춰있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 ‘생각이 나’가 히트를 했고, 태원 형님이 예능 프로그램을 하시면서 부활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팬들이 부활의 전 보컬 선배님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나를 부족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난 그런 반응도 반가웠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더욱 열심히 연습했다. 난 큰 걸음보다는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온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했다.

Q. 이제 곧 30주년을 앞두고 있다. 혹시 미리 생각해둔 부활 30주년 계획이 있나?
김태원: 올해 고(故) 김재기의 20주기를 맞아 ‘김재기 가요제’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 됐다. 부활 30주년에는 김재기를 기리고, 후배 록 보컬리스트들을 발굴하는 의미에서 ‘김재기 가요제’를 꼭 개최하고 싶은 바람이다.

Q. 차기작 계획은?
김태원: 차기작은…. 난 미리 계획하고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때가 되면 만들 것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l.co.kr
사진제공. 부활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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