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문소리
영화 ‘스파이’ 속 문소리는 작정하고 웃기려고 하는 배우다. ‘이렇게 까지 하는데 안 웃나 보자’라고 관객과 싸움하는 것 같다. ‘스파이’가 전하는 웃음의 대부분은 문소리 차지다. 시종일관 나오지만 ‘웃음’ 타율도 꽤나 높다. 그녀가 그토록 ‘웃기는’ 배우였는지 미처 몰랐다. 지금까지 작정하고 웃긴 적이 없었다. ‘하하하’ 등 약간의 웃기는 역할도 있었지만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등 대중의 기억에 강하게 남은 ‘센’ 작품을 데뷔 초기에 했던 영향도 상당하다. 그리고 스크린쿼터, 소고기 촛불집회 등 사회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다. 문소리는 강한 이미지의 배우였다. 그렇게 인식됐다.

사실 ‘스파이’에서 문소리가 연기한 영희는 ‘웃긴’ 역할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해 ‘아니었다’고 짐작된다. 당초 ‘미스터K’로 시작해 ‘협상종결자’로 그리고 ‘스파이’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웃기고 웃긴’ 문소리로 대중 앞에 섰다. 또 출산 후 처음 선택한 작품이기도 하다. 첫 돌을 보내기도 전에 촬영장에 나섰다. 그리고 설경구와 10여 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숱한 우여곡절에서도 설경구의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처럼 문소리에게 있어 ‘스파이’는 여러모로 의미를 지닌다.

Q. ‘스파이’란 작품은 문소리에게 있어 여러모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소리 : 음. (한동안 침묵으로 취재진을 당황케 했다.) 심경이 복잡하다. 알아서 써 달라.(웃음) 어떻게 (그걸 전부) 설명 하냐. 그것도 맨 정신에.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 같다. 어찌됐던 지금은 다행이란 생각이다. 첫 주에 100만 관객이 들었고. 잘 마무리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Q. 출산 후 처음 선택한 작품이기도 하고, 문소리란 배우도 작정하고 웃기니까 장난 아니구나라는 것도 보여줬고.
문소리 : 남편은 많이 재밌다고 한다. 친한 친구들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코미디를 하지 않기엔 아깝다고. 그런데 ‘스파이’에서 하게 될진 몰랐다.

Q. 맞다. ‘스파이’에서 하게 될진 몰랐다는 말이 이해된다. 애초 ‘미스터K’였고, 지금은 코믹첩보액션이지만 처음엔 이마저도 아니었을 것 같다.
문소리 : 기억이 없어요.(웃음) 의지에 의해 기억을 지운 것으로 해 달라.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가기로 했고, 배우들도 다 같이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 짓자는 마음이었다.

Q.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캐릭터도 지금처럼 코믹이 강하진 않았을 것 같다. 갑자기 캐릭터가 완전히 바뀌면 누구라도 당황할 것 같다. 그리고 기존에 구축했던, 연구했던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도 있고.
문소리 : 여러 번 방황하고, 당황하고, 무너졌다. 많이 울기도 하고. 그런 시간이 있었다. 아마 경구 오빠 아니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오빠 믿고 같이 가보자 생각했다. 어떤 마음으로 헤쳐 나가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누구나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고, 만날 수도 있는데 억울하게 생각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좋을 게 없지 않나. 좋은 마음으로 같이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어찌됐던 감독 교체에 있어 다른 배우보다 문소리란 배우가 더 민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편인 장준환 감독도 속내까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에서 볼 땐 ‘감독교체’로 비춰지는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문소리 : 물론 어떤 면에선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할 순 있다. 여하튼 그땐 어느 누구한테도 말을 못하겠더라. 사람 입장이라는 게 다 다르기도 하고. 지금도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그래도 당사자보다 힘들었겠나. 그 분들보다 덜 힘들 거라 생각했고, 그냥 가슴이 많이 아팠다. 사실은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영화계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경고일 수 있는데, 그런 경고를 어떻게 보완하고, 고쳐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되는 것 같다.

Q. 이런 저런 상황에서 설경구란 존재가 든든한 버팀목이었겠다.
문소리 : 그 분도 아마 내가 큰 버팀목이 됐을 거다. (웃음)

Q. 설경구와 세 번째다. 물론 10년 만이긴 하지만.
문소리 : 서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말 안해도 세월의 흐름은 무시 못 한다.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아닌데 어릴 때 만나 같이 고생했던 게 다 남아 있더라. 그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애정으로 남아 있더라. 우리는 그렇게 그냥 하는데 다니엘 헤니가 제일 먼저 그러더라. ‘둘 사이에 다른데서는 못보는 특별한 케미스트리가 있다’면서 부러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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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한 것 같다. 가벼운 질문으로 가보자. 영화 속에서 문소리 씨가 연기한 영희는 국제선을 타는 승무원이다. 그런데 영어가 그다지 유창하진 않던데.

문소리 : (웃음). 승무원들이 그렇게 잘하진 않아요. 산후조리원 동기 중에 승무원이 두 명 있었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그래서 맛있는 거 사주면서 인터뷰를 꽤 많이 했다. 진급할 때 회화 등 영어 시험도 보고 하는데 그렇다고 정말 유창하진 않더라. 유창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영어 대사, 거의 헤니와 내가 만들었다. 외국 손님 앞에 앉아서 뭘 하라고 하는데 시나리오에는 대사가 없다. 와인 설명하고 하는 거 그냥 내가 한 거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로.(웃음)

Q. 레스토랑 장면도 꽤나 인상에 남는 장면이다. 맨발로 기어 다니고, 의상도 그렇고. NG도 많았을 것 같은데.
문소리 :
복부와 엉덩이 빼곤 다 상처였다. 더군다나 물을 뿌리니까 얼마나 따가운지. 사실 의상도 고민이 많았다. 리얼리티 상으론 분명 튀는 의상이다. 아무리 남자한테 정신이 나갔다고 한들 승무원이 일하러 간 건데, 관객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까 싶기도 하고. 결국엔 리얼리티 보다 영희가 선명하게 보이고, 오버해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또 할리우드에선 짧은 치마 입고 액션을 한다고들 하고. 무엇보다 현장에선 모니터를 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넘어진지도 몰랐다. 원래 액션이 더 많았는데 나중에 보니 조금 길더라. 그런데 감독이 미안해서인지 차마 못 자르고 있더라. 그래서 잘 나오는 게 더 중요하니 자르자고 했다.

Q. 그런데 출산 후 몸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작품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늦은 나이에 출산 아닌가. 그리고 산후 조리가 굉장히 중요한데.
문소리 : 노산이죠. 처음엔 7월에 출산하니까 8월에 찍자고 하더라. 그래서 ‘100일만 넘기고 찍으면 안 될까’라고 했을 정도다. 그랬는데 조금 미뤄지게 됐다. 근데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분명 무리가 갔을 수도 있는데 작품을 하기 때문에 몸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게 있다. 출산하고 7개월 후 쯤에 태국에 갔는데 그 때 대역이 필요하진 않은데도 액션 팀에 여자를 꼭 데리고 가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시간만 나면 수영하고, 운동하고 그랬다. 호텔에서 소문이 났을 정도다. 허름한 호텔인데 러닝머신 등 운동기구 몇 개 있는 조그마한 짐(GYM)과 요가 매트 등이 깔려 있는 작은 스튜디오 같은 게 있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독점하다시피 사용했다.

Q. 아무리 더 관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문소리 : 마지막 2~3kg가 잘 안 빠지더라. 그리고 감량하고 그러다 보니 뼈 마디가 아팠다. 따뜻한 물로 해야 하는데 성질 급해서 찬물에 씻고, 그러면 시큰시큰거리고. 팔굽혀펴기를 하면 팔꿈치도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촬영 중이었는데 집 현관에서 뱀에 물린 적이 있다. 엄마가 보내준, 야채 같은 것을 넣어 둔 박스가 있었는데 뭔지 보려고 손을 넣었는데 굉장히 아프더라. ‘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그래서 손을 확 뺐는데 긴 끈 같은 게 날아가더라. 밤 11시경 곧장 병원에 갔더니 아침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음날 촬영을 못하겠다고 피디한테 전화를 했다. 이후 경구 오빠는 ‘당장 이사 오라’고 난리고, 헤니는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한 시간 걸리고. 여하튼 상황이 그랬다. 지금도 살 색깔(뱀에 물린 손가락 부위를 보여줬다.)이 약간 시커멓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뱀에 물리고 나선) 아픈 게 사라졌다. 시큰거리고, 뼈 마디가 아팠던 게 없어졌다. 특별히 뭘 한 게 없는데 말이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뱀독’ 오른 여자라고.(웃음).

Q.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게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휴~.
문소리 : 다행이죠. 그리고 이사할 생각이 있긴 한데 뱀 때문은 아니다. 나름대로 노하우도 생긴다. 집에 벌집이 있었는데 처음엔 119를 불렀다. 그랬더니 많이도 왔더라. 그리곤 그 분들 다 사인해주고.(웃음) 여하튼 벌도 밤에는 자나보더라. 벌집을 떼거나 할 때 밤에 하면 공격을 하지 않더라.

Q. 어린 아이를 두고 나간다는 게 밟히지 않나.
문소리 :
당연히 눈에 밟힌다. 그래도 애기가 씩씩하고, 건강한 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외국만 가면 아이가 아프다. 그리고 아이가 아프면 꿈에 나타난다. 한 번은 꿈에 아이가 정말 깡말라 있는 거다. 그래서 집에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거다. 나중에 집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살이 쏙 빠져있는 거다. 그때서야 고열이 나고 그랬다고. 아플 때마다 그런 것 같다. 어떨 땐 아이가 회복하는 것도 나타난다. 아이도 엄마가 멀리 간다는 건 아는 모양이다. 뭔가 있긴 있다.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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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혼한 사람들, 특히 결혼한 여자들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시월드’가 너무 공감된다는 말도 있더라.

문소리 : 대부분의 관객들이 영화 초반, 태국 가기 전까지는 집중을 잘 못한다. 그런데 결혼한 여자들은 초반부터 초집중을 하더라. 그 부분 때문에.(웃음).

Q. 문소리 씨도 감정이입한 거 아니냐.
문소리 : 남편은 그런 타입은 아니다. 실제로는 (시어머니 앞에서) 내 편을 들어줘서 오히려 말린다. 어찌됐든 그 장면은 정말 화나는 것 같다. 당시 일화가 있는데 그 장면 찍을 때 중간에 비가 왔다. 소나기처럼. 그래서 김지영 선생님과 감자를 먹으면서 3시간 가량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인생사를 다 들었다. 전기 한 편 써도 되겠더라. 재밌고, 슬프고. 그런 기억이 남는다.

Q.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면서 문소리도 많이 바뀐 것 같다. 기자가 기억하는 문소리는 당차고 강한, 전사 같은 이미지다. 스크린쿼터, 소고기 촛불집회 등 숱한 집회에서 봐 오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는 여유로워지고, 편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소리 : 내가 세상을 또는 사회를 보는 시각 그리고 자연인 문소리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경기도민으로 살아가는 문소리라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생각하고, 참여하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애기를 낳고 나니 더 많은 문제들이 보이더라. 달라진 게 있다면 애기도 낳고,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냥 덜 무섭다. 옛날에는 누가 나를 해칠까 봐, 내가 다칠까 봐 많이 겁먹고 무서워했다. 그에 대한 표현이 공격적으로 나온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대하는 태도가 조금 부드러워지는 때도 오는 구나 싶다. 옛날에는 매니저 없이 영화계 들어와서 은장도처럼 도끼를 양 손에 들고 다녔다고 보면 된다. 거기다가 이창동 감독님은 어찌나 겁을 주던지. 그 땐 그랬다.

Q. 그런 것들이 연기에 임하는 자세나 태도, 역할을 선택할 때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문소리 : 당연하다. 연기에는 다 들어 있다. 뭘 먹고 살았는지,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다 들어 있다. 분석해 보면 그 안에서 다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무서운 것 같다. 배우는 엄격하게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됐던 자기를 잘 가꾸고,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잘 살아야 한다. 우리가 그 사람의 사연을 구구절절 몰라도 얼굴만 보고 느껴지지 않나. 그런 것과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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